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날자를 한달여 앞두고
집에서 휴식겸 쉬는 시기였다.
천둥이 치고 비가요란하게 오던날
한통의 비보가 날라왔다
나하고 가장친한 고딩 정호(가명)가
사망했다는 전보이다.
한 달전 폐병으로 입원중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렇게 쉽게 떠날줄은 몰랐다.
50~60년대는 폐질환으로 죽는사람이
많았다.
대학병원 영안실에 가보니 아들하나에
딸 둘 누나와 여동생이 상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냥 돌아올수 없어 하루를 꼬박 조문객
접객 및 슬퍼하는 누나와 동생을 위로
하면서 급 친숙해져 의좋은 사이가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는데
친구누나가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집엘 찾아왔다.(앨범을 봤다는)
한살 많은 누나라 친구처럼 지내다가
난 군 입대를 하고 편지로 계속 애정을
키워왔다.
문제는 그당시 고1 여동생이 언 니와
가깝게 지내는 편지를 봤는지 제3자가
질투하는 내용처럼 오빠를 넘 좋아
한다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오빠와
결혼 하고 싶다는 편지가 자주왔다.
그후 3년이 지나 제대한 후 두 자매가
자취하고있는 집에 가끔 놀러 가고
싶었지만 한 집에 두 여자가 나를 좋아
하다니 행동하기가 난처해 두녀자
다 멀리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루는 내가 도서관에 가고 없는날
누나가 우리집에 찾아와 어머니를
만나 청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 모양이다.
아마 동생이 치근덕 거리니 나하고
빨리 결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것
같다.
난 그당시 누나보다는 3살 어린
동생한테 더마음이 갔는데 취직시험이
더 급해서 만날 기회를 만들지 안았다.
그런 후 내가 취직시험에 합격 서울로
발령받아 한 2년 소식이 끊어져 그후로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핸펀이나 집 전화도 없는시절
연락방법은 편지 우편 아니면 쪽지 인편
뿐인데 지금 시절처럼 핸드펀이 있었으면
날마다 통화 어떤결과가 되었을까 가끔
생각 해본다.
그당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누나는 장교
한테 시집가고 동생은 교사가 되었다는데
지금은 두 여자 모두 70대 황혼열차를
타고 있겠네여.
가을비가 추저추적 날씨 탓인가 그때 그녀
들이 사뭇치게 그립네여.
첫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아름다운 시절이였네요
살아가면서 내내 생각이 나겠습니다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러네요.
아름다운 추억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애틋함 이 묻어나는
고은글..잘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