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은 어떤 극적인 만남은 아니었지만 조금 다른 방법을 통해서였다.
지금부터 30여년전 이야기이지만 교회에 다니게 되기 전의 내 생활은 말하자면 신앙인과는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방의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기 위해서 상경했었는데, 학교에 다닐 때에는 반에서도 불량한 쪽에 속했고, 또한 반 전체가 좀 평이 좋지않은 반이어서,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학교가 설립된 이래 가장 좋지 않은 반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리며 학교내에서 귀찮은 존재였었다. 그런 환경에서 신앙적인 것이 생길 수가 없고, 종교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취직하는데 있어서[내 장래는 내 손으로 개척한다]는 교만한 생각으로 상경을 하였다. 대기업 그것도 연구소라는 곳에 취작한 그 곳은 그러한 내 교만한 생각을 꺽어버리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지식부족, 경험부족의 젊은 18살의 나 자신이 얼마나 이 세상을 쉽게 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럭저럭 노력을 하여 일상의 업무를 볼 수 있게 되기까지 1년이상이 걸렸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것은 어떤 라디오 방송를 통해서였다. 내 전공이 전기과였기 때문에 학교다닐때부터 라디오나 앰프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가장 처음 받은 보나스로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스피카시스템을 사서, 나는 직접 만든 하이파이앰프를 틀어놓고 마냥 즐거워했었다.
예수님의 부르심의 계기는 아침 자명종 대신에 맞춰논 애지중지했던 앰프에서 흘러나왔다. 당시[아침의 말씀]이라는 방송시간이 지금처럼 이른 시간이 아닌, 딱 내가 일어날 시간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그냥 흘러보내는 정도였는데, 그러는 사이에 경청하게 되었고, 이시마루 목사님(개혁파교회의 은퇴목사)의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에 점점 공감하게 되었다.
지금생각에 아마 성경인가 뭘 받을 수 있다는 생각해서 엽서를 보내게 된 것이 내가 처음 응답한 것이었다. 좀 속보이는 이야기이지만 무언가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응모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무엇을 받았는지는 30여년이 지나서 잊어버렸는데, 엽서를 보낸 것 때문에 [아침의 말씀]시청자 리스트에 등록이되어, 오래 되지 않아 일본기독교개혁파의 요꼬하마교회로부터 집회안내 엽서가 날라온 것을 기억한다.
집회안내 엽서에 바로 응하여 교회에 갔었는지 그것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요꼬하마교회를 찾아간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을 필요로하지 않았다.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에 갔었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했었다는 걸 기억한다. 안내엽서에 그려진 약도를 보면서 찾아간 요꼬하마 교회는 너무나도 황송한 환영을 받아서[교회라는 곳이 왜 이렇게 처음오는 사람들을 환영할까? 별로 썩 좋지는 않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커다란 전환기가 되었던 것은 가을 특별전도집회였다. 내 기억으로는 반더 빌트 선교사가 강사였었다. 설교의 주제는 [사울의 회심]이었다. 사도행전 9장에 있는 것처럼 크리스찬을 죽이려는 바음으로 다메섹을 향하던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그리스도와 만나 180도회심하는 그 감격적인 부분이었다. 나중의 위대한 전도자가 된 그와 그리스도와의 대립, 극적인 만남, 그리고 회심...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반신반의했었던 자신과 사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에서 더구나 냉정하고 인텔리이며 신념을 가지고 있언 사울 마져도 회심되었다고하는 성경의 기사는 전혀 근거없는 거짓말이던지, 이니면 완전한 진실인지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회심한 것이 바로 이 때라고 나는 확실히 기억한다. 이 때 그리스도와 만난 사울과 같이 하나님과 일대 일의 입장에 서게되었다. 믿고 받아들이던지, 믿지 않고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성경의 말씀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 합리적인 성경의 말씀이 진실 그대로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제방의 한 모퉁이가 부서지고 난 다음에는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성경의 모든 것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입장에 선 후에는 같은 성경말씀에도 읽는 자세가 바뀌어 졌다. 아직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신앙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에 다니게 된 후부터 교회와 멀어지지 않게 끔 하나님의 또 하나의 준비를 하셨다. 지방출신의 입사사원들은 주로 회사의 사택에 들어갔었는데, 같은 사택에서 나보도 조금 늦게 요꼬하마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형제가 있었다. 그것도 입사동기로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안도우 형제였다. 내가 그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그도 나와 같이[아침의 말씀]이라는 방송을 듣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 때부터 그와 함께 서로 격려하면서 일요일마다 함께 교회에 다녔고, 얼마후에는 목요일 밤에 있었던 교리공부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약 6개월동안 그와 함께 다녔다. 그리고 1969년 크리스마스 때에 돌아가신 후지이목사님으로부터 함께 세례를 받았다.
이상이 내가 크리스찬이 된 경위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당시의 생각들이 문듯문듯 떠올라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주님은 각 사람에게 각자가 그에 합당한 형태로 만나주신다. 앞으로도 그 주님과의 첫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 만남을 기억하며 늘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