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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nciple to Accomplish Great Work (느 4:16-23)
한국 축구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에 들지는 못했지만, 세계적으로 칭찬을 많이 듣습니다. 특히 독일을 제외한 유럽 나라들에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늘 당하기만 했던 독일을, 한국이 (한국이) 당당하게 이겨 줬기 때문입니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선수는 손흥민입니다. 심지어 세계 시사 저널인 타임지는 지난 6월 18일자 표지 모델로 손흥민 선수를 택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손흥민 선수와 더블어 주목 받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손웅정씨입니다. 왜냐하면, 손흥민 선구가 아버지 밑에서 축구 홈스쿨링을 했기때문입니다. 손웅정씨는 아들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혹독하게 훈련 시켰답니다. 이분의 훈련 철학은 기본기였습니다. 손흥민이 늦잠을 자면, “세상은 그냥 되는 것이 없다. 노력과 투자가 없으면, 절대 미래는 없다”고 질책했답니다. 볼을 차고 허벅지 근육을 기르는 기본기만 계속 훈련시키자, 아들이 귀찮아 했답니다. 그하자, “축구 선수는 공에 비밀이 있는데, 공을 못 다루고 어떻게 축구를 하겠느냐. 그걸 극복하는 것은 기본기 밖에 없어”라고, 계속 기본기 훈련에 몰두 하도록 했답니다. 아버지의 엄한 기본기 훈련 때문에, 손흥민이 중학교 때, 아버지를 원망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1]
강성구씨는 자신의 책 『어려울수록 기본에 미쳐라: 성공의 99%는 비범함이 아니라 기본이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성공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면, 예외 없이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간단한 기본을 건너뛰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기본을 지키는 사람은 튼튼한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우는 사람과 같다.” [2] 결국 역사 속에 큰일을 했던 사람들은 타고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기본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기본에 충실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요즘 매주일 듣고 있는 설교 속의 주인공인 느헤미아가 이 원리를 잘 보여 줍니다. 느헤미아는 매우 평범한 직업인이었습니다. 왕궁에서 음식을 서브하는 노예였습니다. 그것도 술 시중을 드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보통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보통사람이 역사적 인물이 되는 과정은, 인류사에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느헤미아의 삶의 스타일을 따라 한다면, 우리 인생도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대사를 이루는 원리”라고 정했습니다. The Principle to Achieve Great Work (Nehemiah 4:16-23)
Nehemiah 4:16-23
16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한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9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20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21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그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간절할 소망을 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아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야외에 텐트를 설치하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정신과 신앙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제건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독립국으로 국가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이웃나라로부터 받던 수치과 멸시를 던져 버리고, 자주 국가로 당당하게 일어하는 거대한 민족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로 똘똘 뭉칩니다.
이때, 이웃 국가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의 이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공격합니다. 동쪽의 암몬 족속, 서쪽의 아스돗 사람들, 남쪽의 아라비아인들, 그리고 북쪽의 산발랏이 이끄는 호론 족속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11절에,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유다 사람들을 죽이자. 그들이 하는 일을 그만두게 하자”고 계획을 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내부적으로 불평과 불만이 폭발합니다. “우리는 이런 큰 일은 할 수 없다. 약한 우리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적들의 말을 들고, 자신들이 죽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순간에 느헤미아와 함께 앞장섰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본문 21절을 봅니다.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So we continued the work with half the men holding spears, from the first light of dawn till the stars came out [NIV].
동틀 때부터 별이 날 때가지 공사를 하고, 창을 잡았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하자, 마음 속에 있었던 소망을 향해 더 전력투구합니다. 평상시보다 더 열심으로 꿈을 위해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3] 영어 성경 앞을 주목해 보십시오. “So we continued the work, 외적으로 내적으로 공격에 직면하자 우리는 계속적으로 꿈을 이루는 일을 진행했습니다.” 위험한 순간에 낙심하지 않고 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어디서 나왔습니까? 소망이 크고, 소망을 향한 간절함이 큰 사람일수록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4] 무너진 민족을 다시 세우려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공격과 내부의 부정적인 불평을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23절을 주목합니다.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During this time, none of us-- not I, nor my relatives, nor my servants, nor the guards who were with me-- ever took off our clothes. We carried our weapons with us at all times, even when we went for water [NRSV].
