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의 근거지가 점차 동지중해에서 블루오션 서지중해로 향하고 있었을때 해적에게는 재앙과 다름 없는 일이 시작됩니다.
바로 북아프리카에 강력한 해양민족인 페니키아인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결국은 카르타고란 국가를 세워버린 것입니다.
카르타고는 알다시피 해상무역으로 먹고 살던 국가였고, 해상무역을 하려면 당연히 상선을 호위해줄 해군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결국 서지중해에서 해적은 다시금 알렉산더 이후 점차 약해지던 국가가 있는 동지중해로 무대를 옮기고
다시 카르타고에 쫒겨 이탈리아 반도를 약탈하는 것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반도 역시 점차 로마가 세력을 확장해
감에따라 해적이 육지로 올라가서 마을을 약탈하는 것 또한 점차 힘들어집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해적에게 기회가 왔으니
바로 포에니 전쟁입니다. 두 제국이 치고 받는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해적을 신경쓸 겨를이 없는 두 국가는 해적이
날뛰어도 따로금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워낙 고대세계에서 큰전쟁이었으니까요. 이렇듯 해적에게 다시금 기회가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육지에서 바다에서 로마와 카르타고가 일전을 벌이고 있었을때 양국가의 해안가는 해적들의 약탈로 몸서리를
앓아야 했지요. 포에니 전쟁은 워낙 유명하고 임용관님이 한참 로마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니 해적에 관련해서는 이런 정도로
했다고 해야겠지요. 한편 포에니 전쟁은 결국 로마의 승리와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해적에게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지요. 로마는 육상민족이고 육전에 강한 국가입니다. 해상 전투라고 해봤자 카르타고를 따라잡기위해 급하게 급조한 해군을
보유했고, 카르타고가 없어진 이상 해군을 크게 양성할만한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카르타고 이후는 그리스를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던 로마였기에 지중해는 이제 해적의 바다라고 불리워도 좋을 정도로 해적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한때의 영광을 뒤로한 그리스 도시에 처들어가 신전까지 불질러버리고 주민들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노잡이로 삼고 합니다.
한편 로마는 시오노 나나미씨의 저작의 표현처럼 혼미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술라 등등을 걸치면서 육상에
집중하는 전략+국내 내정불안등으로 그 당시 로마는 이 해적들을 처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와 소아시아에서 경쟁하던
미트리다테스 왕은 로마를 견제하기 위해 해적들에게 자금을 대주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코르세어라 할 수 있겠네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해적이 갑자기 진보합니다. 배도 점차 대형화되었고, 고급선원들을 고용했으며 지중해 곳곳에 전진기지를 만들고, 쾌속선을
건조하여 바람과 바다가 불안정한 겨울에도 약탈을 나섭니다. 이렇듯 이 시기는 지중해 해적의 첫 전성기라 할 수있을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철두철미한 로마입니다. 해적이 좋아라 할때 39세의 나이로 로마 집정관에 오른 폼페이우스는
이 해적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해적의 활약으로 곡물수입이
불안정하여 로마의 곡물가격이 폭등하자 폼페이우스의 로마가 칼을 빼들었습니다.
첫댓글 드디어 폼페이우스가 등장하는군요.... 에게해 --> 지중해 --> 에게해 --> 지중해 ... 이렇게 해상 판도에 따라서 해적들이 활동거점을 옮겨다녔군요...
에게 해 자체가 지중해의 일부 수역입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해적들이 번성할 때 항상 피해가 컸던 지역이 에게해입니다. 활동 거점을 옮겼다기보단 에게해를 중심으로 활동 범위가 넓어진거지요.
공화국의 혼란 시대에 해적들이 급증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로마인의 탓이 큽니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벌어진 심각한 수탈과 부의 집중이 속주와 기타 로마 세력권 하의 지방들의 경제를 황폐화시켰고, 터전을 잃어버린 무리들이 해적이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됩니다. 해적들은 포로가 된 로마인에 대해서만 집요할만큼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딸을 납치했으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오스티아 항을 급습해서 항구를 불태운 것은 단순한 약탈자 무리보다 나아가 공화국 자체에 적의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 로마적 헤게모니를 손에 쥔 미트리다테스와 해적들의 관계는 단순한 물주와 고용인 관계를 넘어선 유대관계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해적들은 미트라 신앙을 숭배했고(미트리다테스-미트라가 준 것), 이는 페르세우스와 연관되는데 미트리다테스는 페르세우스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등, 이들사이의 유대는 상당했습니다.
그에 반해 로마인의 대처는 철두철미하다기보다는 타조가 짚단에 머리를 처박는 것과 같이 행동했습니다. 해적들이 날뛰기 시작한지 50년이 넘는 동안 로마는 적극적인 대책을 내지 않았는데, 로마에게 겨를이 없었다기보단 해적들이 중요한 노예 공급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해적이 지방을 황폐화시키든 말든 로마 귀족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졌습니다. 그러다 해적이 로마의 지배적 지위에 적대적인 위협을 가하면서 귀족들의 돈주머니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느즈막하게 대처에 시작하는데, 이것도 귀족들 사이의 견제 때문에 무능한 안토니우스 2세가 지휘권을 부여받았고, 해적들은 로마군을 즐겁게 찜쪄먹었습니다.
심지어 긴급한 상황에서 폼페이우스가 거대한 지휘권을 손에 넣을 때도 원로원에서는 카이사르를 제외하면 이를 탐탁찮아 했지요.
어후 이런 뒷배경이 ㄱ-
아~ 그런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었군요... 좋네요^^
그런 깊은 적대감이 있었군요.
결과적으로 로마가 키워낸 괴물이니 로마에게 적대감을 느낄 수 밖에요...어떤 해적들은 로마인 포로가 잡히면 깜짝 놀라 경외하는 척 하며 토가를 입히고 절을 한 뒤, 사다리를 놓아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요.
아 그 배에 삐죽 튀어나온 외나무나무판을 내놓고 거기 끝까지 가다가 끝에서 퐁당 바다에 빠져 죽는 게 그때 생간 거군요 -_-ㅋ
헉~ 바다 한 가운데서요? 그럼 죽음이겠네요...
게볼공의 설명에 조금 첨언을 하자면 이렇게 커져버린 해적의 병폐를 뿌리뽑긴 정말 빡셨지요. 오죽하면 카이사르도 소시적에 해적에 잡힌 유쾌한(??) 일화가 있을 정도고, 결국 원로원이 폼페이우스에게 일정 작전 지역에 대한 [계엄령 발동권+자율 징병권+자율 징발권+집행권]등등과 비슷한 파격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수년에 걸쳐서 꼭 공비토벌 하듯이 진압을 하고서야 겨우 진압이 가능했습니다(.....)
사실 쥐잡듯이 때려잡은 것도 크지만, 폼페이우스가 이례적으로 포로들에게 농토를 줘서 고향으로 돌려보낸 것도 이후 해적들이 줄어드는 큰 이유지욥
빗자루로 낙엽쓸듯 싹 쓸어버렸죠 ㅎ
폼페이우스가 강경책과 유화책을 동시에 구사했군요...
동쪽이나 서쪽이나 해적이 상당히 골치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