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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도전하는 삶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도전하는 사람은 눈을 밟아 길을 만들지만 도전이 두려운 사람은 그 눈이 녹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KDMB 방송 본부장, 김갑동입니다.
우리주변의 성공이야기를 전해드리고 그 감동과 희망을 함께 나눌 ‘김갑동의 성공시대’. 오늘 성공시대의 주인공은 대한청년기마대 고성규 대장입니다. 우리민족의 전통문화인 마상무예의 뿌리를 찾아 그 맥을 이어가는 고성규 대장의 힘찬 인생이야기. 잠시 뒤에 함께하겠습니다.
CM
본부장
기마민족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마상무예의 맥을 잇고 있는 대한청년기마대 고성규 대장님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대장님 안녕하십니까.
고성규 대장
네. 안녕하세요.
본부장
대장님이 직접 운영하고 계신 그 승마 체험시설인데요. 마굿간 입구에 들어서니까 당나귀가 저희를 맞이했습니다. 자연의 맛을 그래도 느낄 수 있어가지고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승마 체험장이 이 마굿간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하고 계신데 잠깐 마굿간 소개 좀 해주실까요.
고성규 대장
그 마굿간은 원래 승마장 규모나 승마장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제가 대한청년기마대라는 조직을 이끌어가고 있는데 대한청년기마대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제 길가에 있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가급적이면 말을 구경도 하고 또 말을 보면 타고 싶어 하는 게 우리 민족이다 보니까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개방을 해놓은 것이죠.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한국 전통 말 놀이터라고 보시면 간단히 설명이 되겠습니다.
본부장
한국 전통 말 놀이터. 이름이 좋습니다.
고성규 대장
승마 클럽 이렇게 되면 굉장히 일반사람들 하고는 거리감이 있고 그래서 마굿간이라고 했습니다.
본부장
마굿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말인 토종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우리 토종말하고 서양말하고 어떤 점이 다릅니까?
고성규 대장
많이 다릅니다. 일단을 크기부터 틀리고요. 체형도 틀리고 또 그리고 습성이라든가 기존에 말들이 갖고 있는 성질부터가 많이 틀립니다. 일단은 뭐 서양말을 우리 토종말보다 한 3배 크게는 한 4배정도까지 큰 말들이 있습니다. 근데 이제 지역적으로 볼 때 우리 토종말들은 산악이 많고 그렇다보니까 몸집이 큰말 보다는 작은 말들이 지구력도 좋고 내구성도 좋고 근성도 강하고 그래서 아마 우리 토양에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양말은 뭐 거의 사람 손에서 보호되다 시피 사양을 해야 되는데 우리말은 뭐 거친 환경에도 적응을 잘하고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동거동락을 하고 말의 생을 우리 민족한테 다 바쳤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첫 번째 이야기 : 말을 사랑한 남자 고성규, 그 시작을 듣는다.
본부장
말에 대한 애정이 대장님께서 굉장히 각별하신데 말과의 첫 만남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좀 듣고 싶습니다.
고성규 대장
말과의 첫 만남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는데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근데 고향이 강원도 영월이라는 곳인데 굉장히 30년, 40년 전에 오지였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말은 좋아했는데 소, 양, 염소, 돼지 이런 거는 볼 수 있었는데 정작 말은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너무 꿈속에 그림으로 그냥 보고만 있다가 초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저희 조부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제천이라는 곳에 가게 됐어요. 거기서 이제 벽돌 나르는, 마차를 끄는 말을 보고 하루 종일 따라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근데 그 당시에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말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동물 중에 가장 아름답고 곡선이 아주 부드럽고 그리고 걸음걸이가 굉장히 역동적이죠. 거기서 반해서 하루 종일 따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본부장
대장님께서 처음에는 일반 직장 생활을 하신 걸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말을 타시게 된 것이 언제 입니까?
고성규 대장
15년 정도 전에 90년대 초에.
