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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5금-22월) 창세기 1장을 팔괘도로 구성
창조 상승 팔괘도 창세기 1장
창세기 1장 천지 창조를 팔괘도(八卦圖)로 구성할 수 있다.
첫째 날은 (창세기 1:1-5절)로서 창조 직전의 무질서한 혼돈의 상태와 본격적인 창조를 위한 창조 행위를 서술하고 있다. 본격적인 창조를 위한 사전 행위란 말하자면 사전 작업을 가리킨다. 이 또한 창조의 사역의 일환으로서 말할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창조를 위해서 하는 창조 행위와는 구분된다. 첫째 날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본격적인 창조를 위한 사전 행위이고, 둘째 그 행위의 구체적 모습이다. 창조를 위한 사전 행위는 (창세기 1장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은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에서 ‘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를 말하고,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 또는 결과는 (3절)의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말한다. (2절)의 ‘혼돈과 공허와 어둠과 깊은 물 (formless and empty and darkness and deep water)’은 지금의 질서 정연하고 형태를 갖춘 우주와는 다른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초창기의 무질서하고 혼란한 창조 직전의 상태를 묘사한다.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우주의 처음 상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사태(四太)를 제시하는데, 첫째 태역(太易)은 기가 운동하기 전, 둘째 태초(太初)는 기가 최초로 운동하는 때, 셋째 태시(太始)는 그 운동으로 형성된 최초의 형태, 넷째 태소(太素)는 그 최초의 형태에 주입된 최초의 질료를 말한다. 열자는 태역을 제외한 태초, 태시, 태소로 있는 상태를 혼륜(渾淪)으로 칭했다. 이 혼륜에서 떠오르는 것은 (창세기 1장 2절)에서 말하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있다’는 서술이다.
처음 시작은 하나로부터 나온다.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로 나뉜다. 이 나뉨은 하나님과 우주에 대한 이해에 근거한다. 태극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태극으로부터 음양사상팔괘(陰陽四象八卦)가 나온다는 것은 유출로서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우주는 동일본질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범신론(汎神論)은 진리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일자(一者)를‘하나님으로서의 태극’과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태극’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이상(形而上)의 태극은 하나님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삼태극(三太極)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무극(無極), 태극(太極), 황극(皇極), 이 하나님은 불변부동(不變不動)이다. 형상이 없다. 이 우주를 초월한다. 절대적이고 무한하다. 이 분이 우주를 창조하고자 한다는 것은 운동한다는 것으로서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 운동 즉 기(氣)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기를 상정(上程) 하지 않으면 우주의 시작을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주가 스스로 시작 즉 운동했다고 해야 하는데 이것은 우주를 신으로 보는 것과 같다. 자연신론(自然神論)이다. 과학자들은 신을 믿고 있다. 우주가 스스로 생성하고 소멸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의 기(氣)에 대한 것은 성경에 나온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이 기(氣) 즉 에너지다. 이 에너지는 창조 이전의 에너지를 가리킨다. 이것은 우주의 에너지와 본질이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에너지다. 영원한 생명이다. 이 생명이 삼태극(三太極)에서 황극(皇極)이다. 무극과 태극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하나님과 말씀’을 말하고, 하나님에게 이와 같이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창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기(一氣)는 형이하로 내려와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밖이다. 말하자면, 열자(列子)가 말한 기운의 최초의 움직임을 뜻하는 태초(太初)가 이것이다. 성경에서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해당되고, 그 결과물인 시공간과 물질의 창조가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있다”는 말씀이고, 이것은 태시(太始)와 태소(太素)를 가리키고 그리고 이 셋 즉 태초, 태시, 태소를 합쳐서 혼륜(渾淪)이라 칭하는 것이고, 혼륜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 정형화된 질서나 모양이 없이 뒤엉켜 있는 혼란한 상태라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질서 있는 우주라는 코스모스(Cosmos)에 대비하여 카오스(Chaos)로 칭할 수 있다.
