1991년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 남한 민중 운동을 지배했던 두 세력은 지독한 독재 체제를
사회주의 국가라며 옹호했다. PD는 구소련의 독재 체제를 옹호했고, NL은
북조선의 독재 체제를 옹호했다. 적어도 PD와 NL의 지도부와 열성 활동가들은 대체로 그렇게 생각했다. PD는 소련이나
동독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책들을 탐독했고 NL은 김일성 선집을 탐독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 당시 PD와 NL은
이런 면에서는 오십보백보였다. 물론 북조선의 김일성 우상화가 구소련의 스탈린 우상화에 비해 더 황당하기는
했다. 하지만 구소련과 북조선은 둘 다 지독한 독재 체제라는 점에서는 거기서 거기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PD는 급격히 변했다. 그들은 갑자기 소련이 독재 국가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PD 중
많은 이들이 갑자기 민중 운동에서 벗어났다. 민중 운동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구소련 체제에 대한
지지를 버렸다.
반면 북조선은 아직 붕괴하지 않았으며 NL은 그런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 1990년대에 NL의 지도부와 열성 활동가들은 명백히 김일성주의자들이었다. 이것은
운동권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었다. 그들은 김일성 선집을 탐독했으며 스스로를 김일성주의자라고
불렀다(주사파라는 단어는 싫어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여러
명의 NL 활동가로부터 “나는 김일성주의자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북조선 체제를 옹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이 김일성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한국 민중 운동 진영에서 세력을 급속히 잃었을 것이다. 이미 상당히 민주화된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북조선의 지독한
독재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조롱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1990년대에 민중 운동 내에서 NL은 늘 다수파였으며
PD는 소수파였다. “주사파가 판을 친다”는 말은 조중동, 보수당, 비밀 경찰이 만들어낸 신화가 아니라 남한 민중 운동의 현실이었다.
어떻게
1990년대의 한국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주의를 받아들였는지 조금 이상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을 믿는 사람들은 현대에도 많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 예수가
3일만에 부활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김일성이 위대한 수령이라고 믿는 것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김일성주의자들은 김일성이 3일만에 부활했다고 믿는 것 같지는
않다.
NL 활동가들은 한편으로 대단히 한심했다. 그들은
김일성 선집을 열심히 읽었다. 나도 당시에 합법적으로 출판된 김일성 선집을 한 권 읽어 본 적이 있다. 수면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NL 활동가들은 대단히 헌신적으로 민중 운동에 참여했다. NL 후배들이
김일성주의에 빠져든 이유 중 하나가 선배들의 그런 헌신성이었을 것이다.
NL은 수십년 동안 운동권 내에서 비민주적인 행태로 악명이 높았다. 그들은 늘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선후배 관계는 군대처럼 위계적이었으며 툭하면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 PD 활동가들은 이런 NL의 행태 때문에 치를 떠는 경우가 많았다.
PD 계열이 소규모로 모여서 사회당을 만든 이유, 그리고
몇 년 전에 민주노동당에서 PD 계열이 대규모로 떨어져 나가 진보신당을 창당한 이유는 바로 NL의 북조선 체제 옹호와 비민주적 행태 때문이었다.
하지만 PD
계열에서도 NL의 종북주의(김일성주의, 북조선 체제 옹호)를 제대로 까발려서 비판하기를 삼가는 경우가 많았다. 진중권 씨를 비롯한 몇몇 진보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NL의 종북주의를
비판한 것은 예외적이었다.
그러다가 유시민 씨가 이끄는 국민참여당과
진보신당에 있던 사람들이 민주노동당과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이번 비례대표 부실부정
선거 파문이 일어났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의 발표 결과를 볼 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 정도 부실 선거라면 둘 중 하나다. 통합진보당이
정신지체 정당이거나 어떤 세력이 조직적인 부정 선거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L 쪽에서는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NL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NL이 회의를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진행하는지는 1980년대
전대협 시절부터 유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운동권 내에서만 알려졌다. 이제
인터넷의 발달로 상당수 대중들도 NL의 한심한 회의 진행 행태를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이석기 씨는 “어느 나라도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 “부정이 70%, 50%는 돼야 총체적 부정, 부실로 표현할 수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김선동 씨는 “우리 투표용지 관리가 부실해서 그것이 절취선에 절묘하게 잘려서 계속 넣다 보면 그 풀이 다시
살아나서 다시 붙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당원은 해명이랍시고 “투표 장소에 친구들이 있길래, 내 대신
사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 이름이 ‘병성’인데 친구들이 평소에 ‘병신 병신’
하며 놀린다. 나중에 신문에 난 것을 알고 놀랐는데, 그
친구가 내 사인란에 ‘병신’이라고 적었더라”고 말했다.
