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조용히 눈이 내린다.
눈오는 명절, 오래간만이다.
한참을 멍하니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아빠의 눈 쓸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우리가 이사간 대동은 정말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퇴근해서 집에 가는 길은 너무도 힘들었다.
오르다 쉬고, 오르다 쉬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최단 코스를 찾아내 좁디좁은 골목으로만 가도
오르막은 끝이 없다.
택시타는 거 제일 돈아까워하는 엄마, 아빠도 가끔은 택시를 타셨는데
택시 기사아저씨에게 늘 조아리며 웃돈을 줘야 했다.
눈이라도 올라치면, 그 길은 더욱 공포의 길이 된다.
걸어서도, 차로도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언덕 위 사람들은 눈이 오면 차를 큰 길가에 세우고 다닌다고 했다.
눈 내리는 날이면 아빠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눈을 쓸러 나갔다.
복지관 앞에서 오르막길 시작점까지,
복지관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어린이집 차량운행을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는 쓸어야 할 그 길을
아빠는 혼자서 쓸고 또 쓸었다.
아침잠이 많아 씻고 출근하기 바쁜 딸은
와, 누가 이렇게 눈을 치웠지? 감탄한다.
그 누군가가 아빠인 것을 알게 되었을 즈음
아빠의 눈 쓸기에 동네 사람들도 하나둘씩 동참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마을잔치 때 동네 꼬마 녀석이
"관장님, 겨울만 되면 눈을 다 쓸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얘기했다며
으쓱해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둘째 아이를 낳고 이사한 신촌집 그 골목도 오르막이었다.
눈이 내리면 약속이나 한 듯 집집마다 한 명씩 나와 눈을 쓸기 시작한다.
눈 쓸기 대장인 아빠가 우리집 대표다.
딸, 사위 출근길, 손주들 어린이집 등원길 걱정에
늘 끝까지 남는 우리 아빠.
뒤늦게 부랴부랴 쫓아나가보면, 이미 아빠는 저 골목 끝까지 내려가 계셨다.
아빠가 떠나시고, 다시 돌아온 겨울.
우리집 대표가 된 내가 눈을 쓸러 나갔다.
나도 아빠처럼 끝까지 남아 눈을 치운다.
혼자 남은 그 눈길은 참으로 춥고 외로웠다.
첫댓글 대동복지관...아마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 나누시며^^
네 그러셨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