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시점에서본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장점과 단점
일본기독개혁파신꼬교회
목사 이와사키 켄(岩崎 謙)
책임번역 신 성일
한국과 일본교회가 함께 모여 교회교육에 대해서 함께 연구할 수 있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육 문제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 교회의 본질 그 자체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으로 받아들여 다음 세계에 계승하는 것과 교육은 언제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의 계승에 있어서의 교육은, 장점를 신장하고 단점을 보충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저의 교육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교육의 시점에서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장단점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장점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일본기독개혁파교회가 스스로 장점으로 하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 비젼입니다. 단점에 대해서는 교회학교의 문제를 제외하며, 또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가지고 장점이라고 하고, 단점이라고 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개별적인 취급이 필요합니다만, 단점은 장점의 배후에 머무는 그림자에 자나기 않는 것인가, 아니면 일본전도의 활성화를 위해서 꼭 극복하지 해야만 하는 과제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강연이 끝나고 일본에서 참석한 분들이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정정해 주신다면 보다 공평한 평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여러분들도 제 단점을 보충하는데 꼭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한국교회와 일본교회가 다른 시점에서 서로간에 평가할 때, 자기를 상대화할 수 있어서,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균형잡힌 현실적 인식으로 인도되기를 원합니다.
장점
Ⅰ 교역자, 제직의 교육
1) 신학교교육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교육이념은 먼저 신학교교육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46년4월에 교파가 발족되면서, 그로부터 1년후인 4월에 고베개혁파신학교가 개설되었습니다. 제도적으로는 다르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패전 이전의 고베중앙신학교를 계승하는 형식으로써, 미국장로교회(PCUS)의 대부분의 원조로 시작되었습니다. 초대 교장인 오까다 미노루(岡田 稔)는 「신학교는 전도의 최단코스다」라고 말했습니다. 곤란을 겪고 있던 일본전도를 수행하는데 가장 가까운 길은, 어떤 면에서는 돌아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제대로된 신학교육을 목사에게 부여한다는 것의 확신이 고베개혁파신학교의 개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교세규모를 생각하면, 이 규모로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극히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신학교육을 교파의 생명선과도 같이 생각했기 때문에 신학교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의 교육목표는, 개혁파신학을 가르치고, 국가를 포함한 이 세상의 우상숭배에 굴하지 않고 개혁파교회를 건설하는 것에 있습니다. 개혁파신학를 배우고 가르치는 열정이, 신학교와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존립(存立)을 지탱해 왔습니다.
2) 제직의 교육
교파에 있어서 신학적 일치는 개교회의 장로, 집사의 신학적 일치를 요구하고, 교회내의 신학적 학습을 촉진해 왔습니다. 특별히 장로의 육성과 계승에 있어서 평신도교육의 필요성은 목사양성과 함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목사와 대등하게 의논할 수 있는 장로를 육성하는 것 없이는, 장로주의정치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일본기독개혁파교회 중에서 능력있는 교회는, 능력있는 장로가 있는 교회입니다. 장로, 집사가 목사를 육성하고, 목사가 장로, 집사를 양육합니다. 목사와 장로, 집사는 깊은 신뢰관계 속에서 상호간에 교육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또 서부중회(노회)에서는 집사, 장로, 전도소위원(미자립교회 임원)의 연수를 기획하며, 대회(총회)에서는 일년에 한 번 2박3일동안 역원(목사, 장로)연수회를 갖습니다.
Ⅱ 교리교육·성경교육
1) 교리교육
교파형성을 위한 신학교육은 먼저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헌법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을 섭렵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개 교회의 남자회, 부인회, 청년회에서 반복하여 공부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도 함께 공부를 합니다.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교리와 신앙고백문서를 배우는 것을 아주 중시하고 있습니다. 교리교육은 신앙의 명제를 이해하는 지적 작업인데, 단순한 지적교육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명제화된 교리는 이 세상의 불신과 가치관의 흔들림속에서 믿음을 진리와 연결시켜 평신도를 위로하고, 장려해 왔습니다. 무엇을 믿어 왔는가를 교리의 형태로 명제화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이 개인의 심리적 위로로 생각하고 있는 일본의 토양에서는 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본기독교회를 인도해왔던 목사와 장로는 이러한 교리교육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교리교육을 통해서 잘못된 가르침과 말씀에 입각한 진리의 가르침을 식별하고, 시대의 흐름에 흘러버리지 않고 진리위에 선 견고한 교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개혁파의 언약신앙의 이해에 서서, 유아세례자의 육성에 노력해 왔습니다. 여기서 주로 행해진 교육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가르쳤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은 아이들의 학습 능력에 맞춰서 교리의 내용을 언어화한 것입니다. 만약 대상이 다르면 다른 용어선택이나 다른 표현으로 행해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이, 또는 부모와 자식이 깊은 인격적인 교제속에서, 질문의 의미와 서로의 이해도를 확인하면서 행해집니다. 부모나 교사가 믿고 있는 신앙의 내용을, 명제화시킨 카테키즘의 언어의 도움을 받아 소위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뱉어주는 것처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부모의 입으로 충분히 소화한 것을 자녀에게 전합니다. 그것도 자녀와 함께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 가운데, 최상의 기쁨으로서 신앙의 지식이 전수됩니다. 이러한 교리문답교육의 실현을 향해서 우리는 고민하며 생활해 오고 있습니다.
