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추억하다.

화장실을 추억하다.  무더운 여름이었다..바람 한 점 없는 천막속의 행정반은 사우나실처럼 열기를 훅훅 뿜어 냈었다. 때문인지 선임들은 모두가 밖으로 나가고 신참인 나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책상위에 월남 파병신청서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고된 훈련 끝에 얻은 주특기(불도저 운전)도 못하고 행정반에서 덧없이 지낼 바에는 위험속이라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신청 후 20일 만에 파병특명이 내려왔다. 대관령 작업장에서 부랴부랴 따올 백을 챙겨 메고 대대본부에 도착신고를 했다. 흙과 기름투성이 군복은 교육대 가면, 말 듣는다고 새 군복으로 바꾸어주었다. 한 참후 인사계가 침상아래에 벗어 놓은 내 군화를 보고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흙과 기름을 뒤집어쓰고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늘어진 군화, 모자, 모두 새것으로 바꾸고 나니 당장 삼수갑산을 갈망정 기분이 산뜻해서 좋았다. 오후시간 나는 목청껏, 일병 아무개는 파병특명을 받고 오늘자로 교육대에 입소하겠습니다. 전우들이 좌우로 몰려와 무운을 빌어 주었다. 3주의 파병교육을 마치고 청량리를 거쳐 부산 제3부두에 도착하자 학교보다 더 큰 수송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 지어 승선하여 선실을 배정 받고나니, 장병들은 지금 즉시 갑판으로 집결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서둘러 갑판으로 나가자, 부두에는 이미, 부모님들과 수많은 환송객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아들을 찾기 위한 부모님들의 아우성과 갑판에서는 아래쪽에 있는 그리운 부모형제들을 찾기 위해서 모두가 애달픈 몸부림 이었다 나는 편지한 장 올리지 못하고 소리 없이 떠나 온 터라 우리 부모님 저기에 계실 리는 만무하지만 행여! 어머니, 아버지가 계실까? 비좁은 틈새를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서 부모님 얼굴을 찾고 있었다. 한 참후, 뱃고동이 뚜 –우 하고, 길게 울리자, 아래쪽에서는 아들을 부르는 부모님들의 목 메인 외침에 모두는 목이 매이고 말았다. 이때 누가먼저 불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힘차게 군가가 불렀다. 모자를 벗어 쥐고 좌우로 손을 흔들며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어느덧 두 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년 이맘때쯤 저 제3부두에 다시올수 있을까? 우리는 멀어져 가는 부모님들 모습이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선실에 입실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에 식사시간이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식당으로 몰려갔다. 순간, 모두는 벌어진 입을 쉽게 다물 수가 없었다. 선실 내의 뷔페식당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었다. 번쩍거리는 식판에 담긴 푸짐한 음식들... 지금의 우유팩을 그때 나는 처음으로 봤었다. 말로만 듣던, 칠면조고기와 닭고기, 소고기는 김이 모락모락 우리들의 시각과 후각은 이미 마비가 되어버렸고 신기한 열대과일들과 우유와 코코아, 커피, 아이스크림도 네 종류나 되었다. 호화식단 앞에서 우리는 먹어도, 먹어도, 모두가 새로운 것 들 뿐이었다. 저녁식사 가 끝나자 영화를 상영한다는 선내방송이 나왔다. 그 무렵은 마음껏 먹은 음식 때문에 우리들의 뱃속에서는 이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찾았고, 화장실은 이미 문전성시였다. 한데 어렵게 화장실로 들어서자 난생처음 보는 양변기다. 어리등절 했었다. 모두는 앉은 자세보다는 쪼그리고 앉은 자세가 더 편한 습관이라 대개는 변기위로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 일을 봤다. 한참 후에 변기위로 올라가면 위험하다는 선내방송이 나왔다. 화장실 안쪽에도 변기에 앉아서 양쪽 안전봉을 꼭 붙잡아야 한다는 안전수칙이 븥어 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전히 변기 위에서 쪼그리고 일을 본 전우들이 많아지자 각 선실에서 사역병을 차출하여 화장실마다 2명씩 교대근무를 서게 되었다. 임무는 더럽혀진 변기청소는 물론, 절대 좌변기위에 못 올라가게 지키는 것이다. 한데도 처음에는 얌전히 앉아 일을 보다가도 시원찮으면, 어느 순간에 변기위로 올라가서 일을 보고 가버는 바람에 변기는 금방 더렵혀졌다. 태평양근해를 지나자 거친 파도에 선체의 로링과 피칭(선수. 선미 흔들림)이 심할 때에 변기에 앉아있으면 마치, 춘향이가 치맛자락 휘날리며 광한루에서 그네 타듯이 변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위에서는 심한 구토요, 아래쪽에서는 물총 같은 설사다. 이틀 후 그렇게 잘 먹고 호식하였음에도 눈들은 뻔히 들어가고 기진맥진 탈진상태다. 이러다는 전선에 가기도 전에 다 죽는다고 저마다 한탄들이다. 이후 붐비던 식당은 한산해지고 화장실 앞은 장속처럼 늘 북적거렸다. 드디어 상하의 나라 월남이다. 나는 퀀혼을 거쳐 나트랑에서 다시 수송기를 타고 2시간 여만에 최북단인 다낭공항에 도착했다. 찌는 날씨에 특이한 남국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었다. 거리의 건물마다 총탄의 흔적과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으로 모두 자라목이 되어있는데, 이번에는 도로 양옆에 시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전선에 와있음을 실감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야간 교전 때 죽은 시체들을 도로 옆에 갖다 놓으면 연고자들이 찾아 간다고 한다. 이국에서 첫날 아침이다. 파병신병들은 즉시 화장실 앞으로 집합하라고 한다. 베니어판으로 만든 간이화장실 밑에는 드럼통을 절반으로 절단한 통속에 1/3정도의 경유를 부어넣고, 하루 동안 모아진 분뇨를 아침마다 불에 태우는 것이 파병신병들의 몫 이였다. 북쪽에 위치한 다낭의 건기 철은 아침저녁으로 꽤나 썰쌀 했다. 분뇨에 불을 붙이고 삥 둘러서서 0 불을 쬐면서 거지는 모닥불에[ 샆찌고 월남 신병은 ㅇ불에 세워간다며 희히덕 거리며 웃었다. 남지나해의 해안 모래밭은 40도가 웃도는 뜨거운 날씨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려 차량마다 아스콘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우리는 차량마다 붙어있는 아스콘을 떼어내기 위해서 경유에 휘발유를 섞여 세차를 했었다. 그러고 난후 폐유를 화장실에 잘못 부어 놓으면 당시는 야전용 딱성냥을 주로 사용하던 때라 담배불을 붙이고 나서 무심중에 아래도 던져다가는 펑! 하고 휘발유가 섞인 변기통이 폭발하여 항문은 물론 중요부위까지 중화상을 입어 본국으로 후송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다. 어느날 나는 청룡부대방석작전(부대 터 닦기)참여할 때다. 새벽녘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옆에서 밤새 매복을 서던 전우가 턱으로 앞쪽을 보라고 했었다. 약20명 정도의 남녀노소 마을 사람들이 우리 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의하해 하고 있는데, 모두가 풀숲에 주저 않아서 아침 생리현상을 처리하고 있었다. 보기드문 진풍경이었지만, 열대의 나라에서 분뇨를 위생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당시에는 주거지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마을 앞 들녘에다 일을 보는 것도 생활의 수단이고, 지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