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
미국에서 1월 15일은 국가 공휴일 입니다. 이날은 마틴 루터 킹의 날 (Martin Luther King Jr.)이며, 이분의 생일입니다. 마틴 루터 King 목사는 “흑인이 백인과 동등해서는 곤란하다”는 짐 크로우 법 (Jim Crow Laws), [1] 즉 흑인 단속 법을 패지 시키고,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는 법을 만들게 했습니다. King 목사 이전에, 미국에는 흑인은 백인 학교에 다닐 수 없고, 백인들이 사는 지역에 거주할 수 없고, 백인과 같은 화장실을 쓸 수 없고, 흑인은 버스 앞쪽에 앉을 수도 없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톤 DC에서 했던 연설로 인해, 이 법이 패지 됩니다. 그 때 했던 연설의 제목은 “I have a dream”이었습니다. 이 연설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날,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예전에 노예였던 사람들의 아들들과 예전에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아들들이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꿈을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네 명의 자녀들이 피부색으로 판단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에 따라 평가 받는 그런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이방인 신교도와 구교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인 ‘드디어 자유’ ‘우리는 드디어 자유인’을 노래할 그 날을 나는 꿈꾸고 있습니다.”[2]
킹 목사가 가졌던 이런 꿈은 그 당시 흑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생각이었습니다.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흑인들 뿐만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2009년 1월 21일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전 세계는 마틴 루터 킹이 꿨던 그 꿈이 이제 실현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간은 지났을지라도, 킹목사의 꿈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마음에 품는 것을 비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 즉 “비전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고 가르칩니다 (잠 29:18).[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비전을 주신다는 뜻입니다.[4] 더 쉬운 말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가 살펴 보는 느헤미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느헤미아에게 주신 인생의 기회였습니다. 그 기회를 느헤미아 2:12a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
The plans God had put in my heart for Jerusalem
느헤미아가 받았던 새로운 기회는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계획이었습니다. “The Plan God had.”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주신 새로운 기회였습니다. 분명한 인생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는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의 책임은 그 기회를 이루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대로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새로운 기회를 성취하는 비결”입니다. 비전을 이루는 인생길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The Principle to accomplish the new opportunity (Nehemiah 6:1-14).
Nehemiah 6:1-14
1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2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3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5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6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사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8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10이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11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14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다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환경이 좋을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느헤미아는 유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총리가 되었습니다. 높은 자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특권을 제공합니다. 권력, 명예, 돈, 뿐만 아니라 많은 새로운 기회를 가져옵니다. 훌륭한 지도자일 수록, 이 기회를 남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고 위대한 일을 하는데, 지혜롭게 사용합니다.[5] 느헤미아 5:15절에 보면, 느헤이아 이전의 총독들은 자신들의 높은 자리를 이용해서 많은 유익을 챙겼지만,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그들처럼 행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대신, 자신의 높은 자리를 이용해서 어려운 사람들의 편이 되어, 선한 일을 하는데 헌신합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하나되어 예루살렘 성벽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릅니다. 이제 몇일만 지나면, 환성을 지르며 리본 테이프를 끊는 성벽 완공 축하 파티가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을 훼방하는 세력들이 또 등장합니다. 1절에, 산발랏과 함께한 느헤미아의 원수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축을 거의 완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기 록합니다. 이제 공격이 시작됩니다.
믿을 수 없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싯점에서 무너집니다. 열심으로 최선을 다해 어려움도 이겨냈던 사람이 목표를 눈 앞에 두고, 쓰러집니다. 사람들이 쓰러지는 경우는, 현재 어렵고 힘들 시기를 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현재 일이 잘풀리는 사람들이 더 쉽게 무너집니다. 군대에서도 사고를 제일 많이 내는 군인은 이제 막 군생활을 시작하는 신병들이 아닙니다. 제대를 눈앞에 둔 병장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So,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firm, be careful that you don't fall! [NIV]” (고전 10: 12). 혹시 여러분의 인생이 잘 풀리고 있습니까? 조심할 때입니다. 무슨 일일 발생합니까? 아니, 공격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합니까? 본문 2절을 주목합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So Sanballat and Geshem sent a message asking me to meet them at one of the villages in the plain of Ono. But I realized they were plotting to harm me [NLT].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아를 오노 평지에서 서로 만나자고 제안합니다. “서로 만나자”는 제안은 겉으로 보기에 평화조약을 맺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성벽을 다 재건 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너희도 하나의 독립 국가로 인정할 것이다. 그러니 만나서 정상 회담을 하자는 제안처럼 보입니다.[6] Boice는 산발랏의 제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느헤미아, 우리가 당신들의 프로젝트를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이제 쓸모가 없소. 비록 전에는 그랬지만, 우리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이 성공적인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의 훼방은 아무 쓸모가 없소. 이제 좋든 나쁘든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오. 당신 나라도 하나의 정부로서 그리고 우리나라도 하나의 정부로서 공존해야 하오. 우리 친구가 됩시다. 이 일을 위해서 양국의 정상 회담이 필요하오.”[7] 국가의 독립을 주변 국가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처럼 보입니다.
