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삼국유사의 기이(紀異)는 기이(奇異)한-신이한 것으로 풀이하였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이번 <한맥 (韓脈) 삼국유사> 란 글을 쓰면서 기이의 기(紀)란 삼국사기의 신라와 고구려, 그리고 백제 본기(本紀)의 기(紀)로 보았다. 그러니까 삼국사기와 다른 점(異)을 적기 위하여 삼국유 사를 썼다고 본 것이다. 마침내 같고 다른 점을 하나로 맥을 이어보자는 것이다. 이제 이 책의 바탕글을 올리기로 한다.(정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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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紀異)가 신이(神異)인가
한 몸 되기의 꿈, 그게 일연(一然)이요, 홍익(弘益)에의 그리움이다. 홍익은 대안사서인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 부분에 나오는 삼국유사의 얼굴이다. 홍 익인간은 한민족과 온 인류가 꿈꾸는 사람의 모습이며 국제연합의 꿈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눈을 씻고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숭고한 화두임에 틀림없다. 가락국기도 마찬가지. 이것이 삼국사기의 지평이요, 한계인 것을. 둘이면서 둘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하나의 몸으로 보고 다가서야 할 것이다.
고기(古記)에 따른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분명 반 만 년의 길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 온 게 사실. 그렇다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아우르는 우리 역사의 맥을 이어야 옳지 아니한가. 이야기의 열쇠는 삼국유사의 기이(紀異)로부터 말미암는다. 흔히 기이란 단순 소박하게 신이(神異)한 것으로 풀이한다. 물론 그 속에는 신이한 속내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신이란 열쇠 말이 아니다. 삼국유사는 말 그대로 신라와 고구려, 그리고 백제의 본기(本紀)와 다른 점을 실어 놓은 것이다. 기이의 기(紀)란 삼국사기 본기의 기(紀)를 말한다. 삼국사기의 본기와 다른 속내가 있기에 별도로 삼국유사를 쓴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기이(紀異)편을 중심으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통섭할 수 있는 열쇠를 마련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삼국유사하면 그저 간단하게 신이한 역사서로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뿌리 깊은 샘물이 흐르게 물꼬를 터야 한다.
더러는 헛짓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여간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열고 이야기하면 단재(丹齋) 선생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같은, 그러면서도 보다 통합된 역사책으로 삼국유사를 꾸려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게 지은이가 걷고 싶은 삼국유사의 길이라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한 몸 된 역사의 맥을 이어 우리 역사의 올곧은 푯대를 세워야 한다. 여기 삼국유사의 숲속에 깃들이는 목숨들이 둥지를 트는 것을. 지속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우리들의 작업은 줄기차게 이어져 나아가야 한다. 이 글은 삼국유사 기이 부분 59항목의 밑그림을 재구성한다는 데 그 보람이 있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각 항목들을, 해당되는 삼국사기의 편목과 해당 시기와 대응하는 부분에 재구성하기로 한다. 삼국사기에 없는 부분은 시기의 전후를 살펴서 편년의 성격으로 엮어보기로 하였다. 더러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부분도 있음을 밝혀 둔다.
한편, 우리는 삼국유사의 고조선 단군제가 1,500년 동안 다스렸다는 사연과 부여와 고구려를 잇는, 이른바 ‘잃어버린 고리’를 이어 보자는 것이다. 고려 말엽 이암(李嵒)이 엮은 단군세기(檀君世紀)와 범장(范樟)이 엮은 북부여기(北夫餘紀)를 함께 넣어 그 세계를 이어보았다.
첫댓글 우리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우리에게 야사로만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기이편을 고리로 하여 사기와 유사, 이 둘을 연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시도라 생각합니다.
다르면서도 같은, 동전의 양면같은 이 크고도 원대한 시도가 통합된 역사서의 싹으로, 열매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