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73호 기획회의
올해로 알트루사에서 <어머니연구>모임을 시작한 지 십 년째이다.
처음엔 연구자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하나씩은 있었다.
엄마와 말만 했다하면 싸움으로 끝났기 때문에 더는 안하고 싶어서,
엄마에게 무언가 해달라는 말 외에 다른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주니 속상하고 미워서.
그러나 어머니를 만나보고서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가 엄마와 소통이란 걸 하며 살았을까?
어머니 어린 시절, 결혼 생활에 대해 듣고
딸이 어머니에게 상처받고 궁금했던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절 말씀을 들으니
딸이 생각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면면과 사정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 대부분이 어머니의 그런 말씀을 처음 들었다 했다.
자기가 그동안 알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아이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더라면
긴 세월 서로 오해하며 상처받고 아파할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는 왜 그랬을까?
우선
우리 마음의 구조가 서양인들과 달리 개인단위가 아니라 포함단위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개인단위로 살아가는 이들은
사람은 개개인이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하니
서로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일일이 확인하려고 애쓴다.
그러니 소통이 세밀하고 활발해지고 소통법도 열심히 익히고 개발한다.
그러나 포함단위로 살아가는 우리는
각자에게 중요한 사람(대개 가족)을
‘내’ 안에 포함해 살아가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를 알아주고
내가 상대를 그보다 더 잘 안다고도 여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에선
나의 특성과 다른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고 고려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소통’을 모르고 산다.
상대와 대화가 안 된다고 여길 때면 문제가 심각해진 이후다.
상대가 내 얘기를 이해 못한다 하소연한다.
내 이야기를 저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답답하다고 한다.
내 이야기가 저 사람에게는 나와 달리 들릴 것이라는 전제도 없다
생각의 차이를 무시나 오해로 간주해서 견디지 못한다.
심한 다툼, 갈등, 싸움으로 쉬이 빠져든다.
갈등을 제대로 풀지 못해 관계 단절도 빠르다
상대를 멀리하다 관계를 끊고 회피하며 산다.
집단상담 중에 ‘나도 그렇다’며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어머니연구를 통해서 비로소
어머니와 소통하는 길에 들어서 그 맛을 보고 있으니
제대로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드디어 경험한다.
말 통하는 끼리끼리 모여서 주고 받는 걸 소통이라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끼리만,
같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하고만
자기 편하고만 나누는 것을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편하게 지내고 싶다고, 다투고 싶지 않다고
평화주의자인 양
관계도 적당히, 예의도 적당히, 인간관계에 성의를 내지 않으면서
그런 태도를 쿨 하다고 칭찬하며 현명하다고 미화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뉴스와 언론에 등장하는 정치인에게는
소통을 못한다, 통합을 못한다며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어른은 꼰대질한다 하고, 젊은이는 무례하게 군다면서
서로 벽을 치고 관계를 차단하며,
소통 안 되는 부모님과는, 자식과는
같이 살지 못하겠다 고집 부리고
인내심 있게 갈등하고 소통할 생각 없는 우리의 무성의한 회피를
엉뚱하게 포장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양하니
우리 사회 전체가 불.통. 중이다.
그래서 세대 간 소통을 제대로 해보자고 제안한다.
어머니들의 진짜 이야기, 청년과 노인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자.
십 년간의 <어머니연구>모임을
<소통연구>모임으로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와 나눈 새로운 소통 경험으로
노인의 푸근함과 청년의 외로움이 만날 수 있게
제대로 소통하며 서로 새로운 삶 만들어가면 어떨까?
우리가 서로 어떤 차이를 갖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서서히 벽을 쌓게 되었는지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이왕 사는 삶, 더 유연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