한결 같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아는 겉으로 좋게 보이는 이 제안이 자신을 헤치려는 음모라든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안목에서 매우 좋은 것 같은 상황에서 느헤미아는 이것이 음모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사단의 교묘한 계획을 분별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니, 사단의 유혹을 피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기회는 어떻게 이룰 수가 있습니까? 본문 3절을 봅니다.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So I sent messengers to them with this reply: “I am carrying on a great project and cannot go down. Why should the work stop while I leave it and go down to you?” [NIV].
느헤미아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좋은 기회인 것같았지만, 거절합니다. 거절하는 이유가 적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며 자신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3절 뒤쪽에 느헤미아가 이들의 제안을 거절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성공적으로 이루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어찌하여 역사를 중단하고 내려 가겠느냐?I am carrying on a great project! Why should the work stop!” 느헤미아는 자기 인생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마음에 주신 것에 일관된 마음을 가졌습니다. 느헤미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큰 역사,” 즉 “위대한 프로젝트 A great project”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위대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 일에 집중되기 때문에, 잡다한 유혹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눈에 보기로는 그 모임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같지만, 그 음모를 분별할 수 있었던 비밀은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4절에, 적들이 느헤미아에게 네번이나 사람을 보내서, 유혹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아는 똑 같은 대답으로 그들을 거절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헌신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좋은 것 같은 환경에도 하나님의 사람은 그 목표가 요동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은 사탄의 일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8] .
교회의 최고 적은 나쁜 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인생의 기회를 줍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1-2). 엄청난 기회가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이름이 유명해집니다. 복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아브라함의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책임이 동반됩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입니다. 개인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이룬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일을 잘 분별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무엇이고, 사람인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사람들이 인생을 아름답게 꽃피웁니다. 느헤미아는 이 원리를 잘 알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처신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5-6절을 주목합니다.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느헤미아를 무너지게 하려는 산발랏이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가 봉해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읽어도 괜찮다는 의도입니다. 그 편지를 읽은 사람이 편지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습니다.[9] 그런데, 그 편지 내용은 느헤미아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입니다. 온 사방에 소문이 돌고 있는데, 느헤미아가 성전을 재건해서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느헤미아와 유다 사람들이 페르시아 왕을 배반하려는 계획을 가기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7절에 보면, 이 소문은 이미 페르시아 왕에게도 들어 갔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제 느헤미아의 운명은 어떻게 됩니까? 페르시아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자신을 반역한 느헤미아를 없애지 않겠습니까? 적들은 느헤미아에 관한 나쁜 말들을 만들어서 온 사방에 퍼뜨립니다. 느헤미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만든 수단입니다.
루머, 즉 소문이 무엇인지 깊게 묵상해 보셨습니까? 거짓된 소문은 누구를 막론하고 당사자에게 큰 상처를 남깁니다. 소문은 당사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척 스위돌 목사는 소문에 관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확신하기로는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the number one enemy 첫번째 적”은 거짓된 혀다. 술 마시는 것도 아니고, 마약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것도 아니고, TV도 아니고, 심지어는 교회의 좋지 않은 프로그램도 아니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거짓된 혀다.” [10] 왜 그렇습니까? 거짓말의 근원 때문입니다. 성경은 거짓된 소문의 근원이 누군지를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사탄이 거짓의 아비이고, 속이고 거짓말 하는 것은 사탄으로부터 발생하며,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자다고 가르칩니다 (요 8:44). 살인하기 위해 사탄은 거짓말 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 자신이 느헤미아처럼 소문의 당사자 된다는 것은 심적 큰 고통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처 받고, 절망할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은 느헤미아의 태도를 통해서 두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 느헤미아는 거짓말을 하는 그 사람들에게 딱 잘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말을 만든 당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8절을 살펴 봅니다.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Then I sent to him, saying, “No such things as you say have been done; you are inventing them out of your own mind”[NRSV].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어떤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산발랏에게 “사람이 왜 거짓말을 만들어내”라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고소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저 사람 좋지 않는 사람이다고 똑 같은 행동도 취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마 18:15).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두 번째 원리는 무엇입니까? 9절을 봅니다.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For they all wanted to frighten us, thinking, “Their hands will drop from the work, and it will not be done.” But now, O God, strengthen my hands [NRSV].
