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채용 통보 / 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도 않는 저를 채용하신다니
삽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라시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별만 달고 가겠습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민들레도 가고 복사꽃도 간다니
목마른 입술만 들고, 배고픈 허기만 들고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겠습니다
살아 죄지은 팔목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
도면 한 걸음, 모면 깡충깡충 다섯 걸음!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넣어
꽃씨 하나 묻어 들고 가겠습니다
봄 / 반칠환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때 1 / 반칠환
무릎이 구부러 지는건
세상의 아름다은 걸 보았을 때
굽히며 경배 하라는 것이고
세상의 올 곧지 못함을 보았을 때
솟구쳐 일어나라는 뜻이다
때를 가리지 못함이 무릇 몇 번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