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개신교 잘못된 예전(예배의식)이 부패의 원인된다.
들어가는 글
“지금 군중들의 함성이 대단합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 랍니다! 이제 얼마 안가서 교회를 십자가에 달 기세입니다. 이제 우리가 고난을 받을 차례인가 봅니다.” 울분에 찬 이
글을 보며 할 말을 잃는다.
어쩌다 한국의 개신교가 민중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그 원인은 어디로
부터일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전쟁 영화
한편이 있다. 2차 대전 때 연합군이 적군을 속이고 작전의 성공을 거두기 위해 사령관의 모습을 닮은 인물을 찾고 있었다. 사령관의 동태가 곧
적에게는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찾아낸 인물은 공교롭게도 살인범으로 형무소에서 형을 살고 있는
흉악범이었다.
적에게 치명타를 안길 작전계획을 비밀리에 성공시키기 위해 그
흉악범을 사령관으로 위장시키고 적당히 노출시켜 그의 동태를 적이 따라다니게 한다.
닮은 얼굴에 사령관 행세를 하는 흉악범의
실체는 아군의 고위층 몇만, 이 비밀을 안다.
심지어 사령관의 운전병과 호위병도 속아 진짜 사령관인줄 알고, 그가
만나는 사람 모두가 속는다.
흉악범 가짜 사령관은 교육받은 대로 멋지게 역할을
감당하고 적군은 속고 만다. 임무수행을 마쳤을 때 그 흉악범은 멋진 인격의 소유자로 변해 있었다. 과거의 흉악범이 아니라 늘 애국을 말하는 멋진
애국자로 장군으로 변신되어있었다. 그의 역할이 그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변화시킨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타락해가는 이유 중의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오늘 날의 교회가 참된 예배'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카리스마타 수도회의
정원기목사의 소신과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가짜사령관 역할을 한 흉악범의 의식이 자신을 착각하게
했던 것은 습관이 낳은 의식이 원인이고 목회자의 잘못된 의식을 낳게 한 것은 잘못된 예전이 목사의 위치를 신격화하고 착각하게 한 그 습관이
한국개신교 타락의 원인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습관이 성격을 만들고 그 성격이
그의 운명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개신교의 예전의 잘못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아니고 목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예배를 받고
있다.
한국개신교 예전에는 신을 섬기는 모습은
없다
예루살렘 성전의 두 번 무너지는
주전 587년과 주후 70년, 유대민족이 박해 받음으로 인해 흩어지고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에 예루살렘을 향해 지은 회당 (synagogue)이
곳곳에 세워진다.
신약성서에서 회당이란 말은 가르침을
베풀기 위한 유대인의 집회나 종교적 집회를 행하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리스도와 사도시대에는 팔레스티나 곳곳에 회당이 세워지고, 이 밖에도
바빌론, 시리아, 소아시아, 마케도이아,그리스,이탈리아,아프리카등지에도 세워졌다.
회당의 모습은 장방형으로
장 측은 예루살렘을 향하도록 하고, 그 끝에 모세의 율법을 넣어두는 상자가 놓여졌다. 그 전면의 중앙에는 바닥보다 좀 높은 제단이 있고 그 위
책상에는 율법서와 예언서가 놓여 있다. 입구에는 물그릇이 놓여 있으며 들어오는 사람들이 손을 씻었다.
회당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단이
없다. 유대인은 자기 마을에 회당이 있어도 1년에 세 번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는 온 가족이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 제물을 드려야
했다. 회당에서 신을 섬기는 예전은 온전하지 못하였음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지성소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고 속죄의 예물을
드려야 했던 것이다.
회당의 모습은 중앙에 독경대를 중심으로 회중이 빙 돌라
앉아 랍비의 말씀선포를 듣는 모습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전의 전례는 회중을 등 뒤로 하고
제사장이 하나님을 향해 서서 회중과 제사장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때로는 엎드리며 제사를 드리게 된다.
회당은 말씀 선포가 예전의 중심이고 예루살렘의 제사는 희생양을
제물로 드림으로 속죄 받는 피의 제사가 중심이다. 이 구약의 제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오늘날 성찬예식으로 발전된
것이다.
개신교의 예배모습은 강대를 중앙에 놓고 예배 집례자와
회중과 성가대가
빙 돌아앉은 모습이고 유대인의 회당과 같은
모양이다.
영락교회 모습 / 중앙 성가대 앞에 목사님이 좌정
한다
새문안교회 모습 / 강대 뒤에 목사님이 좌정 한다
교인들이 목사님을 향해 예배하고 목사는 예배를 받는다.
강대는 간소하고 제단이 중앙에 크게 자리 한다
가톨릭의 제단은 사제가 회중과 마주보고 앉지 않는다.
위와 같은 좌석배열로 중앙에 강대가
나옴으로 회중을 대표한 장로님의 대표기도가 회중을 향하고 마주서서 기도함으로 마치 말씀 선포하는 목사님의 모습과 동일한 모습으로 행해진다.
이것은 회중을 등에 업고 돌아서서 제단을 향하고 십자가를 향하여 기도하여야 될 것이다.
자복하는 회개의 기도가 장로님의
기도가 되어야 함에도 회중을 마주보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나 말씀 선포하는 목사님의 위치로 착각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자복의 기도를 하지
않고 설교하듯 성경을 줄줄이 대입하여 긴 설교 식 기도를 드리는 장로님들의 기도습관은 방향과 위치선정의 잘못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기도는 회중을 등에 지고 함께 하나님을 향하여 자복의 기도로
“우리를 불상 히 여기소서!” 하는 자복의 기도를 드려야 하고, 오직 유일하게 말씀 선포만이 강대에서 회중을 향하여 행해짐이 옳을
것이다.
지난 3월 15일 여 목사 나현숙
목사님의 부흥회를 참석하였다가 이 같은 모습을 만난 일이 있다.
회중을 등에 업고 끓어 엎드려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과 회중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 이었다
회중을 등 뒤로
하고 끓어 엎드려 회개 기도하는 부흥사
회중을 등 뒤로 하고 함께 앞을 향하여 기도하는
부흥사
대표기도 모습을 새롭게 바꾼 신일교회 / 목사님도
돌아섰으면-,
경동교회
예배모습 중 대표기도와 봉헌기도 모습
(Esc 키를
눌러 배경음악 종료한 후 실행하세요)
위의 경동교회 예배모습중 회중을 대표한 장로의 대표기도 모습과 목사님의 봉헌기도 모습입니다.
회중을 등지고 제단을 향해 장로가 기도하고-, 봉헌기도는 헌금위원과 함께 목사님이 제단을 향해 회중 앞에서
기도한다.
회중은 함께 일어서서 봉헌기도를 드린다.
한가지 더 눈여겨 볼것은 -,
설교를 맡은 당회장 목사님은 교인과 같이 회중의 제일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설교하러 강대에 올라가서 축도로 예배를 마치는 후반에만 강대 뒤의 의자에 좌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