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마녀사냥식 '공산주의자 가려내기'를 주도했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청문회 기록이 2003년 5월 총 4200여쪽의 분량으로 공개되었다.
이 기록에는 매카시 의원이 상설 조사위원회를 이끌며 500여명을 상대로 공산주의자 여부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매카시는 비밀청문회를 통해 공개청문회에 세우기 유리한 증인을 선별했으며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파괴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매카시는 증인을 소환하기 위해 뉴욕과 보스턴에서도 청문회를 개최했으며, 26세인 위원회 고문 로이 콘이 매카시를 대신해 회의를 주재한 적도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기록을 정리한 상원 역사가 도널드 리치는 "매카시와 로이 콘이 상원 비공개 청문회를 대법원 재판처럼 사용했다"면서 "비공개 청문회는 공개 청문회에 앞서 매카시가 자신에게 유리한 증인을 골라내기 위한 일종의 드레스 리허설이었다"고 하였다. 리치는 "증인들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면서 "무혐의가 입증되기까지 모든 증인이 유죄로 인식되었다"고 하였다.
매카시는 미국 정부와 각계 각층에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노조운동가를 비롯한 극소수 인사만 공산주의자임이 밝혀졌다.
이번 공개작업을 주도한 공화당 수전 콜린스(메인 주), 민주당 칼 레빈(미시간 주) 상원의원은 "매카시즘이 미래 세대에 귀중한 교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反매카시 청원 운동에 참여했던 레빈 의원은 "역사는 강력한 교사"라며 "이 문서는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하나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한때 미국을 호령했던 매카시 의원은 1954년 12월 상원의 견책조치를 받으면서 몰락했고, 1957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