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이스트 [egoist] : 남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
어머니는 자신이 에고이스트라고 했다는 그의 말을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하고 있다. 이제는 아버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그에게 들었던 말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몇주를 있었는지 며칠을 있었는지 모를 요양원 실습생.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팔십평생 인생을 다 바치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요즘들어 갈때마다 우시는 어머니를 뵙는 당혹스러움도 일주일 사이면 희석된다. 궁금하고 뵙고 싶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로 요즘 나의 관심은 어머니의 운동이다. 아주 작은 민감한 자극에도 아픔을 느끼는 어머니는 점점 더 안 움직여서 이제 요양원 가시기 전보다 몸무게가 더 늘었다. 그 무게를 지탱하느라 엉치뼈에 무리가 가고 다리는 저리고 소화도 어렵다. 한마디로 지옥이라 하신다. 그래서 당신이 아픈 자리를 마사지 해주었고 가뿐히 들어 침대며 휠체어에 옮겨주던 그 실습생을 그리워한다. 그 실습생은 자신을 목사(?)라 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실습생의 말이라며 설레는 표정과 말로 전하실때 나는 그저 새로운 재미가 생겼나보다 싶었다. 그래서 별뜻 없이 맞장구치고 웃고 들어드렸다. 그런데 실습생이 떠난 다음부터 개여울이라는 가요를 그와의 추억 삼아 부르며 우신다. 실습생은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옮기기도 벅차다. 다만 그는 어머니가 원하는 말, 행동을 했고 그는 남자였다. 아버님과의 관계가 튼실했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이를 치매로 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평생 그렇게 사신거다. 스무번 이상 선을 보고 결정한 남자가 단지 보기에 잘 생겼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는 예뻤다. 둘째는 못생겼다. 셋째는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예쁜 첫아이에게 푹 빠졌다.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한 둘째는 당신 닮았다고 미워했다. 셋째는 할머니 품으로 미뤘다. 그리고 아버님은 그런 어머니에게 지쳤다. 아, 이건 내가 아주 단순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선택이 계속해서 일관적인 문제를 말하는거다.
그래서 어머니는 달콤한 말, 자기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환상에 맞을때 그 사람을 붙든다. 그 붙드는 힘이 얼마나 센지 이번에 절감한다. 어머니는 그 실습생을 보냈다는 곳을 다른 실습생을 통해 알아내고 그 실습생의 행방을 찾고 있다. 한번만 만나서 그의 얼굴을 보고, 눈을 보고,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습생의 말은 생각하는데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요양원에서는 실습생들에게 함구령이 떨어졌다. 절대 모르는 사람이고 절대로 알려주면 안된다고.
나는 당혹스럽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에고이스트가 좋은거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나는 평생 안 변한다는 말"을 하시려고 그 말을 들은 이후에 아주 만족스럽게 읊기 때문이다. "나는 아픈걸 못 참는 사람이야, 나는 어릴때부터 고생만 한 사람이야, 나는 지금 요양원 생활을 아주 힘들게 하고 있는 사람이야(이 부분이 제일 죄송스럽다.). 나는 에고이스트라는 말을 들었고 우울하다는 말을 들었고 이 요양원에 불이 나면 못 걸어서 제일 먼저 죽을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어. 나는 피해자야."
함께 있는 두세시간 내내 그가 이랬다, 그가 저랬다 하면서 보고 싶다고 우실때... 그걸 남녀간의 마음이라고 해석하실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어머니 그는 여기 실습생일 뿐이고, 어머니께 빌려간 책(내가 어렵게 저자 싸인 받아서 드린 책)을 주지 않은 사람이고 무엇보다 며칠보고 어머니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데 그랬다면 오만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에고이스트가 좋은 건가요?"
그러면 어머니는 "너는 모른다."하시며 비웃음을 띤다. 그래서 "단 며칠 본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를 아냐"고 했더니 "그래서 그가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하시며 다시 한번만 보고싶다고 우신다.
그런 어머니께 어제 계간지를 드렸다. 이 책 속에 현주와 나의 글도 있다고 목차를 열어 보여주었더니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며 "너는 내게 편견을 갖고 있어."라고 하셨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이런 건 이미 오래전에 뛰어넘은 사람이다..."며 또 허황된 말로 자신을 포장하신다. 심지어 "내가 에고이스트라 너에게 무슨 피해가 가니?"하고 물으셨다. "현주 원석이가 할머니에 대한 기대, 남편의 어머니 나의 시어머니라서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에고이스트라면 그걸 못하지 않냐"고 했다. 그랬더니 "너희가 다 잘하고 있는데 뭘 그딴 걸 나누려고 하냐"하신다. 칭찬인지 아닌지 교묘하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관심없고 당신의 얘기만을 들으라는 말이다.
"에고이스트를 돕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라고 했다. 요양보호사들은 내가 갈때마다 어머니가 운동을 안하시는 문제와 더불어 자신들을 하대하고 막 대하는 문제를 얘기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을때에만 당신의 식욕과 화장실 욕구가 충족될때에만 어느 한명을 추켜세우고 그 사람이 실수하거나 당신의 욕구가 충족 안되면 막말을 했다는 거다. 그래서 실제 그만둔 사람도 있다. 나에게 "어르신이 그동안 어떻게 사셨어요?"라고 묻는데 나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시누이들 아버님과의 문제가 어머니의 자기중심이라는 막대한 영향을 짐작 할 뿐이다. 그 소중하다는 이들과도 풀지 못했는데 아들은 그걸 알아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내가 뭐라고 다를까? 힘이 빠진다.
어머니는 이제 아이넷 음악방송이 인생의 낙이고 마치 그걸 보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말하신다. 그래도 요양보호사분이 설득해서 주일에 요양원 5층에서 마련되는 예배에 나가신게 두번이다. 거기서도 제일 앞자리(목사님 바로 앞자리)를 줘서 대우하신다는게 중요하다. 그래도 기도하고 찬송하는 교회 아닌가.. jms 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 말씀이 어머니의 귀에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귀 잘 들리시라고 보청기 해드렸는데 시끄럽다고 안하시고 적응하려 하지 않으신다.
나 때문에 토할것 같고 소화가 안된다는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그 책 어딨노?" 하시며 계간지를 찾으셨다. 찾아드리고는 집까지 걸어왔는데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대화가 쉽지 않았던 건 오늘 아침 우리집도 마찬가지. 엄마가 그만하자 해서 그만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반응이 좀 다를까? 두고 보려고. ㅎㅎㅎㅎ대화가 어려울 때 어디서 대화가 막히나 알게 된 소득은 있달까. 어려운 대화 과정에서도 서로 발견할 게 있는 것 같긴 하네. 시어머니도 마지막에 계간지를 찾아셨던 걸 보면 말이야.
어머니도 이해받고 싶다는 데 우리와 다를 바 없지요.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 것인지 희망이 없는 거 아닐까요? 늘 불평만 해 오셨으니...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적극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