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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질병
인간 사회에 가장 치명적인 병은 무엇일까요? 암일까요? 에이즈일까요? 간경화증일까요? 무엇일까요? 아마 낙심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낙심이 그토록 치명적인 질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사실 낙심은 치명적인 병입니다. 또 낙심이라는 병은 다른 어떤 질병보다 더 자주 재발합니다.
왜 낙심이 우리 사회에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 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이 병은 누구에게나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낙심합니다. 저도 낙심하고, 여러분도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낙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 낙심이 치명적인 이유는 낙심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자주 찾아 오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낙심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찾아 오고, 또 찾아 옵니다. 셋째, 낙심이 치명적인 질병인 이유는 급속도로 전이하기 때문입니다.[1] 당신이 낙심하면, 옆에 있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낙심합니다.
낙심이 확퍼져서 모두가 동시에 낙심한 대표적인 곳이 가나안 땅 정탐 후에 10사람이 보고한 상황입니다. 12명이 똑 같은 땅을 보고 왔는데, 다수였던 10 사람은 무서워 하면서 보고합니다. “그 땅은 우리를 삼키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봤던 사람들은 모두가 키가 컸는데, 거인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 백성들은 네피림의 후손인 장수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고, 그들에게도 우리는 메뚜기로 보였을 것입니다.” (민 13:31-33). 그러자, 백성들이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완전 가라 앉습니다. 모두가 울면서 말합니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오. 여호와께서 왜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해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 거요?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잡혀 가고야 말 것이요.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 갑시다” (민 14:1-4). 꿈도 접고 죽음을 묵상하는 것이 낙심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Good News가 있습니다. 요즘 계속 살펴 보고 있는 느헤미아서는, 낙심을 치료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아니, 낙심을 넘어서 오히려 우리 인생을 건강케 하고 힘있게 일어나게 해 주는 삶의 방식들을 안내 해 줍니다. 보통 사람이면 낙심 할 수 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서도 느헤미아는 환경에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 많은 공격 속에서도 느헤미아는 오히려 승리합니다. 그렇다면, 낙심을 넘어서 우리 맘 속의 소망을 이루는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낙심을 넘어 오히려 새로운 일을 이루는 길은 무엇입니까?
Nehemiah 6:15-19
15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셨다!”
성벽 재건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공사기간이 52일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아가 성전 재건 비전을 마음에 품은 때는 느헤미아 1:1절은 기슬르 월, 즉 오늘날 달력 9월입니다. 본문 6:15절의 엘룰 월은 오늘날 달력으로 6월달입니다. 그러면, 비전을 맘에 품고 성취하기까지 9개월 걸렸습니다.[2]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슬픔 소식을 들은지, 9개월만에 이 슬픔이 변하여 축제가 되었습니다. 약 2개월이 소요될 공사가 방훼 하고 공격하는 적들 때문에, 7개월은 더 소비되었습니다. 느헤미아는 이 일을 6:3절에서 “a great project 큰 역사,” 즉 위대한 프로젝트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2개월에 완성할 정도면 어느정도 일까요? 1세기 유대 역사가인 요셉프스는 성벽을 확인하고, 이 일은 52일에 완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역사 기록에 840일, 즉 2년 4개월로 적었습니다. [3] 2년 4개월에 가능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본문 16절에 그 해답을 위한 정보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When all our enemies heard and all the nations who were around us saw this, they were greatly disheartened. They knew that this work had been accomplished with the help of our God [NET].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이런 말을 합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일인데 해 냈습니다. 이렇때,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동하면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고 할 때,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홀로 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역사에 빛나는 일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뒤쪽은 모두 이렇게 번역한 것입니다. “They knew that this work had been accomplished with the help of our God 이 일은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습니다.”[4] 이 일은 하나님 홀로 이루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했던 사람들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UBC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James Packer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성벽 재건하는 현장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신 사건이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과 하는 일에 함께 하신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집중하게 합니다. 이전에 한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과 가슴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 사실에 압도 됩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거룩한 보호하심이 뜨겁게 느껴집니다. 이런 종류의 순간은 개인들의 삶에 영적 성장과 진보를 이루는 역사적인 시간들입니다. 이것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부흥 revival입니다. 사실, 이 사건은 BC 444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부흥이었습니다.[5] 하나님께서 한 개인의 삶에 찾아 오셔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것이 부흥입니다. 느헤미아를 찾아 오셨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을 찾아 오셔서, 그의 인생을 새롭게 이끄셨습니다 (행 9:1-19). 예수님을 거절하고 낙향하여 실패자로 살아가던 베드로의 삶을 찾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그의 인생을 부흥시켰습니다 (요 21장, 특히 15-19). 느헤미아를 찾아 오셨던 하나님은 오늘은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간증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도대체 불가능한 일들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것은 나의 힘과 지혜로 이룬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끈기 있게 달려라”[6]