본부장
뭐 가족들 오해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고성규 대장
아, 예. 사실은 그 말이 너무 좋아서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 기사를 보게 됐는데 이제는 승마도 대중 스포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나와서 그래서 제가 워낙 관심이 많으니까 찾아가봤어요. 가서봤더니 대중스포츠가 될 수 있는지 하고 물어봤더니 뭐 금액이라든가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 내 나름대로 형편이 되는 가 봤더니 저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먼데 저희 가족 몰래 비자금이라는 게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제가 아내 몰래 살금살금 배우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나중에 어느 날 갑자기 걸렸어요. 제가. 그래서 이실직고 해가지고 사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말을 배우게 됐다. 그랬더니 왜 얘기를 안했냐. 오해를 하고 있었다. 무슨 오해를 하고 있었냐고 그랬더니 요즘 바람을 피우는 줄 알고 오해를 했었다.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그랬더니 지금 제가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말을 타보시면 말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말이 태워주는 걸로만 알고 있거든요. 일반 사람들은. 사실 알고 보면 말을 타고 보면 굉장히 많이 체력소모가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워낙 말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말만 탄 게 아니라 거기서 허드렛일을 제가 자진해서 다했습니다. 뭐 마분도 치우고 말도 메주고 말도 닦아주고 목욕시켜주고 말들이 땀을 굉장히 많이 흘리기 때문에 수시로 목욕을 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말 관리 하는 것도 배우고 그러다보니까 집에 오면 굉장히 피곤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뭐 잠잘 땐 돌아서자고 앓는 소리도 나고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배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문적으로 타시다보면 엉치뼈 있는 데가 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제 속옷에 혈도 묻어있고 그러니까 상당한 오해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그 얘기를 하면서 뭐 제 아내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고 하겠지만 참 참을성이 나보다는 강하구나. 그 당시에 바로 요즘 시대말로 들이댈 수도 있었는데 참 잘 참아줬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워서 아 이젠 안 되겠다 싶어서 혼자 다니기에는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내를 살살 꼬셔서 승마장에 데리고 갔죠. 그래서 같이 배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 혼신의 힘으로 달려온 고성규, 그의 신념을 듣는다.
본부장
대장님께서 그 2002년도에 아주 큰 결심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취미가 아닌 생활로써 이 일을 택하셨는데, 그것이 계기가 됐습니까? 그 승마국토중단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성규 대장
네. 사실은 제가 이걸 직업으로 하려고 했던 적은 한번도 꿈에도 생각을 해본 적이 사실은 없었습니다. 워낙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쪽에 관심은 있었지만 저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2002년도에 우연한 기회에 서울 대학교 학생들이 우리 기마민족이니까 말의 해에 그 당시 월드컵도 치러지고 그랬는데 2002년도가 말의 해였습니다. 말의 해에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던 마정로를 통해서 국토종주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그때 기획을 했던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에 그 학생들을 말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또 학생들이다 보니까 자금력도 없고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승마장에 가서 배울 수 있는 능력들은 안 되니까 가르쳐주는 입장에서 갔다가 제가 학생들한테 결국은 엮였죠. 그래서 주말에만 훈련을 시켰는데 승마라는 것이, 말을 탄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뭐 지금까지 관광지에 가서 훈련된 말을 그냥 말을 관리하시는 분이 끌어만 주시니까 '아, 말이 이런가보다.'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말이란 동물은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수십 배 순발력도 좋고 민감하고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페이스대로 움직여서 핸들링을 해서 몰고 간다는 것은 상당한 오랜 시간의 숙련이 되고 배워야 되는데 그걸 단기간에 학생들이 젊은 패기에 뭐 몇 분 타보고 국토 종주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더라고요. 대형차들이 왔다 갔다 하는 대로에서 말을 타고 간다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주말만 해갖고는 안되겠다. 그래서 고민을 했죠. 다른 지도자를 찾으라고 해서 니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을 해야 되느냐 아니면 계속 내가 해야 되느냐. 그래서 했어요. 그래서 제 집사람한테 설득을 해서 이만저만해서 한번 어차피 내 인생에 한번이니까 꼭 해보고 싶다. 제 와이프가 아주 깊게 생각을 해보더니 그럼 한번 해보라고 그래서 제가 하던 일을 과감하게 그만뒀죠. 그런데 주위에서 사람들이 굉장히 비웃었어요. 저보고. 말을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자본들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분들이 꿈이 전국일주를 해보는 건데 돈이 없겠나, 능력이 없겠나. 당신이 나서가지고 될 것 같냐. 그건 실현 가능성이 1%도 안 된다. 그렇게 말렸죠. 근데 한번 도전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본부장
조금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만 말이 예민한 동물인데요. 국토종단을 하실때 어려움이 있으셨다고요.
