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
맑은내
함께 기독교에 속해 있다 해도 사람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불교에서의 수행이 부러운 신자들은 기독교에서도 명상을 찾고,
유교의 현실 적용이 부러운 신자들은 기독교에서도 현세 성공을 찾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처한 입장에 따라서도 신앙이 달라지는 듯 합니다.
사회적 입장이 사람들의 사상을 다르게 하듯이
교회에서의 입장이 신앙의 색채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지요.
특히 요즘 많은 목회자들이 읽는 성경은 분명히 우리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선 유대교가 부러운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변종이 아닙니다.
같은 경전을 가졌으나 엄연히 다른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같은 구약을 읽어도 옛 유대인들과는 그 읽는 법이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유대교가 부러운 사람은
짐짓 그 다르게 읽는 법만 모르는 체하면 됩니다.
내놓고 말하자면 유대교가 부러울 이유는 꽤 있습니다.
유대교 신자들은 하나님과 그 대리인들에 두려움으로 복종합니다.
유대교 신자들은 열심을 내어 타민족을 배척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유대교 신자들은 제도에 튼튼히 매여 있고
그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등에 업은 권력과 명예를 가집니다.
자신을 백성 쪽으로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가 악몽같은 압제적 종교이지만,
은근히 자신을 제사장과 장로에 비견하는 지도자들에게는
그런 유대교야말로 참으로 부러운 종교일 수 있습니다.
개교회를 책임지고 운영하게 되면 조직의 입장에서 교회를 보게 됩니다.
장난처럼, 취미처럼 신앙생활하는 현대의 '한심한' 신자들을 보면서
더 '힘있는' 또는 더 '살아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누가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쉬운 길은 법을 내세우고 엄하게 다스리고 제도로 얽어매고
마음에 두려움을 주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방법들이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모든 종교 사회 현상이 극대화되어 있는 것이 유대교였으니까
구약만 질끈 눈감고 유대교식으로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옭아매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유대주의가 아니라 바른 복음만 가르친다고 모두들 잡아 뗄 것입니다.
내 진짜 생각은 그런 유대주의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방어하고 면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의 편의 상 신자들이 유대교적 오해를 계속하도록 짐짓 방치한다면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찰을 받을 때 핑계를 댈 수 없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에게 유대교 동조자 혐의가 없다면
오늘의 한국교회 현상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습니까?
교회당 건축을 성전 건축이라고 하며
난 문학적 표현을 했을 뿐이라 둘러대면
그래서 나는 속이지 않았으나 무지한 신자들이 스스로 속았다는 상황을 만들어내면
건축헌금에서 기적이 나타납니다.
십일조 설교를 구약적으로 하고 짐짓 신약적 해석을 모른 척 하면
이단 소리를 안 듣고도 헌금을 몇배 올릴 수 있습니다.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일부러 말리지만 않으면
제사장의 권위와 권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배 기도에서 "이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라"고 기도하면
자기는 문학적 비유를 했다고 면피하고
신자들은 설교단을 제단으로, 목사를 제사장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일이 원래부터 안식일 계명에 엮인 것처럼 주일 성수를 이야기하면
일요일 예배 참석 수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이 편하고 좋은 길을 어떻게 마다 하겠습니까?
이 유혹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그 목사가 용감하고 지조있다고
존경해야 할 정도의 한국교회가 되었습니다.
다시, 내어 놓고 말하자면,
성전건축이라 하면서 교회당 건축을 독려한다면,
그 목회자는 무지하거나 간교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교회당이 성전이라는 말은 정통이고 이단이고 간에 기독교 신학에 없습니다.
그 반대가 있을 뿐입니다.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따라서 이제 우리 자신입니다.
아직도 이것을 논하고 있는 기독 교회가 한국 외에 지구 상에 또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담합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돈 모으는데 도움된다고 해서 그렇게 비밀로 만들어 버리다니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의 결국은 더 무섭습니다.
또 내어 놓고 말하자면, 목사가 제사장이라고 은근히 풍기는 목사는
정말 배운 것이 없거나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은 그리스도 예수이시고
또한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른 인간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개신교가 구교와 재통합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교황의 권위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한 명 교황도 아니고 교회마다 제사장이 생기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목사들의 권위와 직능을 부정하느냐고 반박합니다.
선생을 존중해야 교육이 되고 하다 못해 반장도 존중해야 질서가 잡히는 것은 맞고,
가르치고 다스리는 자를 존중하라는 말씀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빌미로 제사장이란 말을 거기에 슬쩍 얹는 것은 강도의 책략입니다.
조금만 신자가 어리숙하면 이렇게 합니다.
신자를 속이지 말고 아예 유대교로 가는 편이 죄가 작습니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 보면,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고
기독교 유대교를 뻔히 구별하는 동료 목회자들도 거의 모두들 그런 식이니까,
그래서 신자들이 어차피 잘 인식을 못하니까,
당장 비난도 특히 받지 않고 창피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짐짓 거기 붙어 이익을 즐기게 되는 것은 아닙니까?
이것을 아시는 목회자들께 정말로 부탁하고 싶습니다.
양심적인 목회자가 겪는 고통에 동참하는 지체의 심정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당신이 몸바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또 당신 자신을 위해서
정직한 말씀을 해 주십시오.
제발 신자들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바른 말을 가르쳐 주기 바랍니다.
동업자 의리라는 작은 생각을 벗어나서
다른 많은 목회자들이 유대교를 가르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똑바로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돌려 주십시오.
목회자들이 누리고 계신 특권을 시기하여 드리는 말씀도 아니며
게으른 신자 생활을 옹호하여 드리는 말씀도 아닙니다.
복음의 회복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 유대교의 큰 돌이 여기저기 박힌 한국 교회의 돌밭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믿습니까?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찾지 못하여 교회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못 나가면 마음이 불안하고 나가 앉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합심해 만들어 놓으신 그 튼튼한 지배 구조 때문에
신자들은 "기독교를 믿을래 유대교를 삼킬래"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단들을 패던 그 논변과 용기로 이 만연한 유대교와 싸워 주십시오.
교인끼리 정말 교인 해방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첫댓글 예~대단히 공감 합니다. 기독교 개혁은 구약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서로 봐야 하며 유대교가 많은 문제가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된다는 애기지요~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과 정신을 따라 살때 기독교가 바로 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시간을 내어 써니님 추천하신 베스트 글 모음을 읽어보려 합니다.
여기서 이 까페의 정신이 무엇인지 좀 알 수 있지 싶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생각나네요.
두 종류의 카리스마가 있는데 하나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감동(희망)'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감동은 힘들기 때문에 공포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권위를 가지고 울타리에 가두고 두려운 하나님으로 복종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유대교 스승들을 예수는 절도요 강도라고 했습니다(요10장).
그런데 예수는 자기를 내어 주러 오셨고,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은 공포가 하니라 사람의 감동이었지요.
위 말씀에 전적인 공감을 표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겁니다. 지금 목사들이요.
공감합니다
현재의 한국 개신교의 모습은 성격적 예수교는 매우 드물고 유대교 흉내내는 교회당은 번창한 모습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