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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일-26금) 하나님의 창조 전모(全貌) 형이상의 태극, 형이하의 태극
하나님의 창조 전모(全貌) 형이상의 태극, 형이하의 태극
형이상(形而上) 무(無)
삼태극(三太極) 하나님이 있다. 무극(無極), 태극(太極), 황극(皇極), 무극은 인간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을 말한다. 인간에게서는 말 그대로 무(無)다. 미지신(未知神), 불가지신(不可知神), 태극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기지신(旣知神)이다. 생각할 수 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추론할 수 있다. 태극은 성리학에서 성즉리(性卽理 : 성은 리다) 리즉태(理卽太 : 리는 태극이다)로서 리(理)로 설명한다. 리(理)란 소이연(所以然 : 그렇게 되는 까닭 : 자연법칙) 소당연(所當然 :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 도덕, 윤리 법칙)으로서 원리, 법칙과 그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한다. 이와 똑같은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로고스(Logos) 즉 말씀이다.
(요한 1:1)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로고스(Logos) : 모든 사물의 존재를 규정하는 보편적인 원리이자 각각의 사물을 고유하고 일정한 것이 되게 하는 형식 또는 이성과 말
리(理)든 로고스든 그 원리,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법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 도덕 나아가 영적 법칙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듣고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자연 질서이며, 인간의 도리다고 할 때 무엇을 가지고 누구에게 하는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사람에게 한다. 그래서 로고스를 말씀이라 하는 것이다. 당연하게 유교에도 그 말씀과 같은 의미의 단어가 있다. 천명(天命) : 하늘이 명한 것, 하늘이 명령한 것을 말한다. 인간아 이렇게 살아라, 살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중용(中庸)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 나온다.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 성이 우리 안에 있다. 인간이 살아야 할 도리가 우리 안에 있다. 성선설(性善說)의 근거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맹자가 말했다.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단서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양심에서, 이성에서, 나아가 말씀으로, 그래서 리와 로고스가 말씀인 것이고 천명(天命)인 것이다. 이 성(性)은 그러나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 만물에도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 리(理) 즉 태극(太極)이 있다.
하나님에게는 인간이 그 어떤 것으로도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영역과 인간의 지성으로 상상할 수 있는 기지(旣知)의 영역 이외에도 에너지(energy)라는 기(氣)의 영역도 있다. 이것을 황극(皇極)이라 한다. 이 황극은 형이상(形而上)의 기(氣)이기 때문에 인간은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다. 기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형이하(形而下)로서 형상이 있고 질료 즉 물질이 있어서 볼 수 있고 감각할 수도 있지만 형이상의 기는 인간의 그 어떤 감각으로도 지각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 그 기(氣)가 운동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다. 하나님을 기본적으로 무형상의 불변부동(不變不動)이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기(氣)가 있어도 말이다. 이 형이상(形而上)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순전히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상상해서 말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최대한, 사실 실체가 어떠한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인할 길도 없고, 그러나 창조된 것으로 추측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삼태극(三太極)을 표현하는 그림이 있다. 그 삼태극은 형이상의 하나님에 대한 것이 아니다. 형이하의 현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 태극기의 태극 모양에 황색 그림을 추가한 것 말이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다.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 그림은 태극이 아니다. 