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151층탑석) 백제의 미소와 마애지장보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은
1959년에 비로소 학계에 발견되어
보고 된 삼존 불보살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부처님의 은은한 미소는
가히 뇌쇠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보는 이의 마음을 안락정토로 향하게 합니다.
1959년 4월 부여박물관장 홍사준씨가
보원사지를 발굴하던 때에 만나 들은
촌부의 이야기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합니다.
촌부는 말하기를
"저기 인바위에 가면
산신령 한분이 환하게 웃고 계신데
오른 쪽에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얼굴에 손가락을 대고 "용용 죽겠지?' 하니까
왼쪽에 큰 마누라가 열 받아서 두손으로
짱돌을 집어 던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알려 준데서 그 시작이 됩니다.
여기 삼존불의 주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이고
작은 마누라는 미륵보살이며
큰 마누라는 제화가라 보살로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보처보살인데
촌부의 눈에는 산신령과 투기를 하는 마누라들로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던 모양입니다.
그것을 탁본으로 남긴
조동원이라는 성균관대 교수가 있어서
일반에 공개되기도 하였는데
사진상으로는 이러한 모습입니다.
1968년 제작된 서산 마애삼존불의 탁본.
두말 할 나위 없는 세계 최고의 명작이자 성보인
서산 마애삼존불이 이런 비화를 통해서 알려졌으니
참으로 촌부의 공이 지극히 크다 하겠습니다.
'백제의 미소'라는 말은
김원룡박사가 처음 언급한 이후
널리 사용되었다는데 한 때 충청남도에서는
백제의 미소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제작하여
식당이나 관공서등에 보급을 하였기에
일반인들도 널리 알고 있는 마애불입니다.
우리 공주에도 누차 말해왔던 마애불이
탄천면의 산자락에 한분이 계시고
금학동 일락산에도 한분 계셔서 두분이신데
탄천 마애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반면에
금학동 마애지장보살님은 아직도 미지정 상태입니다.
고려말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방문화재로 지정을 서둘러서 잘 보존하는 것이
우리 공주 사람들의 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동안 여러차례 그 중요성과 시급한 사안임을
여러군데에 말해 왔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관계기관의 책임자와 면담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전개되어 온 상황을 설명하고
지정이 되도록 노력해 보시자는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공주의 마애지장보살님도 서산마애불처럼
누군가에 의해 탁본이 되어 졌던 적이 있고
그것을 윤여헌 교수님이 한점 가지고 계셨다는데
일전에 말씀을 드려서 찾아 보시려고 하다가
어디에 들어가 있는 찾지를 못하였으니
지장보살님께서도 그간의 정황을 아셔서
지옥 중생을 제도하시고자 하는 대원을 조금 나누어
우리 공주 지역의 신행의 장으로 다시 나투시기를
간절하게 기원드리는 마음입니다.
남아 전하는 사진 가운데
금강뉴스 신용희 대표가 오래 전에
눈이 오신 날 올라갔다가 찍은 사진이
상당히 선명하게 마애지장보살님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는 사진이기에 다시 한번 올립니다.
사진 위와 아래 하얀 색은 눈입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자비로운 얼굴로
오른 손엔 육환장을 잡으시고
왼손에는 마니구슬 드신 모습으로
염라대왕 업경대와 지옥 문전에서
슬피 울고 계시면서
지옥 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단 하나라도 남지 않도록 한 다음에
부처가 되겠다 서원하신 대원본존 지장보살님이
오늘날 아프고 슬픈 중생의 마음을 위무하는
구원의 화신으로 다시 나투시기를 기도합니다.
일단 실마리를 풀어 갈 단초를 마련했으니
이제 일은 결과적으로는 자연히 이루어 질 것입니다.
지심귀명례 유명교주 지장보살
지심귀명례 남방화주 지장보살
지심귀명례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공주 상왕산 원효사 심우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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