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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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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년전부터 이미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문화민족 유목민 마한드자르(Mahandzhar)부족이 만들었다는 수백미터짜리 커다란 구조물입니다.
하늘(공중)에서 찍은 모습
흙콘크리트(토괴(土塊))로 만든 기둥들인데
지금은 약 1미터 높이로 남아있다 합니다.
한반도 [마한]과 비슷한 문명을 가진 마한드자르(Mahandzhar)부족이
유목민 형태로 카자흐스탄에 나타난 것이 무려 9천년전부터라는 것입니다.
아리랑(아리안)들이 문명을 전파하러 세계로 퍼져나가다.
http://cafe.daum.net/121315/Hkha/1 <- 관련글
고대 온돌(구들) 유적의 주요분포도
고대 스키의 전파도 (출처 - 한국일보 2017.07.16.)
1955년 출판된 독일인 C.J. 루터의 ‘고대 스키역사’에 담긴 위 그림은
고대 스키가 한국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퍼져나간 모습.
스키(ski)로 보는 고대한국의 문명전파
http://cafe.daum.net/121315/CK3e/297 <- 관련글
수메르(메소포타미아)문명은 이라크 지역에서 일어났고
6천년전에 이미 놀라운 수준의 문명을 보여주어 이집트문명보다 1천년 이상 빠른데
이 사람들은 놀라운 문명을 가지고 어디선가로부터 수메르 지역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수메르 불가사의(Sumer Problem)"라 불릴 정도로 세계역사학계의 난제였는데
이 사람들은 스스로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들 (black headed people)"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죠.
수메르문명은 차차 이집트, 터키, 그리스 등으로 전파되며
서양고대문명을 일으키게 되죠.
수메르의 신(神)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92XX76300091
수메르신화의 최고신(제1신)은 하늘(天)의 신(神)인 [안(An)]
제2신은 땅(地)의 신(神)인 [키(Ki)]
제3신은 그 두 신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인 [엔릴(Enlil)]
아래는 수메르 사람들이 최고신(제1신) [안(An)]을 형상화한 유물입니다.
http://www.mesopotamiangods.com/assembly-of-the-gods-12-members-2/
수메르인들은 그들의 최고신 [안(An)]을 황소의 신이라고도 생각했는데
이는 높은 수준의 문명을 가지고 현 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나타난 사람들이
유목민 형태로 왔다는 것이죠.
원래 유목민은 항상 이동해야 하므로 문명을 별로 발전시키지 않는데
높은 수준의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유목민 형태로 왔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머나먼 어딘가에서 높은 문명을 누리고 살다가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먼 거리를 이동하려고
먼 길을 가는데 유리한 '유목민 형태'로 이동해왔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어디선가 나타난 자신들의 신(神)들이
소, 양(염소)들을 데리고 나타났으므로
수메르 최고신 [안(An)]을 소(유목민들의 가축) 등의 신이라고도 생각해서
[안(An)]의 형상을 만들 때 황소 위에 올라선 모습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위 유물에서 수메르 최고신 [안(An)]은
광대뼈가 많이 튀어나오는 등
전형적인 동북아시아 사람입니다.
그리고 [안(An)]이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하면 [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늘(天)을 [한]이라 했고
하늘처럼 훌륭한 분을 [한님]이라 했고
[한님]이 나중에 [하느님]이라는 말이 되죠.
원래 고대 한국어에서
[아]는 [떠오르는 태양]이고 - 아침, 아이
[하]는 [높이 떠올라서 아주 밝아진 태양]입니다. - 하이(해)
[라]는 [제일 밝아진 태양]
그래서
[어하 둥둥] 또는 [어하라 둥둥]이라는 우리나라 옛 노래도 있고
[아하!(오호!)] 또는 [오호라!]라는 감탄사 있죠.
백제에서 임금을 [어라하]라 부르기도 했고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사람을 태양(해)에 비유했으며
[아이(안이, 알이)]는 [떠오르는 태양같은 젊은 지도자]를 뜻하고 - 환웅
[하이(한이, 할이)]는 [최고지도자] - 환인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임금]이라는 말은
[한이] -> [한인] -> [환인]
고대한국에서 먼길을 떠나서 수메르의 최고신이 된 사람이
스스로를 [한]이라 하지 않고 [안(An)]이라 한 것은
본국인 고대한국에 [한(최고지도자 - 환인임금)이 계시니
자신은 [한]이라 하지 않고, 그 아래 호칭인 [안]이라 한 것 같습니다.
