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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진詩人의 시하늘 시통신 스크랩 [권순진추천] 부고 한 장 / 김숙영
논시밭에 망옷 추천 1 조회 211 16.07.26 21: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부고 한 장 / 김숙영

 

여름이 떠난다고

바람은 호수 위를 물비늘로 걷고 있다.

어쩐 일일까?

물속에 빠져서도

어두움 건저 올리는 교회 붉은 십자가

반기지 않아도 찾아오는

눈가에 잔주름처럼

깨어진 사금파리로 저며 내는

상처마다 핏 자국 흥건히 고이고

아직도 이루지 못한 기도가

거미줄에 걸려 아롱지는데

사물함에 꽂힌 부고 한 장

이름 모르는 묘비 오늘 또 세운다.

 

- 다음카페 반짇고리문학김숙영 시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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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짇고리는 바늘, 실, 골무, 헝겊 따위의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으로 우리 고전수필에 작자 미상의 ‘규중칠우쟁론기’가 있다. ‘반짇고리문학회’는 삶의 연륜이 시의 이력보다는 훨씬 빛나는 여성들로 구성된 동인단체로 올해 10년이 되었으며, 지금까지 아홉 벌의 언어로 빚은 옷을 지어냈다. 이 시대에 오롯한 여성성이 돋보이고 다들 한복의 맵시가 좋아 기품 있고 우아하고 넉넉한 분들이다. 몇 년 전 작고하신 초대 회장 변영숙 시인은 60대 중반에 시 강좌를 찾아 들으면서 시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회원 각자가 시를 접하게 된 과정과 이력은 조금씩 달라도 그 동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어디에 가 물어보아야 하나/ 내가 가야할 길/ 새는 무덤 없어도/ 숲에다 잠자는 집 짓는다/ 걸어온 길 보다/ 걸어갈 길이 더욱 아득한데/ 밤마다 불면증과 동침하는 여인/ 불러줄 노래도/ 들어볼 노래도 없다고 했다//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 더 많은 세상인데/ 그래도 계절은 철따라/ 옷 갈아입을 줄 안다// 멀고도 긴 하늘 길/ 밤새 걸어와/ 달이 벗어둔 헐거워진 신발 한 짝/ 주워들고 따라오는 작은 처녀별// 오지도 않을 전화/ 기다리지 말라며/ 선잠 깬 바람 일러주고 돌아간다” 김숙영 시인의 <낙서2>란 제목의 시다.


 들쑤셨던 지난 젊음을 치마폭으로 다 가리고 차분한 매무새가 되었을 땐, 정체성과 방향성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여 낙서 아닌 ‘낙서’라도 써야만 했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 영화 ‘시’에서의 윤정희처럼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이 울컥 솟았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되는데, 연필을 입에 물고 시를 닮은 낙엽과 신발 한 짝, 시를 닮은 아침의 청소부를 바라보는 모습들이 ‘반짇고리’ 그녀들과 닮았다. “그 나이에 시는 왜 쓰지?” 영화는 이 질문에 조근조근 답하는 형식이었으나 이창동 영화가 늘 그렇듯이 분명한 답을 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를 통해 인생의 곡절과 그 의미를 깨닫게 하고 때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하였다. 그처럼 시는 ‘반짇고리’에게는 물론이고 생을 차분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6~70대 여인들에겐 유효한 기재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하오의 소녀가 부지런히 집필함은 시가 곧 삶 자체이기 때문이고 얼굴에 주름이 질지라도 생각엔 주름지지 않으며 꽃이 진 자리에 열매 맺고 씨앗이 땅속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2대 회장을 맡을 당시 김숙영 시인의 말씀이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기도가 거미줄에 걸려 아롱지는데’ 한여름 ‘비수기’에 그 자신 ‘부고 한 장’을 남기고 떠나셨다.


 김숙영 시인은 고향인 진주에서 간호대학을 나와 젊은 시절 나이팅게일의 길을 걸었고 문학에 입문한 이래 『아베 나라 아베 땅』 등 5권의 시집을 남길 만큼 열정적으로 문학 활동을 해왔다. 모정에서 뿜어 나오는 온기와 향기 아직 고스란하고 메말라가는 사회에 스며들 문향도 그대로이건만, 불과 8년 전 앞서 세상을 떠난 친정어머니의 뒤를 따라 팔순을 갓 넘긴 나이로 영면에 들어 오늘이 발인이었다. 나와는 내세울만한 개인적인 인연은 없지만 저번 내 어머니 상가에 세워진 ‘협회’조기를 배달하고자 지난 주말 빈소를 찾았다. 명복을 빌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승에서 못다 이룬 시의 꿈을 저승에서 빛나게 펼치시라.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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