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키스타도르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odo)의 초상화, 그는 코르테스의 아스텍 정복에 부관으로 참여했으며, 이후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의 키체및 칵치켈 마야제국들을 정복하여 과테말라 총독이 되었습니다. 이후 잉카 정복에 참여하려다가 무산되었지만, '말그대도 아스텍, 마야, 잉카 정복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올라운드 콩키스타도르...가 되겠습니다.
1521년 6월, 콩키스타도르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의 부관이자 동갑내기 친구였던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는 조선공 마르틴 로페스(Martin Lopez)가 만든 쌍돛범선을 이용, 아스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 북쪽도시인 틀라텔롤코(Tlatelolco)에 상륙하였습니다. 유난히 붉은 머리가 특징인 페드로 데 알라바도는 1년전 톡스카틀 축제당시 아스텍 귀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코르테스에게 '슬픔의 밤(Noch Triste)'라는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주범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신중했던 코르테스와 달리 무자비 하고 생각보단 행동이 앞서는 인물이었기에 이번 상륙도 그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듯 했죠.
알바라도는 아스텍 황제인 쿠아우테목(Cuautemoc)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그의 군대는 틀라텔롤코에 상륙해서 지루한 테노치티틀란의 포위전을 마무리 지을려고 했지만, 곧 아스텍 전사 수천명과 마주치게 됩니다. 아스텍 전사들은 숫적 우위에 있었으나 알바라도 군대의 화승총및 화약무기에 두려움을 떨어 쉽게 나서질 못했습니다. 이때 한 힘센 전사 하나가 돌을 던져 스페인 병사 몇몇의 머리에 헤드샷을 꽃혀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이는 트실라카트신(Tzilacatzin)이란 위대한 영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521년, 슬픔의 밤때의 뼈아픈 패배의 기억을 절실히 느낀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계획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아스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틑란을 공략하기로 합니다. 4월 28일 코르테스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관 셋인 곤살로 데 산도발(Gonzalo de Sandoval), 크리스토발 데 올릿(Cristobal de Olid),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에게 군대를 세갈래로 나누어 테노치티틀란의 주변 동맹도시들을 모조리 정리하라 명합니다.
아스텍 정복당시 일반전인 스페인 보병들, 단 가운데 머스킷 총병과 오른쪽의 창병이 쓴 형태의 모리온 투구는 좀더 후대에 주로 쓰였습니다
테노치티틀란 공방전당시 코르테스의 원주민 동맹군 수장들의 복장, 각각 틀락스칼라와 텍스코코의 수장들입니다
1521년 5월 10일, 크리스토발 데 올릿은 33기의 스페인 기병, 18명의 스페인 석궁병, 160명의 스페인 검방보병(로델레로), 2만명의 원주민 동맹군을 이끌고 테노치티틀란의 남서쪽 도시인 코요야칸(Coyoyacan)을 점령하였으며, 곤살로 데 산도발은 24기의 스페인 기병, 4명의 스페인 머스킷 총병, 13명의 스페인 석궁병, 150명의 스페인 검방보병, 3만명의 원주민 동맹군을 이끌어 테노치티틀란의 남동쪽 도시 이스타팔라파(Iztapalapa)를 순식간에 점령했습니다. 알바라도 같은 경우는 무모한 공격으로 자칫 자신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30기의 스페인 기병, 18명의 스페인 석궁병, 150명의 스페인 검방보병, 2만 5천명의 틀락스칼라 전사들을 지휘하여 테노치티틀란의 서쪽도시인 타쿠바(Tacuba)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의 인근 도시들이 차례차례 함락당하자 아스텍인들에겐 불행이 아닐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테노치티틀란과 텍스코코와 함께 삼각동맹의 주를 이루었던 타쿠바의 함락은 예전에 타쿠바의 영주였던 현 아스텍 황제 쿠아우테목과 그의 전사들에게 큰 충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의 불행은 아군의 행복이듯이 코르테스는 주요도시를 정리한 끝에 산도발, 올릿, 알바라도의 세명의 부관들로 나누어진 군대로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대한 효과적인 포위공격을 할수있게 되었습니다.