NL 지도자들이 북조선 독채 체제를 결코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그들은 한반도의 평화 등 온갖 핑계를 대면서 이런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파에서는 신이
났다. 그들은 연일 주사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검찰은 통합진보당의
당원명부를 압수했다. 보수파에서는 NL 지도자들에게 종북주의자인지
여부에 대해 캐묻고 있다.
매카시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진보 진영에서
나오고 있다. “당신은 종북주의자입니까?”라고 묻는 것이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북조선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평화와 남북 협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종북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곧 보수파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좌파다. 나는 열심히 활동한 적은 거의 없지만 이전에 운동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빨갱이다. 나는 공산주의자이며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적도 많이 있다.
좌파인 나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종북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선동 씨, 김재연
씨, 이상규 씨, 이석기 씨, 이정희 씨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김일성주의자입니까? 당신은 북조선이 지독한 독재 체제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남한에서
원하는 체제는 북조선 체제와 비슷한 체제입니까?
나는 쓸데 없이 북조선 지배자들을 자극하는
것에 반대한다. 예컨대 김일성 사진을 불태우거나 북조선 국기를 불태우는 것에 반대한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해 봐야 별로 얻을 것도 없다.
물론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북조선 체제는
지독한 독재 체제다”라고 말하는 것도 북조선 지배자들을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싶고,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알고 싶어하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에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알고 싶어하고, 지역구에서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알고 싶어하고, 통합진보당을 지지할 것인지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김선동 씨, 김재연 씨, 이상규 씨, 이석기
씨, 이정희 씨가 정말로 김일성주의자인지, 북조선 체제를
옹호하는지 여부를 알고 싶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김일성주의자라면 나는 그들이 지도부로 있는 당의 당원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독한
독재 체제를 옹호하는 당에 있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인 나는 지독한 독재 체제를
옹호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조선의 지독한 독재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남한에 비슷한 독채 체제가 들어섰을 때 옹호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북조선의 체제를 남한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남한의 많은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는 이유는
내가 궁금해 하는 이유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에 또는 통합진보당
후보에 투표했던 유권자들 중 절대 다수는 북조선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투표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투표했던 후보가 김일성주의자가 아니었기를 바랄 것이다.
유권자에게는 북조선 체제 옹호 여부와 같이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후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표를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것 아닌가? 자신이 찍은 후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나중에도 다시 표를 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투표를 후회하고 지지를 철회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 아닌가?
나는 유권자에게 이런 정보를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남한의 국회의원이 “나는 북조선 체제가 지독한 독재 체제라고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원한다면 “나는 북조선 체제가 마음에 든다”라고 말해도 된다) 북조선 지배자들을 자극하더라도 그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북조선 체제 옹호 여부와 같은 중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선거에 출마하거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대중을 심각하게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사람을 진보 진영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1990년대의 NL이 김일성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은 운동권에 있던 사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그리고 2012년의 NL의 주요 지도자들은 북조선 체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한 마디도 안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여전히 김일성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것은 전혀 억측이 아니다.
김선동 씨, 김재연 씨, 이상규 씨, 이석기
씨, 이정희 씨, 북조선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나는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며, 김일성주의자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민주 국가라면 바보 같은 것을 믿고 이야기할 권리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김일성주의자라면 당신과 한 조직에 몸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투표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일성주의자들끼리 따로 당 만들어서 잘 해보십시오.
국가보안법이나 남북관계 핑계를 대면서 대중을
기만하지 마십시오. 대중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무슨 대중 운동을 하겠다는 겁니까? 무슨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겁니까?
이덕하
2012-05-24
첫댓글 현재 실패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체제를 그들이 왜 옹호하는지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왜 김일성 사상을 추종하는지도요. 어떤 과정이 있었기에 북한을 추종하는지 궁금하네요. 해방이후 국가의 정통성의 차원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를 정말로 구축하려는 것인지 그들의 속내를 좀 알아봤으면 합니다. 물론 그들이 그들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 현 시점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김일성 왕조 세습을 비판하지 않거나 옹호하는 진보라면 진보라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어찌 진보일 수 있겠습니까? 진보의 탈을 쓴 김일성주의자일 뿐이지. 신을 믿거나 신격화된 우상을 추종하는 무리는 참 바보 같습니다. 조롱거리일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