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훈가 敎訓歌 ◎ 교훈가는 신유년(1861) 11월경, 선생께서 관과 유생의 탄압을 피하여 남원으로 가던 중 구례에서 지으신 가사이다. 자식들과 조카들에게 이 글을 공경스럽게 받으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1 아이들아, 조카들아, 이 글을 공경하면서 받으려무나. 너희도 이 세상에 대자연의 다섯 가지 기운으로 생겨나서, 사람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강령을 규범으로 삼고, 다섯 가지 윤리를 지키면서 스무 살이 되도록 자라났구나. 훌륭한 우리 집안에서 건강하게 탈도 없이 잘 살아가는 너희 모습을 바라보니, 참으로 기쁘구나. 그러나 내가 하는 일도 없이 너희를 기르느라 잘 해 주지를 못했으니,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또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구나.
2 나 역시 이 세상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낸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이 살아가는 수많은 일들이 지나고 나면 그뿐이요, 겪고 나면 그 모든 것이 고생이었다는 것을 알겠구나. 그 많은 일들 가운데 한가지도 뜻대로 된 것이 없어 마음속에 많은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을) 한 번 웃으며 털어 버리고 나의 신세를 돌아보니, 나이가 이미 사십이 다 되었구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모두 다 그렇고 그렇구나. 아서라, 나의 인생이 이것 밖에 다시없구나.
◎ 용담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을 말씀하신다. 3 구미산 용담을 찾아들어서 중한 맹세를 다시 하고, 부부가 마주 앉아 탄식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 부인에게 말씀하신다.
대장부가 사십 평생을 깊은 생각도 없이 지냈으니 이제 와서 지난 일을 어찌할 길이 없구려. 별명과 이름을 다시 짓고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산에서 나가지 않기로 맹세하니, 그 뜻이 매우 깊지 않소?
◎ 혼자 말씀을 하신다. 4 슬프구나, 이내 인생이여,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부모님께 받은 사업에 부지런히 힘을 다할 것을. 그렇게 했다면 재산이 넉넉하지는 못하더라도, 너절한 옷을 입고 맛없는 음식을 먹지는 않았을 터인데, 마치 무슨 경륜이나 있는 것처럼, 각박한 이 세상에서 혼자 탄식만 하면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집안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으니, 원망해 봐도 소용없고 한탄해 봐도 소용이 없구나.
◎ 혼자 말씀에 이어 다시 부인에게 말씀하신다. 5 아내는 남편을 따른다고 하지 않소? 당신은 어린 시절부터 잘 입고 잘 먹었다고 늘 나에게 말했소. 그런 데 그 말을 한순간이라도 그쳐주지 않는다면, 부부가 화목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기저귀에 쌓인 아이들도 내가 차마 어찌 보겠소? 이런저런 말을 모두 던져 버리고, 조급해 하지 말고 지내봅시다. 하늘님이 모든 사람을 내셨다고 하니,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주실 것이요, 목숨이 하늘님에게 달렸으니, 죽을 염려가 왜 있겠소? 하늘님이 사람을 낼 때에 먹고살 복이 없이는 안 내신다고 하였는데, 우리라고 해서 무슨 운명이 그리 험하기만 하겠소?
6 부유하고 귀한 사람도 이전에는 가난하고 천한 적이 있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도 오는 세상에 부유하고 귀하게 될 수도 있다오. 하늘의 운수가 순환하여 간 것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오. 우리 집안의 착한 행실과 덕을 쌓은 공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분명한 것이니, 그 보답으로 좋은 일이 어찌 없겠소? 옛날부터 대대로 이어 오던 착한 마음을 잃지 말고 지켜서, 가난을 편하게 여기며 도를 즐기고, 몸을 수양하며 집안을 잘 다스려 봅시다.
◎ 설명의 말씀과 혼자 말씀이 이어진다. 8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일고여덟 달을 지냈는데, 꿈결인지 잠결인지 다함없이 큰 도를 받게 되었다. 마음과 몸을 가다듬어 바르게 한 다음 다시 앉아서 생각하니, 우리 집안 선조들이 쌓으신 공의 보답으로 내려진 경사인가? 돌고 도는 이치가 회복된 것인가? 어찌 이리도 은혜가 한없는가? (하늘님이 내게 주신 도를) 지나간 무수한 세상과 앞으로 올 무수한 세상까지 곰곰이 생각하며 비추어 봐도, 그와 같은 글이 없고 말씀도 없구나.
