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교회와의 선교협력
2001.6.19 일본복음선교회 선교훈련원
선교사 신 성일
1 선교협력의 필요성
1) 성경에서의 선교협력모델
성경에서의 선교협력모델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구약성경에 있어서, 특별히 협력자로서의 좋은 모델이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여호수아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3절을 보면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자(從者)라는 것을 "따르는 자"라는 뜻으로, 조력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있어서 너무도 소중한 부하였고, 조력자였으며, 보조자였습니다. 모세는 이 여호수아를 신뢰했으며,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을 때까지 그를 돕는 자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죽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후계자로써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많은 협력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협력자로서는 바울의 협력자였던 바나바를 들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먼저 사울이 회심하였어도 사람들이 그를 믿지 못했을 때 사울을 변호해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행9:27). 그리고 그는 안디옥에 보내져 바울과 함께 팀을 이루어 선교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서 위대한 선교사 바울을 보게 되지만, 사실을 그 배후에는 위대한 협력자 바나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는 바울보다 훨씬 먼저 주를 영접한 자이며, 바울에게 있어서는 신앙과 인생의 선배격입니다. 그러나 사역의 중심이 바울로 넘어가고 있는대도 불구하고 바울의 사역을 돕는 자로서만 비춰집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더 은사를 가지고 있는 바울을 앞으로 내세우고, 뒤에서 그를 돕는 이로 남고 있는 바나바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협력자로서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때 제2차 전도여행에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갈 것인가의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의 불화가 있기는 했지만(행15:37-38),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의 사역자로서 계속해서 선한 협력자로 남았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고전9:6, 갈2:1,9)
우리는 또 예수님의 전도사역에 많은 부인들이 함께 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도왔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눅8:1-3).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전도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면서 예수님과 그 일행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을 만큼 무명의 협력자들이었습니다.
2) 일본교회사에 있어서의 선교협력
일본 교회사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선교협력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거의 일본의 기독교에 무시해 왔으며, 그나마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인 목회자들은 공부를 목적으로하거나, 아니면 재일대한기독교단과 같은 곳에서 한인 목회에 종사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기독교회사에서 한국인이 협력사역을 시작한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활발한 협력을 해 왔던 것은 역시 미국입니다. 선교 초창기부터, 신학교와 미션스쿨 등을 세우고 교회를 개척해 왔던 것이 미국의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많은 것들을 다 이야기할 수 없으므로 제가 속해있는 교단에서 협력하고 있는 미국 선교사들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교단에서 협력하고 있는 미국의 교단은 OPC, CRC, PCUSA입니다. 이 중에서도 CRC의 선교협력은 아주 두드러집니다.
이들의 선교협력방법을 조금 소개하자면, 먼저 몇 명의 선교사들을 일본에 파송시켜 팀을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들의 백 그라운에는 선교사역에 쓰여질 번드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에 입국하여 약 2년동안 일본어를 공부한 후, 교회개척을 시작합니다. 거의 교회개척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번드를 사용하여 교회당을 먼저 짓고 시작합니다. 교회당이 지어지고 예배를 드릴 장소를 확보한 후에는, 제가 속한 개혁파교회의 목사를 협력목사로 청빙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목회는 일본인 목사가 하게끔 하지만, 위치는 협력목사이며 선교사는 그 교회의 관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모든 재정적인 후원은 선교부에서 나옵니다.
일본인 목사는 미국선교부의 제정적인 도움을 받으며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개척된 교회가 어느정도 자립을 할 수 있게 되면 미국선교부는 그 교회를 개혁파교단안으로 이관을 시킵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그 교회의 관리를 해제하고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이관된 교회는 재정적인 독립이 가능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당 건축비를 선교회에 갚아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회수되는 돈은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는데 사용되어집니다.
제가 속해있는 일본기독교 개혁파교회에 동부노회가 있습니다. 동경을 중심으로한 노회인데 모두 약 50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 중 거의 95%가 이 CRC선교부의 도움을 받아 개척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선교사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한국인의 선교협력
2 선교협력의 두 가지 방향
1) 간접적 선교협력
- 한인교회 목회
일본에서 사역하는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정확히 몆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생각으로는 90%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인교회목회라고 하면 거의 일본과의 선교협력이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서도 일본교회와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 째로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는 크리스찬으로써의 올바른 이미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이상한 사교집단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그 교회를 통해서 기독교의 이미지가 대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교회에 갈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됩니다.
