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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수-240315금) 연꽃이신 예수님
연꽃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영과 성령
부활 이전에는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만 부활 이후에는 성령(Holy Spirit)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이전에 영은 양기(陽氣)이고 성령은 음기(陰氣)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성령이 양(陽)과 음(陰)으로 나뉘는 것이다. 위에 있는 성령은 양기(陽氣) 아래 있는 성령은 음기(陰氣)로, 부활 이전과 이후라고 하지만 이것은 믿음 유무(有無)에 따라서를 말한다. 즉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머리 위에 있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여호와 하나님 또는 시바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과 주님의 차이는 영혼과 육체, 속사람과 겉사람, 보이지 않는 분과 보이는 분이다.
쿤달리니 차크라 시스템(Kundalini chakra system)에서 머리 즉 사하스라라 차크라(Sahasrara chakra)는 기본적으로 속사람의 중심을 가리키고, 회음부 즉 물라다라 차크라(Muladhara chakra)는 겉사람의 말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인간 위에 있다. 정수리 위에 떠 있기도 하고 내려앉아 있기도 한다. 사하스라라 왕관 차크라(Sahasrara Crown chakra)가 그렇다. 왕관은 신체 위에 있다. 주님은 속사람 중심에 있다. 시바와 하나님의 영이 있던 그 자리에, 그로부터 척추를 따라 회음부로 내려오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성령이 임한다. 성령세례(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를 말한다. 성령의 양기가 임하는 것이다. 그 빛을 받는 회음부의 쿤달리니는 성령의 음기를 가리킨다. 빛을 받으면 뱀은 잠에서 깨어난다. 더 받으면 움직이기 시작하고 상승하기 위해 출구를 찾게 된다.
길은 셋이다. 중도(中道) 수슘나(sushumna)와 우도(右道) 핑갈라(pingala)와 좌도(左道) 이다(ida), 우도는 금욕의 길이다. 좌도는 쾌락의 길이다. 우도는 선용(善用)의 길이다. 좌도는 악용(惡用)의 길이다. 우도는 두 가지다. 금욕은 성욕을 포함한 모든 욕망에 대한 것을 말한다. 선용은 그 욕망들을 선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성욕을 선용하는 것은 혼인하여 자식을 낳는 것이다. 권력은 그것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명예는 그것을 좋은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욕망은 자연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욕망도 있다. 영적인 성욕은 영적인 자녀를 낳는 것이다. 교화(敎化), 영적인 권력은 퇴마(退魔)나 치유를 말하고 영적인 명예는 영적인 좋은 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하고 영적인 재물은 영적인 지식과 영적인 달란트를 말한다.
좌도(左道)는 우도의 반대다. 이것은 쉬운 길이 아니다. 세속에서 터부시되는 길을 가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다. 어둠의 길로 본다. 성(性) 에너지를 절대 긍정한다. 그와 같이 모든 욕망을 절대 긍정한다. 그 욕망들을 충족하고 활용하는 것을 그들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좋지 않게 본다. 악용(惡用)하는 것으로 본다.
우도(右道)는 태양의 회로이고 좌도(左道)는 달의 회로이다. 양(陽)과 음(陰)을 말한다. 속사람의 성령과 겉사람의 성령이 양과 음으로 나뉘듯이 겉사람의 성령도 양과 음으로 나뉜다. 성령 자체는 중성(中性)이다. 위에 있으면 양(陽)이고 아래 있으면 음(陰)이다. 우도로 가면 양(陽)이고 좌도로 가면 음(陰)이다. 따뜻하면 양(陽)이고 차가우면 음(陰)이다. 밝으면 양(陽)이고 어두우면 음(陰)이다. 중도는 신애(神愛)의 길이고 좌도와 우도는 인애(人愛)의 길이다. 중도의 신애는 일체성(一體性)의 길이고, 좌우도(左右道)의 인애는 이원성(二元性)의 길이다.
차크라는 크게 상위 차크라와 하위 차크라로 나뉜다. 속사람에 속한 것과 겉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하위 차크라는 셋이다. 첫째 뿌리 근본으로서 욕망, 본능인 물라다라, 둘째 자의식으로서 에고인 스바디스타나(Svadhishthana), 셋째 사회성인 도시로서 마니푸라(Manipura), 상위 차크라는 셋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중간인 아나하타(Anahata)까지 해서 넷으로 취급한다. 아나하타는 가슴에 위치하여 사랑 차크라로 불리고, 다섯째는 목에 위치하는 만트라(Mantra)인 비슈다(Vishuddha), 여섯 번째는 양 미간 사이에 위치하는 3의 눈인 아즈나(Ajna), 마지막이 정수리에 위치하는 왕관 차크라,
이 차크라들이 세 천국과 상응한다. 하위 차크라는 1층천, 네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는 2층천, 마지막 왕관 차크라는 3층천에, 하위 차크라는 기억과 감각과 칠정(七情)이 주를 이루고, 2층천은 사단(四端)과 이성(異性)이 주를 이루고. 3층천은 인간의 기억, 감정, 사고를 초월하는 직관(直觀, intuition)이 주를 이룬다. 여섯 번째 영안(靈眼)을 의미하는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는 이성 (reason)과 직관의 중간 즉 2층천과 3층천 중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직관 직전에 일어나는 정신 현상으로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면 창의성, 깨달음, 영감(靈感) 같은 것으로 말이다. 영감도 직관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직관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무엇을 거치지 않고 아는 것을 말한다. 그것도 정확하고 명확하게, 틀림이 없이, 이것은 바둑의 인공지능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거기에 왜 두지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그런 수를 인공 지능이 둘 때가 있다. 사람들 수준에서는 물음표이지만 결과를 보면 그게 맞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런 위상으로 나타나는 앎을 직관(直觀) 또는 직각(直覺, perception)이라고 한다.
