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화장실이 그립다.
백발이 성글면 세상은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더니 하필이면 향기롭지 못한 화장실이 그립다. 누구에게나 화장실은 원초적인 배설욕구를 해소하는 절실한 곳이지만, 즐거움과 불결함이 공존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공간이다. 그 시절 칸막이 하나 없는 사방이 개방된 공동화장실, 태평양의 거친 파도 위 선상에서 변기는 타고 앉아서 오르락내리락 그네 타는 화장실, 섭씨40도를 넘나드는 남지나 해안의 모래밭의 불타는 화장실 이제 모두가 그립다.
세월은 아스라이 흘러갔지만 추억 속의 기억은 아직도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군대 시절, 경험했던 화장실이야기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후반기 훈련을 마친 후, 불도저 운전병으로 대관령 도로 개설 작업 현장에 배속되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우리 야전공병부대는 내무반도 취사장도 모두 임시방편인 천막이었다. 특히 화장실은 큰 구덩이 하나 넓게 파놓고, 위에다가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엮어 얹혀 놓아 대중목욕탕처럼 십여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칸막이 없는 공동화장실이다. 헐렁한 울타리는 있는 둥 마는 둥 사방이 훤히 비치는 화장실. 처음에는 서로 멋쩍고 쑥스러워했지만 얼마 지나자, 오히려 여럿이 가는 것이 좋아서 생리현상과 상관없이 모두 줄줄이 따라가서 희희덕 거리며 같이 동무해주는 전우애 넘치는 곳이었다.
우리 신병들은 찬바람이 쉴 새 없이 들고나는 정비고 보다는 양지바른 화장실이 으레 만남의 장소였고, 유일한 휴식처이자 자유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선임들의 험담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부대 밖 가겟집 애순이 이야기는 빠지지 앉은 단골 메뉴였다. 당시, 장비과 와 수송부는 소위 기름 쟁이라고 밤이면 곡괭이자루의 춤사위에 신임들은 항상 기압이 바짝 들어 있었다. 그날도 우리 신병 셋은 아침식사가 끝나고 식판과 국그릇을 챙겨들고 개울로 나갔다. 이른 봄 칼바람 모아 부는 오대산의 개울물은 손 넣으면 저 발끝까지 차가 움이 밀려왔다. 풀포기에 가는 모래를 묻혀, 도루묵기름을 박박 문질러 닦고 닦아 얼어붙은 손가락을 호호 불며 식기를 검열하는 선임의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었다. 어쩌다 기분이 좋은날은 대충 넘어가지만 표정이 흐리면 생선비린내 묻어난다고, 우리는 손등을 앞으로 내밀어놓고, 눈은 질끈 감아버렸다. 감각조차도 얼어버린 손등에 국그릇이 타 악, 탁! 그래도 신병생활은 세월 따라 여물 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사무실 청소가 끝나고 뒤늦게야 혼자서 화장실에 갔다. 모처럼 텅 비어있는 넓은 화장실 한가운데에 오롯이 앉아 있는데, 선임 네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힘쓰다 말고, 엉거주춤 안전! 안전! 일일이 선임들과 눈을 맞추어 경례를 부치고, 뒤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선임한테도 고개 돌려 안전, 한참 후 건너편에 있는 선임이 야 0일병 담배 있냐? 네, 엉금엉금 기어가 담배 갖다 주고 났더니 이번에는 옆에 있는 선임이 휴지 있냐? 예, 여기 꼬깃꼬깃 손에 쥐고 있는 휴지마저 주고 나자 난 맨 손바닥이다. 선임들이 하나 둘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거미줄에 걸려든 잠자리 마냥 아무리 푸드덕 그려봐도 누구 한사람 오는 사람이 없었다.
아래쪽에서는 따가운 햇살에 벌써, 발동이 걸린 메탄가스는 신이 나서 뽀글뽀글 솟아오르고 있었다. 벌씬거렸던 콧구멍은 이미 감각을 잃고, 눈썹만이 가끔 꿈틀 대고 있었다. 바로, 그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천정을 올려보니 지붕의 볏짚이 눈에 들어왔다. 몇 개 뽑아서 손바닥으로 몽글케 몽글케 비벼서 간신히 처리하고 나왔더니, 젠장! 쓰리고 따끔거렸다. 나는 이다음에 신임들한테 화장실에서는 휴지만은 절대 빼앗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지금도 그때의 낭패감 때문일까? 혼자 주로 사용하는 우리 집 바깥 화장실에는 두루마리 화장지걸이 2개를 나란히 붙여 놨다. 집사람은 콧구멍만한 공간에 두 개씩이나 주렁주렁 매달아 놨다고 하지만, 한 개와 두개의 여유로 움은 사뭇 다르다. 불과! 오십년 전 일이지만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동무해 주었던 가슴 따뜻한 전우들이 보고 싶다. 지금쯤은 같은 하늘 어딘가에서 손자 재롱 즐기며 살아가고 있겠지만, 그때, 그 화장실이 그립다.
첫댓글 와하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어인 화장실 이야기가 요렇게 재미있징?
향기롭지 못한 이야기 재미있게 보셨다니 상쾌합니다.
화장실일화3부(공동화장실, 그네타는화장실, 불타는화장실)썼습니다만
군 시절 이야기라 망설이다가 삼일 이재영선생님의 군대이야기 보고나서
슬그머니 들이밀어 넣었습니다요.
화이팅입니당!
일력은 수준급 화장지 지푸라기 비벼서 쓰던 화장실 문회 물로 씻어주고 말려주고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와아~ 지푸라기도 써보셨나요?
설마...
ㅎ 우리집 일력은 할아버님 전용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루 평균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은 여성이 1분30초 남성은 32.7 라고 합니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은 우리는 1년을 화장실에서 머무는 셈입니다. 하여 감이 이런 제언을 합니다. 앞으로 화장실의 변기는 단순히 오물처리 시설이 아니라 최첨단의 의료진단 기기로 발전되어 당일 배설물에 대한 초정밀분석을 하여 임께서는 어젯밤 단백질을 과다하게 섭취하여 체내에 2,200칼로리가 축적되어 오늘은 1시간쯤 걷기 운동을 하시어 몸의 균형을 맞추어 주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는 변의 줄기가 가늘어지고 색도가 정상(주황색)벗어나 검은색을 띠고 있어 대장검사와 신장검사를 병행하여 받아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그리고 소변기에서는 임의 소변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소변압력 또한 많이 약해지고 있으니 전립선 검사와 비뇨기과 성기능검사및 진료를 받아 보다 향상된 성생활을 지속 하십시오.
이러한 멘트가 인공지능감지센서로 의해 여자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남성의 은근한 목소리로 남자는 나긋나긋한 여성의 소곤거림으로 활기찬 하루가 화장실 에서부터 시작되는 그때가 분명 도래하리라 믿습니다.
거 참 기발하신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우리집 누구는 화장실쓰는 시간이 평균 1시간입니다.
화장실이 두 개 있기 망정이지...
@蘭亭주영숙 그기는 나만의 사색의 공간입니다.
@뱃사공 저는 "나홀로 다방"이라고 부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