둘 째는 교회 개척에 있어서의 페어 플레이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존에 있는 교회와 인접한 곳에 개척을 하지 않는다던지,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인접 교회의 목사님과 인사를 나눔으로 말미암아 친분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오사까나 동경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일본인 교회만이 아니라 한인교회끼리도 인접한 곳으로 개척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서로 협력하며 교제를 나누고, 또 크리스마스 집회와 같은 큰 집회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세 째로 한인교회에 찾아오는 일본인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한인교회라고 할지라도 일본인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가 한국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인교회들이 이들을 위해서 동시통역등의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교회를 일본인 교회로 옮기게될 때의 절차입니다. 대부분의 일본교회는 교회를 옮기게 될 때, 이전 교회의 목사가 옮긴 교회로 교적을 보냅니다. 그러므로 거의 일본교회는 이중 교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한인교회에서 옮겨온 분이 교적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일본교회에서 영원히 그 교회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옮겨간 사람의 교적을 반드시 보내주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 단립 일본인교회 목회
이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 가지 하나님의 섭리로 한국인 선교사가 일본인교회를 담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어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닌, 단립적인 일본인 목회입니다.
이 경우에는 일본인 목회를 하기는 하지만, 일본의 교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목회형식은 거의 한국식 목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이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것만 다르지 위의 한인목회와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경우의 선교협력은 위의 경우와 동일합니다. 단지 교인들이 일본인들이므로 다른 일본인 교회로 교회를 옮기는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교적을 송부하는 것과 특히 교인들이 다른 일본인 교회에서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게끔 배려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찬송가를 한국찬송가를 그대로 번역한 것을 사용한다면, 그들이 다른 일본인 교회로 옮겼을 때, 여러 가지 익숙치 않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일본인 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찬미가나 성가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요.
2) 직접적 선교협력
오늘 이야기의 중심 부분입니다. 아래의 세 가지 경우를 통해서 한국인 선교사가 일본교회와 직접적인 협력을 하고 있는데, 전체 선교사의 10%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일본인 교회의 선교동역자
세 가지의 경우중에도 가장 많이 있는 경우입니다. 최근 일본의 교회들은 한국교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들로부터 한국의 목회를 배우고 싶어하는 경향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런 사역을 계속해서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인이 일본인 교회에 선교사로 있는 것은 목회의 주체자로써가 아니라 협력자로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대로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일본인 목사의 목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름대로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본다든지, 아니면 일본인 목사에게 다른 방법 권유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될 수 있는 한 그들이 선교사를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이 요구하는 것만을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일본사람은 협력선교사라고 해서 쉽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제 이 사람이라면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일본인 목사의 목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대로 지켜 보고 있다가, 그 쪽에서 조언을 구할 때 그제서야 입을 여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어쩌면 일본인 목사가 당신에 대해서 질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선교협력을 그만두자고 통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인 교회안에서의 한국인 선교사의 선교협력은 한국인 목사와 일본인 목사가 가장 밀접하게 관계를 같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경우에는 적극적인 협조를 구할 수 있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교회와 목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입은 치명적인 상처는 그 교회뿐만 아니라 교단 전체적으로 한국인 선교사에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이후에 그 교단을 통해서 한국인 선교사가 선교협력을 하기에는 무척 어려워 집니다.
- 일본교단내의 한인목회
이 경우의 대부분의 앞의 경우를 거친 단계입니다. 단계적으로 말하면 일본교회의 한국인 선교사로 있다가, 그 교회내에서 한국어 예배를 시작하고, 그것이 성장해서 하나의 한인교회를 형성하는 것이 전형적이라고 봅니다.
이 경우에는 비록 한인목회를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일본의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일본교회와 적지 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단의 연합회적인 행사뿐만이 아니라 교단의 이미지를 위해서도 교단이 요구하는 것들을 감당해 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인교회를 개척한 후 일본의 교단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일본의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일본의 교단에 상회비를 계속해서 납부하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상회비는 교단 전체가 행하는 사역에 쓰여집니다. 예를들어 해외선교라든가, 개척전도와 같은 사역을 돕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단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의 교단에 소속된 교회라고 하는 것은 커다란 일본교회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구성원이 한국인이지만 일본인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 교회의 성숙도, 성장, 그리고 교단적 행사의 참여도 등을 통해서 다른 교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고, 교회가 계속 성장해 나간다면 교단안에서 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고, 같은 교단의 교회이므로 안심하고 여러 가지 교류를 할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심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일본교단내의 일본인목회
이 경우는 이제까지는 아주 드문 경우였지만, 앞으로 계속 활성화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경우는 일본인 교회 그대로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단지 다르다고 한다면 목회자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점입니다.
