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 현(玄)할아버지
향공진사 정조호장(鄕貢進士 正朝戶長)
시조(始祖) 현(玄)할아버지는 단양에 정착, 세거(世居)하면서 정조(正朝)에 이어 호장(戶長)을 지내고, 사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추증(追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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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世居: 한 고장에서 대대로 살고 있음)
정조(正朝: 향직의 7품 벼슬)
호장(戶長: 지방관제가 없었던 때 향직(鄕職)의 우두머리로서 지방자치의 임을 맡았던 향직)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고려 때 문하부(門下部)의 정2품)
추증(追贈: 국가유공자의 사후에 추서 되는 직위)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호장은 지금의 군수입니다.. 중앙집권적 시대였기 때문에 호장은 고려 초기 전통적인 귀족 가문외에 맡는 것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잘보았읍니다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시조 우리할아버지가 단양에서 사신게 서기 몇년쯤인가요? 고려 몇대조 왕때 계신 분인가해서요.
정확한 연대는 자료부족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래글에서 보듯이 장절공 신숭겸(평산신씨 시조) 장군님이 현할아버님의 장인이시고, 태조 왕건(?)시대인 고려초 중국에서 사신으로 오셨다니 대략 930~940년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927년(태조 10)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공산(公山:지금의 경북 달성군 팔공산) 동수(桐藪)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대장군으로 군사를 이끌고 참여했다. 견훤의 군대가 태조를 포위하여 형세가 매우 위급해지자, 원보 김락(金樂)과 더불어 싸우다가 전사했으며 그 덕분에 태조는 간신히 피신했다. 태조는 그의 동생 능길(能吉), 아들 보를 원윤(元尹)으로 등용하고 지묘사(智妙寺)를 창건하여 그의 명복을 빌게 했다.]
일부 족보나 서적에 나와있긴 하지만 증거가 될만한 자료는 아니라 판단하고 있습니다.(단양우씨대종회)
무튼 자생설이든 동래설이든 자료를 확보하는데 주력을 해야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ㅡ고맙습니다ㅡ
시조할아버지 잘 열거하였습니다.
첨언을 드리자면 향진공사(향링서 뽑은 진사) 호장(지금의 면장) 문화시중 평장사(지금의 국무총리)로 표시가 현실감 있어보이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시조 현할아버님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요?
단양 적성면 애곡리 금수산 아래 있다 했으나 실전하고 현재는 시중공 중대할아버지 묘 우측편에 제단으로 설단수비하여 제향을 피워오고 있습니다
@단양우씨™ 감사합니다
참배하고싶은데 "애곡리 금수산아래"로는 찿아갈수가 없을듯합니다
찿아갈수있는 구체적 정보가 없을까요?
감사합니다
일단 단양우씨 재실인 희역당을 찾아가세요.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469-3
2번 시조 이하 5세 제단
3번 시중공 중대할아버지 묘
순서로 찾아가세요
감사합니다
날 좀 풀리면 꼭 찿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