9 목숨 가진 많은 사람 가운데 도를 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나에게 주셨는가? 유교 불교 수천 년에 그 운수가 다했기 때문에, (이렇게 새로운) 도를 나에게 주셨는가? 수레바퀴처럼 무한하게 돌아가는 운수 속에서, 어찌 하여 내가 이 도를 받게 되었는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 가운데, 내가 어찌 이 도를 받을 만큼 높았겠는가? 온 세상에 도를 받을 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것으로 그만일 텐데), 어찌하여 내가 도를 받게 되었는가?
10 내가 도를 받은 일은 잠을 자다가 받은 것인지, 꿈을 꾸다가 받은 것인지 헤아릴 수 없구나.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도를 주셨다면, 나보다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재주와 자질을 가려서 도를 주셨다면, 그또한 나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늘님이 그렇게 정하셨으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 하늘님이 주신 도를 사양하고 싶어도 어떻게 사양할 것이며, 왜 나에게 주셨는지 묻고 싶어도 어떻게 물을 수 있겠으며, 단 몇 마디의 글도 없는 이 도리를 어디에서 본보기로 찾을 수 있겠는가? 묵묵히 생각하고 있으니, 그 모습은 고친 별명과 비슷하고, 어리석은 듯이 앉아 있으니, 그 모습은 고친 이름과 똑같구나. 11 그럭저럭하다가 별다른 방법이 없어, 정신을 가다듬고 하늘님께 말씀드리니, 하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 하늘님이 선생에게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대도 사람이니, 무엇을 그들보다 더 많이 알겠는가?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상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한 몸처럼 되어 협력해야 함을 사십 평생을 살면서도 알기나 했는가? 우습구나, 이 사람아, 그대가 온갖 일을 할 때에는 무슨 뜻이 있어 그렇게 했는가? 입산한 그달부터 별명과 이름을 고칠 때는, 또 무슨 뜻이 있어서 그렇게 했는가? 입춘날에 사람들은 복을 달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문에 붙여 놓고 빈다. 그런데 그대는 그런 복은 빌지도 않고, 무슨 커다란 경륜이나 포부가 있는 것처럼, 『도를 이루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겠다.』라는 글을 확신을 가지고 지어서 뚜렷하게 붙여 놓았다. 그 글을 세상 사람들이 구경할 때 그대의 심정은 어떠했는가? 그처럼 넉살 좋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이제는 만고에 없는 다함없이 큰 도를 받아 놓고 자랑을 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기특하고 흐뭇한 일이 아니겠는가?
12 그대가 세상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재주와 자질을 가렸다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겠는가? 총명하거나 어리석음을 따졌다면 나보다 총명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나보다 재주와 자질이 훌륭한 사람도 있고, 나보다 총명한 사람도 있는데, 어찌 나에게 도를 주셨는가?』 이렇게 의심스럽게 생각하면서 탄식을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또한 그대가 다른 사람만 못하다는 것을 그대가 어찌 알겠으며, 그대가 다른 사람만 못한 재질을 가졌다고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그런 소리 하지를 마라.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후로 그대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 하늘님의 말씀이 계속된다. 13 내가 세상이 착하게 돌아가는 운수를 베풀어 놓고 생명이 잉태하는 이치를 정해서 그대 또한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대가 아이 때부터 자라면서 하던 모든 일들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또한 사람들이 만물의 이치를 헤아리는 것과 온갖 일을 행하는 것도 내가 조화 가운데서 시킨 것이니, 훌륭한 사람들도 흔히 있지 않겠는가?
◎ 하늘님의 말씀이 계속된다. 14 사물의 이치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그대를 보고, 마치 그대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는 둣이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재주는 좋으나 덕은 부족하지 않은가? 조상이 물려준 재산은 다 날려 버리고, 구미산 용담에 있는 정자에 들어앉아 산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도대체 무슨 뜻이 있어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저렇게 가난한 형편에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아첨도 하고 비굴하게 굴어도 살아가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부인과 자식들의 생계라도 보전해야 하건마는, 그러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뽐내듯이 말하기를, 「나는 집안의 일을 잘 해내면서 편안하게 도를 즐긴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창자가 끊어질 듯 우스운 일이 아닌가?』
15 이렇게 그대를 비웃는 말들이 분분해도, 진실은 내가 알지 그대가 알겠느냐?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도를 닦아라. 내가 그대에게 시키는 대로 도를 닦아서, 차츰차츰 사람들을 가르치면, 다함없는 조화는 제쳐 놓고라도 온 세상에 덕을 펴게 될 것이니, 순서 있는 진리의 법칙이 그것일 뿐이다. 그대가 진리의 법칙을 정하고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가르치면, 그대의 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날부터 미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 온 세상이 저절로 교화가 될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곧 이 세상에 사는 신선이 아니겠느냐?
16 나는 하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하면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부부가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모두 나누게 되니, 기쁘고 즐거운 이야기뿐이었다.