(창세기 1:2) 절에는 이 혼륜 말고 다른 서술이 눈에 띈다. “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는 말씀 말이다. 이것은 카오스의 상태를 코스모스 상태로 전환하기 위한 하나님의 움직임을 뜻한다. 본격적인 창조를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서 첫 번째 움직임이다. 두 번째는 (창세기 1장 3절)의 빛의 창조(creation of light)다. 그러나 이 빛은 만물의 근원이 아니다. 말하자면 만물의 근원을 있게 한 촉매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trigger라고 할 수 있다. 트리거는 특정 사건이나 상황을 촉발하는 방아쇠를 말한다. 왜 빛의 창조가 창조를 촉발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과학에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빛과 물의 만남으로 설명한다. 이 (3절)의 빛은 아무런 목적 없이 우주의 빈 공간을 가로지르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이 빛이 향하는 대상은 명확하다. 그것이 (2절)의 물이다. ‘어둠이 있는 깊은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휘도는 그 물’이다. 그 물에 쏘아져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함축(含蓄)하고 있는 것이 (3절)의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를 위한 창조 행위를 남녀의 사랑에 대입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은 사랑의 행위의 결과물이다. 삼태극(三太極) 하나님의 형이하(形而下)로의 발현은 우주라는 결과물을 있게 하기 위한 모(母=혼륜) 우주를 창조하는 것을 말하고,‘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는 것은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모(母) 우주와 사랑하는 것을 말하며, ‘빛의 창조’는 우주의 수태를 위해 모 우주의 자궁으로 사정(射精)을 뜻하고, 그 결과로써 발생하는 것이 수정란(受精卵)이므로 그 존재를 암시한다. 빛은 정자를 상징한다. 정자는 자궁의 난자에게 간다. 가서 둘이 만나 수정란(受精卵)이라는 생명체를 형성한다. 이 수정란에서 우주 만물이 나오는 것이다. 수정란이 만물의 근원으로서 형이하(形而下)의 일자(一者)다. 본격적인 창조가 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의 움직임은 창조를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한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운행하시느니라”에서 운행한다, 휘돈다의 원어가 라하프인데 새가 알을 고이 품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남자의 사랑으로 치환(置換)해서 생각할 수 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으로 품고 있는 것으로, 이 경우 그 하나님의 영이 품고 있는 대상인 물은 여자이면서 난자(卵子)가 되는 것이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라는 서술은 하나님이 그 난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즉 생명 잉태를 위해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정자와 정자의 사정을 뜻하는 빛의 창조가 (2절) 다음에 (3절)에서 나오는 것이다.
수정란(受精卵)은 세포 분열한다. 어떻게 분열하는가? 놀랍게도 태극(太極)이 음양사상팔괘(陰陽四象八卦)로 분화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분열한다. 16괘, 32괘, 64괘 그 이상으로도, 이 수정란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이와 같은 것이 팔괘도(八卦圖)의 태극(太極)이고 첫째 날의 주제와 상징이 태극이지만 태극은 팔괘도에 속하지 아니하므로 창조 팔괘도에서는 제외한다. 왜 태극을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로 구분해야 한다고 했는가? 이것 때문이다. 태극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태극과 본질이 같다. 모체(母體)로부터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정란(受精卵)도 그렇고, 그래서 빛을 유출이 아니라 창조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빛이나 물이나 이것들은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된 것이 아니다. 형이상(形而上)의 태극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이 중요하다. 왜인가? 태극으로부터 음양사상팔괘(陰陽四象八卦)가 나왔다는 것은 유출의 관념과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모체와 그 모체로부터 유출된 것이 본질이 같다는 것을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은 하나님이다. 우주 만물이 그렇다면 우주만물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범신론(汎神論)이다. 그러나 범신론은 진리가 아니다. 우상숭배(偶像崇拜)다. 형이하의 태극, 수정란은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된 것이 아니라 창조된 것이다.
천지 창조 기사는 영적으로는 사람의 하늘인 속사람과 땅인 겉사람을 새롭게 창조하는 내용을 계시하고 있다. 즉 거듭남(regeneration)을 다루고 있다. 이 관점에서 첫째 날은 거듭남의 직전 상태를 다루고 있다. 본격적인 창조를 위한 사전 작업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1:2) 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느니라’는 말씀은 이렇다. 사람의 겉사람의 상태가 혼돈하고 공허하다(formless and empty)는 것을 말한다. 악과 거짓을 말한다. 어둠은 무지를 말하고, 깊은 물은 욕망, 탐욕, 정욕을 가리킨다. 이런 상태에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의 절망적인 상태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는 서술이다. 영은 자비를 가리키고, 물은 사람 안에 있는 가능성, 잠재성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좋은 씨를 받을 수 있는 옥토(沃土)를 가리킨다. 이것은 선한 심성을 말한다. 효심이나 형제애나 이웃사랑 같은 것 말이다. 이런 것이 사람 안에 남아 있어야 구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것을 눈동자를 지키듯이 주도면밀하게 지키신다. 파괴되면 구원은 물 건너가는 것이 되니, (3) 절의 빛이라는 것은 복음 전파다.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려 오셨고 십자가를 지고 죽고 부활하셔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가르침이 옥토인 물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로부터 본격적으로 거듭남이 시작되는 것이고, 이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 첫째 날이다.
둘째 날은 (창세기 1:6-8) 절로서 이 날 창조된 것은 창공이라는 하늘이다. 물 가운데 하늘을 창조하여 물을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갈라놓았다. 둘째 날을 단어로 요약한다면 물과 하늘로서 말할 수 있다. 이전부터 물이 있었기 때문에 수(水)가 첫째이고 둘째는 하늘 즉 건(乾)이 된다. 영적으로 이 날의 대한 것은 지식이 자연적이고 세상적인 것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겉사람에게 속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에게도 속한 것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구원의 가르침이 있고 세상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이 가르침이고 지식을 가리킨다.
