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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글은 각각 본원에서 발간한 아비담마 길라잡이(상/하)의 발간사와 청정도론의 발간사인데 역경불사에 임하는 초기불전연구원의 입장을 잘 담고 있어서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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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마 길라잡이 발간사
‘빠알리 삼장의 한글 완역’을 근본 설립취지로 하여 초기불전 연구원이 이제 돛을 달았다. 순풍이 불던 역풍이 불던 저언덕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저언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항해도가 있어야한다. 그 항해도로 초기불전 연구원에서는 위숫디막가(청정도론)와 아비담맛타 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를 택했다.
이 둘을 항해도로 하여 빠알리 삼장은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 휩쓸려들지 않고 이 시대까지 순조롭게 전승되어왔기 때문이다. 초기불전 연구원에서는 이 두 책을 먼저 출간하고 난 후에 빠알리 삼장을 계획대로 한 권, 한 권 출간해나갈 것이다. 이미 장부 중부 상응부를 위시한 경장의 많은 부분은 기초 번역이 끝난 상태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아비담마나 아비담마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남방 상좌부의 주석서(Atthakatha)들만이 초기불전을 이해하는 유일한 체계라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남방의 의식이 있는 스님들조차도 아비담마를 부처님 직설이라고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분들은 아비담마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심도깊이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집대성한 가르침이라고 자랑한다. 그리고 그런 아비담마를 몇 천년 전승해온 자기 전통에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아비담마는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진지한 체계이다. 초기불전 연구원은 초기불전을 대하면서 먼저 이런 전통적인 견해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받아들이자는 입장이다. 전통적인 견해에 철저할 때 초기불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 깊어지고 더 체계적이게 된다고 믿는다. 그 후 비판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비판할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초기불전을 이해하려드는 것은 부처님께서 경계하신 ‘경국지색(janapadakalyani)의 비유(D9/i.193; M79/ii.33)’처럼 환상에 사로잡혀 바른 방법(naya)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초기불전 연구원은 거룩하신 부처님 말씀을 국역하는 가장 의미있는 불사를 진행하면서 이런 것을 경계할 것이다.
아울러 초기불전 연구원에서는 시간이 주어지고 역량이 갖추어지면 반야, 중관, 유식, 구사 등을 포함하는 산스끄리뜨 불전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며 그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저 바닷물이 온통 짠맛이듯 불법대해는 그것이 북전이든 남전이든 모두 열반을 향하는 것으로(nibbananinna) 일미평등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불교의 전개를 이해하는 중요 문헌인 베다, 우빠니샤드, 바가왓기따, 육파철학의 수뜨라들, 자이나의 중요 경전들 등 인도의 여러 고전들도 여력이 생기는 대로 번역하고 불교의 입장에서 해설과 비판을 해나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코 부처님의 가피가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부디 제불 보살님들과 호법선신들의 가피력이 초기불전 연구원에 함께 하시어 부처님 법이 이 시대, 이 땅에 바르게 유통이 되고 다음 세대로 면면히 전승되기를 기원한다.
Ciram titthatu lokasmim sammasambuddhasasanam.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머물기를!)
불기 2546(2002)년 10월
초기불전 연구원 합장
청정도론 발간사
‘빠알리 삼장의 한글 완역’을 근본 설립취지로 하여 <초기불전연구원>이 개원한지도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제 드디어『청정도론』을 완역하여 출간하게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경이롭고(acchariya) 경사스러운(abbhūta) 사건이다.『청정도론』은 빠알리 삼장을 이해하는 나침반이요, 이제 드디어 우리는 빠알리 삼장의 한글 완역을 위한 나침반을 얻었기 때문이다.
빠알리 삼장을 제대로 역출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비해야 할 기본 장비들이 있다.
첫째는 언어학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 매개 언어인 빠알리어에 정통해야 한다. 빠알리어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빠알리 문법과 어휘와 구문에 정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빠알리어의 언어적 기반인 베다어와 쁘라끄리뜨어(방언)를 포함한 인도 고대어 즉 산스끄리뜨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충분한 소양이 있어야 한다. 이들을 바탕으로 정확한 독해력을 완비하여야 한다.