고성규 대장
굉장히 많았습니다. 일단 그 훈련 과정에서 한 6개월 정도를 했는데 학생들이다 보니까 장비도 별로 좋지도 않고 승마 바지라던가 헬멧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니까 겨우 헬멧만 빌리고 청바지입고 면바지 입고 타다보니까 뭐 정말 유혈이 낭대 했죠. 엉덩이 까지고 그러다보니까 제가 민간요법으로 별걸 다해봤습니다. 기저귀 있죠? 그 대형. 그것도 채워보고요. 그랬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제가 유일하게 효과를 본 게 뭐냐면 소고기 있죠, 생고기. 그거를 얇게 썰어가지고 붙이고 자면 직빵으로 효과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이제 훈련 과정을 통해서 한 6개월 정도 해서 사실은 완벽하진 않지만 출발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임진각까지 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슬로건이 통일염원 승마국토종주 입니다. 제주도에서 임진각까지 제가 처음으로 했죠. 8월 1일 날 출발해서 8월 15일 광복절에 임진각에서 마친다는 생각으로 갔죠. 근데 다 준비를 해갖고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아 정말 지금 생각하면 정말 평생 한으로 남을 수 있는 불효를 저질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출발을 하려고 하는 찰나에 돌아가셨어요. 그래가지고 정말 다 포기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죠. 그래서 굉장히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일단은 뭔가 결론을 내줘야 되니까 그래서 학생들보고 다시 그랬죠. 그럼 출발을 하자. 일단은 너희들이 먼저 출발을 하고 나는 어머님 장례를 치르고 합류를 하마. 그래서 제주도로 저희 대원들을 출발을 시키고 저는 이제 어머니 임종을 뵈러갔어요. 평상시에 제가 어머님보고 저를 만약에 돌아가시게 되면 입버릇처럼 그 당시에는 농담이었는데 제가 막내거든요. 꼭 저를 보고 돌아가십쇼.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가 약속을 꼭 지키시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가서 어머니를 뵌 뒤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임종만 뵙고 상복을 싸들고 올라가서 제주도로 아이들을 출발을 시키고 저는 또 다시 내려가서 그냥 산소에 절만하고 바로 제가 출발을 했죠. 솔직히 한이죠. 굉장히 불효자식이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제가 제주도를 갔어요. 제주도에서 15일 걸려서 임진각에 도착을 했는데 그 오는 와중에 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죠. 워낙 피곤하다보니까 선두 말이, 선두에서 가던 우리 대원이 선두 말을 타면서 대부분 졸았어요. 그러니까 말이 그냥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산으로 올라가더라고요. 졸려가지고. 그러니까 뒤에 오던 친구들도 앞말만 따라가다 보니까 졸면서 오다보니까 선두 말 탔던 친구가 졸았던 거예요. 오다가 보니까 길을 옆으로 비켜서 산을 올라가고 있어서 제가 그 당시에 차도 두 대 옆에서 따라오고 있었는데 기겁을 하고 가서 말을 돌려서 다시 왔던 기억도 있고요. 대형사고가 한번 난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하늘로 솟는 일인데 김천쯤 왔는데 교대를 시키려고 대원들보고 정지해서 그 당시에는 편도 1차선이었어요. 그러니까 서로 교차로에 한차선이다보니까 반대편에서 차가 오고 있는 상황이었죠. 부슬비가 계속 오고 있었는데 그래서 말을 옆에 세우고 서로 교대를 하려고 바꿔 타기 위해서 교대를 하려고 말을 옆에 세우는 동시에 풀이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말이 배가 고프니까 풀을 뜯으려고 입을 풀에 딱 대는 순간 조그마한 개구리, 청개구리가 펄쩍 뛴 거예요. 그래가지고 말이 놀래가지고 반대차선으로 확 한마리가 뛰면 다 뛰거든요. 말은. 그러니까 선두마나 중간에 한마리가 놀라면 동시에 다 놀라는 것이 말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본성이에요. 예를 들어서 육식동물이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그러면 그중에서 가장 예민한 말이 그걸 알아차리고 튀면, 도망을 가게 되면 같이 다 따라가게 되죠. 근데 반대차선에서 오던 차와 부딪힌 거예요. 근데 다행히 그 오시던 분이 그 당시에 승합차를 몰고 있었는데 여자 분이었어요. 겁이 나니까 브레이크를 미리 밟았던 거예요. 만약에 남자분이 그냥 몰고 왔었다고 그러면 조금 더 속도를 냈다면 대형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다행히 브레이크를 미리 밟는 바람에 말 엉덩이에 차 앞 본 네트 부분이 부딪혔어요. 동시에 튀는 와중에 도망가는 와중에 엉덩이가 부딪히니까 말이 놀래가지고 뒷발로 차를 걷어차 가지고 운전석 유리창하고 옆에가 다 긁혔죠. 순간적으로 말이 뒷발질을 하면 몇 톤의 힘이 나옵니다. 말 뒤에는 편자라는 쇠도 박혀있고 그러다보니까 뭐 유리창이나 옆 부분이 다 망가지고 난리가 났었죠. 그래가지고 다행히 그분이 놀래기만 하고 다치진 않았어요. 그래가지고 오다가 너무 힘들었어요. 다행히 15일에 임진각에 도착을 해서 무사히 정말 잘 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임진각에서 막히고 못 갔죠. 정작 우리 국토의 반만 하고 못 한거죠. 결과적으로 보면.