셋째 날은 (창세기 1:9-13) 절로서 이 날에 창조된 것은 식물로서 나무다. 한 단어로 말하면 나무 목(木)이다. 영적으로 바다는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지식이 집합된 것으로서 기억지를 가리킨다. 드러난 뭍 즉 땅은 에고, 자아를 가리킨다. 거듭난 사람으로 새로운 자의식과 자기 정체성의 형성을 가리킨다. 그것을 지식으로 형성하는 것이고, 이로부터 다음의 식물과 식물의 열매가 가리키는 믿음이 생성되는 것이다. 신앙의 핵심은 주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에 있다. 사람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은 사람에게서 또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앎과 깨달음이 지식으로 주어진다. 성경의 지식에서, 이를 이해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전혀 다른 생각과 믿음과 애정하에서 살아왔다. 내가 공부하고 내가 획득하고 내가 내 의지로 행하고 말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런 옛사람의 의식과 관념과 믿음과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관성 하에서 신앙적인 말과 행동을 하면 그 신앙의 모습은 나무와 같이 보일 것이다. 생명력이 부족하고 고정되고 있고 딱딱하고 굳은 것으로 말이다. 돌과 비교하면 아닌데라고 할 수 있지만 나무의 비교 대상은 다섯째 날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동물이다. 동물에 비하면 활동력과 생명력이 떨어진다. 감정도 떨어지고,
넷째 날은 (창세기 1:14-19) 절로서 이 날 창조되는 것은 해와 달과 별들이다. 이 날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빛 즉 광(光)이다. 서술에서도 일월성신(日月星辰)보다는 빛을 주로 말하고 있다. 믿음에는 단계가 있다. 첫째는 기억의 믿음 이것은 둘째 날의 물이 표상하고, 둘째는 이해 또는 총명에 속한 믿음으로 이것은 셋째 날의 나무가 표상한다. 마지막으로 있는 믿음이 구원하는 믿음으로 사랑의 믿음이다. 이 믿음을 표상하는 것이 넷째 날의 일월성신에서 오는 빛이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라는 것은 속사람 속에 있는 것을 말하고 이 단계에 와서 그것들이 열렸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을 근거로 즉 믿음으로 살다가 내부에서 오는 것을 근거로 살게 되는 순간을 말한다. 다른 말로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사랑(해)과 믿음(달)의 원리와 그 원리들의 지식들(별들)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첫째 날은 제외하고) 각 날들을 특정한 단어를 나열하면 수건목광(水乾木光)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섯째 날은 (창세기 1:20-23) 절로서 이 날에 창조되는 것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이다. 이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겉사람에게 있는 기억지와 기억지의 믿음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믿음을 가리킨다. 이 믿음들은 셋째 날의 나무가 상징하는 바와 달리 생동감이 있고 활력이 있다. 그것은 첫째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주어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좋은 것들이 주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과 스스로의 힘으로 말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서 말하고 행한다는 것을 자신 안의 열린 하늘로 인해 체험으로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과 말과 행동이 이전과 달리 활력이 넘치는 것이다.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온다.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주님은 내부에 있다. 내부와 연결되면 생명을 받는 것이고 주님에게 모든 공로를 돌리지 않고 감사하고 경배하지 않으면 그 내부와의 연결망은 좁아지고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로 신앙은 결핍되고 건조해지고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이 날에 추가되는 단어는 물고기를 뜻하는 어(魚)와 새를 뜻하는 조(鳥)이다.
여섯째 날은 (창세기 1:24-31) 절로서 이 날에는 땅의 짐승들과 사람이 창조된다. 한 단어로 말하면 금수(禽獸 : 금은 날짐승, 수는 길짐승)의 수(獸)와 사람 인(人)이 될 것이다. 짐승이 표상하는 것은 다섯째 날의 물고기와 새와 대비되는 것으로 의지에 속한 믿음을 가리킨다. 물고기와 새는 기억과 이성에 속한 이성적인 믿음을 가리킨다.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의 짐승들은 넷째 날의 해와 달과 별의 빛으로부터 온 것이다. 내부에서 온 겉사람의 사랑에 속한 의지와 이성의 믿음들을 가리킨다. 창조된 사람은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을 가리킨다. 형상이 영적인 것을 가리키고 모양이 천적인 것을 가리킨다. 영적이다와 천적이다라는 것은 믿음과 사랑을 말한다. 주님의 믿음과 사랑,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을 말한다. 그 결정체, 여섯째 날은 영적인 사람을 다루고 다음 2장에서는 천적인 사람을 다룬다.
창세기 1장의 날들을 단어로 요약하여 순서대로 배열하면 수건목광어조수인(水乾木光魚鳥獸人)이 되고 이것을 창조 팔괘도라고 할 수 있다.
복희선천팔괘도(伏羲先天八卦圖) 교정
복희선천팔괘도(伏羲先天八卦圖)는 이렇다.