이제 우리들의 관심과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 와서, 그들을 통해서 일하셨는가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누구와 함께 일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교회와 함께 일하시는가? 누가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서 자신 속에 잠재된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입니다. 덴버 신학대학교의 총장인 Gordon MacDonald 목사님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책을 씁니다. 제목이 『Resilient Life 굴복하지 않는 삶』, 부제가 “You Can Move Ahead No Matter What 앞에 무슨 장애물이 있어도 옮길 수 있다”입니다. Gordon MacDonald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령님께서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직면한 상황이 아닌, 내 인생을 향한 하늘의 사명에 집중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12:1-2절을 소개합니다. 1절을 쉬운 성경 번역본을 봅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열심히 합시다. 우리의 삶 속에 방해가 되는 것들 것 다 없애 버리고, 우리를 쉽게 옭아매는 죄를 벗어 버립시다. ”
기독교 역사 속에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 분들을 통해서 일하셨던 수 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내 인생의 목적에 방해 되는 것들을 무시했다는 것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그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절대적인 모델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십자를 지고 나면 큰 기쁨이 준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이 오늘 당하는 멸시나 천시, 어떤 공격에도 흘들림 없이 사명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의 삶에 개입하셔서, 하늘의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든 맥도날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끈기 있게 달려라!” 성령님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일은 더 공격을 받는다
느헤미아 성벽 재건을 통해서 배우는 인생 교훈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일수록 더 많은 땀과 수고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소중한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더 많은 방훼 세력과 직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살펴 봐 왔던 것처럼, 느헤미아의 성벽 재건은 시작부터 반대가 심했고, 많은 공격이 있었습니다. 적들은 이 일을 위해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이끌던 느헤미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음해와 모략을 다 사용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가로 막기 위해서, 사단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심지어는 성벽이 다 재건 되었슴에도 불구하고, 또 공격합니다. 그 사실을 17절은 이렇게 밝힙니다.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Moreover in those days the nobles of Judah sent many letters to Tobiah, and Tobiah's letters came to them [NRSV].
도비아는 느헤미아의 큰 일을 공격하고 무너드리려는 원수의 첫번째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스라엘 내부 사람들과 편지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도비야와 연락하는 내부 사람들 중에서도 귀족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의 높은 권력을 잡고 경제적 부를 축척한 사람들입니다. 18절에 보니, 그 이유는 도비야가 이 사람들하고 편지를 주고받고 한 것은, 이스라엘의 귀족 중의 한 사람이 도비야를 사위로 삼았고, 또한 도비야의 아들도 이스라엘의 높은 사람이 사위를 삼은 것입니다.[7] 그래서 “유다에 저와 동맹한 자가 많았더라”고 기록합니다. 이곳에서 동맹한자를 “음모자”를 뜻합니다.[8] 느헤미아의 원수들이 느헤미아를 무너뜨리려고 이 관계를 이용하지 않겠습니까? 19절을 봅니다.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Also they spoke of his good deeds in my presence, and reported my words to him. And Tobiah sent letters to intimidate me [NRSV].
이스라엘 백성들과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고 헌신하는 느헤미아에게게 가장 먼저 힘을 주고 함께 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원수와 같은 편이 됩니다. 그리고 국가의 일을 훼방하는 원수는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합니다. 6:6-7절에, 이 사람은 느헤미아에 관하여 나쁜 소문을 만들어 퍼뜨렸고, 13절을 보면 이 사람은 산발랏과 한 패가 되어 느헤미아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원수들과 한 패가 되어, 느헤미아가 한 말을 다 갖다 바칩니다. 그러면, 도비야는 느헤미아에게 겁을 주는 편지를 보내 옵니다. 가까이에 있는 책임자들이 원수와 같은 편을 듭니다. 이럴 때, 느헤미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어려운 수록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침반이 발달되기 전에, 컴컴한 밤에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은 본능적으로 북극성을 쳐다 봤답니다. 항해의 방향을 잃었을 때도, 그들이 보는 곳은 딱 한 곳이었답니다. 하늘에 있는 북극성입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주는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느헤미아는 무엇을 했습니까? 느헤미아 4:14절을 봅니다.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 When I saw their fear, I rose and spoke to the nobles, the officials, and the rest of the people: "Do not be afraid of them; remember the Lord who is great and awesome,
백성들이 두려워서 낙심하는 순간, 느헤미아는 “적들을 두려워말라”고 말합니다. 대신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외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 고정될 때, 환경이 가져 오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9] 외롭고 두려운 시간에 우리가 본능적으로 봐야 하는 북극성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나 환경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Great and Awesome이신 하나님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10]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두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번째로는, 하나님께서는 내 삶을 통해서 지금 일을 행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비록 고독한 순간일지라도,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네번째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합니다. 현재 나의 모든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주실 전능자이십니다. 오늘의 이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나를 구원하십니다.
