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망설였다. 마누라 웬 만큼 좀, 우려먹으라며 언짢해 하는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글소재(素材)가 빈약하다. 그러다가보니 옆에 있는 사림이 만만함인지 내 글속에는 늘 마누라가 단골손님처럼 고정출연을했다. 하지만은 맡은 배역이 천사 표처럼 예쁘게 나왔다던가, 고고한 여인상으로 그려 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칭찬이나 자랑글은 한 줄도 없이 나는 매번 마누라에게 창피(猖披)를 줄려고 작심하고 나온 것처럼 부끄러운 부분만 골라 들취내 보여 쥤다.
때문에 나는 반기마다 동인지가 나오면 당당하게 앞에 내놓지 못하고, 슬그머니 한쪽으로 밀어놓고 눈치를 살핀다. 한데도 이번에도 마누라의 콧구멍까지 들고 나왔으니 내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겠는가? 시골 우리 집은 한 터에서만 우리아버님이 14대, 내가 15대째를 이어서 살아온 종갓집으로 전형적인 농가 구주택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특히 겨울철의 난방은 먼 나라, 이야기다.
마누라와 애들은 따뜻하고, 편한 아파트로 나가자고 성화이지만 나는 요지부동이다. 400년 이상 선조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이 내 숙명으로 받아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우리 집 터가 명당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고 싶지가 않다. 다만,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 내려온 가문에 전통을 내 대에서 끓고 싶지가 않아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 가족들의 생각은 나하고는 다르다. 아마도, 이해타산이 앞서가는 가치관의 차이
일 것이다.
낡은 건물인 까닭에 우리집은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 보수도 제대로 못하고, 겨울철이면, 외풍이 너무 세어 밤이면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숨쉬는 콧구멍만 빠끔히 내놓고 잠을 잔다. 동지섣달 이불 밖에서 고생하는 코가 궁금하여 슬 거머니 손을 빼어내 내코를 만져 보기도 한다. 얼음장처럼 얼얼하다. 그날도 어렴풋이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기(寒氣,)가 느껴져서
깨어서보니 마누라의 콧바람이 여지없이 내 어깨 쪽을 관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면증으로 이리 두 척 저리 두 척 이제 막 어렵게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쉽게 깨울 수가 없었다. 들숨날숨은 갈수록 칼바람처럼 파고든다. 견디다 못해 나는 슬 거머니 일어나 바로 쏘아대고 있는 마누라의 얼굴을 반듯하게 고쳐주고, 턱은 약간 쳐들어서 뒷문 쪽에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맞받아치게 하였다. 나이 먹으면 꾀만 는 다 더니 이영감에 영악 스러움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
그 날도 잠자리에 눕자마자 마누라 콧바람이 정통으로 내 얼굴로 쏘아오고 있다. 나는 웬, 콧바람은 그리도 쌔냐며, 당신콧바람 때문에 감기 걸리기 십상이라고 하였더니, “움마, 사둔 남말 하네. 당신콧구멍에서는 따순 바람 나온 줄 알고 있소? ” 잠잘 때면 한번 보라지. 이는 갈고 불고. 온 집안이 들썩들썩 코 골아대는 걸 보면은 혼자 보기가 아깝다고 한다. 하기사, 코가 커도 내가 더 크고 콧구멍도... 배기량으로 치면 마누라는 50시시. 나는90시시는 될 건데 괜한 말 꺼내가지고 본전도 못찿고 만다.
오늘도 나는 마누라의 콧바람을 피해서 잠 자리 잡아본다. 어느새 숨소리가 고른 마누라 얼굴을 내려다본다. 젊은 날의 풋풋했던 그 모습도 당당했던 체격도 이제는 반으로 줄어들어 초라하고도 빈약한 할망구가 되어있다. 이 못난 남편 만나 어머니로 아내로 6남매의 맏며느리로... 온갖 고생 감내하면서도 자신은 언제나 뒷전으로 모든 희생 가슴에 끌어안고, 지고 살아온 당신이었습니다.
나는 이 밤! 까칠한 마누라 손 끌어 잡고 내 뺨에 비벼 본다.
첫댓글 마누라 콧바람은 그러니까 약과였단 말씀^♡^
네 미풍...
온깆. 고생 감내하고
희생했다는 글이 위로가 되셨겠어요
요즘 시골에서도 다 치거나 새로 짓고 살지 않나요? 너무 추울 거 같고요. 사모님이 부엌 일하시면 넘 힘들 거 같아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