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외로움은 나의 딸이다
“왜 울고 있느냐?”
시골집 마루에 앉아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울고 아들이 불쌍하여 울고 날이 너무 추워서 울고 있을 때
“나의 빛을 보아라!”
겨울날 시골집 마루에 길게 드리우는 빛이 내게 임하였다.
“너는 나의 아들이다.(이49:3)”
교실에서 갑자기 어느 학생이 옆 친구를 갑자기 때렸을 때에 주님의 사랑으로 화해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당황하지 않고 “주님께서 두 학생을 친구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 고백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미리 알고 있던 사실을 깨닫게 되면 기적이 아닙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정현이가 나를 보고 빙신새끼라고 했어요!” 가해자 힘이 센 재연이는 자신이 정현이를 무시한 말은 중요하지 않고 있다. “재연아 정현이를 때리니까 기분이 좋겠지만 맞은 정현이는 너를 정말 좋아했는데 네가 정현를 싫어한다는 것에 몹시 실망하고 있군아! 자! 정현에게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시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어!” 나의 판단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심령입니다. “정현이는 더 세게 맞고도 너를 좋아하고 있는데 화는 재연이가 내고 있어요!” 쭈뼛하고 있던 재연이가 자신이 때린 정현이 얼굴에 멍을 보고 미안한 생각을 합니다. 주님이 말에 힘이 세고 당돌한 재연기가 달라렸습니다. 나의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재연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 말은 논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는 기준이 있기보다 주님의 빛을 담았기 때문에 놀라운 변화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정현아 미안해!” “괜찮아 재연아!” 이 순간을 매일 경험하는 믿음은 늘 기쁨이 넘칩니다. 믿음의 말은 주님이 주시는 지혜이며 사랑입니다. 어린 학생들의 영혼들을 주님을 마음으로 섬길수록 그리스도의 심령을 얻습니다. 마음이 늘 그리스도의 마음이기 때문에 교실을 밝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고집이 센 사람들이 실수를 자주 합니다. 조금만 참으면 하루를 평안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주변을 힘들게 합니다.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말이 많은 사람들이 결국 실수를 합니다.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란을 일으킵니다. 처음에 실수는 작은 갈등이었지만 결국 직장의 분위기를 무정하게 만들고 맙니다. 자신을 변명하고 싶을 때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불평하고 싶을 때가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순간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깊어질수록 자신은 사라지고 어려운 일에서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게 됩니다. 믿는 자에게는 자신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하게 주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 세상에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선생 참어!” 이 선생님은 항상 말이 많고 자신감이 있는 교사입니다. 일류대학 출신이고 40대 중반입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유도가 3단입니다. 전공이 수학이나 체육선생님 같습니다. 오늘은 몹시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행정실장이 자신의 허락 없이 자기의 물건을 치웠다는 겁니다. 평소 운동을 하고 샤워장에 옷과 세면도구를 놓았는데 행정실에 있으니 가져가라 전화를 받은 겁니다. “행정실장이 뭔데 내 물건에 손을 대고 맘대로 해요?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따지려고 할 때 절대로 이 선생의 판단대로 상황이 잘 해결되지 않아? 왜냐하면 상대방이 이 선생의 감정을 이해하기 전에 행정실장이 똑같이 이 선생의 나쁜 감정으로 말을 듣기 때문에 서로 이해보다 싸우게 된다니까? 기분이 나쁠 때가 주님의 그리스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아뇨! 난 그러면 밟아줄 겁니다.” 결국 이 선생의 속마음이 드러났고 자신이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게 살지 마러! 믿는 사람이 주님의 생명을 줄 수 있어야지?” 내 말에 부끄러운 자신의 속을 드러냈습니다. “전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모두 잊어버립니다.”
이 선생의 신앙생활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자신의 불만이 상대방에게 똑같이 기분을 나쁘게 하는 그림자는 분명 자신의 악한 모습입니다. 요점만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될 것 같지만 결코 직장에서 서로 직위가 있고 특히 성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대로 세상이 이루어져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인격이라면 직장이 자기의 뜻대로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이 선생의 판단은 일류대학 지성입니다. 이 선생의 인격은 항상 주변을 잘 살피고 자기 일에 충실한 건강한 분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옷가지를 가지고 상처 받은 감정을 처리하는 수준은 세속적입니다. 썩은 생선이 냄새가 독합니다. 이 선생님이 성당을 부인과 함께 열심히 참여한다고 합니다.
결국 이 선생은 나의 그리스도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고 일주일 동안 행정실장과 싸움을 하고 우리들은 이 선생의 불평을 말없이 들어야만 했습니다. “지가 교장인가?” “나만 승질나게?”“내가 뭘 잘못했냐고?” “내가 조용히 말 할 때 그냥 미안하다고 했으면 아무 일 없었을 꺼야!” “저 새끼는 저만 생각한다니까요 부장님?” 나는 눈도 맞추지 않고 책 속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있기만 하였습니다. 한 번 말을 받아주면 결국 나까지 죄의 노예가 되어 종일 힘들게 됩니다. 학교 분위기는 행정실과 교무실 모두 어둡고 힘들게 되었습니다. “지가 나한테 돈을 주었어?” “나이 많은 게 별거여! 잘못한 것 알려주면 알아야지?” “싸움이 시작되면 항상 저는 이겼다고 가정하고 상대방을 사정없이 뭉게 버려요?” “저는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어요!” “개박살을 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늘 불평을 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인사도 하지 않는 거지요?” “항상 무시하면 되여!” “전 다른 사람들 하고는 잘 지내고 있잖아요?” 결국 두 사람이 화해를 하기 까지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습니다. 술과 음식 값으로도 많은 돈을 썼지만 그동안 속으로 받은 상처는 사라지지 못하고 이 선생님의 마음속에 미움을 크게 자라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스트레스는 가정을 어둡게 하고 가르칠 학생들의 심성을 절대로 밝게 할 수 없습니다.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고 거짓이 없었다.(사53장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