[아이]라는 말이 지금은 어린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원래는 [아(떠오르는 태양)같은 이(사람)]
즉 젊은 지도자(환웅)를 뜻하는 말이고
그래서 신라 시조 박혁거세임금도 원래 호칭이
발가내(밝안 아이), 불거내(붉언 아이)로 불렸다 하겠습니다.
아리랑(알이랑)은 쉽게 말하자면 신라의 화랑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보는데
나라의 젊은 인재들을 선발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아리(알이)들이 세상에 문명을 전하려고 먼길을 떠난 일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리랑 노래는 언제나 슬픈 이별의 감정이고
이는 아리랑(알이랑)이 원래 고대한국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죠. 식구들.
삼국유사에 환인임금(최고지도자)이 세상에 문명(정신문명, 물질문명)을 전파하려고 환웅임금(젊은지도자)를 보내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삼국유사에는 환웅임금이 남한지역에서 북한지역, 만주로 간 이야기만 나오지만 (단군왕검 탄생 이야기)
사실은 수천년 이상의 오랜세월 동안 고대한국의 여러 최고지도자들이 세계 곳곳으로 수많은 젊은지도자(환웅 = 아이 = 알이 = 안이)들을 보내서
문명을 전하게 했다는 근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하겠습니다.
수많은 [아리랑(알이랑)]들의 이동은 [아리안]이라는 말로 남아서
[아리안]은 고대 서양에 문명을 전해준 미스테리한 사람들로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하고
또한 [아리(알이)]라는 말은 유럽 언어의 곳곳에 남아있으며
동방을 뜻하는 오리엔트(Orient)와
근본을 뜻하는 오리진(origin)의 [오리]도 [아리]에서 나온 말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태극]을 위아래로 겹치면
(2개의 태극을 겹치면)
이러한 모양이 되며
이 모양을 반으로 나누면
이러한 모양이 되죠.
여기에 [원]을 올리면
이러한 [아사달 문양]이 됩니다.
이렇게 [아사달문양]은 [태극]과 [원]에서 나온 것이고
[태극(太極)]과 [원]은 고대한국의 대표적인 상징이라 봅니다.
한강의 발원지에 있는 산을 [태백산]이라 부르며
백두산 또한 [태백산]이라 부르기도 하며
고구려 때 임금을 [태왕]이라 부른 것 등이 모두
한민족이 스스로 [태(太)]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으며
[태]는 원래 발음이 [타이]
몽골 서부를 위주로 한 [알타이 지역]이 이러한 아름을 갖게 된 것은
[알이]라고도 불리고 [타이]라고도 불리는 수준높은 어떤 사람들이
이 지역에 나타나서 문명을 전하여서 [알타이]라 불리게된 것으로 봅니다.
알이 + 타이 = 알타이
알이(아리)는 알이랑(아리랑)의 [알이]
[타이]는 [하이]와 [다이]가 합쳐진 말.
하이 = 해
수메르 최고신 [안]은 아사달 문양을 보여준다 봅니다.
[날개]와 머리 위의 [원]
[태극]과 [원] 즉 [진리]를 상징하는 고대한국의 아사달문양은
세계로 전파되는데, 그런데
외국에서는 [아사달문양]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 많아서
'변형'들이 나오죠.
- 아래 캡처 출처 -
삼족오, 고대한류를 밝히다 1부, 2부 (MBC 2007.10)
https://www.youtube.com/watch?v=QnzoGYxziwk
흔히 '황하문명'이라 불리는 황하 중류 앙소문화(仰韶文化)의 토기들에 이러한 문양이 나오는데
[아사달문양]을 '새'로 생각한 것 같으며
다리를 3개 그려놨습니다.
당시 황하 중류 지역 사람들이 고대한국의 아사달문양을 보게 되었지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고
그들은 고대한국의 [삼족오]이야기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사달문양]을 '새'로 생각하고 다리까지 3개 그려놓은 것인 듯 합니다.