태극(太極)에서 음양이 나오고 음양(陰陽)에서 사상이 나온다. 사상(四象)은 소음(少陰), 태양(太陽), 소양(少陽), 태음(太陰)을 말한다. 음과 양의 기호를 각각 (--), (ㅡ)으로 나타내는데 이를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라 부른다. 이 음효와 양효에 각각 양효와 음효를 더한 것이 사상(四象)이다. 양효와 음효를 더하는 방식은 이미 있는 효 위에 쌓는 것이다. 사상, 팔괘, 16괘, 32괘, 64괘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방식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제일 아래에 있는 효(爻)가 본질이라는 것이다. 효가 둘로 겹치면 사상이고 셋으로 겹치면 팔괘고 그렇게 형성된 상을 괘상(卦象)이라 부른다. 소음은 양효가 아래 음효가 위에 (⚍) 있는 그림이다. 양효가 아래에 있으므로 이 소음은 양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한다. 태양은 양효가 둘(⚌)이다. 당연히 이 또한 양에서 나온 것이다. 소양은 음효가 아래 양효가 위에 (⚎) 있는 그림이므로 소양은 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음은 음효가 두 개(⚏)이므로 당연히 이 또한 음에서 나왔다. 이 사상(四象)을 사시(四時), 사계(四季)에 대응시킬 수 있다. 춘하추동(春夏秋冬) : 소음이 춘(春) 봄이고, 태양이 하(夏) 여름이고, 소양이 추(秋) 가을이고, 태음이 동(冬) 겨울이다. 한 날에도 대응시킬 수 있다. 조주석야(朝晝夕夜) : 아침 조(朝)는 소음이고, 낮 주(晝)는 태양이고, 저녁 석(夕)은 소양이고, 밤 야(夜)는 태음이다.
팔괘는 이 사상에 또 양효와 음효를 더한 것이다.
소음(⚍)에 양효(ㅡ)를 더하면 리괘(離:☲, 불)가 나오고 음효(--)를 더하면 진괘(震:☳, 우레)가 나온다. 태양(⚌)에 양효를 더하면 건괘(乾:☰, 하늘)가 나오고 음효를 더하면 태괘(兌:☱, 연못)가 나온다. 이 4 괘는 양에서 왔으므로 양괘(陽卦)라고 한다. 복희선천팔괘도(伏羲先天八卦圖)에서는 건태리진(乾兌離震 : 시계반대방향 건이 12시다)으로 배열한다. 소양(⚎)에 양효를 더하면 손괘(巽:☴, 바람)가 나오고, 음효를 더하면 감괘(坎:☵, 물)가 나온다. 태음(⚏)에 양효를 더하면 간괘(艮:☶, 산)가 나오고 음효를 더하면 곤괘(坤:☷, 땅)가 나온다. 이 4 괘는 음에서 왔으므로 음괘(陰卦)라고 한다. 복희선천팔괘도에서는 손감간곤(巽坎艮坤 : 시계방향 손괘는 1시에 있다)으로 배열한다.
소음, 태양, 소양 태음 이 사상에 음효를 먼저 더하고 양효를 나중에 더하면 즉 소음에 음효를 더하면 진괘(震:☳, 우레), 태양에 음효를 더하면 태괘(兌:☱, 연못), 소양에 음효를 더하면 감괘(坎:☵, 물), 태음에 음효를 더하면 곤괘(坤:☷, 땅), 다시 반대로 소음에 양효를 더하면 리괘(離:☲, 불), 태양에 양효를 더하면 건괘(乾:☰, 하늘), 소양에 양효를 더하면 손괘(巽:☴, 바람), 태음에 양효를 더하면 간괘(艮:☶, 산),
사시사계(四時四季)에서 봄과 여름은 양기(陽氣)의 시기로서 소음(少陰, ⚍)과 태양(太陽, ⚌)이 오고, 가을과 겨울은 음기(陰氣)의 시기로서 소양(少陽, ⚎)과 태음(太陰, ⚏)이 온다. 팔괘에 배열하면 이렇다. 봄은 소음에서 나온 진괘와 리괘 즉 진리(☳☲), 여름은 태양에서 나온 태괘와 건괘 즉 태건(☱☰), 가을은 소양에서 나온 감괘와 손괘 즉 감손(☵☴), 겨울은 태음에서 나온 곤괘와 간괘 즉 곤간(☷☶), 여기서 이상적인 흐름대로 재배열하면 가을과 겨울에 해당하는 부분만 순서를 바꾸면 된다. 감손을 손감(☴☵)으로 곤간을 간곤(☶☷)으로,
봄의 처음은 음효가 셋인 겨울의 극을 상징하는 곤(坤:☷, 땅)을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효가 양효(뿌리, 본질을 대체하는 것이다)이면서 중효와 상효가 음효인 진괘(震:☳, 우레)가, 그다음은 음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중효는 놔두고 상효를 양효로 대체하여 아래와 위에서 둘러싸는 리괘(離:☲, 불)가, 다음은 여름의 전반기로서 아직 음기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을 나타내는 즉 상효가 음효(사실 이것은 리괘의 중효가 상효로 밀려난 것이다)이면서 중하효가 양효인 태괘(兌:☱, 연못)가, 마지막은 그 음효마저 사라져서 양효로 모두 대체된 건괘(乾:☰, 하늘), 이 괘는 양기(陽氣)의 극을 가리키고, 다음은 겨울에서 봄으로의 진행과는 반대로 음기의 계절이니 하효가 음효이면서 상중효가 양효인 손괘(巽:☴, 바람)가 오고, 그다음은 중효가 양효이면서 상하효가 음효인 감괘(坎:☵, 물)가 오고, 다음은 상효가 양효이면서 중하효가 음효인 간괘(艮:☶, 산)가 오고 마지막은 그 남아 있는 양효마저 사라져 모두가 음효로 대체된 음기(陰氣)가 극강인 곤괘(坤:☷, 땅)가 오는 그림이다. 사시사계(四時四季)의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순환의 질서는 진리태건손감간곤(震離兌乾巽坎艮坤 : 12345678)의 순서다. 음양이 양극성(兩極性)이므로 팔괘에도 양극성의 관계가 있다. 봄의 첫째인 진괘(震:☳)의 반대는 가을의 첫째인 손괘(巽:☴), 봄의 둘째인 리괘(離:☲)의 반대는 가을의 둘째인 감괘(坎:☵), 여름의 첫째인 태괘(兌:☱)의 반대는 겨울의 첫째인 간괘(艮:☶), 여름의 둘째인 건괘(乾:☰)의 반대는 겨울의 둘째인 곤괘(坤:☷), 그리고 이 짝들 즉 진손(震巽), 리감(離坎), 태간(兌艮), 건곤(乾坤)의 획들을 더하면 동일하게 모두 9가 나온다.
