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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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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은 지진에 사람보다 훨씬 더 민감해서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약한 지진도 느낀다 하죠.
오랜 옛날 사람들은 야생성이 지금보다 많이 살아있어서
현대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정도의 약한 지진도 많이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지진대에 사는 것을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싫어했을 겁니다.
동아시아의 지진대
예를들어 일본에는 구석기문명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구석기시대에 일본땅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는 것이고
오랜 옛날일수록 사람들이 지진대에 살기 싫어했다는 근거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고대문명은 지진대가 아닌 곳에서 생겨나고 발전했을 것이고
위 그림에서도 보이듯이 한국땅과 바다는 지진대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가끔 지진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 강도와 빈도수가 아주 미미한 편이라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큰지진이 잘 안일어날 뿐만 아니라
현대인이 느끼지 못하는 작은 지진도 비교적 적게 일어나서
작은 지진도 많이 느꼈을 고대인들에게 한국땅은 선호지였을 수밖에 없고
그리고 고대문명은 한대, 열대 보다는 사계절이 있는 온대지방에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한국땅은 온대지방이며 지진대도 없고
게다가 바다가 있는 지역이라 고대인들이 제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지역이라 하겠습니다.
바다는 소금, 해산물 뿐만 아니라 배를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중요하죠.
자동차, 기차가 없던 고대에는 배를 이용한다는 것이 현대보다 훨씬 더 중요했죠.
지진대가 아니라는 것은 사람만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게 아니라
동물들도 살기 좋은 지역이고
그래서 여러 동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고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는 호랑이에게도 살기 좋은 지역이라 할 수 있겠죠.
한국호랑이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는 세계 호랑이 중에서 가장 크다.)
세계 호랑이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한국호랑이와 남중국호랑이가 있죠.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가 사는 지역은 고조선 지역이었고
후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역이며
후에 신라, 발해의 지역이죠.
일본에 호랑이가 없는 이유
http://cafe.daum.net/121315/CK3e/273 <- 관련글
위 그림에서 남중국호랑이가 살던 지역인 중국 남부 지역은
예로부터 묘족(苗族)이라는 종족이 살던 지역이라 이야기되어지는 지역입니다.
오랜옛날, 1만년 이상 전의 오랜 옛날
당시 육지였던 황해평원 마문명(마고문명)에서 세계로 퍼진 선진문명인들이
지진대가 아닌 중국남부에도 많이 자리잡고 살아서 그리 된 것 같습니다.
[마문명]의 [마]는 원래는 '아래아 점'이 붙은
라 발음되었고
여기서 묘(먀오)족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세계문명의 시원지로 추정하는 황해평원 마문명(마고문명)]
2011년도에 스웨덴 왕립공대(KTH) 연구팀이 “오늘날 개의 조상인 늑대가 처음으로 길들여진 곳이 양쯔강 남부지역” 이라며
“이 지역에서 최초로 인간에 의해 늑대가 길들여져 개가 탄생했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현재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세계의 모든 개는 하나의 혈통에서 나왔고
즉 고대의 어느 지역에서 처음 사람들에게 길러진 늑대들이 개가 되어 세계로 퍼진 것이고
그렇게 세계로 퍼진 개들이 각지역에서 현지의 늑대들과 약간의 교배도 있었지만 비교적 미미한 일이었고
전체적으로 보아 처음 늑대들이 개로 길러진 지역의 개들(최초의 개들)의 혈통이
현재 살아있는 세계 모든 개들의 혈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개들은 대략 10만년전에 어느 지역에서 처음 길러지기 시작했고
1만5천년전부터 대대적으로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개가 처음 길러진 지역이 중요한 이유는
그 곳이 세계문명의 시원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세계 개의 기원 - 중국이 아니라 한국
스웨덴 왕립공대(KTH) 연구팀이 세계 개의 기원지를 양자강 남부지역이라 한 것은
1만년 이상 전부터 황해평원의 고대한국문명이 가까운 지역이고 지진대가 아닌 양자강 남부지역으로 많이 전해져서 그런 것이라 봅니다.
1만년전에는 현재보다 지구기온이 낮아서 마문명(원조 고대한국문명)사람들은 북쪽이 아닌 주로 남쪽으로 퍼졌고
한국의 남쪽지역 중에서 지진대가 아니고 제일 가까운 곳이 양자강 남부지역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마문명 사람들이 개도 데리고 많이 갔을 것이고
그 개들의 후손들이 아직도 그 곳에 많이 살고 있어서
스웨덴 왕립공대(KTH) 연구팀이 세계 개의 기원지를 양자강 남부지역이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연구팀은 한국의 토종견들, 특히 '누렁이'에 대해서는 조사를 안한 것 같은데
아마도 후에 한국 전통개들을 제대로 조사하게 되면
한국에서 세계최초로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 발표할 것이라 봅니다.
그 시작은 황해평원이었다고 말이죠.
