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중국불교에서 보면 혜능이라는 스님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한 말 중에서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설명을 해 주십시오. 먼저 그 스승에게서 인가를 받기 위해서 시를 지었는데 시의 내용을 읽어드릴 테니까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22살 때 자신의 스승인 5조 홍인에게 이 시를 지어서 인가를 받게 되었는데, 그 시의 내용은 ‘깨달으면 본디 나무라고는 없다. 맑은 거울 역시 받침대가 아니다. 본디부터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나 티끌이 있을까 보냐.’ 이렇게 짓자, 다음날 그 지팡이를 세 번 치자, 삼경에 오라는 말인 줄 알고 인수인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래 :
지팡이를 세 번 두들기자 그것을 새벽에 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새벽에 가서 그 어떤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하면 사실이지 일반 사람은 말하지 않고 그런 이상한 짓 안 합니다. 오라면 오라는 거지, 작대기는 왜 3번 두들기는 거야. 그러면 작대기를 세 번 두드려서 그걸 갖다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되는데, 그 능력은 바로 죽은 자의 의식과 연결이 되면 그 죽은 자의 의식을 통해서 산 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홍인은 결국 너무나 무책임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법통을 물려줘야 할 사람 같으면, 오랫동안 관찰하고 나서 그의 성질이나 그의 행동이나 말이나 이런 걸 보고 그것을 전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시가 아닌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 그걸 들으면 무엇인가 이끌리는 힘은 있는데, 도대체 알맹이가 없어. 깨달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무엇입니까? 깨달으면 사랑이 있어야 하지요. 그 깨달음이 인간의 세계에 아무런 축복이 되지 못한다면, 그게 뭐 하는 겁니까? 그게 뭐 그리 좋은 거예요? 일반 사람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왜 좋은 것이라 말해야 합니까?
거기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고, 경계해야 했을 일들을 홍인이 무지해서 알지 못했다는 것을 그 글 속에서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회원 :
여래님! 그러면 그 홍인에게서 받은 가사를 빼앗기 위해서 온 사람이 있었는데, 가사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가시덤불 속에서 숨어서 그 가사를 바위 위에 얹어 놓았는데, 장수가 들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래 :
그 가사를 가지고 가다가 그 가사를 빼앗기 위해서 추적해 온 장사에게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그 가사를 바위 위에 얹어 놓은 것은 가져가라는 뜻이거든? 그리고 그 가사 때문에 그 사람이 쫓아오는 것이니까. 바위 위에 가라는 것이고 자신은 그 가시덤불 속에 숨어서 그 일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지요? 그럴 것 같으면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회원 :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래 :
바위에서 가사가 떨어지지 않았다. 자 여러분!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이것을 갖다가 원력이라 생각해서는 안 돼요. 부처님의 원력이라 이리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원력이 있습니다.
어떤 원력? 그것은 귀신의 원력입니다. 부처님이 그 가사 하나 지키려고 세상에서 붙어있겠어요? 부처님의 영혼이 그 가사에 붙어있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럼 나쁜 놈한테 성도 좀 냈겠지요.
그렇다면 그 일은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혜능은 영(靈)을 받고 있었고 그 영이 조화를 부려서 가사가 땅 위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영의 의식이 그 가사에 붙어서, 그 가사를 아무리 장사가 떼려고 했지만, 그 혜능을 뒤쫓던 장사가 떼려고 했지만 땔 수 없도록 힘을 가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왜 이렇게 설명해야 하느냐? 하면, 이 무당이 신들린 자만이 작두 위에서 팔딱팔딱 춤을 춰도 그 발이 베이지 않는 현상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보아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그것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걸 모르는 사람들은 뭐 대단한 구경거리라고 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건 대단한 구경거리지요.
그런데 이 가사하고 작두하고 틀리는 게 아니냐? 이렇게 말한다면, 다시 이건 어떤지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성에 살던 황진이의 이웃에 살던 총각이 하나 있었는데, 황진이를 보자 그만 상사병이 나서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종래에 그 청년은 황천길을 떠나게 되었어요.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그 상여를 메고 그를 묻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여가 황진이 집 앞을 지나가는 과정에서, 상여꾼들의 발이 땅에 붙어서 아무리 떼려고 해도 상여꾼들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하니까 황진이가 나와서 입고 있던 속적삼을 벗어서 상여에 걸어주자, 상여꾼들의 발이 떨어져서 상여가 산으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일화와 혜능이 걸어놓은 바위 위의 가사가 떨어지지 않은 일화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비슷한 거예요. 바로 어떤 힘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것,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어떤 것입니까? 쉽게 말해서 바로 죽은 자의 영이 붙어있을 때 그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이지 그 당시 달마가 죽음으로써 달마 이후 중국 사회에서 전해지는 불교는 어떤 진정한 가르침이 아닌 변질된 가르침, 기도나 그다음에 근본도 바탕도 없는 이런 말을 하는 종교로 둔갑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998년 9월 13일 동대신동문화원에서 여래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