적들의 모든 음모를 다 알고 있는 느헤미아는 거짓 소문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느헤미아는 성벽 재건이 누구의 계획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일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일은 하나님께서 추진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일은 손에 힘을 얻어 공사하는 것입니다. 적들과 맞서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느헤미아는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잘 알았습니다.[11] 함께 16절을 읽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라”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길입니다. 사람이 할일과 하나님께서 할일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성공적으로 이루는 비결입니다. 사람과 다투고 환경에 반응하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바꾸고 환경을 변화 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책임은 충성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지러어도, 맡은자가 구할 것은 단지 충성입니다.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게 되면,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사람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느헤미아의 원서들이 달콤한 말로 느헤미아를 죽이려고 계획를 짰지만, 느헤미아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원수들이 거짓된 소문을 만들어서 그를 끄러 내리려고 했지만, 느헤미아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탄들이 마지막 꺼낸 카드가 무엇입니까? 10절 보면, 스마야라는 사람이 느헤미아게 말합니다. “적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올테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가서 외소 안에 숨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당신을 죽일 것이요.” 피해서 숨자고 제안합니다. 성전에 있는 외소는 제사장만 들어 가는 곳입니다. 지성소 (Most Holy)에 들어 가기 바로 전 장소 즉 성소 (Holy Place)를 뜻합니다. 스마야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가 성소에 들어가자고 제안한 것을 보면, 스마야는 일반 신자가 아닌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스마야의 말을 들어 보면, 함정이 있다는 것이 것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아는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외소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데리고 가려는 것은 무슨 의도가 있습니다. 12-13절을 읽습니다.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적들이 뇌물을 주고 스마야를 샀습니다. 아니, 제사장이 뇌물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해도 느헤미아가 넘어가지 않으니, 느헤미아와 가장 가까운 내부 사람을 통해서 공격합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동일한 카드를 사용합니다. 외적인 공격으로 넘어가지 않을 때, 내부적으로 교묘하게 분난을 만들어서,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내부 사람을 통해서 두렵게 만듭니다. “그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그러자, 느헤미아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본문 11절을 주목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But I replied, “Should someone in my position run from danger? Should someone in my position enter the Temple to save his life? No, I won't do it!” [NLT].
이 소중한 일을 하다 말고 내가 왜 도망갑니까? 제사장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이 성소에 들어가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죽입니다.[12] 느헤미아는 제사장의 말을 거절합니다. 그이유는 너무 분명합니다. “어찌, 나 같은 직분을 맡은 자가 무서워서 도망합니까? Should someone in my position run from danger?” 국가의 대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도망을 갑니까? 느헤미아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결코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13]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았고, 죄를 충동시키는 윗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5:15절에서 느헤미아는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그런일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생의 기회를 이루는 사람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대신,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응답 찬송: 491 (543)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공동 기도 제목:1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온전히 이루는 인생길 되게 하소서
2나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3.마음과 입술을 지켜서 선한 말, 생명을 살리는 덕스러운 말을 하는 자게 되게 하소서
4.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1]“짐 크로법”이란 1904년에 처음 등장했다.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고 했던 음악 코메디 쇼 (Minstrel Show)에서 유래했다. 백인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으로 분장한 블랙 페이스가 주요 캐릭터인 코메디 쇼에서, 짐 크로는 시골의 초라한 흑인을 희화화한 인물이었다. 1838년 “짐 크로”는 “니그로” 즉 깜둥이를 뜻하는 경멸적인 표현이 되었고, 흑인을 겨냥한 인종 분리 정책이 19세기에 시행되었을 때 그것들은 “짐 크로법”이라고 불렸다.
[3]잠언 29:18절의 “묵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존 !Azx'”인데, 하나님의 계시를 뜻한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하존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vision” (KJV, NASB, NJB), “revelation” (NIV, NKJV), 혹은 “divine guidance” (NLT)로 번역한다.
[4]New Living Translation은 히브리어 “!Azx'”의 의미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잘 번역했다. “When people do not accept divine guidance, they run wild. But whoever obeys the law is joyful.”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즉 새로운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5]Charles R. Swindoll, Hand Me Another Brick: How Effective Leaders Motivate Themselves and Others (Nashville: Thomas Nelson, Inc., 1998), 101.
[6]Barber J. Cyril, Nehemiah and Dynamics of Effective Leadership (Neptune: Loizeaux Brothers, 1980), 98.
[7]J. I. Packer, A Passion for Faithfulness: Wisdom From the Book of Nehemiah (Wheaton: Crossway Books, 1995), 128. Packer는 다음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James Montgomery Boice, Nehemiah: Learning to Lead (Old Tappan, NJ: Revell, 1990), 102ff.
[8]John White, Excellence in Leadership: Reaching Goals with Prayer, Courage, and Determination (Downers Grove, Illinois: Inter Varsity Press, 1986), 97.
[9]John G. Butler, Nehemiah: The Wall Builder (Clinton, Iowa: LBC Publications, 1998), 163.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편지는 세심하게 봉해져서 단단하게 묶여진 실크로 마들어진 가방에 담겨서 전달되어졌다.
[12]H. G. M. Williamson, Ezra, Nehemiah, Word Biblical Commentary 16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85), 259 윌리암슨은 느헤미아가 외소에 숨자는 적들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Nehemiah is conscious of his lay status. The sanctuary was reserved for the priests because of its proximity to the symbolic dwelling place of God himself in the inner sanctuary, the Holy of Holies. Not only would Nehemiah have been legally in danger of death (Num 18:7), but he apparently shared the view that direct contact with the divine sphere when in an unprepared state would lead to death (see, e.g., Exod 20:21; 33:20; Deut 5:25; Judg 13:22; 2 Chr 26:16-21)”
[13]Packer, A Passion for Faithfulness, 132-33. 팩커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두려워 하지 않는 느헤미아와 같은 용기는 일반적인 사람은 소유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사로 준 사람만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용기를 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