묘족는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라오스에도 살고 있는데
몽족(Hmong)이라고도 불리죠.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세계로 퍼진 선진문명인들이
종족이라 스스로 불렀고
이들의 후손 중 지금까지도 소수민족 형태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묘족, 몽족 등으로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국에서 묘족이란 칭호는 남부에 살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중국땅에서 원래 선진문명인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묘족이라 부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황제헌원씨]와 대결을 벌였던 [치우씨]도 묘족의 수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동방불패로 유명한 산동반도의 원주민들도 묘족이라 부른다는 것이죠.
약 3천6백년전부터 3천년전까지 존재했던
갑골문자로 유명한 은나라(상나라) 지도입니다.
중국은 요순임금 - 하나라 - 은나라(상나라) - 주나라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하는데
은나라 때까지만해도 국토면적이 한반도 보다도 작은 나라였죠.
그런데 사실은 은나라(상나라) 영역은 지진대 위에 있어서
오랜옛날에는 사람들이 살기 싫어하던 지역이라는 겁니다.
은나라 지역은 오랜옛날에는 사람들 특히 선진문명인들이 살기 싫어하는 곳이라
그래서 문명이 발전하지 않았던 곳이고
소외되었던 지역 사람들이 요임금, 순임금 때부터 차차 성장하여
은나라 때에는 많이 커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한반도보다도 작은 영역이었다는 거죠.
그리고 아직도 그 문명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중국의 중부지방은 [지진대]라서 대략 5천년 이상 전의 사람들은 살기 싫어했을 거라 보며
4~5천년 전에 사람들이 야생성이 무뎌져서 작은 지진을 잘느끼지 못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비로소 그 곳의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거라 봅니다.
중국의 중부지방은 원래는 문명이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거죠.
고대한국의 선진문명인들이 살기 싫어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적석총이 주로 발견되는 지역
적석총은 돌(石)로 만든 무덤인데
돌로 무덤을 만드는 것은 동이족(고대한민족)의 풍습이었고
고대한민족은 주로 지진대가 아닌 곳에 살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싶은 곳에 산다는 것은
고대 선진문명인들이 누리던 특권이었겠죠.
문명이 발달된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었겠죠.
미개했던 부족은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실크로드
예로부터 동서양을 왕래하던 길을 보통 [실크로드]라 부르죠.
그런데 실크로드라 하면 중국 중부에서 사막을 거쳐서 가는 [사막길]을 주로 연상하지만
사실은 위 그림처럼 초원을 가로지르는 [초원길]이 더 먼저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대략 5천년 이상 전의 사람들은 [지진대]인 중국 중부지방에 가기 싫어해서
북쪽의 초원지대를 가로질러서 중앙아시아쪽으로 갔고
그래서 [초원길]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으며
후에 고구려, 발해에서도 초원길도 많이 이용했다 추정됩니다.
위 사진의 구조물들은 얼마전에 발견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있는 커다란 구조물들인데요
작아보이는 동그란 흙 구조물 하나의 직경이 무려 12미터이며
전체적으로는 수백미터나 되기도 하는 큰 유적들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찍은 사진.)
뉴욕타임스에도 보도되었죠.
위 유적들은 무려 9천년 ~ 7천년전에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던 유목민인 [마한드자르]라는 미스테리한 부족의 작품이라 하는데요
10진법, 60진법까지 나타나는 놀라운 것들입니다.
고대한국은 9천년 전에 이미 10진법과 24절기 알았나.
http://cafe.daum.net/121315/CK3e/286 <- 관련글
수메르문명(메소포타미아문명)이 6천 ~ 7천년에 시작되었으니
무려 9천년 ~ 7천년전이라면 놀라운 것이며
이러한 유목민들이 후에 수메르문명(메소포타미아문명)을 만들었다는 추론이 나온다 하겠는데요
이 놀라운 [마한드자르]라는 부족은 어디서 온 사람들로 봐야할까요.
예로부터 한반도 남부, 중부를 [마한]이라 부르죠.
저는 이 [마한]이라는 이름이 [마문명]과 그 뒤를 이은 [한문명]에서 나온 것이라 봅니다.
[한문명]은 약9천년전 ~ 1만년전에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생각합니다.
마문명 - 모계사회
한문명 - 부계사회
약9천년전 ~ 1만년전부터 한반도 남부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을 [한] 또는 [마한]이라 불렀고
홍익인간의 정신에 따라서 세계로 선진문명을 전파하러 많이 갔는데
서쪽으로 갈 때는 초원길을 따라서 소, 양 등을 몰고 유목민 형태로 갔고
(먼거리를 이동할 때는 유목민으로 사는 것이 편하므로.)
중앙아시아 입장에서는 9천년 ~ 7천년전에 [마한드자르]라는 '미스테리한' 유목민 부족이 갑자기 나타났고
그 부족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발달된 문명을 가진 놀라운 부족이었다는 거죠.
[마한]사람들이 초원길을 갈 때 거치는 곳이
만주 서부 요하지역.
요하문명이 황하문명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중국이 발칵 뒤집힌 바로 그 요하지역입니다.
위 지도에 [1.소하서문화]라는 데가 있는데요
9천년전~8천5백년전(BC7000년- BC6500년)의 아주 오래된 유적입니다.
(수메르문명보다 2천년이나 빠름.)