누군가 당신을 보고 있다 (Somebody watches over ME!)
콜린 파월 (Colin L. Powell)은 흑인으로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합참의장에 임명되었고, 미국 국무장관직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콜린 파월에게는 인생의 좌우명이 있었는데, “Somebody watches over ME, 누군가 나를 지켜 보고 계신다”입니다. 이 말씀은 그가 세례 받을 때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셨던 말씀이었는데,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했답니다. 물론 이곳에서 누군가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며 살았답니다.
그의 나이 17세 때 시간당 90센트를 받고 음료수 공장의 바닥 청소를 하는 아르바이트를합니다. 나는 왜 이토록 가난한가라고 생각하며 낙심하는 것 대신에, 하나님 앞에서 늘 일을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관이 맘에 든다고 승진을 해 줬는데, 초고속 승진을 해줬답니다. 그때 파월은 “나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있구나”라고 믿었답니다. 파월의 중, 고등학교 때의 성적은 C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좋지 않은가 낙심하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군에서 지원해서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육군대학에 입학 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차석의 영예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월남전에 참전 하여 최전방 근무를 하게 되였는데, 사단장은 그의 대학 졸업 성적을 보고 작전 참모로 승진 시켰답니다. 파월은 그때도 역시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있다!”를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20년 군 생활을 하던 중 1989 흑인으로서 미 합참 의장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11]에 임명되었을 때, 파월은 이를 통해 “역시 누군가는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있구나”을 믿었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응답 찬송: 545 (344)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공동 기도 제목:1. 외롭고 힘겨운 낙심할 수 있는 상황들을 오히려 소망을
2. 내 영혼 깊은 곳에 부흥을 주옵소서. 예루살렘 성벽을 이르켰던 하나님의 은총을 주옵소서
3. 어려운수록 하나님만을 더더욱 의지하게 하옵소서
[2]유대인의 달력은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현대력이다. 1월 닛산 Nisan (7월), 2월 시브 Iyyar (이랴르) (8월), 3월 시완 Sivan (9월), 4 월 담무스 Tammuz (10월), 5월 아브 Av (11월), 6월 엘룰 Elul (12월), 7월 다스리 Tishri (1월), 8월 말케스 Marheshvan (2월), 9월 키스르 Kislev (3월), 10월 데벳 Tevet (4월), 11월 세밧 Shvat (5월), 12월 아달 Adar (6월).
[5]J. I. Packer, A Passion for Faithfulness: Wisdom From the Book of Nehemiah (Wheaton: Crossway Books, 1995), 144.
[7]Raymond Brown, The Message of Nehemiah: God’s servant in a time of change, The Bible Speaks Today (Leicester, England/ Downers Grove, Illinois, U.S.A.: Inter-Varsity Press, 1998), 109. Brown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비아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결혼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Under pressure of personal aggrandizement, financial advantage, business interest or social preferment, many people were lured into marriage with someone either outside Israel’s faith (an act prohibited by the Mosaic law) or (as was probably the case with the Tobiah entourage) with a partner who did not profess an uncompromising allegiance to Israel’s covenant obligations.”
[8]Loring W. Batten, The Books of Ezra and Nehemiah,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Edinburgh: T. & T. Clark Ltd, 1890), 260.
[9]Stan K. Evers, Doing a Great Work: Ezra and Nehemiah simply explained (Darlington, England: Evangelical Press, 1996), 130.
[11]合同參謀議長,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많은 국가 군대의 3군(육군, 해군(+해병대), 공군) 통합 의결기구인 합동참모본부의 의장이다. 보통은 줄여서 합참의장이라고 부른다. 합동참모본부는 미국 군대의 가장 높은 의결기구이며, 합참의장은 이 기구의 총책임자이며, 서열이 가장 높기 때문에 현역 군인의 좌장(座長)이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