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먹던 빵을 형이 빼앗아 먹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을 본 어느 급진적 동생주의자는 “음식 갈취는 섭취가 아니라 폭력이다”라는 금언을 꺼내면서 썰을 풀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동생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행위는 음식 섭취가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따라서 음식 섭취와 관련된 욕망들은 이런 행위와 전혀 상관이 없다. 그것은 동생을 지배하고, 굴욕감을 주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즉 권력의 문제다.
이 때 단순히 한 명의 형과 한 명의 동생 사이의 개인적 문제가 아님에 주목해야 한다고 급진적 동생주의자는 열변을 토한다. 모든 형들이 공모해서 형-동생 사이의 서열을 확고히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음식 빼앗아 먹기를 통해서 이런 착취 관계는 계속 재생산된다.
어떤 진화 심리학자는 이런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우선 급진적 동생주의자가 이야기하는 설명이 들어맞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한다. 동생의 어떤 행동 때문에 엄청 열 받은 형이 배터져 죽겠는데도 동생의 빵을 빼앗아 억지로 먹는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 동생이 부쩍 개기고 있기 때문에 서열을 확실히 하기 위해 배터져 죽겠는데도 동생의 빵을 빼앗아 먹는 수고를 하는 경우도 가능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전반적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진화 심리학자의 의견이다. 그에 따르면 음식 섭취와 관련된 욕망들이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가 무척 고프거나 빵이 매우 맛있어 보일 때 음식 섭취와 관련된 욕망들이 활성화되며 보통 이것이 음식 빼앗아 먹기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급진적 동생주의자는 “왜 당신은 권력의 문제를 무시합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진화 심리학자는 자신은 권력의 문제를 무시하지 않는다고 응수한다. 그에 따르면 힘도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형이 동생의 음식을 빼앗아 먹을 수 있는 것은 동생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즉 형은 음식 빼앗아 먹기를 실행할 능력이 있다.
다만 권력의 문제만 생각해서는 음식 빼앗아 먹기 현상 모두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진화 심리학자의 입장이다. 음식 섭취와 관련된 욕망들도 고려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진화 심리학자는 이데올로기나 처벌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동생이 엄마한테 일렀을 때 얼마나 강력한 처벌을 받느냐가 형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만약 엄마가 단호하게 형을 처벌한다면 음식 빼앗아 먹기가 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남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면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주입될수록 음식 빼앗아 먹기가 덜 일어날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처벌과 관련된 이런 이야기에 급진적 동생주의자도 기꺼이 동의한다.
진화 심리학자는 이제 왜 음식 섭취와 관련된 욕망들이 진화했는지 썰을 풀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독이 적게 들어 있고,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했던 우리 조상이 그렇지 못했던 우리 조상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배고픔 기제도 진화했고, 맛과 관련된 기제도 진화했다고 한다.
진화 심리학자에 따르면 음식 섭취와 관련된 욕망이 음식 빼앗아 먹기 현상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형이 배가 고플수록 동생의 음식을 빼앗아 먹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동생이 가지고 있는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일수록 음식을 빼앗아 먹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급진적 동생주의자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음식 갈취는 섭취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형이 배고프지 않은데도 동생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경우도 있고, 동생이 들고 있던 음식이 맛없어 보일 때에도 빼앗아 먹을 때가 있기 때문에 음식 섭취와 관련된 욕망들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진화 심리학자의 설명은 엉터리다. 맛이 중요하다면 왜 맛없어 보일 때에도 빼앗아 먹는단 말인가?
게다가 급진적 동생주의자는 점점 더 화를 낸다. 그는 진화 심리학자가 형 이데올로기의 대변자일 뿐이라면 분통을 터뜨린다. 권력의 문제가 중요한데 음식 섭취 관련 욕망들을 언급하면서 형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이를 갈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설사 진화 심리학자가 그런 의도를 의식적으로 품고 있지 않더라도 배고파서 빼앗아 먹는 것이라는 설명이 음식 갈취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는 드디어 포기한다.
You Win!!!
드디어 승리를 쟁취한 급진적 동생주의자는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만국의 동생들이여, 단결하라!!!
이덕하
2013-07-01
첫댓글 또 다시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공격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루카님은 자기생각과 다른글을 보면 그냥 지나치시던가 사람 심기를 안건드리는선에서 반박하시면 되지 왜 항상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나요 보는사람이 다 짜증나네요 루카님은
심기를 건드릴 만한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만...
TheLuca 님의 허수아비 때리기라는 비판은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덕하 님이 지금까지 “야한 옷차림 → 성범죄/성폭행/성추행 유발”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한 각종 유추 논증은 한마디로 범주오류/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잘못된 유추 오류 따위로 범벅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일이 분석 · 비판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하고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야한 옷차림 → 성범죄/성폭행/성추행 유발”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두 사건 사이의 “상관관계(correlation)”와 “인과관계(causation)”를 각각 면밀히 고찰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철학적/과학적/논리적/법리적 분석 · 고찰이 거의 없이, 단순히 민간학설/민간심리학/그릇된 통념/상식추론에 의존해 논증을 꾸려나간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야한 옷차림 → 성범죄/성폭행/성추행 유발” 가설을 논리적/과학적으로 분석 · 검증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causation, causal relation, cause and effect)”에 관한 고찰과 경험적/실험적 파악이 핵심 중의 핵심 사안입니다.
이런 핵심 사안을 빼먹고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유형의 비판을 아크로(http://theacro.com) 누리집에서도 여러 논객들이 했는데요. 이런 사안에 대해서 이덕하 님은 여태까지 묵묵부답입니다.
이덕하 님이 자신의 주장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전개하려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개념 차이와 그 논리적/과학적/법리적 함축에 관해서 깊이 숙고하기 바랍니다.
위 이덕하 님의 “급진적 동생주의자” 논증은 “야한 옷차림 → 성범죄/성폭행 유발” 가설에 대해 독자들을 오도하고 기만하는 거짓된 유추 논증에 불과합니다. 저러한 논의 전개는 구체적으로 “증거 은닉의 오류(fallacy of suppressed evidence)”,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fallacy of straw man)”, “주의전환의 오류(red herring fallacy)” 따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그에 대한 자세한 분석 · 비판은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미 이덕하 님 논증의 근본 문제점들을 비교적 자세히 여기저기에 밝혀놓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 논증의 허구성과 쓰잘데없음이 직간접적으로 폭로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익명 게시판》에 어떤 회원분이 이덕하 님을 옹호하는 한 편의 글과 댓글들을 올렸는데요. 그분의 글에 반박성 댓글을 올리면서 이덕하 님의 가설을 비교적 자세히 비판하게 됐던 것입니다.
독자분들께서 《익명 게시판》에 가보시면 「성에있어 꼭 남자만이 가해자고,원인이고,주도자인가요??」라는 어떤 분의 글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 문제의 글에 올린 십수 개의 댓글들에서 이덕하 님이 해결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들을 분석해놨습니다. 그 분석글을 읽어보시면 이덕하 님의 위 유추 논증이 얼마나 쓸데없는 헛소리인지 직간접적으로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고 판단합니다. 참고들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