2) 성경교육으로서의 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는 종교개혁의 원리는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설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설교에는 교리 등을 적접 취급하는 테마설교도 있지만, 일본기독개혁파교회를 대표하는 설교자는 강해설교의 명수입니다. 그 강해설교는 성경이 쓰여진 당시의 역사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교리적 문제점을 취급하며, 그 위에 오늘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연속강해설교를 통해서 말씀 자체를 배우는 자세가 일본기독개혁파교회에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 말씀으로 선포된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뜻을 밝히는 것이며,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평신도가 말씀과 만나고, 말씀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기회로써 설교가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설교하는데 있어서 사용되어지고 있는 주석의 순서는, 평신도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의 모범이 되기도 합니다. 예배이외의 학습은 교리를 배우고, 예배의 설교를 통하여 성경을 배우는 것이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일반적인 특색입니다. 또한 구속사의 역사적 전개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구약성경의 설교가 다른 교파보더 보다 많이 설교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오전 예배와 저녁예배등 매주 2회의 예배가 행해지고 있는 하나의 이유는 설교를 통해서 성경을 배우는 기회가 보다 많이 제공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Ⅲ 선언과 교파교육
1) 교육의 목표이며 원점인 창립선언과 20주년 선언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창립하는데 있어서 창립선언을 작성하고,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일본에서의 사명을 밝히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유신론적 인생관, 세계관(有神論的人生觀,世界觀),의 구축(칼비니즘)과 장로주의정치에 입각한 건전한 교회의 설립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지금까지의 발자취는 창립선언의 구체화를 목표로 행해져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립선언은 계속해서 반복하여 배우는 테마가 되었습니다. 또한 20주년선언이 작성되었던 때,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교세적으로 주춤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신학에 열심인 것만이 아니라, 예배를 행하는 것에 정열을 태우는 것, 기도를 중시하는 것, 사랑의 사역을 장려하는 것, 평신도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 등이 20주년 선언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전도를 생각할 때, 20주년 선언을 새롭게 공부했습니다. 창립선언과 20주년 선언은 일본기독개혁파교회가 언제나 돌이키는 영적원천 입니다.
2) 20주년이후의 선언작성과 교회교육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창립선언에 있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기준(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을 교파의 헌법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과 함께, 장래에 일본어에 의한 우리들의 신앙고백작성의 소망을 말해 왔습니다. 30주년이후의 선언은 일본어에 의한 새로운 신앙고백작성을 위한 준비로써 행해져 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기준을 계승하면서, 시대적 제약과 그 이외에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을 보충하고 증보한 것으로서 선언문이 작성되었습니다. 30주년선언은 야스쿠니(靖國)신사국가호지법안의 국회제출과 관계하여,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또한 40주년 선언에서는 성경의 권위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안에서, 성서학의 성과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성서론을 취급했습니다. 또, 「성령에 대해서」와 「복음선교에 대해서」의 선언도 40주년에 작성하였습니다. 50주년선언에서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선택의 교리를 밝히고, 개혁파신학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했습니다. 60주년에는 종말론의 선언을 내놓으려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경영은 목사 개인의 사역이 아니라, 교파전체로서의 신앙 선언입니다. 그 때문에 교파 전체가 이런 테마들에 대해서 학습해 왔습니다. 선언작성위원회는 역원연수회에서 이러한 테마를 몆 번이고 취급하여, 목사와 장로가 함께 이러한 것을 배웁니다. 또한 대회(총회)가 때에도 선언의 신학적 내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심의해 왔습니다. 선언은 대회에서 승인한 것입니다. 승인 후에는 각 교회의 부서나 전국학생회, 청년회등의 기회를 통하여 학습하여, 일반신도가 그 성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습의 장을 제공해 왔습니다.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선언문작성과 학습을 위해서 방대한 시간과 노고을 들여왔습니다. 이러한 선언문은 일본기독개혁파교회가 후세에 계승해야할 영적 재산이 되고 있습니다. 창립 선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의 선언작성의 수고를 통하여, 오늘의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신학적인 골격이 형성되어 교파로써의 동일성이 보전되고 있습니다.