구약의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과 신약의 성령(Holy Spirit)의 강도의 차이는 말하자면 달빛과 햇빛 또는 한 날의 햇빛과 일곱 날의 햇빛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이사야 30:26).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의 의한 밝기로 볼 수 있는 것은 좌도(左道)와 우도(右道)이기 때문에 신약 이전에는 또는 이후라도 주님을 믿지 않으면 그리로 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의한 각성이라고 해서 해탈성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우는 극소수다. 이와 달리 성령의 의한 밝기는 하나님의 영에 의한 밝기 보다 기본적으로 일곱 배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도(中道)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각성시킨 종류가 무엇인지에 따른 측면도 있다. 영인가 성령인가, 이것은 동물의 각인(刻印, imprinting) 현상 같은 것이다. 동물 새끼들이 처음 본 존재를 어미로 생각하며 따라가듯이, 성령이 임하면 그 성령에 의해 중도(中道)로 상승하는 것이고 영이 임하면 좌우도(左右道)로 그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상승하는 것이다. 영계 입문시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처음 나타나는 존재는 인도자 또는 주관자라고 할 수 있는 그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하면서 보호하고 가르치고 인도해 온 영적 존재다. 흔히들 수호천사(Guardian Angel)라고 하는 존재로서 입문자는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고 마음에 새기고 따라야 한다.
(이사야 30:26)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성령과 영의 차이는 해탈성불의 시간에 있다. 뱀이 상승하는 통로는 셋인데, 중도만이 수직으로 나 있고, 좌도와 우도는 나선형으로 나 있다. 이 수직과 나선형의 차이가 해탈성불 하는 기간으로서 시간의 길이에 해당한다. 영적 성장에 있어서 중도(中道)는 고속도로 또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해탈성불은 중도로만이 달성할 수 있고 좌도와 우도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영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중도를, 이전까지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잡을 수 있는 것이 중도이고 그래야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할 수 있다. 근데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극소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주님이 강림하시고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여 성령을 발출 하신 것이다. 좌우도(左右道)의 나선형의 끝은 이마의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까지로써 그 이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히 중도로 갈아타야 한다. 이원성의 틀 안에서는 초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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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0:22) -부활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연꽃은 불교의 상징
연꽃에는 10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1 이제염오(離諸染汚 :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 있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서 떠나 있다) 2 불여악구(不與惡俱 : 악과 함께 하지 않는다. 더러움이 없다) 3 계향충만(戒香充滿 : 연꽃이 피면 시궁창 냄새가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4 본체청정(本體淸淨 : 본성이 깨끗하다. 어떤 더러운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다) 5 면상희이(面相喜怡 : 연꽃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기쁨이 있다) 6 유연불삽(柔軟不澁 : 부드럽고 유연하여 꺾이지 않는다) 7 견자개길(見者皆吉 : 보고 있으면 운이 좋아진다) 8 개부구족(開敷具足 : 연꽃은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 9 성숙청정(成熟淸淨 : 연꽃은 만개했을 때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10 생이유상(生已有想 :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다르다)
연꽃이 말하는 것은 불성(佛性)을 말하고, 그 불성의 구현을 말하는데 누구에게나 그것이 있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여자도, 죄인도, 그 어떤 음란한 사람이나 악인일지라도, 열반경에 처음 나왔다.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과 그 불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 일체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 좌도의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다. 구도에는 좌도의 방식이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길에서 연꽃의 특징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제염오(離諸染汚), 불여악구(不與惡俱), 본체청정(本體淸淨) 이것은 겉으로 볼 때 알 수 없는 것이다. 생이유상(生已有想)도 마찬가지로 그런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이들은 많지 않다. 계향충만(戒香充滿)이나 면상희이(面相喜怡), 유연불삽(柔軟不澁), 견자개길(見者皆吉), 개부구족(開敷具足)은 겉으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좋게 평가되기는 어렵다.