둘째는 경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빠알리어에 능통하다해도 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경에서 설하는 금구성언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그러면 경에 대한 안목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도대체 어떤 것을 두고 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 할 것인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고뇌를 바탕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아비담마의 역사이고 이런 아비담마의 체계를 통해서 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해 온 것이 주석서(Aṭṭhakathā)들이다. 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그러므로 아비담마와 이에 바탕한 주석서들을 정확하게 섭렵하는 것에서 출발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자신의 반딧불만큼도 못한 알량한 이해를 가지고 광휘로운 태양과 같은 지혜라고 우기며 금구성언을 자기 깜냥으로 망쳐놓게 될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
셋째는 수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무리 언어학적 소양과 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추었다하더라도 이것을 지금 여기 내 삶에서 적용시켜 해탈열반을 실현하리라는 근본적인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 한 삼장을 통해서 전승되어온 부처님의 메시지는 바르게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
<초기불전연구원>의 소임자들은 이러한 세 가지를 구비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래서 인도유학시절에는 산스끄리뜨 공부에 열중하여 베다와 6파철학과 문법과 냐야(인명)를 공부하였으며 스리랑카와 미얀마에서는 아비담마를 공부하였고 틈틈이 위빳사나 센터에서 정진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 셋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것을 생명으로 하여 금구성언을 하나하나 한글로 옮길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필수장비를 두루 갖추기 위해서 삼장을 본격적으로 역출하기 전에 빠알리 삼장 이해의 완벽한 지침서인『청정도론』을 먼저 출간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청정도론』에는 빠알리 삼장에서 나타나는 거의 대부분의 단어와 술어들이 집약되어 있다. 빠알리 사전들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대략 1만 3천개 정도라면『청정도론』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대략 1만 1천개 정도이다.『청정도론』은 수많은 합성어를 쏟아내며 삼장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어려운 문장들의 연속이다. 어느 하나 수월한 문장이 없다.『청정도론』의 원문을 제대로 읽어내어야만 빠알리에 대한 언어학적 소양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는 것이 상좌부 교단의 정설이다. 이제 본원에서는『청정도론』역출을 계기로 거의 대부분의 빠알리 어휘와 술어들을 통일적으로 이해하고 정착하게 되었으며 조만간 이를 책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둘째,『청정도론』은 빠알리 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노둣돌이다. 그러므로 붓다고사 스님은 다른 여러 주석서들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 있게 밝히고 있다.(본서의 해제를 참조할 것)
모든 초월지들과 통찰지[慧]의 정의를 내리는 것과
무더기[蘊]․요소[界]․감각장소[處]․기능[根]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諦]와 여러 조건[緣=緣起]의 가르침과
극히 청정하고 능숙한 방법과 경전을 벗어나지 않은 도(道)와
위빳사나 수행 ― 이 모든 것은
내가 지은『청정도론』에서 아주 청정하게 [설명되었다]
…
『청정도론』은 네 가지 전승된 가르침[四阿含]들의
중앙에 서서 거기서 말씀하신 뜻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청정도론』을 읽어내지 못하면서 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셋째,『청정도론』은 계․정․혜라는 불교수행의 세 버팀목과 칠청정이라는 불교수행의 일곱 절차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특히 18장에서 22장까지에서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는 다섯 가지 청정은 통찰지 수행의 핵심을 이룬다. 이것은 순간(18장)과 조건(연기, 19장)을 철저하게 봐서 모든 경계에 속지 않고(20장) 지혜를 완성하여(21장) 구극의 청정인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자의 경지로 인도하는(22장) 청정한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청정도론』이라 부르고 있으며 불교수행에 있어서 만대의 표준을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청정도론』의 번역은 빠알리 역출자가 갖추어야할 위의 삼대요소를 충족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다.
이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청정도론』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상좌부 불교의 부동의 준거를 마침내 제대로 소개하게 되었다는 자부심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본서로 인해 <초기불전연구원>이 빠알리 삼장의 완역 불사를 감당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증거가 되리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스스로 찾는다. 물론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을 것이다. 강호제현들께서 검증해주시기를 기대한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역경불사의 돛을 단지 1년 6개월 만에 상좌부 아비담마의 핵심인『아비담맛타 상가하』를 번역하고 상세한 주해를 하여서『아비담마 길라잡이』(상/하)로 출간하였고, 초기불교의 3대 수행지침서인「긴 염처경」,「출입식념경」,「염신경」과 그 주석서들을 옮긴『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와『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도 이미 출간하여 수행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아비담맛타 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 역출을 바탕으로 하여 이제『청정도론』을 완역해내면서 역경불사를 위한 토대가 제대로 다져졌다고 자평한다.
마음챙김(sati)을 토대로 불교수행법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아비담맛타상가하』와『청정도론』를 항해도로 하여 빠알리 삼장이 순조롭게 우리들에게까지 전승되어왔듯이 본원도 이들을 의지하여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빠알리 삼장 역경불사 3차 5개년 계획을 하나하나 실현해갈 것이다. 차질 없이 빠알리 삼장을 모두 완역하여 삼보님전에 헌정할 것을 거듭 다짐해본다.
이러한 불사는 부처님의 가피가 없이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부디 제불보살님들과 호법선신들의 가피력이 <초기불전연구원>에 함께 하시어 본원의 역경불사가 장애 없이 성취되게 하소서!
Ciram* tit*t*hatu lokasmim* sammāsambuddhasāsanam*.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