복희선천팔괘도(伏羲先天八卦圖)에서 다른 점은 진리태건(震離兌乾)의 순서다. 이것을 건태리진(乾兌離震, 1234)으로 말하면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이 복희 팔괘도를 시계처럼 그릴 수가 있는데, 그 도표에서 건(乾)은 12시, 태(兌)는 11시, 리(離)는 9시, 진(震)은 7시에 있다. 손(巽)은 1시, 감(坎)은 3시, 간(艮)은 5시, 곤(坤)은 6시로, 건태리진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손감간곤(巽坎艮坤, 5678)은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으로 한다. 근데 이것을 질서에 맞게 하면 즉 건태리진을 진리태건(震離兌乾)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손감간곤처럼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된다. 진리태건손감간곤의 순서, 원래 이것이 맞는 것이다. 복희팔괘도(伏羲八卦圖)에서 팔괘의 순서의 따른 명칭을 일건천(一乾天), 이태택(二兌澤), 삼리화(三離火), 사진뢰(四震雷), 오손풍(五巽風), 육감수(六坎水), 칠간산(七艮山), 팔곤지(八坤地)라고 하는데 이상적인 순서대로 하면 뒤의 4 괘는 그대로 두고 앞의 순서를 진리태건으로 바꿔서 일진뢰(一震雷), 이리화(二離火), 삼태택(三兌澤), 사건천(四乾天)으로 해야 된다.
바로의 7년의 풍년과 흉년 요셉의 꿈 해몽
(창세기 41:1) 그로부터 만 이 년이 지나서, 바로가 꿈을 꾸었다. 그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갈밭에서 풀을 뜯는다. 3 그 뒤를 이어서,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소들과 함께 강가에 선다. 4 그 흉측하고 야윈 암소들이,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들을 잡아먹는다. 바로는 잠에서 깨어났다. 5 그가 다시 잠들어서, 또 꿈을 꾸었다. 이삭 일곱 개가 보인다. 토실토실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가 나오는데, 그것들은 모두 한 줄기에서 나와서 자란 것들이다. 6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이삭 일곱 개가 피어 나오는데, 열풍이 불어서, 야위고 마른 것들이다. 7 그 야윈 이삭이, 토실토실하게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를 삼킨다. 바로가 깨어나 보니, 꿈이다. 8 아침에 그는 마음이 뒤숭숭하여, 사람을 보내어서 이집트의 마술사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그가 꾼 꿈 이야기를 그들에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그 꿈을 해몽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9 그 때에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이 바로에게 말하였다. "제가 꼭 했어야 할 일을 못한 것이 오늘에야 생각납니다. 10 임금님께서 종들에게 노하셔서, 저와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을 경호대장 집 감옥에 가두신 일이 있습니다. 11 저희들이 같은 날 밤에 각각 꿈을 꾸었는데, 두 꿈의 내용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12 그 때에 그 곳에, 경호대장의 종인 히브리 소년이 저희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가 꾼 꿈 이야기를 그에게 해주었더니, 그가 그 꿈을 풀었습니다. 저희 두 사람에게 제각기 그 꿈을 해몽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13 그리고 그가 해몽한 대로, 꼭 그대로 되어서, 저는 복직되고, 그 사람은 처형되었습니다." 14 이 말을 듣고서,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불러오게 하였고, 사람들은 곧바로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냈다. 요셉이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꿈을 하나 꾸었는데, 그것을 해몽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나는 네가 꿈 이야기를 들으면 잘 푼다고 들었다. 그래서 너를 불렀다."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17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꿈에 내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18 살이 찌고 잘생긴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갈밭에서 풀을 뜯었다. 19 그것들의 뒤를 이어서, 약하고 아주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올라오는데, 이집트 온 땅에서 내가 일찍이 본 일이 없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그런 암소들이었다. 20 그 야위고 흉측한 암소들은 먼저 올라온 기름진 암소 일곱 마리를 잡아먹었다. 21 흉측한 암소들은 살이 찐 암소들을 잡아먹었는데도, 여전히 굶은 암소처럼 흉측하였다. 그리고는 내가 깨어났다. 22 내가 또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서 자란 이삭 일곱 개가 있는데, 잘 여물고 실한 것들이었다. 23 그것들의 뒤를 이어서, 다른 이삭 일곱 개가 피어 나오는데, 열풍이 불어서, 시들고 야위고 마른 것들이었다. 24 그 야윈 이삭이 잘 여문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다. 내가 이 꿈 이야기를 마술사와 현인들에게 들려 주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 꿈을 해몽해 주지 못하였다." 25 요셉이 바로에게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두 번 꾸신 꿈의 내용은 다 같은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장차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26 그 좋은 암소 일곱 마리는 일곱 해를 말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꿈이 다 같은 내용입니다. 27 뒤따라 나온 야위고 흉측한 암소 일곱 마리나, 열풍에 말라 버린 쓸모 없는 이삭 일곱 개도, 역시 일곱 해를 말합니다. 