단점
Ⅰ붕괴직전의 교회학교
이 세상의 학교교육을 보면 등교거부를 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또 대학레벨까지도 수업 중에 개인적인 잡담을 해서 수업을 하기가 곤란해지고 있습니다. 학교교육 자체가 존립의 위기에 서 있습니다. 그 속에서 일요일 아침 1시간정도의 시간을, 아이들을 모아놓고 예배와 학년별 분반공부를 하는 교회학교의 모습이 붕괴직전입니다. 아이들이 떠들어서 수업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는 있어도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교회학교가 성립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미신자의 아이들이 교회학교에 잔뜩 모여들었던 때는 과외도 없었고, 일요일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노는 날이었습니다. 텔레비전 게임등도 없고,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아이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이들은 교회에 모여서 상냥한 교회학교 선생님과 만나 성경을 배우고, 아이들끼리 함께 놀았습니다. 미신자의 부모도 아이가 일요일 아침부터 교회에 가서 집을 비우면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에서 해방되었다고 좋아했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여러 학원 등으로 바빠졌고, 아이들을 별로 낳지 않아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강해져서, 미신자의 부모는 자신이 가지 않는 교회에 아이만 보내는 것에 망설임을 느낍니다. 또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만화, 게임등을 통해서 이 세상에 넘쳐 흐릅니다.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있는 교회학교를 교회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신자의 아이들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교회학교는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가까스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마져도 위험한 상황입니다. 크리스챤 가정 자체가 아이들을 영적으로 키우는 모체로써 기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들과의 생활시간의 엇갈림으로 가정예배를 가질 수 없는 가정이 많아졌습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과 함께 가정예배를 지키는 가정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크리스찬 가정의 일원이라는 자각은 아이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는 동기입니다. 그 자각은 매일 가정예배를 지키고, 또 부모와 함께 주일예배를 지키는 것으로 키워집니다. 일상적으로 가정이 크리스찬 가정으로써의 기능을 다하지 않을 때, 일요일 아침 1시간, 교회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만으로, 교회는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습니다. 일본사회는 바쁘고, 아이들을 영적으로 교육시켜야할 부모 자신이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습니다. 교회 전체의 영적 교육의 피폐함이 아이들의 교회학교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해가면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멀어져, 친구와의 관계를 우선하게 됩니다. 그 때, 친구와 함께 가치관을 공유합니다. 커다란 교회라면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끼리가 교회에서 매주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현 상황에 있어서는 개 교회에 그렇게 많은 같은 세대의 친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중학생,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중회(노회)수양회를 일년에 몆 번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 젊은 층을 교육하는 교회의 능력저하는 청년전도의 정체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청년에 대한 전도와 교육의 문제가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중에 하나입니다.
Ⅱ리더인가? 연구자인가?
신약성경에서의 장로, 집사의 규정(디모데전서3장)은 로마제국내의 리더를 위한 덕목과 일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의 리더는 사회의 리더가 되는 자격을 가진 자입니다. 사회의 리더가 말씀을 배우고, 말씀에 순종하는 모범을 나타냄으로 교회의 리더가 됩니다. 옛날 아메리카, 또는 유럽의 교육시스템에 있어서 대학은 사회의 리더를 양성하는 곳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한 후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우고 목사가 된 사람은, 옛날 미국에서는 마을에서 고학력자이며, 명실공히 리더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그러한 의미에서 역시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일반에 있어서 대졸자는 사회의 리더로써의 자격을 가진다는 전제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또 대학원 수준의 졸업자는 리더라기보다도 연구자로써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의 리더교육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 있어서는 신학교는 신학의 전문교육과 함께, 평신도를 인도할 리더교육을 행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교는 단지 신학연구소가 아닙니다. 성경적인 리더쉽의 확립은 신학교 교육의 근간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물론 목사의 리더쉽은 말씀과 기도에 의한 리더쉽이며, 이 세상적인 리더쉽과 같지는 않습니다. 또 리더쉽의 형태는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구척적으로는 교파의 지금의 리더가 후진의 모델이 되고 있지만, 일본적 리더쉽과 성서적 리더쉽를 잘 맞추어, 갖추어야할 자세를 모색해야만 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사회와 교회의 접점이 일본보다 많아 리더로써의 목사의 자각이 일본 목사보다도 더 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교회가 마이너리티인 일본의 현상에서, 사회에 통용되는 리더가 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실현은 곤란합니다. 또 평신도들의 생활에 있어서 리더로써의 체험도 없이 헌신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육에 열심있는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연구자 타입의 목사를 양성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의 선언문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장로주의의 원칙으로 말하면 연구자 타입의 목사라도 교회가 크고 능력있는 장로가 있어 소회(당회)의 지도력을 가지고 있으면 교회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전도소(미자립교회)나 작은 교회에서는 목사의 리더쉽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교회성장이 늦어지는 한 가지 원인은 건전한 리더교육의 약함에 있지 않은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Ⅲ 평신도의 생활에서 유리(遊離)되기 쉬운 교사지도형의 학습
