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펜싱의 역사
한국 사람으로 펜싱을 가장 먼저 익힌 사람은 1935년 당시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김창환(金昌煥) 등으로, 그는 메이지[明治]대학 재학시 주장선수로 활약했으며, 여러 시합에서 메이지대학을 우승으로 이끈 주전멤버였다. 그후 일제의 외래운동에 대한 기피증 또는 증오심 등이 작용하여 펜싱을 금지시킴으로써 국내 보급의 기회를 잃었다.
8·15광복 후인 1946년 4월, 김창환 등 4∼5명이 모여 고려펜싱구락부를 조직하여 펜싱보급에 나섰으나, 경제적 사정과 용구의 구입 등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였다. 1947년 11월 조선펜싱연맹을 조직하였으며, 이어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 체육부에 펜싱부를 두고 30명의 선수를 지도, 배출하였다.
같은해 YMCA 창립 46주년 기념행사에서 펜싱시범대회를 가져 많은 참관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56년 9월 KFA(Korea Fencing Association:대한펜싱협회)로 재조직을 단행하였고, 1958년 2월에는 한국체육관에 펜싱부를 두고 펜싱의 본격적인 보급과 양성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동호인 상호간의 알력과 대립 등으로 분파되어 1959년 2월에는 또 하나의 대한펜싱협회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그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1960년 1월, 전 임원이 무조건 통합을 전제로 협상에 성공함으로써 일단 표면상의 대립은 해소되었고, 1960년 8월 제17회 로마(Rome) 올림픽경기대회를 앞두고 FIE(Fe de ration Internationale d’Escrime:국제펜싱연맹) 총회에 참가하여 정식 회원국이 되어 비로소 국제무대 진출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1960년 12월 전국 남녀 개인 펜싱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61년 1월 28일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정식으로 가입하였고, 1962년 제43회 전국체육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7개 도에서 출전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1963년에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여러 차례의 경기를 가짐으로써 세계 무대에도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해마다 정기적으로 전국 단체 종별 선수권대회를 열기로 결정, 이 대회는 지금까지 KFA에서 가장 큰 대회로서 연중행사로 개최해 오고 있다. 1963년 10월에는 국제스포츠대회 연구조사원을 파견하였으며, 한국 최초로 전기심판기를 일본에서 도입하여 제2회 학생선수권대회를 전기심판기로 시행하였다.
1964년 제18회 도쿄 올림픽경기대회 때 처음으로 남자 3명, 여자 1명이 출전하여 비록 참패하였으나, 1967년 7월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 때는 김종규 코치 인솔로 남자 2명, 여자 2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모두 예선에서 탈락하였으나, 사브르 종목에서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성공적인 측면도 보였다.
1972년 8월 AFF(Asia Fencing Federation:아시아펜싱연맹)에 가입하였으며, 1974년 제7회 테헤란(Teheran) 아시아경기대회에서 5명이 출전하여, 플뢰레 단체전에서 북한과 중국을 누르고 은메달을 따는 데 성공하였다. 1978년 제8회 방콕(Bangkok)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일본과 중국을 누르고, 플뢰레 단체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냈으며, 그밖에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였다.
1979년 8월 한국 펜싱으로서는 처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Melbourne)에서 열린 세계펜싱선수권대회에 남자선수 6명이 출전, 플뢰레 종합 11위에 머물렀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여 아시아 정상을 차지하였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남자 플뢰레 단체전이 쿠바와 준결승에서 패하여 4위를 하였지만 세계 정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1994년 그리스 아테네(Athenae)에서 열린 세계펜싱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에페종목이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같은해 제22회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획득, 한국이 종합 2위하는 데 공헌하였다.
또한 2000년 제27회 시드니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남자개인 에페 종목의 이상기가 동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남자 플뢰레 종목에서 김영호가 금메달을 따냈다. 이로써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경기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한국 펜싱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여자 개인 플뢰레 종목의 남현희가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 여자 펜싱 역사상 첫 메달을 따냈다.
출처는 두산백과 입니다.
한국펜싱의 역사
출처: http://chikoko.tistory.com/82 [치코코와 나눔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