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조금만 있어도 산으로 갔다.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 부분에 승용차를 세우고 나무가 여기 저기 쓰러져 있는 숲에서 나는 톱질을 했다. 처음엔 작고 가느다란 나무를 줍고 다니었다. 불쏘시개 용도정도로 나무를 했지만 자꾸 톱질하는 재미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시작했다. 꽤 두꺼운 나무를 들어서 차가 있는 길까지 들고 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굴리기도 하다 마지막엔 밧줄로 묶어 끌어서 길까지 올렸다. 숲을 헤치고 다니다보면 가끔 나무에 찔리기도 하고 옮기던 나무에게 살짝 부딪치는 일도 있었다. 톱질은 재미있어도 나무를 차에 싫고 다시 집에 와서 다시 나무더미에 올리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힘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들이다. 배낭여행을 혼자 떠나서 어렵게 여행지를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톱질을 하는 것이나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동일했다. 내가 힘든 일을 해내었다라고 하는 성취감이기도 하고 아주 힘든 일을 찾아서 하고 살아야 하는 내 삶의 패턴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남편과 사별하고 난 뒤 배낭여행을 혼자 더 많이 다니게 되었고 올 해는 여행을 하지 않지만 숲에서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행위가 여행을 대신해서 하는 습관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아직 나는 전 남편과 사별 후 감정적으로 분리가 되지 않았다. 늘 외롭고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그 감정 안에 우울하게 살다가 그 우울을 조금 순간적으로 잊게 해주는 치료제가 배낭여행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감정의 패턴을 읽어야 하는 시기에 도달한 것 같다.가족세우기에서 나의 대리인은 죽은 남편 대리인을 업고 힘들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감정적으로 분리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매 번 세션을 할 때마다 남편을 향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이성적으로는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감정적으로 남편을 업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아직 나는 감정적 이별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머리가 아픈지도 모르겠다. 돈을 쓸 때도 내가 행복할 때도 사실 미안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외로움도 미안한 마음도 죄책감도 그 모든 상들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 내 가슴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의리 있는 거라고 착각하고 살아간다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다. 내가 잡고 있는 내 의식들이 과연 나를 얼마나 불행하게 살게 하는 올가미 같은지 알 것 같다.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양심들이 나를 무겁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가 인식한 것은 오래 전 내 마음에 깊게 새겨진 상념들을 하나하나 헤쳐 보아야 한다는 알아차림이 왔다. 언제나 내 의식은 나를 존중하기 보다는 남의 시선에 맞추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식하는 삶은 정말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난 사별 후 타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난 아직도 이 시골에서 죽은 누구의 아내로 살고 있다. 죽은 누구의 아내였던 사람이 아닌 온전히 나로 거듭나게 살아가면 인생이 참 역동적으로 빛이 날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은 좀 적게 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려고 한다. 행복을 위해 나는 어떤 실천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씩 노력해야 해야겠다. 언제나 죽은 자는 살아있는 사람을 축복해준다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첫댓글 네~선생님^^
우리 행복하게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