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양옆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석물 한 쌍은 흔히 해태라고 불리는 해치상이다.
해치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석공 이세욱의 솜씨로 탄생한 것이다.
원래 놓였던 자리는광화문 앞 80m -90m 지점,당시의 사헌부 앞,
오늘날의 정부종합청사 정문 근처와 길 건너 맞은편이었다.
나라를 잃은 오욕의 역사에 상처 입지 않은 것이 무었이 있을까마는 석물인 해치상도 지금
자리에 남아 있기까지 순탄치 않은 길을 거처왔다.
1923년10월, 총독부 건물의 외형이 갖추어지면서 해치상은 어느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는데,
1925년에야 사라진 해치상이 총독부 청사 서편 담장 밑에 방치되었음이 밝혀졌다.
해치상은 총독부 건물 완공 후 다시 청사 앞으로 옮겨졌으며 해방 후 광화문이 복원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다.
해치는 중국의 요임금시대에 세상에 나타났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논형(論衡) 시응(是應)편에는 해치가 뿔이 하나밖에 없으며
죄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고 하였다.
궁궐 앞에 해치상을 세우는 까닭은 궁궐을 출입하는 관료들에게 경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의미와
시비곡직을 가려내는 사법기관인 사헌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사헌부의 수장인 大司憲의 흉배
문양이 해태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관악산의 강한 화기를 누르려는 의도로 세운 것이라는 주장은 실제 해치상을 만들어 세운 뜻과는 상관이 없다.해치상 옆에는 노돗돌이 놓여 있는데, 이는 궁궐 영역을 표시해 주던 것으로, 그 지점에서는 모두 가마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무언의 명령을 담고 있다.
광화문 앞의 해치상에는 우리의 미감이 모자람 없이 넉넉히 담겨 있다.덩치는 크지만 사납기 보다는 어수룩해 보이고, 날카롭기 보다는 둥굴둥굴하여 어딘가 모르게 여유로움이 감돈다.
참고문헌 : 답사여행의 길잡이 서울편
첫댓글 궁궐 앞에 해치상을 세우는 까닭은 궁궐을 출입하는 관료들에게 경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의미와 시비곡직을 가려내는 사법기관인 사헌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사헌부의 수장인 大司憲의 흉배 문양이 해태인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잘 배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