연합군이 침공해 온다는 소식과 내부적 불만이 터진 상태에서, 느헤미아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옷을 벗지않는 상태로 생활합니다. 잠잘때도, 옷을 벗지 않고 잡니다.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옷을 입고, 비상사태를 준비합니다.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총을 들고 있습니다. 적들이 공격하면,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소망이 없는 상태에서, 절망 대신에 더 마음을 굳게 했던 힘은, 그들 안에 있던 큰 소망에 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소망이 이끄는 삶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들은 모두 마음 속에 큰 소망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직면하는 어려운 장애물들을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5]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빠져 죽음의 위기를 만나고, 살았지만 노예로 팔리고, 또한 감옥에도 갑니다. 그럼에도 그가 절망하지 않았던 원인은, 요셉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큰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40년의 광야 생활을 이결 낼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맘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강한 소망은 그들이 광야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쓰임 받은 인물은 바울입니다. 그는 자신이 당했던 어려움을 고린도 후서 11장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감옥에도 많이 갇혔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매을 많이 낮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서른 아홉대 맞는 태형을 다섯번이나 당했습니다” (고후 11:23b-24).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고 사명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소망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절망 속에서 자신이 소망을 갖을 수 있었던 이유를 빌립보서 3:13-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For God is working in you, giving you the desire and the power to do what pleases him. Do everything without complaining and arguing [NLT].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뿌만 아니라, 그 소망을 이루도록 힘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과 상황을 보면서 불평하거나 논쟁하지 말아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행동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본문은 대사를 이루는 또 다른 원칙을 말씀합니다. 마음 속에 큰 소망이 있는 사람이, 이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합한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본문 16-18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연합군의 공격과 내부의 불평 속에, 느헤미아와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미션 완성을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일을 실행합니다. 느헤미아는 자신과 일하는 사람들을 두 팀으로 나눕니다. 한 팀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팀은 적과 싸울 수 있도록 무장합니다. 일을 관독하는 사람들도 세웁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한 손에는 무기를 소지하도록 합니다. 행동하는 것, 즉 일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여깁니다.[6]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에게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아는 분명히 20절 후반부에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싸우실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14절에서는, “너희는 적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대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Our God is great and awesome!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걱정 근심하지 마시오! 우리의 하나님께서 싸워주실 것입니다. 아멘. 논리적으로 따지만 이제 느헤미아가 해야 할 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싸우는지 구경만하면 됩니다. 우리 교회 현실로 비유하면, 제가 이렇게 권면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교회 건물 소유권을 우리에게 소망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기만 하면됩니다.”
그런데, 느헤미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백성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할 일을 맡겨 줍니다. 백성들은 모두 느헤미아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한 손에는 무기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일을합니다. 왜,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운다고 말해 놓고, 행동은 그렇게 취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삶에 자원으로 쓰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아는 이 원리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7] 아니, 그는 하나님은 누구신지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씨를 뿌릴 때, 하나님께서는 씨가 싹이 나고 자라도록 비를 내리시고, 햇빝도 내리쐬주십니다. 씨까지 뿌려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까지 해 주시지 않습니다. 가을이면 수확의 꿈을 가진 농부들은 이 원리를 너무나 잘 압니다. 씨를 뿌리며 땀흘려 일을 합니다. 씨가 싹이트고, 자라 열매가 맺기 위해서 절대로 햇빝과 비가 필요하지만, 자신들이 이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농사를 맡깁니다. 맡겼다는 것은 농사 자체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충성스럽게 한다는 뜻입니다.