이것들은 흉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28 이제, 제가 임금님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임금님께서 앞으로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29 앞으로 올 일곱 해 동안에는, 온 이집트 땅에 큰 풍년이 들 것입니다. 30 그런데 곧 이어서,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집트 땅에 언제 풍년이 있었더냐는 듯이, 지나간 일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근이 이 땅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31 풍년이 든 다음에 오는 흉년은 너무나도 심하여서, 이집트 땅에서는 아무도 그 전에 풍년이 든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32 임금님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거듭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33 이제 임금님께서는,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책임자로 세우셔서, 이집트 땅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34 임금님께서는 전국에 관리들을 임명하셔서, 풍년이 계속되는 일곱 해 동안에, 이집트 땅에서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을 해마다 받아들이도록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35 앞으로 올 풍년에, 그 관리들은 온갖 먹거리를 거두어들이고, 임금님의 권한 아래, 각 성읍에 곡식을 갈무리하도록 하십시오. 36 이 먹거리는, 이집트 땅에서 일곱 해 동안 이어갈 흉년에 대비해서, 그 때에 이 나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갈무리해 두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기근이 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37 바로와 모든 신하들은 이 제안을 좋게 여겼다. 38 바로가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느냐?" 39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셨는데, 너처럼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 40 네가 나의 집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어라. 나의 모든 백성은 너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를 온 이집트 땅의 총리로 세운다." 42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는 손가락에 끼고 있는 옥새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가락에 끼우고, 고운 모시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목에다 걸어 주었다. 43 그런 다음에, 또 자기의 병거에 버금가는 병거에 요셉을 태우니, 사람들이 "물러나거라!" 하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바로는 요셉을 온 이집트 땅의 총리로 세웠다. 44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나는 바로다. 이집트 온 땅에서, 총리의 허락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손 하나 발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45 바로는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을 시켰다. 요셉이 이집트 땅을 순찰하러 나섰다. 46 요셉이 이집트 왕 바로를 섬기기 시작할 때에, 그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요셉은 바로 앞에서 물러나와서, 이집트 온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살폈다. 47 풍년을 이룬 일곱 해 동안에, 땅에서 생산된 것은 대단히 많았다. 48 요셉은, 이집트 땅에서 일곱 해 동안 이어간 풍년으로 생산된 모든 먹거리를 거두어들여, 여러 성읍에 저장해 두었다. 각 성읍 근처 밭에서 나는 곡식은 각각 그 성읍에 쌓아 두었다. 49 요셉이 저장한 곡식의 양은 엄청나게 많아서, 마치 바다의 모래와 같았다. 그 양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져서, 기록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50 요셉과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 사이에서 두 아들이 태어난 것은 흉년이 들기 전이었다. 51 요셉은 "하나님이 나의 온갖 고난과 아버지 집 생각을 다 잊어버리게 하셨다" 하면서, 맏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다. 52 둘째는 "내가 고생하던 이 땅에서, 하나님이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셨다" 하면서, 그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다. 53 이집트 땅에서 일곱 해 동안 이어가던 풍년이 지나니, 54 요셉이 말한 대로 일곱 해 동안의 흉년이 시작되었다. 온 세상에 기근이 들지 않은 나라가 없었으나, 이집트 온 땅에는 아직도 먹거리가 있었다. 55 그러나 마침내, 이집트 온 땅의 백성이 굶주림에 빠지자, 그들은 바로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부르짖었다. 바로는 이집트의 모든 백성에게 "요셉에게로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였다. 56 온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요셉은 모든 창고를 열어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곡식을 팔았다. 이집트 땅 모든 곳에 기근이 심하게 들었다. 57 기근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으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요셉에게서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왔다.