음양이기(陰陽二氣)이지, 그것이 태극 안에 있지 않느냐 그래서 그것이 그것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태극은 일기(一氣)이지 이기(二氣)가 아니다. 이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것은 음양이기(陰陽二氣)에 대한 것이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태극은 리(理)로서 법칙이라고 하니 그 음양이기의 내재되어 있는 법칙으로서 그와 같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럼에도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는 다른 것이다. 삼태극 하나님은 형이상이다. 형이상에 대한 것과 형이하의 대한 것은 다르게 표시를 해야 한다. 태극기 안에서 검은색을 무극(無極)으로, 흰색을 태극(太極)으로, 노란색을 황극(皇極)으로 한다. 사각형 안에서 가장 바깥에는 무극, 그다음은 태극, 마지막 중심에는 황극을 나타내는 노란색 원으로, 음양이기는 그 노란색을 둘러싸는 것으로, 그 음양이기가 노란색 원으로부터 나오는 그림으로 그려져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괘는 팔괘로 하는 것이 맞다. 복잡하더라도,
형이하(形而下) 유(有)
태극(太極)으로부터 음양이기가 나온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나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이성(理性)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나오는 발상(發想)이다. 보통 태극으로부터 양의사상팔괘(兩儀四象八卦)가 나온다는 것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일로서 생각을 한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4가 되고 사가 8이 되는 식으로 말이다. 기독교의 창조의 관점이 아니라면 양의사상팔괘(兩儀四象八卦)는 상식적으로 유출의 관념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면 이 태극은 하나님일 수는 없다. 보통 태극을 서구 사상에 대입하여 하나님으로 생각하지만, 왜냐하면 우주만물은 하나님과 본질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만물이 하나님인가? 이것은 우상숭배(偶像崇拜)다. 범신론(汎神論)은 진리가 아니다. 태극양의사상팔괘(太極兩儀四象八卦)를 그렇다면 창조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형이상(形而上)의 삼태극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였다. 이 하나님을 일반적으로 태극으로 칭하고 있다. 우주만물은 양의사상팔괘의 순서대로 창조를 한 것인가? 아니면 일순간에 전체를 창조한 것인가? 후자의 경우는 태극으로부터 양의사상팔괘(兩儀四象八卦)라는 순서대로의 우주 생성의 방식이라는 이 근본 형식과 충돌한다. 그렇다고 첫 번째처럼 매번 창조를 진행하는 것도 그렇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발상(發想)이 있다. 태극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형이상의 태극과 형이하의 태극으로, 하나님이 형이하(形而下)에 하나를 창조하고 그 창조한 하나로부터 양의사상팔괘(兩儀四象八卦)를 유출로서 생성하는 것이다. 창조론과 유출론의 조화다.
(도덕경 40장)에 천하만물생어유(天下萬物生於有) 유생어무(有生於無)라는 서술이 나온다. 뜻은 천하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는 무(無)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한다. 이 유(有)가 하나로서 형이하(形而下)의 태극을 말하고, 그 유를 있게 한 무(無)는 형이상의 태극 즉 삼태극 하나님을 말한다. 유를 생한다는 것은 말했듯이 창조로서 이다. (도덕경 42장)에는 도생일(道生一)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을 말하고 있다. 도가 형이상의 태극이고, 일(一)이 형이하의 태극이다. 삼에서 만물이 나온다는 것은 아래 가서 따로 다룰 것이다. 소강절(邵康節)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는 (도덕경 42장)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대로 나오지는 않고 주역과 합하여 말하고 있다.
“도생일(道生一) 일위태극(一爲太極 : 일을 태극이라 한다) 일생이(一生二) 이위양의(二爲兩儀) 이생사(二生四) 사위사상(四爲四象 : 사를 사상이라 한다) 사생팔(四生八) 팔위팔괘(八爲八卦) 팔괘생육십사(八卦生六十四) 육십사구이후(六十四具而後 : 육십사가 갖추어진 이후에) 천지만물지도비의(天地萬物之道備矣 : 천지만물의 도가 갖추어진다)”
(주역 계사전) 시고역유태극(是故易有太極 : 그러므로 역에는 태극이 있는데) 시생양의(是生兩儀 :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생사상(兩儀生四象 : 양의는 사상을 낳고) 사상생팔괘(四象生八卦 :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팔괘정길흉(八卦定吉凶 : 팔괘는 길흉을 정하며) 길흉생대업(吉凶生大業 길흉은 큰일을 낳는다)
창세기 첫째 날과 열자의 4태(太)