행동의 씨앗을 뿌렸던 사람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동역입니다. 사람이 할 일을 정해 놓으시고, 그 일에 순종하는 곳에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함을 축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 “네 나라와 네 친척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익숙했던 곳, 아브라함이 의지했던 친척과 부모를 떠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떠났을 때 복의 근원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과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줬다"고 말씀하십니다 (수 6:2). 그런데,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뀌씩 6일을 돌고, 7일 째 되는 날은 일곱 바퀴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라고 말씀합니다 (수 6:4).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합니다.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 그 작은 것을 가져 왔을 때,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의 작은 씨앗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 소유권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원하십니다. 하루에 한번씩 신실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대사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무너진 성벽을 제건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는 원리를 말씀합니다. 큰 소망이 클 수록, 장애물은 작아진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든든이 붙잡으면, 현실에 직면한 어려움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사람은 실천가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방식은 혼자 하시지 않고, 사람과 동역합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은 하나님의 거대한 일을 이루게 됩니다. 20절은 또 다른 원리를 말씀합니다.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Wherever you hear the sound of the trumpet, join us there. Our God will fight for us! [NIV].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리라! Our God will fight for us!”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을 이루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의 하나님께서 그 장애물을 치워 주십니다. 느헤미아가, 사방이 막힌 감옥과 같은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8] 사람들이 불평하고 의심하는 상황에서 느헤미아가 요동함이 없었던 이유는, 우리 안에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환경이 아닙니다. 장애물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상황과 환경에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합니다. 용기가 있습니다
다윗의 간증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괸해서 알고 있습니다. 소년 다윗이 싸움 전문가인 골리앗과 싸운다고 할 때,사람들이 말렸습니다. “너는 골리앗과 싸울 수 없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다. 그런데 너는 아직 어린아이 일뿐이다” (삼상 17:33). 당시의 왕이었던 사울왕은 다윗에게, “너는 소년이야!”을 강조합니다. “You are only a boy!”세상을 모른 다는 것이죠. 현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는 거대한 장애물인 골리앗 앞에서 낙심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싸움에 나갑니다. 다윗이 인생 경험이 없어 철이 들지 않아서 고집 부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려서 현실을 판단하지 못해,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질문입니다. 왜 다윗이 모두 두려워 할 때 골리앗 앞에 나갔습니까? 왜 다윗은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직면했습니까? 그 원인을 역대상 29;11-12절에서 밝힙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비록 소년이였지만, 다윗은 사람을 크게 하고, 강하게 하고, 능력있게 하는 것은 환경이나 사람 자체가 아닌,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에 되어가는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을 알았기 때문에,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요동함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 할 때, 당당하게 골리앗 즉 장애물을 맞대서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위대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교회 소유권 이전 문제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맘에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크고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순종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역하여, 큰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응답 찬송: 585 (384)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공동 기도:
1큰 꿈을 갖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위대한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2앞에 있는 장애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맘은 언제든 하나님께 고정하게 하옵소서.
3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게 하옵서서.
[3]John White, Excellent in Leadership: Reaching Goals with Prayer Courage & Determination (Downers Grove, Illinois: Inter Varsity Press, 1986), 57. 땀흘리는 리더가 진정한 지도자라며, John White는 느헤미아이 리더십을 이렇게 평가한다. “Nehemiah is not the type of leader who avoids sweating. For him leadership is not status, exempting him from common tasks to concentrate on more ‘important’ work. In his first address to Jerusalem Jews he cries, ‘Let us start rebuilding’ (2:18). The words are significant. The ‘us’ is not a rhetorical device. It becomes clear in chapter 4 that he joined in the physical work and the physical hardships.”
[4]Raymond Brown, The Message of Nehemiah, The Bible Speaks Today (Leicester, England/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98), 83.
[5]Charles R. Swindoll, Hand Me Another Brick: How Effective Leaders Motivate Themselves and Others (Nashville: Thomas Nelson, Inc., 1978), 137. Swindoll은 리더의 자격 조건으로 통찰력을 제시한다. 그리고 통찰력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Insight is an essential trait for leaders. A leader must be able to see the big picture, to project into the tomorrows of any undertaking, to visualize the outworking of a plan. No leader can stay riveted to today. He must see the results of his ‘now’ ahead of time.”
[6]J. I. Packer, A Passion for Faithfulness: Wisdom From the Book of Nehemiah (Wheaton: Crossway Books, 1995), 72-81. Packers는 일 (work)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셋으로 구분했다. 첫째,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의 일환으로 창조적 활동과 사역을 이루는 수단이다. 둘째, 생체 리듬으로 휴식의 반대 되는 부분이다. 신체가 밤에는 휴식하고 낮에 하는 것이 일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인간은 일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인간은 일할 때 만족하며, 일을 통해 완전해지는 것이다.
[7]White, Excellent in Leadership, 57. John White는 참된 영성은 땀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며, 영성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Some people convey the impression that work is not spiritual, that spirituality and sweat are not partners but rivals. I appreciate their point. Activity, whether physical or mental, is no gauge for effectiveness. The Christian world is full of useless activity. There are rounds of pointless meetings that serve only to keep the saints from getting bored. But activity is not work. Work is activity in the Lord. And activity in the Lord may means sweat.”
[8]Gene A. Getz, Nehemiah: A Man of Prayer and Persistence (Ventura, California: Regal Books, 1981), 97. 우리 삶에 최종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원리는 느헤미아서 전체에 흐르고 있다. 또 이 원칙은 사도 바울의 사역이 강조하고 있다 (엡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