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병원체, 극 지방에서 등장하나
2020-03-24
최근 유럽우주국(ESA)은 2003년부터 2017년까지의 극지방 지도를 공개했다. 지난 14년간 북극의 지형 변화를 보여주는 이 지도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다. 영구 동토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해당 지역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영구 동토는 계절이 여름으로 변해도 눈과 얼음이 녹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되는 지역을 가리킨다. 수만 년 동안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북극이나 남극은 많은 유기물이 얼어붙은 채로 보존되어 있다.
문제는 극지방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이들 유기물에 붙어 있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깨어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극과 남극을 조사했던 프랑스와 호주의 탐험대는 수만 년 전에 살았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발견한 사례를 갖고 있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토 해동으로 고대 생명체 깨어날 가능성 높아
영구 동토에서 깨어난 바이러스의 존재를 최초로 규명한 과학자들은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연구진이다. ‘장 미첼 클라베리에(Jean Michel Claverie)’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과거 북극의 일부 지역에서 약 3만 년 전에 살았던 거대 바이러스를 발견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이 바이러스의 명칭은 시베리아에서 온 부드러운 바이러스라는 뜻으로 ‘몰리바이러스 시베리쿰(Mollivirus Sibericum)’라 명명되었다. 이 바이러스의 발견이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살아있는 화석이었다는 점이다. 워낙 오래된 바이러스라 죽은 화석 형태일 줄 알았는데, 실험실에서 분리해 보니 DNA와 단백질이 모두 살아있는 형태였던 것.
몰리바이러스 시베리쿰은 고대에 존재했던 바이러스였던 만큼, 현재의 바이러스와는 여러 가지로 많이 다르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가장 다른 점은 크기로서, 0.6마이크론(μ)인 크기는 일반적인 바이러스보다도 10배 이상 큰 규모다.
또한 유전자 수도 많다. 확인된 유전자 수만 500개에 달한다. 클라베리에 박사는 “현존하는 바이러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모델이 되는 에이즈바이러스(HIV)가 9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 숫자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바이러스 전염력은 일반적으로 유전자 수가 적을수록 감염력이 빠르며, 진화를 거듭할수록 유전자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금의 과학적 지식으로 볼 때 이 고대 바이러스의 감염력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만 년 전의 고대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위험성이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연구진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 러시아에서 발생한 탄저병 중독 사건은 오래전에 살았던 병원균의 유해성을 경고하는 사례로 유명하다.
당시 벌어진 사건은 고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탄저균이 다수의 순록과 사람을 감염시킨 사건이다. 이 사고로 2000마리의 순록이 사망했고 96명의 사람이 입원했다. 이 중 12세 소년은 탄저병에 감염된 사슴 고기를 먹고 사망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탄저병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대한 원인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온을 지목한 바 있다. 땅속 깊이 들어 있던 얼음이 녹으면서 그 안에 냉동상태로 보존되어 있던 탄저균이 본격적인 활동을 벌여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결론지었다.
클라베리에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과 남극의 영구 동토가 녹으면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질병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이는 열대 지방이나 온대 지방에서 유행했던 질병이 동토 지역으로 올라가는 것일 수도 있고, 얼음이 녹아 해동된 병원균이 창궐하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미래에 발생할 전염병은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무서울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러스 진화 과정 파악할 고대 박테리아 발견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고대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이 화제가 되었다면, 남극에서는 바이러스의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고대 박테리아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바이러스의 진화 과정과 관련 있는 고대 박테리아는 남극에 있는 독특한 호수인 딥레이크(Deep Lake)에서 발견되었다. 이 호수는 일반적인 호수와는 달리 염분 농도가 매우 높아서 영하 20℃의 추운 날씨에서도 얼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호수에서 호주의 과학자들이 DNA 조각인 플라스미드(plasmid)가 세포막의 일부와 함께 튀어나와 있는 기이한 형태의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호주의 사우스웨일스대 연구진은 이 박테리아에 ‘할로아케이아(Haloarchaea)’라는 이름을 붙인 후, 보통의 박테리아와 다른 모습을 가진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사우스웨일스대의 ‘릭 카비치올리(Rick Cavicchioli)’ 교수는 “할로아케이아의 플라스미드는 세포막 성분을 만드는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어서 박테리아 표면의 세포막이 꽃봉오리처럼 튀어나와 있다”라고 소개하며 “그 안에는 플라스미드 조각이 들어 있어서 다른 박테리아와 접촉하여 플라스미드 DNA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할 사항은 이렇게 DNA를 전파하는 형태가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카비치올리 교수는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에서 진화했다는 학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진화 과정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할로아케이아의 경우처럼 표면에서 형성된 플라스미드와 세포막 덩어리가 다른 세포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독립적인 바이러스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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