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코르테스 초상화-
1521년 8월 13일, 목요일. 성 히폴리투스의 축일에 일어난 사건은 향후 아나우악 땅(멕시코)의 새로운 변화를 뜻하였습니다. 이 변화가 원주민들에게 좋든간, 싫든간 말이죠.
테노치티틀란 함락으로 아스텍 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코르테스는 아스텍을 대신해서 아나우악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새로운 질서'를 체계화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지금, 약 3년간 벌어진 아스텍 군대와의 전투와 4개월을 이끈 테노치티틀란 공방전에서 아낌없는 원주민 국가들의 족장들과 대한 보상과 제국의 몰락과 동시에 스페인 왕국에 충성서약을 다짐한 옛 아스텍 황족들이 처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과거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하러 떠나기 직전 직전 하나의 법령을 발표했었습니다. 그는 이 법령에서 '아스텍 정복을 정당화시키는 이유를 열거하면서, '원주민의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카를로스1세(국왕)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스러운 카톨릭 신앙을 알리기 위해' 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돈 페르난도(코르테스)가 멕시코를 공격하러 떠나기전 틀락스칼라에서 발표한 군사와 민사에 관한 법령, Escritos Sueltos, PP.12~23>
즉, 코르테스는 스스로가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킬 의무가 있으며, 그들이 행하였던 '야만적이고 퇴폐적인 구관습'(물론 코르테스가 생각하기엔)은 타파되어야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아스텍인들과의 전쟁이전 수많은 아나우악땅의 원주민들과 맞닥들였고, 당시 원주민들은 코르테스에게 바로 항복하고 충성을 맹세하기도 하였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의 가장 결실한 동맹군으로 편입되는 틀락스칼라(Tlaxcala)인들은 처음 코르테스 군대를 보자마자, 용감히 맞서 싸웠지만 결국 굴복하였고 이에 코르테스가 처음 요구한것은 '카를로스1세 국왕에 대한 충성맹세및 우상숭배 근절, 기독교를 믿을것'이었습니다.
틀락스칼라와 마찬가지로, 기타 원주민 동맹군도 이러한 요구를 통해, 족장들이 기독교식 세례명을 받고 '원주민 기독교인'으로 나서게 되면서, 과거 아나우악 땅에서 숭배되었던 신앙들은 빠르게 쇠퇴되어갔습니다. 하지만 일부 원주민들은 자신의 신앙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코르테스에게 반항하였습니다. 이러한 '반항적인 원주민'들에 대해 코르테스는 무자비한 조치를 취했으며, 더군다나 1525년이후 물밀듯이 건너오는 프란치스코 회 수도사들의 활발한 선교활동은 구 아나우악땅의 신앙이 다시는 들어설수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종교를 하나로 묶은 코르테스에게 남은것은, 새로운 질서 하의 원주민 동맹국과 아스텍 황족들에 대한 처신이었습니다. 코르테스는 자신의 과거 가장 절실한 동맹군이었던 틀락스칼라에 대해 세금및 각종 부역이 면제토록 하였으며, '기독교 체제를 유지한다는 조건하에 어느정도 고유 문화에 대한 존중'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로써, 틀락스칼라는 아스텍 멸망이후 아나우악땅에서 가장 '구 문화가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 남아있을수 있었으며, 일부 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아스텍 문화와 종교를 알기위해 틀락스칼라로 답사를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습니다.
틀락스칼라외, 과거 아스텍의 삼각동맹 일원이었다가 코르테스에게 붙은 텍스코코(Texcoco)도 이와 흡사했습니다. 아스텍 세력과의 왕위계승권에서 밀려난 일부 텍스코코 왕족및 귀족들은 코르테스에게 붙었고, 테노치티틀란 공방전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기에, 아스텍 정복이후 코르테스는 자신을 후원했던 텍스코코 왕족 돈 페르난도 테코콜친(Don Fernando Tecocochin)을 텍스코코 지도자로 앉혔습니다.테코콜친 사후, 그 자리는 역시 코르테스에게 충성했던 돈 페르난도 이와스픽삭신(Don Fernando Ahuazpitzactzin)에게 이어졌습니다.
동맹군 지도자들외, 항복한 아스텍 수장들에 대한 처신도 이와 흡사했습니다. 코르테스는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아스텍 황족들에게 매우 관대하였는데, 그 예중 하나가 과거 아스텍과의 전쟁당시 아스텍 최고위 수장이었던 시우아코아틀(Cihuacoatl)직위를 맡은바 있는 틀라쿳신(Tlacutzin)입니다. 그는 과거 열성적인 저항자였으나, 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되면서, 코르테스에게 항복하였습니다. 코르테스는 그가 과거 아스텍 최고직위의 수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직위를 인정시켜주었으며, 파괴된 테노치티틀란(멕시코 시티)를 재건하는 임무를 맡게 해주었습니다. 그가 감독한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대한 보상으로, 고위직책과 건물, 엄청난 땅, 하인을 소유한 새로운 질서 하의 '최초의 멕시코인'이 되었습니다.
그외 아스텍 황족으로는 아스텍 마지막 황제였던 쿠아우테목(Cuautemoc)의 부인인 도냐 이사벨 테쿠이츠폿신(Dona Izabel Tecuiztpotzin)이 있습니다. 그녀는 쿠아우테목이 모반혐의로 처형당한뒤에도, 상당한 재산과 토지를 코르테스에게 받았으며, 그의 부관이었던 알론소 데 그라도(Alonso de Grado)와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그녀는 '과거 아스텍 황제였던 몬테수마2세의 상속녀'라는 권리가 있었고, 이때문에 그라도가 죽은뒤 다른 에스파냐인과 결혼하면서 상당한 사치 생활을 누릴수 있었습니다. 테쿠이츠폿신 때문에 몬테수마의 혈통은 19세기 초반까지 '외가로써 존재하게 할수있었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코르테스 휘하로 편입된 원주민 지도자나 아스텍 황족들에게 '돈(에스파냐 남성이름앞에 붙이는 존칭)'이나 '도냐(Dona, 에스파냐 여성에게 붙는 존칭)'붙어있다는 점입니다. 코르테스는 본래 이달고 신분의 '하급귀족'이었고, 그는 이후 '오아하카의 후작'으로 임명받기 직전에 '돈'이라는 칭호를 자신의 이름앞에 붙일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테노치티틀란 공방전 직전에 자신의 동맹군이면서 '다르게 말하자면 굴복한' 텍스코코 왕족들의 이름앞에 '돈'이라는 '에스파냐 존칭'을 붙이면서 '자신보다 더 높게' 카를로스1세 국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소개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은 코르테스의 '새로운 질서'에 대해서 중요한 단서중 하나이며, 그가 원주민 왕족및 지도자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켜 에스파냐 본국과 비슷한 사회계층으로 동화시키는 과정이라 볼수있습니다. 이들은 이후 완벽한 에스파냐 통제하의 식민제국이 형성되면서도, 에스파냐 백인들과 통혼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이어나갈수 있었으며 상당수 지배계층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주제의 글 잘 읽었습니다.
어느나라든지 망해도 그 나라 높은 사람들은 잘 살게 된다는........ㅜㅜ 다른나라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즈텍 황족귀족들은 뭐;;
현명하게 잘 처리했네요. 종교부터 통합한 게 차후의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