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형 종교'의 미신
맑은내
교회에 대한 미신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의 미신도 많습니다.
더욱이 미신들은 끊임없이 변종을 낳고 있습니다.
이 미신들은 이단보다도 위험한 경우가 많은데
교회 조직은 눈에 보이는 회원을 관리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이런 미신을 알면서도 방조할 때가 많고
심지어 은근히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일반 사회에서 미신이 생기고 발전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안전이나 건강, 행운에 대한 욕구와
미신 때문에 이익을 얻는 브로커의 욕심이 상승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욕구가 있는 자가 정직하지 않은 길을 탐할 때
거기엔 반드시 중간 이익을 얻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그룹은 함께 이 미신을 공고하게 쌓아올립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미신들이
역사라는 진화 메커니즘을 두고 켜켜이 쌓여 문화가 되면
개인으로는 감히 깨기 어려운 미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도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미신들을 만들어왔고
그 미신들은 사람들을 묶어두고 복종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설교자가 감히 딱 부러지게는 말 못하고
은근히 분위기나 예화로 흘린 이야기를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구역장은 살을 붙여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더 잘 믿는 길이라는 상식적-본능적 판단에 의존해서
얼른 듣기 좋거나 감히 거역 못할 미신이 일단 널리 퍼지면
그것을 배운 젊은이들이 다수 신학교에 입학하여 학생끼리의 상식을 만듭니다.
세월이 지나 그들이 대교회 목회자들이 되면
신학교수도 그 자리잡은 미신을 정면 비판하기 두려워 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눈에 걸리던 사람이 성경 어느 부분에 지엽적 추측을 이야기하면
그걸 빌미삼아 이단으로 몰아가는 지극히 '민감하고 깨어있는' 분들이
힘있는 목사가 '십일조를 안하면 구원을 못받는다는 각오를 하라'고 엄포를 놓으면
이 형편없고 악의적인 명백한 이단 사설에는 아무 말을 못합니다.
미신에 억눌려 사람들은 괴로움을 당하고 의문을 품으면서도 대책이 없습니다.
거부하기엔 두려움이 앞서고 우선 외로움이 닥쳐옵니다.
도대체 예수믿는 길이 더 이상 마음의 안식을 얻는 길이 아니라
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소소한 고통과 번민을 감내해야 하는 길이 된 것이
진리로 부터 온 것이겠습니까, 미신으로부터 온 것이겠습니까?
미신과 그 제사장들의 정체를 밝혀 내고
진리를 알면 진짜 약속된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보이는 교회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미신으로부터의 자유가 정말로 긴급한 것입니다.
1. 정통교회에 속하면 구원이 있다는 미신
신자들은 자기 교단이나 자기 목회자가 정통이라고 하면 안심하고
그 교회 안에서 해 나가는 신앙생활에는 구원의 보장이 있다고 여깁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당신은 믿었으니 분명히 구원을 받았다"고 확인해 줍니다.
좀 더 열심이 있거나 좀 게으르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
어차피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고
그것은 원초적 믿음(=기독교 선택)만 시험과목이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 정통교회에서 중간만 가면 안전한 것은 틀림없다고 믿게 됩니다.
정통 교회에 소속되어 정상적인 신자의 생활을 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이 맞을까요?
알고 보면 이것은 가장 위험한 미신이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를 정당이나 물건처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택 자체가 '나는 기독교를 믿는다'의 뜻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 선택이 신앙의 혜택, 특히 구원의 혜택을 자기에게 입힐 것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회원"의 자격을 획득했으며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에게 '믿는다'하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다'하는데 까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목적어가 따로 없습니다.
이런 '소속의 신앙'은 자칫 '싸잡아 믿음', '찍기 믿음', '묻지마 믿음'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권장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은 왜 그 곳이 이단이 아닌가에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지만
그러나 정통이란 데 속한 사람은 무엇을 믿는가에 지나치게 느긋합니다.
잘 (미리) 믿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알아보지도 않습니다.
아직 모르는 그 많은 정통교리에 일단 책 덮어 놓고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독교를 통째로 사들인 것이고 계약을 했으며
그러므로 그 교리를 따져보지 않았지만 다 믿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모를수록 믿기도 쉬워지지요.
이렇게 소속의 신앙이 되다 보니 결정적으로 줄을 정말 잘 골라야겠지요.
불교 줄도 용케 피하고 이슬람 줄도 용케 피해 기독교로 왔는데
그만 통일교나 신천지 줄에 서면 다 된 밥에 코 빠친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단을 멀리하고 안전한 정통 내에 잘 안주하려고 조심합니다.
그런데 천국은 단체 입장권이 없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단 몇시간 진지하게 생각해도
"소속=신앙" 이 너무나 제멋대로의 생각이며 미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신앙의 내용으로 정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정통 인증서를 들고 천국문을 노크하면
"귀 교단의 신학교 총장이 정통이지 당신이 정통은 아닙니다.
당신은 정통도 이단도 아니고 그저 믿음을 모르는 사람일 뿐입니다.
당신이 내용도 알아보지도 않고 싸인한 그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통고를 받아들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다'와 '기독교를 믿는다'를 동의어로 알고
또 '기독교를 믿는다'가 종교적 선택 + 교회 생활을 말한다고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신앙은 소속 개교회의 처분에 중세 농노처럼 매이게 됩니다.
그는 그 교회 교역자의 인정을 거울삼아 자신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교회 생활의 문제는 바로 신앙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와 교역자는 두려운 존재가 됩니다.
교회에 속해 있는 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
교회 소속이라는 안전 장치가 심판에서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교회를 강조하는 정통신학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 데는 없습니다.
사람이 결국 하나님 앞에는 혼자 가게 됩니다.
그 때 우리 가슴에 교회 명패 따위는 없습니다.
추천서도 인증서도 없습니다.
영생이 없다고 믿으면 모르지만, 믿는다면 그것을 걸고 도박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약하면, 신자에게 교회는 중요하지만 단체 구원의 방도는 아닙니다.
교회에서 잘 어울려 활동 성적이 중간 쯤 가면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당신 교회의 목회자는 이런 당신의 운명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당신의 활동보다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믿는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져줍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깊이 생각하시고, 홀로 서시고, 믿음을 찾으시고, 자유하십시오.
첫댓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나무 사이에 숨었다 한 것처럼
정통이라는 것 뒤에, 옳바른 교리라는 것 뒤에, 더 들여다보면 의롭다는 것 뒤에 숨어있는 것이군요.
하나님은 우리가 가리고 표방하는 겉은 보시지 않고
우리 자신을 보신다는 것을 잘 알고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 앞에서 벌거벗은 자로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