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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 동안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편에 육박하는 것 같으며 그 중 절반 정도는 진화 심리학에 대한 글이었던 것 같다.
아직 주류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제 꽤 많은 팬과 안티팬을 확보한 것 같다. 사실 글을 직업적으로 쓰는 사람으로서 악플보다 무서운 것이 무플이다. 이제는 무플 지옥에서 약간은 벗어난 것 같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팬들에게는 그리 할 말이 많지 않다. 늘 고마워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써서 올리겠다는 말이면 충분할 것 같다.
안티팬들도 무플 지옥 탈출에 상당한 기여를 해 주었기 때문에 고마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안티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써서 올릴 생각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경로로 온갖 비판과 조롱을 받아왔다. 내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변명을 하고 여전히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반박하겠다.
1. 글의 표현이 애매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예컨대 가설인지 잘 검증된 것인지, 학계의 다수 의견인지 이덕하 개인의 의견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쓴 글에는 실제로 그런 표현이 꽤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을 지적해 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고쳤다고 생각한다.
되돌아보면, 내 머리 속에서 가설과 잘 검증된 것, 학계의 의견과 나 자신의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글쓰기 훈련이 부족해서 남들이 오해할 만한 표현을 쓴 것 같다.
2. 글의 말투가 너무 공격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어떤 분은 이런 공격적인 말투 때문에 사람들이 내 글을 외면한다고 이야기했고, 어떤 분은 이런 공격적인 말투는 주목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공격적인 말투가 어떤 효과로 이어질지에 대해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깊이 생각해 보고 말투를 정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내키는 대로 썼을 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애매한 표현의 경우 꼭 고쳐야겠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많이 고쳤지만 말투를 꼭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 진중권 류의 독설로 인기를 끌 수도 있기 때문에 내 말투 때문에 내가 꼭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독설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독설을 뒷받침할 탄탄한 논리가 있느냐 여부다. 논리 없는 독설은 독설이 아니라 욕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말투 때문에 비판을 받는 당사자가 “이덕하가 나에게 특별히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음 글들과 비교해 보시라. 나는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투로 글을 쓴다.
진화 생물학자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한심한 아마추어 박성관: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비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20
내가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같은 쓰레기를 비판할 만큼 한가한 사람은 아니지만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22
과학자(또는 철학자)라면 말투보다는 논리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것도 안 되는 사람하고는 토론과 논쟁을 벌일 생각이 별로 없다.
3. 내용에 오류가 많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진화 심리학과 관련하여 이런 비판을 많이 받았다. 가장 압권은 전중환 교수의 트위터였다.
전중환 교수가 되도록 저를 피하라고 트위터에 올렸네요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qj/380
나는 10년 전부터 진화 심리학에 대한 글을 써왔다. 10년 동안 진화 심리학을 많이 배웠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10년 전에는 진화 심리학에 대해 거의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에도 용감하게(?) 글을 썼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언제 쓴 글인지 잘 살펴야 한다. 오래된 글일수록 오류가 많다.
최근에 쓴 진화 심리학 관련 글에도 오류가 있겠지만 욕 먹을 만큼은 아니라고 본다. 오류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한다. 하지만 아무런 오류 지적도 없이 “이덕하의 글은 횡설수설이다”라고 말하면 내가 대응할 방법이 없다. 자신의 글이 횡설수설이 아니라는 점을 어떻게 입증한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화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아래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2013년도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의 진화 관련 오류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46
고등학교 교과서의 진화 관련 오류들을 고쳐 주십시오(공개 청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34
유시민의 어설픈 진화심리학 장사
진화심리학을 잘못 적용한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2&no=347
진화심리학은 호주제를 옹호하는가
복거일의 <벗어남으로서의 과학>에서 드러나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몰이해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2&no=271
'알통' 논문에 대한 MBC의 어설픈 보도
MBC의 진화심리학 연구 보도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1&no=330
엉터리 진화심리학으로 문화평론을?
<김헌식 칼럼> 속의 엉터리 진화심리학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1&page=2&no=288
최재천, 호주제 그리고 자연주의적 오류
'사실'에서 '당위'를 무턱대고 이끌어낼 수는 없어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79&category=85&page=2&no=290
4.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가설에 불과한 것은 잘 검증된 것으로 오인할까 봐 걱정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오래 전에 쓴 글에는 오류도 많고 표현도 애매해서 그런 걱정을 할 만하다. 어떤 분들이 그런 글은 지우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쪽 팔린 글일수록 지우지 않고 두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글에 대해 책임을 지는 한 가지 방법인 것 같다. 나는 쪽 팔린 글을 지우는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약간은 한다. 쪽 팔린 글을 썼으면 자기 비판을 하거나 글을 업그레이드해서 해결할 문제다.
최근에는 그렇게 표현을 불명확하게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이것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가망성이 커 보인다”라고 밝혔는데도 “이덕하의 감(gut feeling)은 곧 진리다”라고 믿는 광팬이 있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 무모한 이덕하빠가 과연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만약 있다면 그런 사람은 구제불능이기 때문에 어떤 “치료제”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5. 번역 비판의 잣대가 너무 엄밀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나는 비판의 잣대는 항상 엄밀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아주 사소한 오류나 약간 어색한 번역문을 비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것만 지적해 놓고 “이 번역은 개판”이라고 평가하면 문제가 있다. 비판은 비판대로 엄격하게 하고, 그 번역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여러 가지 기준을 적용해서 하면 된다.