(도덕경 42장)과 (도덕경 40장)에서 형이상의 태극에 해당되는 것이 도생일(道生一)의 도(道)와, 유생어무(有生於無)의 무(無)다. 형이하의 태극은 도생일(道生一)의 일(一)과 천하만물생어유(天下萬物生於有)의 유(有)를 말한다. 삼태극 하나님의 창조 방식은 만물의 근원이 되는 하나를 창조하고 그 하나로부터 만물을 유출로서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생각할 때 그 하나를 제일 먼저 창조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하나를 있게 하기 위한 사전 작업들이 있었다. 이를 계시하고 있는 것이 성경 창세기 1장의 첫째 날이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4)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5)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3절)의 빛이 있으라가 첫 번째 창조가 아니다. (1장 1절)부터 창조는 시작되었다. 열자(列子)는 천서편(天瑞篇)에서 태역(太易),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 4태(太)를 말했다. 태역은 창조 이전이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즉 (창세기 1장 1절)의 이전을 가리킨다. 태초(太初)는 (1절)이다. 기가 처음 움직였을 때를 가리킨다. (2절)은 태시(太始)와 태소(太素)가 나온다. ‘혼돈과 공허(formless and empty)’, 태시(太始)는 형태가 나타나는 시초를 가리키고, 태소(太素)는 질료가 나타나는 시초를 가리킨다. 이것은 우주 창조를 위한 재료를 준비한 것으로서 지금 우리가 보는 질서 정연한 우주의 상태와는 거리가 먼 초창기의 원시 우주를 가리킨다. 이 상태를 열자는 혼륜(渾淪)이라 칭했다. 우리나라 성경에서 혼돈(混沌)이라고 하고 있는 바와 같이, (창세기 1장 2절)의 영어 단어를 보면 형태가 없다(formless), 텅 빈(void), 공허(empty)로서 표현하고 있다. 언뜻 보면 태시(太始), 태소(太素)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없다’고 하는 것은 창조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의 세계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을 말한다. 태시(太始)와 태소(太素)는 진흙 덩어리가 뒤죽박죽으로 엉겨 있는 혼란한 상태를 말한다. 그 상태에서 하나님이 진흙을 예술적으로 빚어서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바다든 산이든 강이든 만든 것이다. 이것이 둘째 날부터 시작되는 누가 보아도 보기 좋은 아름다운 창조다. (2절)은 카오스(Chaos) 상태를 말한다. 이후는 코스모스(Cosmos)이고,
(이사야 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도공(陶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예레미야 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도공)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도생일(道生一)의 일(一), 유생어무(有生於無)의 유(有)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느라’는 말씀은 삼태극(三太極)의 황극(皇極)이 형이하(形而下)로 내려와 우주 창조를 하다를 서술하고,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는 서술은 목적하는 우주 창조를 위해 준비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하고, (3절)의 ‘빛이 있으라’는 말씀은 본격적인 우주 창조를 시작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를 가리킨다. 본격적인 우주 창조의 시작은 형이하(形而下)의 태극(太極)으로부터 일어난다. 그 태극을 형성하기 위한 사전의 마지막 움직임이 빛의 창조다. 이 빛은 만물의 근원이 아니다. 그 근원을 형성하기 위해 창조된 것으로 이 빛은 분명한 목표가 있다. 우주 공간을 단순히 가로지르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이 빛이 향하는 대상은 (2절)의 하나님의 영이 감싸고 있는 ‘물’이다. 과학에서 생명은 빛과 물의 결합으로 탄생한다고 말한다. 이 결합에서 탄생하는 만물의 모체(母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도덕경 42장)의 도생일(道生一)의 일(一)이고, (40장)의 유생어무(有生於無)의 유(有)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남녀의 사랑에서 남자의 사랑의 행위로 치환(置換)하여 생각할 수 있다. 형이하(形而下)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말하자면 외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게는 내외(內外)가 없지만, 그 형이하의 우주만물이라는 자식을 위해서 여자를 창조했다. 이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이다. 열자(列子)의 태초(太初)와 태시(太始)와 태소(太素) 즉 혼륜(渾淪)이라고 하는 그 상태는 말하자면 나중에 창조된 우주와 비교해서 초창기 우주, 원시 우주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원시 우주와 나중 우주를 부모와 자식에 대입하면 원시 우주를 모(母) 우주로 명명할 수 있다. (2절)의 ‘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는 것은 남자가 자식을 낳기 위해 여자와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의 행위를 말한다. 그 행위의 결과는 (3절)의 ‘빛’의 창조다 이 빛이 상징하는 것은 정자(精子)다. 남자의 사랑의 행위 결과는 사정(射精)이다. 정자가 가는 곳은 여자의 자궁이고, 그 자궁 안의 난자다. 빛이 물에 쏘아지듯이 정자 또한 물이 상징하는 난자에 쏘아진다. 그 결과는 수정란(受精卵)의 형성이다. 이 수정란이 만물의 근원으로서 형이하(形而下)의 태극(太極)이다. 태극으로부터 음양사상팔괘(陰陽四象八卦)가 나오듯이 수정란 또한 그와 같이 세포 분열하여(16, 32, 64, 그 이상으로까지) 생명을 형성한다.