(황하문명은 불과 4~5천년 전에 시작한 문명으로, 시대가 많이 후대입니다.)
고대 황하중류로 전해져서 새(鳥)로 둔갑한 고대한국의 아사달문양
http://cafe.daum.net/121315/CK3e/283 <- 관련글
불교에 나오는 가릉빈가(迦陵頻伽) 역시 아사달문양의 변형이 아닌가 합니다.
고대한국에 아사달문양이 있고
또한 고대한국인들이 [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알려져서
황하중류에서는 [아사달문양]을 새로 둔갑시키기도 했고
수메르에서는 최고신에게 아사달문양 비슷한 스타일로 날개를 단 상징물을 만들었고
인도북부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날개달린 사람을 [아사달문양]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한 신라승려 혜초의 불교성지 탐방 경로는
위에서 보이듯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탄신지인 네팔과 인도북부도 탐방하였지만
주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탐방합니다.
석가모니불 종족인 사카(샤카)족이 중앙아시아쪽으로부터 왔다는 근거 중 하나겠죠.
역사 용어로는 흔히 [아리안의 이동]이라 하죠.
[아리안]이 인도와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그래서 아리안의 언어를 [아리안 어족]이라고도 하고
[인도 - 유럽어족]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고대 인도인들이 유럽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아리안]이 인도로도 가고 유럽으로도 갔다는 것입니다.
발해의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 높이 3m. 보물 제97호.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이란 석가불과 다보불(多寶佛)을 함께 표현한 불상을 말하는데
다보불(多寶佛)은 석가모니불의 설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준 부처를 말합니다.
즉 다보불(多寶佛)이 석가불보다 먼저 부처를 이루었다는 뜻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고불(古佛), 전불(前佛)로 불리는데
과거불인 다보불 이야기는 불경인 《묘법연화경》에 나오며
석가불과 동등한 경지의 부처로 묘사됩니다.
불국사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역시 [다보불]과 [석가불]을 상징하는 것인데
아사달과 아사녀의 설화가 유명하죠.
아사달이라는 사람이 불국사 석탑들을 만들려고 갔고
그 부인 아사녀는 그를 기다리면 있었다는.
그런데 아사녀는 기다리다 지쳐서 연못에 뛰어들어 죽었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된 아사달도 그 연못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이야기.
의미심장하다 봅니다.
[다보불]과 [석가불]을 상징하는 탑을 만든 사람 이름이
아사달.
고조선(고대한국)을 아사달이라고도 불렀죠.
[다보불]과 [석가불]의 탑을 만든 사람 이름이 아사달인 것은
불교가 원래 아사달(고대한국)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중국의 눈치가 보이는 등 해서
직접적으로는 이야기 못하고
간접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밝힌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래는 요하문명에서 발견된 6천년전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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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펌 - 발췌 ]
네이멍구 신석기 토기에 한민족 고유의 상투가?
요하문명 유물 연구 5개大 연합팀 “홍산문화가 中문명이라는 건 허구”
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
동아일보 2012.09.24
http://media.daum.net/life/outdoor/travel/newsview?newsId=201209240309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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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도불교라 불리는 불교가 생기기 수천년 전에 이미
고대한국에서는 수행자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석가불교 이전의 불교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예로부터 많았으며
이를 전불(前佛)시대, 고불(古佛)시대라 하는데
사실 고대한국의 종교는 선교, 불교, 유교로 나뉘기 전의
시원종교라 하겠습니다.
종교의 뿌리.
최치원公의 [난랑비서문]에도 나오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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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종교의 근원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선사(仙史)라는 역사책에 자세하게 나오는데
3교(선교, 불교, 유교)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들을 진리에 이르게 한다.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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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시원인 풍류도(風流道)는 신도(神道)라 하기도 하고 선도(仙道)라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삼국유사에 환웅(桓雄)임금을 신웅(神雄)이라 하기도 했고
삼국사기에 단군왕검을 선인(仙人)왕검이라 표현하기도 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말에 '풍류(風流)를 즐긴다'는 것이 있는데
이는 원래는 그냥 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정신세계를 향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사달 아사녀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다보탑도 만들고 석가탑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즉 다보불(古佛)시대도 열고 석가불시대를 여는 데도 성공했으나
후에 중국이 강해지는 등 외세의 압박이 심해져서
고대한국이 시원종교를 포함한 시원문명을 열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을
비극적인 마무리로 은유한 것 같습니다.