원효 대사
원효 대사(元曉, 617~686)는 해골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았다. 더럽고 구역질 나는 것이지만 마음에 따라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욕망도 그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에서 원효는 파계(破戒)를 하기로 선택한다. 태종 무열왕의 둘째 딸 과부 요석공주를 맞이하여 설총이라는 아들을 낳기로 말이다. 그가 그 목적을 위해서 부른 노래가
수허몰가부위작지천주(誰許沒柯斧爲斫支天柱) :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나에게) 주겠는가? 그 도끼로 하늘을 바칠 기둥을 깎으리라(시경에 나오는 빈풍벌가豳風伐柯를 인용한 것이다)
자루 없는 도끼는 남편 없는 과부를 말하고 하늘을 바칠 기둥은 나라의 인재인 아들을 말한다. 이 노래의 뜻을 태종 무열왕이 알아듣고 원효와 요석공주를 맺어주었다. 원효는 이후 소성거사(小性居士 : 아랫것 중에서도 아랫것으로)라 칭하면서 전국 곳곳을 방랑하게 된다.
원효대사의 무애행(無碍行)
원효 대사는 파계 후에 소성거사(小性居士)로 자신을 낮추면서 교화(敎化)를 위해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가서 그들과 춤추고 노래하면서 어울렸다. 그때 부른 노래가 무애가(無碍歌)다. 무애라는 말은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 모든 것에 대해 아무 거리낌이 없는 사람만이 한길로 생사를 벗어난다), 범어가 섞인 노래라고 한다. k팝이 한국 가사에 영어가 들어가 있듯이, 원효 대사는 어디에나 갔다. 술집이든 기생집이든 도박판이든 시장이든 어디든 가서 춤추고 노래하며 어울리며 포교(布敎)를 했다. 어려운 불교 교리나 사상을 단순화해서 그것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또 가르치면서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나무아미타불(아미타불에 의지한다는,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를 관장하시는 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에 퍼뜨렸다. 그 결과로 120여 개나 되는 절을 세웠다.
원효 대사의 무애행(無碍行)은 언뜻 보면 좌도행(左道行) 같지만 아니다. 우도행(右道行)은 당연히 아니고, 우도행은 정도행(正道行)으로 말할 수 있다. 현교(顯敎)라고 할 수 있고, 기본적으로 현교는 드러난 종교를 말하고 비교(秘敎)는 감추인 종교를 말한다. 예를 들면 4대 종교는 현교다. 추문도 많아서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나라와 사회에 받아들여져서 존중을 받는다. 종교의 가르침과 종교인들을, 그러나 비교(秘敎)는 도덕이나 관습에 어긋나 보이는 부분들이 있어서 터부시되는 측면이 있다. 사회의 아웃사이더로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측면이 있다. 좌도(左道)가 그렇다. 연꽃이 진흙탕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므로 그것을 좌도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연꽃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은 해탈성불(解脫成佛)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제염오(離諸染汚 :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 있다), 불여악구(不與惡俱 : 악과 함께 하지 않는다), 본체청정(本體淸淨 : 본성이 깨끗하다)이 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들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파계(破戒)를 했다. 이것은 우도행(右道行)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다고 쳐도 술집이나 기생집이나 기타 등등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부정적이다.
그렇지만 원효 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해골물에서, 그의 행보는 좌도행이 아니라 무애행(無碍行)이다. 무애행은 중도행(中道行)이다. 우(右)도 아니고 좌(左)도 아닌, 양자를 초월한다. 좌도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도 넘어야 한다. 창녀도 극악한 죄인도 구원 받을 수 있다. 욕망을 충족하며 사는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 욕망을 충족하다가 죄를 지은 사람도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길은 열려 있다. 좌도행은 이 모든 형식과 조건을 포함하는 것이다. 우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인정해야 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해서도,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구원받을 수 있다. 해탈성불(解脫成佛)할 수 있다.
(마태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세례-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누가 7:31-35)
성의 순결성에서 오는 능력
(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눅 8: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혈우병 여인이 손을 대었을 때 <능력>이 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NIV에서는 power로, KJV에서는 virtue로 번역하고 있는데, 후자의 단어의 의미는 덕, 정조, 순결, 효능이다. 이 virtue의 원어가 헬라어 권능, 능력, 활력으로 번역되는 뒤나미스(1411)다. 이 뒤나미스는 (1410) 번의 뒤나마이에서 유래한 단어로 뜻은 할 수 있다, to be able, 가능하다, 능력, 힘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 헬라어 단어는 현대의 원동력(dynamic), 다이너마이트(dynamite)등의 어근에 해당하며, 강하고 활성적인 에너지를 지칭하나 무엇보다도 성적인 순결에서 오는 힘과 능력을 뜻한다. 원어 자체에 능력이라는 것이 성적인 순결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킹 제임스 1세 흠정역(KJV)을 만든 이는 주의 깊게 본 것이다. 이 KJV 흠정역은 종교 개혁시대의 성경으로서 현대의 NIV의 기초를 이룬 성경이라고 한다.
중도행(中道行)
(여호수아서 1:1 개역한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
(누가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말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생이유상(生已有想 :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다르다)
이제염오(離諸染汚 : 모든 더러움을 떠나 있다)
불여악구(不與惡俱 : 악과 함께 하지 않는다)
(요한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말하였다.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연꽃을 알아본 동방박사
(마태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3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4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6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7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묻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9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런데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11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