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26일) 밤, 대한민국 해군 천안함이 백령도 근해에서 침몰 중이라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상황을 뉴스를 통해 지켜보느라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고 박동혁 병장의 부모가 살고 있는 강원도 홍천으로 향했다.
그동안 우사(牛舍) 안에 컨테이너 박스를 들여놓고 그 속에서 생활해오다 마침내 집을 지어 참수리 357정 유가족들과 ‘제2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 관계자들을 초대한 경사스러운 일,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집들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참사 때문에 마음이 어두웠다.
도착하니 고 윤영하 소령 부모님과 고 서후원 중사 부모님을 비롯해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 김상길 본부장님 가족, 용사여 일어나라님, 이학철님, 류미화 시인님 그리고 강한해군님이 가족들과 함께 와 계셨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일과 우사(牛舍)대신 아담한 단층집을 보는 두 가지 기쁨이 있었지만 그도 잠시였다. 우리는 줄 곳 천안함 이야기로 안타까워했다.
천안함은 고 박동혁 병장이 해군에 입대해 1년 넘게 근무한 군함이었다. 고 박동혁 병장 부친이신 박남준님은 천안함 함상에서 찍은 아들의 사진을 보고 ‘우리처럼 눈물 쏟는 부모가 생겨서는 안 되는데….’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우리는 집들이 축하를 잊은 채 천안함 구조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실종자 명단에 박경수 중사 이름이 올라왔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제2해전 참전용사로 빗발치는 북한군의 포탄 속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또 이런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그만큼 안타까움도 컸다.
“지난 번 진해 해군기지에서 전사자 흉상 제막식 할 때 경수를 그때 봤어요. 나를 보고 죄송하다는 말만 했는데…. 실종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요. 어린 남매와 아내가 불쌍해서라도 살아 와야 할 거인데….”
고 박동혁 병장 모친이신 이경진 여사는 그렇게 말하다 끝내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는 경사스러운 일로 갔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나는 산우들과 어울려 산행에 나섰다. 힘겹게 능선을 오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최 작가님이시죠? KBS 000입니다.”
지난해 필자 소설 “연평해전”일로 방송했을 때 안면을 텄던 여자였다. 직감적으로 천안함 때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 오랜만입니다. 어쩐 일이세요?”
“네. 천안함 일로 인터뷰 할 수 있는지 여쭈어 볼려구요.”
“전 지금 산행 중이라서 오늘 힘들 것 같습니다.”
“어딘데요?”
“충청도입니다.”
“언제 올라오세요?”
“아무래도 저녁 9시는 되어야 겠는데요.”
“아, 너무 늦는데….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0여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최 작가님. 다시 전화 드렸습니다.”
“네.”
“혹시, 전화 인터뷰는 가능하겠습니까?”
“일행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잠깐도 안 될까요?”
“단체산행이라는 게 혼자 뒤처지고 그러면 안 되거든요.”
“정상에 도착하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겠지만….”
“그럼 정상엔 언제 도착합니까?
“그게, 아마…. 2시 반쯤이나….”
“아, 그렇게 늦게는 곤란한데요. 그전에 어떻게 안 될까요?”
“저 때문에 일행들의 등반시간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할 수 없군요. 2시 반엔 꼭 가능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PD님 대기하고, 녹음장치 준비해 두고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김성찬 해군참모총장과 김동식 해군2함대사령관 얼굴이 떠올랐다. 김성찬 제독은 해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한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이런 엄청난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필자가 그에게 참모총장 영전 축전을 보낸 것이 엊그제였다.
그리고 김동식 해군2함대사령관 취임식 때 참석했던 기억도 떠오르면서 지금 그들도 얼마나 안타깝고 힘들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2시 반이 다되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최 작가님. 준비되셨습니까?”
“저, 10분만 있다가 전화하겠습니다.”
나는 상대방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수신 상태도 안 좋고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곧 적당한 장소를 찾아 전화연결을 했다. ‘준비됐습니까.’라는 소리에 이어 방송 음악이 흘러나오고 PD의 사인이 들어왔다. 진행자가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는 3가지의 개연성을 두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번째, 기뢰에 의한 폭발이었다.
기뢰는 접촉기뢰, 자기기뢰, 음향기뢰가 있으며 각 기뢰마다의 특성을 설명했고 천안함의 함미가 폭발한 것으로 보아 음향기뢰일 가능성은 희박하고 접촉기뢰나 자기기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군이 기뢰를 부설했다면 어떤 방법으로 했을 것이라는 기뢰부설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을 했다.
두 번째, 어뢰공격 가능성이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어뢰정의 행동반경범위와 사건발생 시간이 야간이라는 점을 들어 어뢰정일 가능성은 없으며, 반잠수정이 미리 침투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어뢰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세 번째, 자체 폭발가능성이었다.
나는 천안함 구조를 설명하고 함미 포 밑에 있는 탄약고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을 설명했다. 진행자는 특히 그 부분에 자세히 물었다. 나는 포탄의 특성과 탄약관리방법 등을 설명하고 천안함 폭발부분의 철판이 안으로 굽어졌다면 외부 공격일 것이고, 밖으로 굽었다면 내부 폭발이므로 그것을 확인하기 전엔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질문에 답하고 끝났다.
방송을 마치고 나서 박경수 중사의 얼굴이 또 떠올랐다. 필자가 소설 “연평해전”을 집필하기 위해 취재할 때 처음 만난 후 가끔 얼굴을 보아왔었다. ‘지난 번 진해 해군기지에서 전사자 흉상 제막식 할 때 경수를 그때 봤어요. 나를 보고 죄송하다는 말만 했는데…. 실종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요. 어린 남매와 아내가 불쌍해서라도 살아 와야 할 거인데….’라며 펑펑 울던 이경진 여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려 또 가슴이 먹먹했다.
필자가 해군제복을 입고 오랫동안 근무했던 서해, 요즘 그 서해를 생각하면 이처럼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들뿐이다.
나는 내일 아침 배편으로 백령도로 향할 생각이다. 내가 가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처럼 먹먹해진 마음을 스스로 이겨낼 자신이 없어 가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겠다.
하늘이…, 제발 그 하늘이 도와서 박경수 중사와 그의 전우들이 무사히 구조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게 빌어본다.
“하늘이시여. 그들이,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의 가정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주소서. 하늘이시여!”
박경수 중사, 오른쪽에서 두 번째.
첫댓글 귀한 글 잘읽었습니다. 글을 죽~~~읽다보니 박 경수 중사님에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집니다. 백령도로 가시는군요. 저도 마음은 하루종일 백령도에 있답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몇일째 뉴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백령도 험한 뱃길 북녁군인들 심술없이 편히 다녀 오시길 빕니다. 출렁이는 탁한 바닷물 뒤집어 쓰듯이 더 큰 작가로서의 책임감만 어께에 잔뜩 짊어 지고 올 숙명인지도 모르겠지요. 절망보다는 희망으로피는 바다 고운 빛깔로 열매되어 내일의 교훈이 되는 오늘의 고통이길 소원 합니다. 다시 백령도로 발길 돌리는 그 심정 오죽하련만 웬지 제맘도 편치는 못합니다. 허리띠 꼭 조여 메세요
작가님 글을 보니 가슴이 더 먹먹해지네요...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수 없어서 ...더 아픈 마음 안고 다녀오셨겠군요...
정확한 날자는 모르겠지만 몇주 전에 북한측에서 [엄청난 일이 생길것]이라고 예고한 내용을 방송에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번 천안함 사건과 관련이 있지 않은지 검토하여 볼것을 제안합니다.
가슴으로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