아래는 이 소하서(小河西)문화에 대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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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펌 - 발췌 ]
한민족 문화의 원류를 찾아 나선 7박8일 동안 총3800km를 달려 고대 한민족의 근거지로 알려진 내몽골 오한기(敖漢旗) 지역에 동북아 최고(最古)의 소하서 문화, 신석기시대의 흥륭와 문화, 조보구문화유적 등을 둘러보았으며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홍산 문화지역 등을 답사하였다.
소하서(小河西)문화 (BC7000년- BC6500년)
요하문명 최고(最古)의 소하서(小河西)문화 (BC7000년- BC6500년)를 오한기(敖漢旗) 박물관 왕택(王澤)연구원의 안내로 어렵게 답사하였다.
이 지역은 워낙 오지라 우리나라사람은 거의 접근이 불가능하며 현지인조차도 마을 사람들 외에는 존재를 잘 알지 못하는 찾기 어려운 지역으로 사진으로는 최초로 소하서 문화를 촬영하게 되었다.
발굴계기는 정부의 문화재 신고정책에 의해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과거부터 동네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돌무더기에 제사를 지냈으며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돌무더기를 파헤쳐보니 제단위에 7기의 적석총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둘레는 사각으로 되어있고 판석, 화산석 얼굴, 옥팔찌 등이 발견되었다.
제단전경
사각의 제단과 적석총돌무지들이 널려있다.
적석총 무덤에서 발견된 석인상
세계일보 2009.10.23.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091023140119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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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하서문화]는 9천년전~8천5백년전으로 아주 빠르기 때문에
중국당국이 극히 공개를 꺼려하는 곳입니다.
나중에 "인류 최고(古)문명이 중국땅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이 인류문명의 시원지이다." 하면서
대대적으로 세계에 홍보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세계적으로 워낙 큰 파장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조용히 벼르면서 '만만디'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런데 요하지역이 중국땅으로 편입된 것은 한나라때이고
그것은 겨우 2천년 정도 밖에 안되는 일이며
그 이전의 그 지역은 고대한민족(동이족)의 영역이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죠.
고구려 때 상당기간 요하유역을 수복하기도 했고요.
위 석인상은 [상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상투]를 하기 시작한 것이 무려 9천년전~8천5백년전 이전이라는 거죠.
그런데 위 유적은 당시 고대한국의 시골에 불과하고요
중심지는 전혀 아니라 하겠습니다.
당시의 요하유역은 한반도 남부, 중부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쪽으로 가는
길목의 시골에 불과했을 거라 봅니다.
2012년에 요하유역에서 [상투]를 튼 인물상이 또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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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펌 - 발췌 ]
네이멍구 신석기 토기에 한민족 고유의 상투가?
요하문명 유물 연구 5개大 연합팀 “홍산문화가 中문명이라는 건 허구”
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을 동글게 벌리고 호흡하며 수행하는 모습의 남자 인물상.
올해 5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발굴된 이 토기 인물상으로 홍산(紅山)문화가 한민족의 문화임이 입증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요하(遼河)문명을 대표하는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가 중국 문명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은 허구가 된다.
인하대 대학원 융합고고학과를 비롯한 5개 대학 연합연구팀은 26일 인천 남구 인하대에서 '동북아 고대 국제관계와 한민족의 선진 문화 역량'을 주제로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용역 연구결과 발표회를 연다.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밝히는 이 발표회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부분은 네이멍구 츠펑(赤峰) 시 아오한치(敖漢旗)의 싱룽거우(興隆溝)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에 대한 분석이다.
동아일보 2012.09.24
http://media.daum.net/life/outdoor/travel/newsview?newsId=201209240309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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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물상은 5~6천년전 것인데요
[소하서석인상]보다 3천년 후 것인데, 계속 [상투]문화가 나옵니다.
그리고 또 위 인물상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수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한민족 고대의 수행방식이라하는 이 수련은
조선시대에는 시조를 길게 늘이며 읊으며 수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티벳.
티벳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혈통적으로 매우 가깝고
전통문화가 비슷한 것 많은데
티벳의 수행법 중 하나가 소리를 내면서 수행하는 것이죠.
티벳고승들이 깊이있는 발성을 하면서 수행하는 것, 유명한 일이죠.
가수들이 가끔 그 발성법을 배우러 가기도 하죠.
고대한국인들이 중앙아시아쪽으로 문명을 전파하러 오랜세우러 여러차례 갔는데
그 후손들이 군데군데 남아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데
티벳, 네팔, 부탄 등에 그 혈통과 문화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고대한국의 중심후손은 현 한반도의 한국인이고요.)
티벳의 종교를 [티벳불교]라 하는데
'티벳 고유의 종교'에 석가불의 불교가 합해져서 생긴 것이라 하죠.
여기서 '티벳 고유의 종교'는 고대한국 사람들의 종교가 이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원형의 크기, 깊이가 제대로 전해지지는 못했겠지만요.
감사합니다.
[ 먼 앞날을 내다보지 않으면 쓸데없는 고민으로 자신을 낭비하게 되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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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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