1) 일상생활의 적용이 적은 교회교육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신학교육은 평신도의 일상생활의 문제에서 멀어져 가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30주년 선언은 야스쿠니 문제를 취급하였고, 50주년에서는 죽음의 문제를 취급하여 선언 자체는 일상성에서 유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 교회의 교육은 어떤 주제에 관한 조직신학적인 항목의 학습이 중심입니다. 평신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답하는 것에는 약하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사춘기를 맞이하는 자에게의 적절한 지도, 컨플렉스로 고민하는 자에게의 붇돋음, 결혼하는 커플에 대한 학습, 아이를 기르는 가운데 있는 어머니를 돕는 학습,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셀러리맨에 대한 대응, 반려자를 잃어버린 자들에게의 격려, 나이 드신 분들에게의 위로 등의 문제입니다. 또 개인전도나 큐티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서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개혁파교회가 상정하는 신도는 성숙한 어른이며, 자세한 적용을 목사나 교회에 바라지 않아도 스스로 말씀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개혁파신앙의 신학적 틀 속에서 사고하고, 성경을 꼼꼼히 탐구하여 신학논문과 같은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사람은 인생의 고뇌와 직면하고 있는 일반 신도입니다. 신도의 절규와도 같은 삶에의 고뇌에 교회는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약함은 신학교의 커리큘럼에도 나타납니다. 신론과 비교할 때 인간에 대한 공부는 적으며, 인간의 성장과정을 취급하는 교육학이나 카운슬링의 학습이 상설되지 않고 있습니다.
2) 체험에서 배우고, 체험을 나누며 배우는 것에의 미숙
평신도의 일상생활에 직면하는 문제의 해답은 신학서적을 펴서 읽는 것만으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목사가 스스로 갖가지 고민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않고서는 확신을 가지고 신도의 문제에 답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절대화하는 체험주의를 배격하는 기운이 일본기독개혁파교회에 있습니다. 과거의 체험에 의지하지 않고, 언제나 신선한 말씀의 인도함만을 의지하는 것은 정론입니다. 그러나 그럼으로 말미암아 성령 하나님이 체험을 통해서 양육해 주시는 인도함을 경시한다면 신학적인 반동도 말하지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또한 평신도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것에 있어서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귀중한 지식의 재산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과 관계됩니다. 체험이 다르면 같은 성경을 읽어도 느낌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의 감상을 듣고, 자신의 체험을 상대화합니다. 또 서로 체험을 공유할 수 있어 신도의 교제가 깊어집니다. 서로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말씀을 나누는 것으로 말미암아 성경공부가 복안적(複眼的)인 것이 됩니다. 또 숙련된 평신도가 거기에 뽑아낸 구체적인 말씀의 적용 예는 구도자나 신앙경력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됩니다. 거기에는 물론 개인적인 것도 이야기하게 됨으로 꼼꼼하게 배려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일본기독개혁파교회에는 장로, 집사는 있지만 이러한 평신도 리더는 없고, 작은 그룹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체험을 통해서 배운 것을 경시하는 자세는 기도회의 참석이 저조하게 되는 원인으로 나타납니다. 일본기도개혁파교회의 기도회는 성서연구 프라스 기도회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말씀에 인도함을 받아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학습과 기도의 밸런스가 기도회에 있어서도 학습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공과 사의 구별이 기도회에 있어서 기도회에서 행해지는 기도는 주로 교회를 위한 공적 기도입니다. 그것은 교회로써는 가치있는 기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 모인 신도들은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보물입니다. 그러나 그 수는 너무도 적습니다. 자신의 일을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일본인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기도를 기도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받고, 응답을 받으면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그런 분위기가 교회에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면하고 있는 갖가지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 신도가 기도함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교회는 기도회를 활용하지 않습니다. 기도회가 성황을 이루어 축복받기 위한 교회교육을 일본기독개혁파교회는 필요로 합니다.
마무리
일본기독개혁파교회의 교육을 개괄하면, 교리나 성경을 배우는 것을 장점으로 가지고 있지만, 학습자의 내면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에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장점이라고 하고, 단점이라고 하는가를 확실히 결정하여, 시대에 부합된 새로운 교육의 방식을 연구해야만 합니다. 또 붕괴직전의 교회학교의 현 상황은 바로 타개책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역할의 강화를 교단 전체가 연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과 일본의 교회가 서로 현 상황을 보고하였습니다. 양국의 교회가 약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호이해를 깊이하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며, 도울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또 그 연장선상에서 양국에 가로막힌 여러 가지 문제를 신앙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서로간에 걸어갈 미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이 강연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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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