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프로 바둑기사 사랑회
 
 
 
 
카페 게시글
○ 자유 게시판 역사에 관심 있는 분만 읽어 보삼(폐비 윤씨와 연산군) -- 그들을 악인으로 만든 주체는 인수대비와 후궁들
태향향기 재호 추천 0 조회 843 12.09.05 00:18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2.09.05 17:02

    첫댓글 역사글 잘 읽었습니다. ^^*

  • 12.09.06 09:22

    1번글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권력욕 맞습니다. 또한 용안에 상처를 냈다는 자체로 조선시대의 시대상황을 봤을때 그냥 죽여도 할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신분이 왕후이기에 딜레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게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시대에는 중앙집권체제 이기때문에 왕에게 모든권력이 모이게 되어있죠. 그런 왕에게 상처를 냈다는건 흔히 말해 '나 죽여주세요' 라는 상황밖에 되지 않습니다. 연산군 왕이 된 건 연산군의 왕재가
    그만큼 뛰어났다고 볼수 있습니다. 어디 기록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연산군의 세종이후 성군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재라고 평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 12.09.06 09:32

    2번에 대한 반론을 드리자면 제가 글을 단 것에 대한 마지막에 보시면 세종이후 성군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재라고 써놨는데요. 그런 인재에게 막대했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왕실에서는 엄하기 훈육을 하는 탓도 있지만 권력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필요합니다. 연산군이 왕세자로 책봉되었을때 비호해줄 세력이 없었던거죠. 차갑게 대했다기 보다 흔히 말해 외척세력이 뒤에 없었기 때문에 생겼다고 볼 밖에 없습니다.

  • 12.09.06 09:39

    또한 인수대비는 인내심이 지독하게 강한 사람입니다. 아시겠지만 인수대비는 세조의 며느리입니다. 즉 왕세자비까지 올랐던 사람이며, 남편이 죽으면서 사가로 물러납니다. 그리고 예종이 책봉된수 인수대비의 아들(성종)이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다시 돌아오게 되죠
    그기간이 짧지만은 않으며, 왕세자로 책봉되기 위한 권력적 암투를 생각했을때는 심계가 깊다고 밖에 평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작성자 12.09.06 09:59

    그 인내는 권력을 잡기 위한 인내이지.. 자비하고는 상관없는 인내라고 사료됩니다. 어쨋던 반론을 제기해준것 감사합니다. 누군가 제글에..반론을 제기해주길 기다렸습니다. 인수대비란 인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한없이 화가 나요 저는..

  • 12.09.06 09:53

    3번의 경우 인수대비의 집안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인수대비의 집안은 세종때부터 세도가 집안입니다. 집안에서 명나라 황제에게 후궁을 들이게 했으며, 세종과도 사돈관계에 있었죠. 말그래도 사대부 집안에서 자란 여식입니다.
    그때 당시 시대 상황으로 봤을때는 인수대비의 가치관이 되려 보편적인 가치관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오히려 깨어있었던 거죠. 그것도 파격적으로.. 조선시대의 시대상과 사대부가들의 일반적 가치관을 봤을때는 인수대비의 가치관은
    오히려 정상적으로 봐야합니다. 또한 실록이 좋은 기록이지만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AND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는거죠...OTL

  • 작성자 12.09.06 11:52

    인수대비는 윤씨를 폐위 시키기전에, 윤씨 아들 연산군을 궁밖으로 피접 시켰습니다. 두 후궁의 모략의 영향으로 봐야
    합니다. 천륜을 끊은것이지요. 전 폐비 윤씨가 쫏겨 났다면, 엄소용과 정소용도 같이 궁에서 쫏겨 났어야 했다고 생각 합니다. 그 두 후궁도 폐비 윤씨 못지 않은( 원자 연산군 이융 죽일려 했고, 윤씨를 못살게 굴고 투기도 했으니..)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들은 벌하지 않았죠? 즉,캬이얀님 말씀대로 성군 연산군을 폭군 연산군으로 만든게 인수대비의 잘못된 관리라고 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 이미 세조와 한명회로 부터..연산군이 탄생된거라고 저는생각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