◎ 선생의 부인이 말씀하신다. 이게 도무지 꿈인지 잠인지 모르겠네. 허허 참 세상에, 허허 참 세상에, 세상에 다 같은 사람인데 우리 복은 어찌하여 이런 건가? 하늘님도 야속하시지, 하늘님도 야속하시지. 어차피 이렇게 될 우리 인생이라면, 하늘님은 어찌하여 지난날 우리에게 그다지도 고생을 시키셨는가? 오늘에야 솔직히 말하지만, 미친 듯 술에 취한 듯한 저 양반을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지긋지긋하게 겪은 그 고생을 누구에게 다 말하겠는가? 저 양반은 그렇게 나를 고생시키면서도, 집에만 들어오면 장담하듯이 한다는 말이, 『거 사람도 참, 거 사람도 참, 고생은 무슨 고생이오? 내 인생의 운수가 좋으니 기쁘고 즐거운 일은 벗으로 삼아 살아가고, 고생조차도 기쁘고 즐겁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오. 그러니 잔소리하지 말고 나를 따라 오시오. 내가 헛되게 늙을 사람이 아니올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18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아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부인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지금까지 지낸 일은 다름이 아니올시다. 내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행동이 세상 사람들과 달랐으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대하는 행동도 진정으로 지극했으니, 하늘님의 은혜가 있게 되면, 이렇게 좋은 운수를 회복할 줄 알았소이다.
◎ 설명의 말씀을 하신다.
◎ 설명의 말씀이 이어진다. 20 그런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싫어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듣지도 못한 말과 보지도 못한 소리를 어떻게 그리도 잘 지어내어, 얼굴을 맞대고 분분히도 말들을 하는가? 슬프다, 세상 사람들이여, 나의 운수가 좋아지는 데 그런 말을 하면, 그대들의 운수가 가련해지는 줄을 알기는 하는가? 가련하다. 경주 고을은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구나. 만약 어진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들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고을의 풍속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문중의 운수가 가련하구나. 알지도 못하는 흉한 말과 괴상한 이야기를 남보다 두 배나 하고, 일가친척이 무슨 이유로 나를 원수같이 대하며, 부모를 살해당한 원한이라도 있는지, 어찌 그렇게 원수처럼 대하는가? 나와는 본래 아무런 은혜나 원한이 없던사람도 함께 덩달아서 원수가 되니, 마치 사나운 임금이었던 걸왕을 도와서 백성을 못살게 구는 것과 똑같은 짓이 아닌가?
◎ 설명의 말씀이 이어진다. 21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해도 나에게 죄가 없으면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인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을 만한 죄도 없이, 이렇게 모함 속에 빠져야만 하는가? 내가 하늘님의 도를 받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있을까? (내가 하늘님의 도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모함을 당하는 것이라면,) 비록 나에게 죄가 없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 집안은 과거에 합격하여 나라에 공을 세운 집안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렇게 모함을 면하지 못하는구나.)
◎ 전라도 남원으로 떠나올 때의 일을 회상하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23 머나먼 곳으로 떠나가는 길에 생각나는 것이 여러분이었다. 객지에 혼자 외롭게 앉아 있노라면, 어떤 때는 여러분이 수도하는 거동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고 눈에도 삼삼하게 보였다. 또 어떤 때는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생각났는데, 눈에 거슬리고 귀에도 들리는 듯하였다. 아마도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밝고 밝은 나의 운수는 원한다고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며, 바란다고 이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아서라, 여러분의 행동을 안 보아도 보는 듯하구나.
26 도를 닦을 운수가 아무리 좋아도, 스스로 닦아야만 도덕이 이루어진다. 여러분 인생의 운수가 얼마나 좋아서, 힘들이지 않고도 저절로 도를 얻을 수 있는가? 생각이 깊지 못한 여러분이여, 내가 해 주리라고 믿고 그렇게 하는 것인가? 내가 해 주리라고는 절대로 믿지 말고, 오직 하늘님만 믿어라. 여러분의 몸에 하늘님을 모셨는데, 어찌 가까운 곳에 있는 하늘님을 버려두고 먼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가? 나 또한 바라는 바는 여러분이 하늘님만 온전하게 믿는 것이다.
28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성현들도 못나고 어리석은 자식을 두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한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인지라 울적한 내 마음을 금할 수 없고, 그대로 두고 보자니 슬픈 생각마저 든다. 이리하여 억지로 딱딱한 글을 써서 여러분에게 보내니, 한 구절 한 글자를 자세하게 살펴서, 게으른 생각을 가지지 말고, 내가 타이르는 말을 실천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 만날 그날에, 눈을 비비면서 서로 높아진 도덕을 바라볼 수 있다면, 즐거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도의 집안에 큰 운수가 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