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결구/ 박기원</p><p> </p><p> </p><p>김장하는 날이면 번번이 춥더니</p><p>모처럼 푹했다</p><p>아낙네 치마 속에 숨겨져 있는 </p><p>고쟁이처럼 수줍은 모양으로</p><p>나란히  줄을 지어 서로를 껴안은 </p><p>배추 고갱이를 보고</p><p>소싯적 배추밭에서 살았다는 할머니와</p><p>자칭 김장의 달인이라는 할머니가</p><p>배추를 묶어 주어야 하는 이유를 놓고</p><p>노인정 뜰에 서서 입씨름한다</p><p> </p><p>'기습 한파에 얼어 죽을까 묶어주는 것이라네'</p><p>'노랗게 속이 차게 하려고 묶어주는 것이여'</p><p>시골 장터처럼 정겨운 말들이 모여들었다</p><p>가던 발목이 배추 얽어 동이듯 묶였고</p><p>두둔의 시선을 피해 난데없이</p><p>금이 간 도가니 모가지를 철사로 슬금슬금 조였다</p><p> </p><p>이제나저제나 기다렸을 </p><p>아내 손에 꼭 쥔 쓰레기 봉지에서는</p><p>짠 내가 흘러내렸고</p><p>나라 빼앗긴 덕혜옹주처럼 넋을 놓고</p><p>쓴웃음을 자아냈다</p><p>바지 주머니에는 수육과 굴이란 </p><p>급한 필체로 적힌 쪽지가 숨어 있었다</p><p> </p><p>햇빛을 많이 받은 겉잎이 속잎을 감싸주듯</p><p>아내가 잠든 사이 멀리 걸어간 발을 덮어주었다</p><p> </p><p> </p><p> </p><p> </p><p>등대/ 박기원 </p><p> </p><p> </p><p> </p><p>온몸으로 버틴 방파제의</p><p>절규와 뱃멀미 흔적이 있는 </p><p>포구를 서사 한다</p><p> </p><p>파랑을 막는 뼈들 사이로</p><p>밀물이 깊숙이 들어와 </p><p>둘만이 간직한 이야기를 핥고 나가면</p><p>일껏 쌓아놓은 날들이 무처럼 허우룩하다</p><p> </p><p>남기고 간 사연은 기약 없이 너울거리다가</p><p>썰물의 현실에 버티지 못하고</p><p>따라나선 것을 알면서도</p><p>간혹</p><p>바라기로 서서 드나드는 배를 센다</p><p> </p><p>하나</p><p>둘 </p><p>셋</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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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편집실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