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관계없이, 나이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해지던 시간이 있다.
바로 공포의 007게임.
"공! 공! 칠! 빵! 으악!"
"공! 공! 칠! 빵! 으악!"
아주 단순한 게임인데도 꼭 틀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
틀린 사람은 여지없이 바닥에 엎드러지고, 모두에게 등짝을 내어줘야 한다.
"인디언밥~ 오예!"
불과 3,4초의 짧은 시간일지라도
평소에 무서워하던 언니도, 괴롭히던 형도 마음껏 때릴 수 있다.
맞는 동안은 볼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우린 그 게임에 진심이었다.
내가 틀려서 맞을 확률보다,
때릴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았던 게임.
여행길에서,
기차나 배를 기다리는 터미널 바닥에서도,
60명을 태운 45인승 버스가 도로에 멈춰 수리하는 긴 대기시간에도.
주위에 누가 있건 말건, 3~4명만 모였다 하면 시작이다.
한 명 두 명 끼어들면서 때리는 손은 더 많아진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신기한 듯 그런 우리를 구경한다.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공! 공! 칠! 빵! 으악!
한 명 걸리면 마치 원수진 것처럼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다가도
정작 맞은 당사자가 낄낄거리며 등을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바로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이내 웃음이 터진다.
007게임이 지루해지면, 다음은 말타기다.
저 멀리서 뛰어와 온몸을 던져 말에 올라타면,
엎드린 아이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게임은 하면 할수록 요령이 생긴다.
내 등에 올라앉는 순간 무릎을 사알짝 구부렸다 편다.
어느덧 강호동이 올라타도 버틸 수 있는 내공이 쌓인다.
그 누가 내 앞에서 형제 많은 자랑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겐 96명의 형제가 있는데.
만 3세부터 고 3까지 그 시절 함께 했던 형제들은
지금까지 서로서로 얽혀져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십 년 만에 아빠는 고아원 총무에서 달동네 복지관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달동네라 하면 그 동네 사람들은 싫어하겠지만, 아빠가 자주 쓰시던 단어라 나도 써먹는다)
우리는 평화의마을 옥상 비닐하우스집에서 나와
달동네 가파른 언덕길 위 복지관 옆집으로 이사를 했다.오빠들은 이미 출가했고,
나는 첫 직장을 서산으로 가게 되어 집에는 엄마, 아빠 두 분만 사셨다.
그래도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결혼할 신랑(신부) 감 데리고 인사드리려고,
토끼 같은 아이 낳아 보여드리려고,
명절이면 밥 한 끼 함께 하려고
찾아오는 형제들이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