거듭남
창세기 1장은 영적으로는 사람의 거듭남(regeneration) 즉 재창조를 다루고 있다. 그 관점에서 (2절)의 혼돈과 공허(formless and empty)는 선과 진리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는 악과 거짓만 있다는 것을 말한다. 황폐한 상태다. 거기에 ‘어둠과 깊은 물’은 무명(無明), 무지(無知)와 욕망, 정욕, 탐욕을 가리킨다. 이 둘 즉 혼돈과 공허, 어둠과 깊은 물이 말하는 것은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의 절망적인 상태를 말한다.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는, 가능성이 제로인 상태,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완벽한 계획을 세우셨다. 그것이 같은 절의‘하나님의 영이 물 위를 휘돌고 있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대한 자비를 가리킨다. ‘물’은 사람 안에 구원을 위해서 남겨두시고 하나님이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가능성, 잠재성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선한 심성의 뿌리, 바탕이 되는 성품을 가리킨다. 이것이 파괴되면 구원은 물 건너간다. 원어를 보면 휘도는 것이 라하프로서 암탉이 알을 품듯이 품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이 ‘물’을 애지중지 여기신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물’이 뜻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남은 것(remains) 또는 남은 백성으로 칭한다. 이 성품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가는 것이다. 밭에 씨가 뿌려지듯이, (3절)의 빛의 창조는 복음 전파 또는 말씀의 선포를 가리킨다. 주님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남자가 사랑에서 여자에게 주는 그 정자 안에는 남자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다. 다른 남자의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것이 이 (3절)의 ‘빛(Light)’이다.
도덕경 42장 삼생만물(三生萬物)
도생일(道生一) 도는 하나를 낳는다.
일생이(一生二) 하나는 둘을 낳는다.
이생삼(二生三) 둘은 셋을 낳는다.
삼생만물(三生萬物) 셋은 만물을 낳는다
(도덕경 42장)을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서술이 나온다. 도생일은 그렇다고 해도, 그다음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로 이어지는 것이, 도생일의 일을 형이하의 태극으로 칭해도 갑자기 왜 삼이 나오는가? 4가 아니라. 태극음양사상(太極陰陽四象)이 아닌가? 이것은 주역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냥 그렇다고 넘어가야 하는가?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르게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이것을 도(道)는 무극, 일(一)은 태극, 이(二)는 음양이기, 삼(三)은 황극으로 해서 또는 삼태극으로 해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를 논해보고자 한다.
이 우주는 물질 우주만 있지 않다. 영적 우주도 있다. 즉 영계(the spirit world)도 있다. 영계에는 영적 태양이 있고, 그 세계는 기본적으로 셋으로 나뉜다. 1층천, 2층천, 3층천으로, 물론 그 반대편에 1층 지옥, 2층 지옥, 3층 지옥이 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 중간과 영계와 자연계 중간에 천국과 지옥과 또 자연계와 구분되는 세계가 있다. 이를 중간계 또는 중간영계(the world of spirits 영들의 세계)라고 부른다(불교에서는 Bardo 바르도). 이 중에서 삼생만물(三生萬物)과 관련이 있는 것이 세 천국이다. 하나님 앞에서 세 천국은 한 사람으로 형상화 된다. 이 사람을 대인간으로 칭한다. 또는 최대인간(Grand Man)으로 칭한다. 카발라에서는 아담 카드몬(Adam Kadmon)으로 부른다.
