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상적인 구원의 의미-주님자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구원' 혹은 '구원받았다'고 할 때 그 구원은 주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 근거는 눅2:26-30입니다. 시므온은 그 부모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오자,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는데"(30절)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사함 받고 영이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을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2. 여러 가지 의미의 구원
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이 외에도 다양한 개념으로 언급됩니다.
자세한 것들은 박상걸 목사님의 <성경적인 구원론>(생명의 말씀사)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같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베드로가 물 속에 빠져들면서 "주님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라고 외쳤고
주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건져 주신 것도 구원입니다(마14:30-31).
그러나 이것은 위 구원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3. 둘은 혼동하는 것은 믿음을 약화시킴
달력님은 죄사함받고 구원받았어도 실제로 질병이나 고통가운데 있다면 죄사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거듭난 후 믿음이 더 자라도록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안배하신 환란과 어려움(질병과 고통 포함)을 통과하는 자세에 문제가 생깁니다.
둘째는 소위 번영신학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범사에 다 잘 된다 고 믿는 신앙은 결과적으로
자기 모순에 빠지거나 어린아기 신앙에 머물게 할 뿐입니다.
첫댓글 달력님이 "구원받은 자의 본질은 안식이고"라고 말씀하신 것은 내적인 안식
즉 깊은 영 안에서의 안식을 가리킨다면 맞습니다.
그러나 혼과 몸의 안식까지를 포함해야 구원이다 라는 말씀은 적어도 이 시대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혼은 변화 과정에서 '자기 부인'이라는 과정을 통과합니다.
그 결과는 안식이지만 그 과정은 많은 분투와 씨름이 있습니다.
몸은 여전히 늙고 병들 수 있고 어떤 때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역시 고통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지금은 아니고 주님의 재림시 영광의 몸으로 변형될 때 궁극적으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낫띵 그럼에도 이 시대에 우리의 혼과 몸에 고통이 있으면 죄사함이나 구원도 의미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신앙의 자세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낫띵 칭의 성화 영광의 단어의 의미에서 오해가 생겼듯이 지금도 그러한 느낌입니다. 아직은 천국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완성된 천국 영광의 몸으로 변형될 때 늙고 병드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영혼과 육신의 모든 것(질병, 늙음 등)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달력 "완성된 천국 영광의 몸으로 변형될 때 늙고 병드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
@낫띵 구원이란 완성된 천국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옳다 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질병과 모든 연약함 죄성 모두 소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만드신 것은 거하시려하신 것이죠. 그 육신이 연약함으로 고통받는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봅니다. 예수님도 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죄사함과 구원이란 말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죠. 비록 오늘날은 즉시 치유되는 기적이 없거나 줄어들었을지라도 성경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