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본문 : 시편 34 :1-10
1 내가 주님을 늘 찬양할 것이니, 주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내 입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2 나 오직 주님만을 자랑할 것이니, 비천한 사람들아, 듣고서 기뻐하여라.
3 나와 함께 주님을 높이자. 모두 함께 그 이름을 기리자.
4 내가 주님을 애써 찾았더니, 주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그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
5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네 얼굴에 빛이 나고,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6 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들으시고, 온갖 재난에서 구원해 주셨다.
7 주의 천사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져 주신다.
8 너희는 주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
9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그를 경외하여라. 그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10 젊은 사자들은 먹이를 잃고 굶주릴 수 있으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어 아무런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묵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물론 많은 돈이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특권을 누리며 ‘댓가’를 치르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백성들은 무엇을 얻고자 하면 그것에 대한 댓가를 꼭 치루어야 합니다. 자신의 필요한 것을 얻으려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돈이든, 시간이든, 노동을 꼭 지불해야 가능합니다.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공짜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다른 모습으로 댓가를 지불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들 중 아주 소중한 것들,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은 우리가 어떤 ‘댓가’를 지불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햇빛, 공기, 사랑, 신뢰 등등,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들이지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이와같은 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귀한 것일수록 더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하고, 더 많은 댓가를 지불할수록 더 귀한 것이라는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것이 다 어떤 댓가도 없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보니 우리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니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8-9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우리의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세상적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말씀입니다.
‘피난처’로 삼았으면, 피난처로 삼은 것에 대한 응당한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또한 ‘경외한다면’ 그에 걸맞는 공양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에 대한 어떠한 댓가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더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를 피난처로 삼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나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무서운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피난처로 삼으려고 하면 당연히 그 사람이 ‘피난처’를 필요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은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힘있고, 권력 있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피난처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 사랑하다보니 상처가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 실패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피난처’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삶은 주님의 속성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결코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을 획득하는 삶이 아니라 반대로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며 협력하는 삶,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삶을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복을 주시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보니, 또는 누리고 있다 보니 주님을 도구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않은지 우리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을 위해 더 갖고, 누리기 위해 또는 유지하기 위해 주님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온전히 믿기 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또는 욕망하는 것을 피난처로 삼거나 경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누가복음 6:2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연 나에게 도피처는 주님이신지, 나는 주님이 아니라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경외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게 되는 아침입니다.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우리의 도피처로 삼으며, 주님만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모아 기도합니다.
기도
주님, 주님만이 나의 도피처요, 내가 경외하는 분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