본부장
사장님께서 그 우리나라 토종말 지킴이 역할을 하시면서요.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고 계신데 그게 마상무예입니까?
고성규 대장
네. 마상무예라는 말은 요즘에 우리가 조선 정조 대왕 때 무예도보통지라는 것이 그 당시에 만들어졌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가 워낙 왜침을 많이 받다보니까 우리도 이제 국력이 쇄진해 있으니까 병사들한테 이런 훈련을 시켜야겠다. 소위 요즘으로 말하면 군사교육을 시켜야겠다 싶어서 만들어진 것이 무예도보통지인데 무예도보통지 안에 마상무예라는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마상무예라는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저는 마상무예라는 것보다 근원의 뿌리가 사실은 기마부대라고 봅니다. 기마부대를 것은 기마민족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가장 기마문화가 번성했던 시기가 고구려였기 때문에 기마무예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뭐 이걸 원래 마상무예나 기마무예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 말을 타다가보니까 3학년인가 2학년인가 되는 학생이 말을 타면서 제가 이렇게 잡아주고 있는데 '아저씨, 우리 이순신장군이 이 말을 탔죠?' 그렇게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자세히는 모르니까 말도 멋있고 그러니까 '아마 그럴 걸?' 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자신 있게 맞아 이 말이야 이렇게 얘기는 못하고 '아마 이 말 일거야' 그 친구가 하는 얘기가 '아, 저도 이순신 장군님처럼 멋있죠?'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 정말 너도 이순신 장군님처럼 멋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확실하게 대답을 못해서 제 나름대로 한번 자료를 찾아봤더니 아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건 경주용 말이었어요. 서양말이었어요.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역사가 100년도 안되는 말들이었더라고요. 대단히 제가 실수를 한거 아닙니까. 그 어린아이한테. 아 이거 내가 잘못했구나 싶어서 그 아이오면 확실하게 얘기를 해주려고 우리 나름대로 문헌이라든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우리 전통 마상 문화가 나름대로 굉장히 뿌리 있고 세계적으로 문화의 가치성이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걸 대체적으로 다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자꾸 그쪽에 관심이 있어서 들여다보게 됐죠. 자료도 보게 됐고. 그러다보니까 안되겠다 싶어서 잘 알지는 못하고 그러다보니까 일단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 한 두 사람이라도 조금씩 알려야겠다, 얘기를 해야겠다. 그래서 앉으면 사람들한테 그런 얘기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혼자 이제 그 당시에 병장기가 없으니까 삽이라든가 곡괭이라든가 이런 거 돌려보고 말 옆에 가서 일부러 그렇게 놀래지 않게 시도도 해보고 그래서 전통의상도 아는 분한테 얻어서 1톤 화물차에 싣고 그래서 공연할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저희가 가서 하고 그랬죠.
본부장
대장님 실제로 많은 무상무예 시범도 하고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고성규 대장
네. 우리 전통 기마문화에서 파생되는 마상무예는요. 세계적인 문화 컨텐츠감입니다. 무슨 우리가 뭐 기마민족이었다고 말은 하지만 대단하게 세계적인 문화 컨텐츠감이 되겠느냐. 그거는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간단하게 요약해서 한 말씀만 드린다고 하면 세계적으로 말을 타고 호랑이를 사냥했다고 하는 민족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십쇼. 그거를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신화처럼 전해오는 게 아니고 고구려 벽화에 보면 무용총에 보면 호랑이를 잡는 게 반드시 나옵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민족도 말을 타고 호랑이를 잡았다고 기록으로 남겨놓은 민족이 있는지 반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 좋은 문화를 왜 우리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못 만들고 있는지 그게 저는 갑갑해요. 그러다보니까 울분에 못 이겨서 제가 이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조금 조금 조금 하다보니까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겁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요즘에 야부사매라고 해가지고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마 궁술이 있어요. 그거를 거의 뭐 세계적인 문화로 자기들은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컬 한거는요. 그분들이 입고 있는 복식이 우리 기마인물 토기 6세기에 발견된 경주에 가면 있습니다. 그거하고 똑같습니다. 거의 다 우리에게서 넘어간 거예요. 일본에도 보면 뭐 고구려 때 고구려 민족에게서 넘어간 사람들도 있고 가야에서 넘어간 사람들도 있고 백제에 넘어간 사람들도 있고 신라 사람들도 있고 다 그 지역적으로도 그런 부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것이 아닌 걸 가지고 수천 년 동안 잘 명맥을 유지해오면서 또 계속 발전시킬 수 있도록 밀어주고 그러다보니까 오늘날에 자기들의 문화로 만든 거죠. 그런데 이거를 정말 세계적인 문화 컨텐츠라는 것을 우리 문화에 관련 되 있는 분들이 모른다는 거죠. 빨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지 않으면 솔직히 뺏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본부장
대한청년기마대 대장님으로 계신데요. 앞으로 계획 좀 말씀해 주실까요.