1521년 5월 31일, 코르테스는 올릿, 산도발, 알바라도에게 각각의 위치에서 공격하라고 명했으며, 조선공 마르틴 로페즈(Martin Lopez)가 만든 13척의 쌍돛범선을 이용하여 도시에 포격을 가하거나 병력을 수송하였습니다. 스페인인들의 거침없는 공격에 젊은 아스텍 황제 쿠아우테목은 테노치티틀란의 남쪽을 내주는 대신- 밀집한 건물이 좀더 많아 스페인 기병을 무력화 시킬수 있는, 테노치티틀란 북쪽도시 틀라텔롤코로 작전사령부를 옮겼습니다.
테노치티틀란 공방전당시 틀락스칼라, 스페인군과 아스텍 전사의 전투
이제 스페인 정복자들의 초점은 틀라텔롤코로 맞춰졌습니다. 페드로 데 알바라도는 자신의 군대로 틀라텔롤코로 상륙하는데 성공했으며, 그의 군대는 아스텍 작전사령부를 무력화시켜 전쟁을 서둘러 끝낼 계략이었습니다. 틀라텔롤코에 상륙한 스페인군대를 아스텍인들이 두려움에 대처하지 못하자, 한 힘센 전사가 돌을 던져 스페인 병사 몇몇을 죽이고 알바라도의 군대에 돌진하였습니다. 스페인인들은 머스킷 총을 쏘았으나, 이 힘센 아스텍 전사는 총탄을 능수능란하게 피하면서 스페인 군대와 육탄전을 벌였습니다. 이에 사기가 높아진 아스텍 전사들도 다같이 돌격하였고, 페드로 데 알바라도의 군대는 결국 패퇴하고야 말았습니다.
아스텍 전사들의 복장, 가운데 돌을 들고있는 인물은 트실라카트신의 모습을 추정한 고증입니다
훗날 펠리페2세의 통치시기 신부이자 아스텍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역사가 베르나디노 데 사아군(Bernardino de Sahagun)은 알바라도의 틀라텔롤코 공격당시 이 힘센 아스텍 전사에 대해 언급합니다(사아군은 주로 틀라텔롤코 주민들의 이야기등 정보를 인용했음) 사아군은 이 힘센 전사의 이름을 '트실라카트신(Tzilacatzin)'이라 설명하며, 그는 오토미(Otomi)부족 출신의 수장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트실라카트신의 이름뒤의- tzin은 아스텍 왕족이나 고위귀족, 영웅들의 이름뒤에 붙이는 접미사입니다. 이를 보면 당시 아스텍 전사들이 잘알려지지 않은 영웅을 얼마나 흠모했는지 알수있습니다. 트실라카트신은 오토미족 출신이었고 알바라도의 군대와 마주칠때의 모습을 볼때 매우 용감했으며, 강한 힘을 지닌 전사였을겁니다. 사아군의 정보처럼 그는 석궁이나 총포 소리가 들릴때 바로 피할줄 알았으며, 스페인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평민전사(마세우알틴) 복장을 하고 나타날때도 있었습니다.
시우아코아틀의 깃발, 오툼바 전투당시 사령관직을 맡았던 시우아코아틀은 깃발을 들고 화려한 장식으로 위용을 과시하다 코르테스에게 발각되어 결국...
1520년 7월 7일 오툼바 평원에서 벌여진 전투(Battle of Otumba)당시 슬픔의 밤 패배로 수세에 몰리던 코르테스의 군대를 다 잡아가던 아스텍 사령관 시우아코아틀(Ciuacoatl)이 깃털로 치장된 자신의 군기와 가마를 통해 화려한 위용을 과시하다 코르테스와 부관들에게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했고 전세를 역전되었습니다. 당시 아스텍을 비롯해 메소아메리카인들은 화려한 깃털장식이나 케찰새의 깃털이 많이 치장될수록 높은 계급의 전사였습니다. 코르테스를 비롯한 정복자들은 이 점을 잘 활용했고, 그들은 깃털이 많이 치장된 고위전사들만 집중 공격해서 아스텍 지휘체제를 무너뜨리는 전술을 사용하였죠.
