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신앙의 가벼움
맑은내
오늘날 청년들은 가스펠송을 한시간씩 부르고 열정에 겨워하며
통렬하기 짝이 없는 목사님의 열변을 듣고 충동을 받으며
뜨거운 통성 기도의 와중에 간절하고 뭉클해 합니다.
주님에 대한 젊은 가슴의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고
사탄이 눈 앞에 보인다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막상 모임이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교회 문을 나서면
세상은 능청스러울 정도로 태평하고 다정하기까지 합니다.
중국집, 편의점, 자전거 가게, 작은 커피집, 꽃집, 빵집, 아동복 가게...
대체 나는 무엇에 그리 비장해 했을까 생각하면 어리둥절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다시 일요일이 되어 교회에 갈 때까지
나의 세상엔 권태로울 정도로 별 일이 없는데,
교회에 들어서자 마자, 다시 신앙적 감정은 에스컬레이터를 탑니다.
열정, 간절, 충성, 결심, 결단, 투쟁, 헌신, 정복, 사명, 승리, 축복, 능력,...
한결같이 강한 단어들이 우리를 휘감습니다.
마치 맵고 쓰고 짜고 시고 달고 한 온갖 양념에 혀가 얼얼하듯이
신자들은 이런 단어들에 마음을 적십니다.
우리가 모여서 서로 확인하는 신앙은 비장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교회 문을 나서기만 하면 우리는 허탈합니다.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신앙의 가벼움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자칫 흔적도 없이 증발하려는 신앙의 의미를
내 안에 과연 붙잡아 보존할 수 있을지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물 새는 그릇같은 나를 위해 또 어떤 영력있는 분이
다음 부흥회를 이끌어주실까요?
2000년 전으로 가 봅니다.
왜 골로새의 교인들은 날과 달과 절기를 삼가 지키는 일에 솔깃했을까요?
왜 천사 숭배와 억지 겸손과 종교 의식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그리스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고 그 안에 거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골2:6-10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2:20-23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왜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복음 안에 안정되게 거하지 못하고
자극적인 비장미를 좋은 신앙의 필수조건으로 생각할까 하는 문제도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신약의 교회에서 옛 이스라엘의 절기에 의미를 두고 지키고 싶어하며
왜 율법적 생활을 억지로 합리화하여 만들어서라도 하려고 하며
왜 삶으로 전도하기 보다는 땅밟기를 하고 공격적 선교를 하려고 하는지
왜 많은 복음송의 가사와 곡조가 그리도 열광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지
그리고 왜 이런 것들이 없으면 신앙의 가벼움을 느끼고 불안해 마지 않는지
그리스도 복음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깊이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의 충만, 그 안에 저절로 있는 그 모든 삶의 새로움,
이런 것이 교회 내에 충만하지 않을 때,
그 진공 상태는 대신 <종교>로 채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종교는 시끄러우면서도 헛돌며 어디에도 참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도는 경이롭고 완전하고 충만하면서도
시끄럽지 않고 헛돌지도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아주 명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골3:1-17 (아가페 쉬운성경 본)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하늘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옛 사람은 죽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 가운데 그분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죄악된 것은 다 버리십시오. 성적인 죄, 악한 행동, 나쁜 생각, 지나친 욕심 등은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전에는 이런 일들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몰아 내려고 힘쓰십시오.
분한 생각, 화를 내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선하지 못한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과거의 잘못된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10 여러분의 삶 속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새 생활 가운데 더욱더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점점 더 자라날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할례를 받은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야만인이든지 스구디아인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믿는 자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만이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그리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십시오.
화를 내기보다는 용서하고, 여러분에게 해를 입히더라도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우리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모든 일을 하되, 무엇보다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모두를 완전하게 묶어 주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께 받은 평화로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삶을 풍성히 채우십시오.
주신 지혜로 서로를 가르치고 세워 주기 바랍니다.
시와 찬양과 신령한 노래로써 감사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여러분은 모든 말과 행동을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이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감사를 드리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극도로 시끄럽고 바쁜 교회들에서
과연 이렇듯 확고하게 새로운 인간상을 볼 수 있습니까?
이만큼 복음의 뿌리에 입각하되 삶의 모든 말단 세포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힘있는 권면을 접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여기에서 <신령한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평상적입니다.
바울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을 때에 요즘의 신자라면
무슨 대단히 신비주의적인 것이나 세상과 대립되는 열광주의를 생각할 지 모르나
이 골로새서의 말씀에는 오히려 한없이 아름다운 평상의 생활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삶으로 사람들을 인도해가는
그 근저에 흐르는 어마어마한 말씀의 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의 신묘하고 강력함을 모르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율법적이며 집단행동적인 기독교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 복음의 힘과 그 내면의 열정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당시의 골로새에서도
천사를 숭배하고 의식을 따르며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여러 금기를 만들고
날과 달과 절기를 만들어 삼가 지켰습니다.
참 맛을 내는 법을 몰랐기에 맵고 달고 짭쪼롬한 인간적 조미료가 범벅된 종교를
만들어 따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풍성히 알고
우리 안에 그 생명이 운행한다면
어찌 오늘날 다시 율법과 절기를 만들어 인간의 종교 장치로 요란하게 장식하고
매주 새롭고 자극적인 설교를 듣고 흥분하기를 사모하겠습니까?
개혁은 그리스도를 바로 알기에서 시작하고 거기에서 끝날 것입니다.
첫댓글 "복음의 뿌리에 입각하되 삶의 모든 말단 세포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힘있는 권면"
"개혁은 그리스도를 바로 알기에서 시작하고 거기에서 끝날 것입니다."
아멘~~
옛날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에 경배와 찬양 집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세상 음악에 열광하는 청소년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거 그냥 혼의 만족이 아닌가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함을 입은 자라는 말씀과는 다르지 않나 생각했었지요.
성경은 몹시도 어려운 책입니다. 봉인된 책을 사람이 임의로 푸는 자가 있다면 그는 성경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입니다. 성경을 풀었다하는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인데 그는 땅에서는 죽고 하늘에서는 산자입니다. 이제는 각 교회에서 육이 죽는 회개의 세례 곧 십자가를 전해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