고성규 대장
예. 저희 마굿간에 외국인들이 종종 오십니다. 특히나 뭐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이런 분들이 오시는데 자꾸 그분들이 오셔서 개인적으로 주문하시는 게 많아요. 마상무예를 좀 보여 달라고. 사실 이게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제가 한 두 분을 위해서 진짜 칼을 가지고 진검을 들고 올라가서 말을 타고 그러기에는 리허설도 없이 올라가기에는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게. 외국인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하는 경우가 있어요. 외국인들이 오시면 꼭 어쩔 수 없이 제가 해드립니다. 그분들이 하는 얘기가 왜 이걸 볼 수 있는 곳이 없냐고 해요. 당신들 이게 문화냐. 아니면 당신이 개인적으로 하는 거냐. 그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이거는 우리 수천 년 전에 기마문화였다. 그런 설명까지 저희가 해주죠. 그런데 왜 국가적으로 이게 문화적 컨텐츠가 없냐고 해요. 저희보고. 그래서 그거는 제가 대답할 문제는 아니고 굉장히 지금 아마 우리 국가에서도 나름대로 문화적 컨텐츠로 연구 중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제가 대답을 하고 말죠. 그래서 가급적이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근교나 서울 시내에 이런 기마무예, 기마문화를 외국인들이 볼 수 있는 곳이 마련이 되면 우리 후진 양성을 좀 하고 싶은 게 꿈이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의 과가 생겨서 우리 훌륭한 전통문화 유산을 잘 계속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훌륭한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게 제 바램이에요. 그래서 계기를 한번 마련해보고 싶은 게 저희 대한 청년기마대의 꿈이자 저의 꿈입니다.
본부장
가슴에 좀 많이 와 닿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정성스럽게 키워온 말, 그리고 소중하게 지켜온 전통문화. 그에게 이제 성공을 듣는다.
본부장
지금도 계속 우리 문화를 강조하고 계신데요. 이런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 걷고 계신 이 길이 후회는 안 되십니까?
고성규 대장
아, 인간인데 왜 후회가 안 되겠습니까. 근데 이제 제가 요즘에 소위 우리 문화라는 것을 제가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분들이 한결같이 얘기하시는 것이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민족들이 자기 언어가 없고 자기 문자가 없고 자기문화를 지키지 못하는 민족들이 많이 없어져가고 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면 많이 생기면 우리 문화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앞으로 각광을 받고 많은 세계인들한테 찬사를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본부장
그토록 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공. 과연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고성규 대장
굳이 성공이라는 얘기를 해야 된다고 그러면 앞으로 제가 평생 말하고 같이,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그리고 또 우리 기마문화를 이해하고 지켜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길 때 그게 아마 성공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소중함을 좀 나름대로 느낄 수 있는데 제가 도움이 된다면 그게 뭐 성공이라고 보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해봅니다.
본부장
우리 문화의 계승 그리고 우리 민족의 혼을 잇고자 하는 많은 연구와 활동을 대장님께서 하고 계신데 앞으로도 더 큰 뜻을 이루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고성규 대장
아, 고맙습니다.
본부장
오늘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성규 대장
고맙습니다.
클로징
네, 오늘 “김갑동의 성공시대” 에서는 대한청년기마대 고성규 대장과 함께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고 대장이 말하고자한 것은 우리문화의 소중함 이였습니다. 15년 동안 지켜온 그의 열정과 곧은 신념, 바로 문화의 미래를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찾아가는 “김갑동의 성공시대”. 청취자여러분 모두 성공의 주인공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갑동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