아스텍 고위전사였던 쿠아치퀘(Cuachicue)의 모습(앞열), 이들은 아스텍 사령관인 틀라코치칼카틀(Tlacochicalcatl)을 호위하는 임무를 띄었습니다. 그의 닭벼슬 머리는 일명 '오토미 족 스타일'입니다.
이를 막고자 트실라카트신은 옷장식을 매번 바꿔가면서 스페인인들에게 대항하였습니다. 코르테스의 원주민 동맹군(틀락스칼라, 텍스코코, 왁소싱고, 찰코, 토토낙)과 맞설때는 화려한 깃털장식 옷으로 치장하여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켰으며, 스페인 군대와 맞서싸울때는 평범한 전사의 복장을 입고 용감히 맞서 싸웠습니다.
아스텍의 고위전사인 쿠아치퀘와 사제전사 그리고 일반적인 삼각동맹의 전사의 모습을 알려주고있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트실라카트신은 스페인이나 원주민 동맹군 사이에 매우 두려운 존재로 부각되었습니다. 코르테스는 트실라카트신을 매번 죽이기 위해 안달났지만, 그는 교묘히 피하면서 스페인인들과 원주민 동맹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알바라도의 공격이후, 스페인인들은 소코티틀란 지역에 쌍돛범선을 이용하여 군대를 상륙시켰습니다. 하지만 트실라카트신과 그의 전사들이 맹렬한 공격을 했기에 배를 돌리고 후퇴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트실라카트신에 대해 기록한 역사가 베르나디노 사아군이 틀라텔롤코 주민들의 이야기를 인용했다는 한계성인지, 코르테스가 테노치티틀란과 틀라텔롤코를 점거하고 아스텍 제국을 멸망시킬때 트실라카트신은 어떻게 됬는지 알수없습니다.
플로렌스 사본에 묘사된 트실라카트신의 모습.
하지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아스텍의 위대한 영웅으로 하여금 코르테스의 공격에 아스텍인들의 저항이 얼마나 거셌는지 느끼게 해줍니다. 다음은 베르나디노 사아군의 저술에서 트실라카트신에 대한 기록입니다.
트실라카트신은 적들을 조롱했다. 스페인인들뿐만이 아니라 코르테스의 원주민 동맹군까지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알게 된 스페인인들은 그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해 적들의 눈에 띠는 것을 막았다. 입술에 금고리를 달고 왕처럼 화려한 복장을 나타나기도 했고... 오토미 스타일로 깎은 머리(닭벼슬 머리)가 훤히 보일 정도로 머리를 드러내기도 했고... 떄로는 머리에 얇은 수건을 둘러쓰고 몸에는 목화 갑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했고... 어느 때는 독수리 형상의 문양이 있는 투구를 쓴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하고 팔과 발목에는 금팔찌를 단 화려한 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트실라카트신은 후퇴하는 것을 결코 모르는 아스텍의 세 수장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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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대의 마푸체인들이 떠오르는 전사였네요.
본문에서 목화갑옷이라고 번역된게 원어로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목면갑이나 면갑으로 번역하는게 더 정확합니다.
게다가 저 목면갑이란게 실제로는 저지역에서 나는 용설란의 일종인 사이잘의 섬유질로 만들어져 특히나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논문이나 보고서에 나오는 용어 중 재질과 상관없이 섬유를 누벼서 겹쳐만든 갑옷종류들을 폭넓게 지칭하는 누비갑옷(사이잘: 용설란섬유)으로 번역하는게 제일 적절하다고 봅니다.
http://kyb0417.egloos.com/5173254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