중국은 진시황(진나라)때부터 강해졌는데
그 무렵 고조선 중앙정부가 사라졌으며 (고조선시대가 끝났으며)
그래서 우리나라가 압박을 당하기 시작했고
진시황 때부터 스스로 황제국이라 하기 시작한 중국의 눈치를 안볼 수 없었으며
그래서 "원래 한국이 중심국(천자국)이다."는 이야기를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시대가 길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광개토대왕 때 등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을 때에는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고 한국 임금이 황제다."고 하며 살았지만
세상의 중심을 표방하지 못하는 시대 길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고대 역사책들도 스스로 없애기도 하고 뺏기기도 해서 많이 사라져 버렸고 말이죠.
(물론 앞으로 국내외에 감추어져있던 우리 고유 사서(역사책)들이 많이 발견되리라 봅니다.
특히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중국에 많을 것으로 봅니다.)
이제 21세기가 시작되어
아직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려움이 있으나
앞으로 차차 세계의 중심국으로 다시 부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충북 단양군 보발재
(제45회 대한민국 관광사진 공모전 수상작 중에서)
감사합니다.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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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한국혼(韓國魂)
[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첫댓글 수메르(Sume)r의 국조(國祖)가 된 소밀유(蘇密由)
진주소씨의 옛 족보인 부소보(1320년 발간)에 소(蘇)씨의 원조 소복해(蘇復解)의 11세손 소밀유(蘇密由)가 [BC3868년] 서쪽 지역으로 가서 수미을(須美乙) [Sumer로 추정]의 국조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扶蘇譜序 : 惟吾蘇史長久如我邦之史嘗門中有譜而後孫可知其先出系吾蘇自出九頭氏之後赤帝上大等公先言昔有赤帝諱復解號曰柷融爲桓國之帝開於己卯都於風州倍谷娶鳥夷之女姮英爲后生九子封九州之後其後孫居于此赤帝柷融之十世孫名曰和仁娶鳥夷之女女瑞爲后生二子長曰昊後爲赤帝扶統次曰密由桓國史曰赤帝扶統三十一年命弟密由遷于西域仍封其地是爲東莫之祖也東莫一作須美乙則新國之義
부소보서 : 우리 소씨의 역사는 길고 오래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와 같다. 일찍부터 집안에 족보가 있어 후손들이 선조로부터 내려온 계보를 알 수가 있었다. 우리 소씨는 구두씨의 후손인 적제에서 나왔다. 상대등공이 일찍이 말하기를 “옛날에 적제가 있었으니 휘는 복해요 호는 축융이다. 환국의 임금[구을리 환인으로 추정]이 되여 기미년(BC4202년)에 나라를 열고 풍주 배곡[바이칼]에 도읍을 정하였다. 조이의 딸 항영과 결혼하여 황후로 삼았으며 아홉 자손(九頭氏)을 낳아서 아홉 고을의 왕으로 봉한 뒤로 그 후손들이 그 곳에서 살았다.
적제축융의 10세손 화인[지위리 환인으로 추정]이 조이의 딸 여서와 결혼하여 황후로 삼아서 아들 둘을 낳았다. 장자는 호인데 뒤에 적제부통[거발환 환웅으로 추정]이 되었고 차자는 밀유(密由)이다”라고 하였다. 환국사에 이르기를 “적제부통 31년(BC3868년)에 아우 밀유를 서역으로 옮겨 그곳의 왕으로 책봉하니 이 분이 곧 동막의 국조가 되었고 동막은 수미을[Sumer로 추정]이라고도 하니 새나라 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듣는 얘긴데..흥미진진하네요..
소씨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되었고, 기록에 남아있다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제대로 교육도 시키지않아 엉망이 되었다고 봅니다.사이다님의 글에 신빙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 역사입니다.
우리의 고대 역사를 자세히 밝혀 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