대개 이 경우에는 일본의 교단이 운영하거나 인준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곳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사역하는 경우입니다. 바로 제가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오사까의 니시노미야의 강일성 선교사님이나 동경의 노준환 선교사님, 삿뽀로의 박영기 선교사님등이 바로 이 경우에 속합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공통점은 한국적인 모습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어실력도 상당히 갖추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문화와 생활등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일본인 교회와 다를 바 없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시 한국의 신앙토양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므로 한국적인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들어나지 않습니다. 아니 들어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일본인 목사와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 목회자를 둔 일본인 교회의 다른 모습입니다.
이 경우에는 일본의 교단이 거의 경계를 하지 않습니다. 또 한국인이라는 이질적 감정도 거의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역자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것과 더불어 한국인으로서 일본 속에 이렇게 녹아져 있다는 것에 저들은 많은 관심을 표명합니다.
3 선교협력에 있어서의 주의점
- 나를 아는 것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 은사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파악했다고 한다면,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보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일본어 실력이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모든 일보다도 일본어를 습득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미국선교사들은 한국에 와서 2년간을 어학 습득기간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한국 선교사들은 입국후 바로 시작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언어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습득에 집중하는 것이 쓸데없는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또 자신이 일본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면서 일본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는 것도 버려야합니다. 지금 자신은 일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 대해서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꼭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어느 정도 일본에 대해서 알아갔을 때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생각되어질 것입니다.
어쨌든 먼저 자신을 알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내어놓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 일본, 일본인을 아는 것
일본인을 충분히 아는 것 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일본인도 서로를 잘 모른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일본인은 알다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충분히 알고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일본사람은 감정표현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아주 재미있어하던지, 아니면 너무 슬프거나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한국인과 같은 모습을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일본인들은 감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눈에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보다 더 감동하고 감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일본인들과 접촉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로 한인목회를 할 경우에는 일본인과 접촉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대로 많이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아르바이트나 학교, 모임 등을 통해서 일본인들을 많이 접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될 수 있는대로 그들이 마음편히 자신을 열어 놓을 수 있게끔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목회자가 겪는 딜레마중의 하나는 미신자를 별로 상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의 사람이외에도 우리는 많은 교회 밖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그 기회를 잘 이용하고 있는가에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을 조금씩 알면 알수록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고,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특히 일본인 교회에서 협력하는 사역자에게는 일본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한국사람들이 최고로 좋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협력은 오래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 예의와 겸손, 인내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예부터 전해졌지만, 제 생각으로는 한국인은 일본인들에게 예의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교역자들의 예의는 참 한심하다고 생각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선교사로 있다가보면 많은 일들을 당하게 되는데, 한국의 교역자들에게서 당하는 일들처럼 어처구니없는 경우 없습니다. 예를들어 시간이나 계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또 그렇게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나 대처방안에도 많은 불만이 있습니다.
또 선교후보생들로써 많은 문의나 도움을 구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전자메일이 발달되어 전자메일로 여러 가지 소식이 들어오는데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힘 닿는데까지 도우려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그 쪽에서는 좀 도움이 못 될 것 같다는 생각이들면 인사도 없이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일본사람들을 대하게 되면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위선적인 모습에 시험이 들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의, 예절, 그리고 윤리의식이 좀더 확고해야할 것입니다. 인원은 많고, 차가 부족하다고 해서, 않된다는 것을 억지로 인원초과까지 하면서 사람을 태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또 복음을 위해서는 모든 희생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기본적인 예의범절과 상식을 떠난 행동을 해서는 절대로 온전한 선교사가 될 수 없으며, 온전한 선교협력이 이루지지 않을 것입니다.
- 주체성 固守
일본인 속에서만 협력사역을 하는 선교사에게는 이 주체성을 고수하는 모습이 꼭 필요합니다. 일본인들 속에서 사역을 하다가 보면 어느새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능수 능란해지고, 머릿속의 생각도 일본어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습관이나 생각하는 것, 영적생활 모든 것이 일본사람들과 동일시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화되어가는 것을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영적 열정이 식어져서는 않됩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일본인 목사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적인 지식입니까? 아니면 교리입니까? 설교를 더 잘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인 선교사가 일본인 목사에게 없는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설교의 내용은 그렇게 알찬 것 같지는 않은데, 왠지 들어보면 확신이 가고, 기쁨이 있고 힘이 솟고, 용기를 주는 그래서 그 설교로 인해서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마음이 넘쳐흐르게 하는 능력이 한국인 선교사들에게 있습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모든 것이 다 일본인화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만큼은 일본인화 되어서는 않됩니다.
만약 그것까지도 일본인화 된다면 한국인 선교사를 특별히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언어가 충분히 통하는 자국의 목사들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인으로써의 영적 주체성을 꼭 고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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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