이 영계에서 형이하(形而下)의 태극(太極)은 영계의 태양(太陽)이다. 그 태양으로부터 볕과 빛이 방출된다. 음양이기(陰陽二氣)다. 영적으로 볕은 선이고 빛은 진리다. 이 둘에 의해서 영계 안의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 음양사상팔괘(陰陽四象八卦)의 방식으로, 태양(太陽)은 도생일(道生一) 일생이(一生二)의 일(一)이다. 그 태양의 볕과 빛은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의 이(二)다. 일생이 이것으로부터 사상, 팔괘, 16괘, 32괘, 64괘 식으로 영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이 결과로 마지막에 나타난 것이 세 천국이다. 이(二)로부터 사상 팔괘로 가는 창조는 건너뛰고, 세 천국을 도입한 것은 이 세 천국으로부터 진실로 세상 만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삼생만물(三生萬物), 세 천국이 주님 앞에서 한 사람으로 형상화된다고 말했다. 대인간으로 칭한다고도 했다. 이 인간은 말하자면 거인(巨人)이다. 세상 곳곳에는 거인 창조 신화가 있다.
(20170613-0723, 예전 내가 쓴 글) “세계에는 거인 창조 신화가 여럿 있다. 중국의 반고(盤古), 바벨론의 티아맛, 인도의 뿌루샤, 게르만의 이미르 신화가 있다. 이들 신화의 공통점은 거인의 몸이 조각나 천지만물을 이루는 것이다. 거인은 천국을 상징한다. 신 앞에서 천국은 한 사람 즉 거대한 사람으로 보인다. 카발라에서는 이 거인을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이라고 하고, 임마누엘 스베덴보리는 대인간(Grand Man)으로 말을 한다. 거인 창조 신화의 비밀은 세상은 하늘로부터 즉 천국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말했듯이 천국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 신화도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흐른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는 거인 반고의 우주 창조뿐 아니라 여와의 인간 창조 이야기도 있다.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담 카드몬의 반영인 반고가 아니라 인간을 창조한 여와(女娲)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는 신들이 흙으로 인간을 만드는데 대부분 그 신은 남성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여성인 여와가 이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왜 의미가 있느냐면 인간의 창조가 하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고가 하늘을 상징하듯이 여와도 상징하는 대상이 있다. 그것이 바로 땅이다. 하늘은 예부터 남성이고, 땅은 여성이다. 양(陽)은 가벼워서 하늘이 되고, 음(陰)은 무거워서 땅이 된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자식이다. 하늘의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은 아버지고, 땅의 여와 또는 가이아(Gaia)는 어머니다.”
이 거인 창조 신화를 (창세기 1장)의 첫째 날에 적용할 수 있다. 삼태극 하나님은 영계와 우주를 창조하고 지구에 그 영계의 천국을 바탕으로 만물을 창조한 것으로 말이다. 대인간(Grand Man)과 가이아(Gaia)의 사랑의 결과로 말이다.
창세기 첫째 날 8태, 8괘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4)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5)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첫째 날을 열자(列子)의 4태(太)로 세부적으로 나열하면 이렇다.
(1장 1절)은 태초(太初),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는 태시(太始), 태소(太素), 어둠은 태암(太暗), 깊은 물은 태욕(太慾), 물은 태전(太田), 하나님의 영은 태애(太愛), (3절)의 빛은 태광(太光), 이 빛과 물의 결합의 결과로 탄생하는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태극(太極), 이 태극은 다른 말로 정자와 난자의 결합물인 수정란(受精卵)의 란으로 해서 태란(太卵)으로 칭할 수 있다.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 태암(太暗), 태욕(太慾), 태전(太田), 태애(太愛), 태광(太光), 태란(太卵)으로 9태(太)가 되는데, 태란은 태극이므로 제외하면 8태(太)로서 8괘(卦)에 맞출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