회전방향
태극기에서 음양이기(陰陽二氣)의 방향이 반시계방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태양계 안의 행성의 자전과 공전의 방향과 일치한다. 다르게 도는 행성은 금성과 천왕성(Uranus)이다. 공전방향은 반시계로 일치하나 자전방향이 시계방향으로 다르다. 금성은 자전(243일)이 아주 느리게 진행되어 공전(225일)의 시간보다 더 흘러야 하루가 지난다. 천왕성은 가로로 누워서 돈다. 자전축이 공전궤도면에 대해 98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것은 시계방향으로 돌고, 자연적인 것은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아래에서 위로 가는 것은 전자이고 위에서 아래로 가는 것은 후자다.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영적인 것은 진리에서 선으로 가는 것이 정도(正道)다. 좌(左)는 진리, 믿음이고 우(右)는 선, 사랑이다. 사람은 믿음에서 사랑으로 가야 성숙한 인간이다.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거듭남(regeneration)이고, 구원(salvation)이며, 성화(聖化, sanctification) 다.
복희선천팔괘도의 괘상으로 수건목광어조수인을 적용하면
창세기 둘째 날의 물과 하늘 즉 수건(水乾)이 나온다. 물은 이미 첫째 날부터 있었다. 그래서 수가 첫째다. 팔괘도에서 첫째는 일진뢰(一震雷)인 진괘(震:☳)이므로 일진수(一震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하늘이다. 팔괘도에서 둘째는 이리화(二離火)인 리괘(離:☲)이므로 이리건(二離乾)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날에는 나무가 나온다. 팔괘도에서 셋째는 삼태택(三兌澤)인 태괘(兌:☱)이므로 삼태목(三兌木)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날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으로 빛이 나온다. 팔괘도에서 넷째는 사건천(四乾天)인 건괘(乾:☰)이므로 사건광(四乾光)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가 나온다. 팔괘도에서 다섯 번째는 오손풍(五巽風)인 손괘(巽:☴)이므로 오손어(五巽魚)라고 할 수 있다. 여섯 번째는 육감수(六坎水)인 감괘(坎:☵)이므로 육감조(六坎鳥)라고 할 수 있다. 여섯째 날에는 짐승과 사람이 나온다. 팔괘도에서 일곱 번째는 칠간산(七艮山)인 간괘(艮:☶)이므로 칠간수(七艮獸)라 할 수 있다. 여덟 번째는 팔곤지(八坤地)인 곤괘(坤:☷)이므로 팔곤인(八坤人)이라 할 수 있다.
일진뢰(一震雷)=수(水), 이리화(二離火)=건(乾), 삼태택(三兌澤)=목(木), 사건천(四乾天)=광(光), 오손풍(五巽風)=어(魚), 육감수(六坎水)=조(鳥), 칠간산(七艮山)=수(獸), 팔곤지(八坤地)=인(人), 일진수(一震水), 이리건(二離乾), 삼태목(三兌木), 사건광(四乾光), 오손어(五巽魚), 육감조(六坎鳥), 칠간수(七艮獸), 팔곤인(八坤人), 일수(一水), 이건(二乾), 삼목(三木), 사광(四光), 오어(五魚), 육조(六鳥), 칠수(七獸), 팔인(八人)
진리태건손감간곤(震離兌乾巽坎艮坤)의 두 가지 변화 형식
이 팔괘(八卦)의 사시사계(四時四季)의 변화 흐름에서 진행되는 형식이 두 개가 있다. 포인트는 곤(坤 ☷)에서 진(震 ☳)으로 변할 때와 건(乾 ☰)에서 손(巽 ☴)으로 변할 때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인데 이것은 음기에서 양기로, 양기에서 음기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는 사상(四象)과 관련이 있다. 소음(少陰 ⚍), 태양(太陽 ⚌), 소양(少陽 ⚎), 태음(太陰 ⚏)으로 춘하추동(春夏秋冬), 봄, 여름은 양에서 나온 것이고, 가을, 겨울은 음에서 나온 것이다. 봄은 소음(⚍)이고 소음은 하효(下爻)가 양효이고 상효(上爻)가 음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음효(--)는 소양과 태음이 가지고 있는 음효와는 기원과 본질이 다른 음효다. 이 음효는 양에서 나온 것이다. 소양과 태음의 음효는 음에서 나온 것이고,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소양이 가지고 있는 양효도 음에서 나온 것으로 태양과 소음이 가지고 있는 양효와는 기원과 본질이 다르다.