번역 비판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약 어떤 번역서가 개판 번역임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역임이 명백한 것들만 지적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다. 만약 그 번역가에게 충심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지적하는 것이 그 번역가에게 도움이 된다.
6. 내 번역 스타일이 너무 직역(또는 엄밀한 번역) 쪽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나는 학술 번역을 공부하고 있다. 만약 내가 소설이나 TV 시트콤을 번역했다면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번역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Friends>의 에피소드 한 두 편을 번역해서 공개할 생각이다. 나도 시트콤을 번역할 때에는 상당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너무 학술 번역 쪽에만 골몰하다 보니 학술 번역과는 거리가 있는 번역의 경우에도 오바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소위 “노승영-이덕하 번역 대결” 때 내가 올린 번역에서 좀 지나치게 학술 번역스럽게 번역했다. 게다가 터무니 없는 오역까지 몇 개 범해서 욕 먹을 짓을 했다.
나는 번역가다: 노승영 vs. 이덕하 --- 세상의 종말에서 살아남는 법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rk/49
내가 학술 번역에 집중할 생각이기 때문에 엄밀한 번역에 대한 이런 집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7.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을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사이언티픽 크리틱스> 같은 곳에 기고하는 글의 경우에는 보통 며칠 또는 그 이상 동안 쓴다. 하지만 그냥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에는 한 두 시간 동안 쓰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당연히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이 정도의 글도 찾기 힘들다”라고 판단되면 인터넷에 올린다. 이런 글이 완성도가 떨어져서 불만이라면 내가 돈 받고 기고한 글만 찾아서 읽으라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초고 또는 비판 노트를 읽을 때에는 초고 또는 비판 노트임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된다.
8. 가설만 늘어놓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검증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쓴다는 이야기다.
내가 쓴 글에는 데이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데이터와 검증의 중요성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진화 심리학을 소개한 내 글이 초고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강의>를 공을 들여 쓸 생각인데 여기에서는 검증 문제를 깊이 다룰 생각이다.
내가 검증과 데이터를 전혀 다루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래 네 편만 봐도 그렇다. 진화 심리학에 대해 쓴 내 글 수백 편을 뒤져보면 검증과 데이터에 대해서도 꽤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증 방법: 1. 설계의 논증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17
증거: 1. 입덧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20
증거: 2. 좋은 유전자를 얻기 위해 바람피우는 여자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22
규범의 선천성을 입증하는 Paul Bloom의 연구
http://cafe.daum.net/Psychoanalyse/HS9E/208
착상이나 가설만 늘어놓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검증을 위해서는 우선 검증 가능한 가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검증 가능한 가설은 애매한 착상에서 출발해서 다듬어진다. 문제는 착상이나 가설이 얼마나 쓸모가 있고 가망성이 크느냐다. 그런 가망성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평가하기 힘들며 결국은 엄밀한 검증으로 결판날 문제다. 전문가들도 헛다리를 짚을 수 있으니까.
가망성이 없는 가설들만 쏟아내는 과학자는 사이비 과학자라기보다는 무능한 과학자다. 그리고 때로는 틀린 가설에서 시작하여 괜찮은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착상이나 가설을 이야기할 때 “이것은 착상일 뿐이다”, “이것은 가설일 뿐이다”라는 점만 명시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히려 착상이나 가설 수준에서도 가능하다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 참고문헌(출처)을 잘 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나는 이것도 초고이기 때문이라고 늘 변명해왔다. 아직 두 편 밖에 안 썼지만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강의>는 더 이상 초고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변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는 늑대다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83&category=91&no=294
공격적인 남자, 겁 많은 여자
http://scientificcritics.com/news/view.html?section=83&category=91&no=301
10. 글이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점도 초고이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강의>는 난이도까지 잘 계산해서 쓸 생각이다.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강의>도 어렵다면 그것은 진화 심리학이 워낙 어려운 학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쓰는 연습을 꽤 많이 했으며 이 점에서는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11.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학위가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적은 있지만 학사 학위도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대학원에 가라는 사람도 있고(나는 대학원에 가려면 대학교부터 가야 한다), 학위도 없는 인간이 까분다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대학원에서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대학원에서 지도 교수에게 배우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종의 기원> 번역, 초보자를 대상으로 한 <이덕하의 진화심리학 강의>, 진화론 관련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선택 완전 정복>을 통해 그것이 과대망상이 아님을 입증할 생각이다. 특히 <집단 선택 완전 정복>은 나만의 “박사 학위 논문”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다 쓴 다음에 아무도 그것을 박사 학위 논문급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 때 나를 조롱해도 된다.
나는 이 세 작업을 통해 번역가로서, 과학 대중 저술가로서, 과학자로서 인정 받고 싶다. 지금까지는 준비에 불과했지만 이제부터 진짜 작업을 시작한 셈이다. 팬들은 기대하시라. 그리고 안티팬들은 긴장하시라.
다행히 내 글이 재미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나의 글 솜씨 때문에 많은 대중이 현혹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덕하
2013-04-08
첫댓글 여타의 쓰레기같은 제도권 학자들과 비교할 때, 이덕하 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자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글을 오픈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이덕하 님의 가장 훌륭한 자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과학자라면 숨지 말아야죠. 제도권에는 권위, 허명 뒤에 숨은 학자들이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이덕하님이 실력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덕하님의 모든 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잘못된 점을 받아 들일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도 못 뵜었는데 언제 한번 뵙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