이 점을 주목하고 팔괘에서 겨울에 해당하는 곤괘(坤:☷)와 봄에 해당하는 진괘(震:☳)를 살펴서 그 변화의 과정을 보면 이것은 첫째로 소음(⚍)에서 곤괘(☷)의 음효(--)가 얹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여름에 해당하는 건괘(乾:☰)와 가을에 해당하는 손괘(巽:☴)의 변화도 손괘의 소양(⚎)에 건괘의 양효(ㅡ)가 얹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변화의 형식을 보면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의 변화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운의 변화를 집단의 세력 교체에 대입해서 보면, 이전의 세력과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는 질과 양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진(震)이나 손(巽)이나 소음과 소양에 이전의 음효와 양효를 얹은 괘이기 때문이다. 집단의 주도 세력은 근본인 하효(下爻)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중효(中爻)인데, 진이나 손은 그 자리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소음과 소양을 가지고 가서 대체한 것이니 말이다. 진과 손의 상효(上爻)는 이전에 곤괘와 건괘로부터 가지고 온 것이다. 이 상효는 이전 집단에서도 상효로 있었던 부류들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굴러온 돌이 머리와 중간에 있던 돌들을 쳐내고 기존에 있던 아웃사이더들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진괘와 손괘 다음은 리괘(☲)와 감괘(☵)인데 이 괘들의 상효는 이전 세력의 상효와는 반대의 효로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전 세력의 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한다. 이 청산이라는 것은 추방, 축출도 있지만 동화(同化)도 있다. 세력 교체 또는 권력 교체는 이전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도 있지만 이전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함께하는 동화도 있다.
다른 관점은 곤괘(☷)에서 진괘(☳)로, 건괘(☰)에서 손괘(☴)로 진행할 때 즉 음기에서 양기로, 양기에서 음기로 교체할 때 본효(本爻)와 중효 두 개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만을 바꾸는 것이다. 즉 곤괘(☷)의 하효인 음효를 양효로 바꾸고, 건괘(☰)의 하효인 양효를 음효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굴러온 돌이 집단의 머리와 싸워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수사자들의 무리로의 진입이 그렇다). 진괘(☳)의 중효와 말효(末爻)는 곤괘(☷)의 중효와 말효(末爻)이고, 손괘(☴)의 중효와 말효는 건괘(☰)의 중효와 말효인 것이다. 이 형식의 세력 교체는 어렵고 진행도 더디게 이루어진다. 그것도 일이 잘 진행했을 때만 그런 것이고, 진괘(☳) 다음에는 리괘(☲)이고, 이 리괘는 중효가 음효이고 말효가 양효인데 이것이 말하는 것은 집단에서 아웃사이더로 있는 사람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 이전 세력의 이질적인 집단인 중간 세력들을 고립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태괘(☱)인데 음효가 말효(末爻)로 있는 괘로서 이것이 말하는 것은 이전의 리괘에 있었던 중효의 음효가 말효의 자리로 밀려나고 말효에 있었던 양효가 중효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이 변화에서도 동화(同化)와 추방은 진행된다. 리괘(☲)의 중간의 음효 중에서 동화되는 이들도 있고 끝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들도 있다. 후자는 태괘(☱)에서 밀려나 말효에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건괘(☰)다. 태괘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두 손을 들고 항복한 상태를 말한다. 물론 끝까지 승복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추방이다. 완전한, 물론 스스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세력 교체에서 정도는 첫 번째 방식이다. 소음(少陰 ⚍)과 소양(少陽 ⚎)을 가지고 이전 세력들의 머리와 중간을 쳐내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 형식으로 하면 집단에 대한 지배력은 빠르게 이루어진다. 바로 다음 단계인 리괘(離卦 ☲)와 감괘(坎卦 ☵)에서 이전 세력의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기 때문이다. 이전 세력의 음기와 양기를 청산한 이후에는 주도자의 반대에 있는 중간의 음효와 양효를 당근과 채찍으로 잘 구슬려서 동화하거나 동화가 안 되면 외곽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일체를 형성하려 한다. 그러므로 다음 단계는 태괘(兌卦 ☱)와 간괘(艮卦 ☶)가 되는 것이다. 이전 단계에 말효(末爻)에 있었던 자들은 중간으로 상승하고 중간에 있었던 자들은 말효로 하강하는 것이다. 동화(同化) 유무에 따라서 말이다. 중간에 있던 자들이 본효에 동화하면 남는 것이고, 말효에 있더라도 동화를 거부하면 그대로 있게 되는 것이고, 마지막은 집단이 완전무결하게 양기(陽氣)와 음기(陰氣)로 충만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이 건괘(乾卦 ☰)와 곤괘(坤卦 ☷)다. 이 방식을 천리정도행(天理正道行)으로 명명할 수 있다.
이와 다른 방식은 말하자면 천리인도행(天理仁道行)으로 할 수 있다. 본효(本爻)만 들어가서 전체를 바꾸는 것 말이다. 씨앗을 뜻하는 한자가 종자(種子) 이외에 인(仁)과 자(子)가 있다고 한다. 인(仁)은 임산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고, 자(子)는 감싸다와 뚫다가 합쳐진 단어로서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오는 글자라고 한다. 본효만 들어가서 전체를 바꾼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 또는 두세 명이 바꾸는 것이니, 이 과정은 임산부가 아이를 낳을 때 산고(産苦)하는 것에 빗댈 수 있다. 임신한다고 다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유산(流産)할 수도 있다. 집단을 개혁해 보겠다고 하다가 잘 안돼서 쫓겨날 수도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보내다
(출애굽기 3: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2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5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6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8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9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10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