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0일 화요일
[ㅅㅎ] [오전 9:41] 40일이나 단식을 하는 사람도 있군요. 이 긴 단식은 독이었을까요? 득이었을까요?
암 치유를 위해 믿음을 갖고 이토록 힘든 과정을 거쳤을 텐데 만약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면 그 허망함을 어찌 견뎠을까요?
남 따라 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는 결과가 알려줄 뿐 과정에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게 치유 과정의 어려움이 아닐까 싶어요. 저 역시 잘한다고 한 게 결과가 안 좋았던 경우가 더러 있어서.
관찰하고 표현하고 흘려보내라. 그리고 지금 할 일에 집중하라.
이걸 계속하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나요? 참나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나요? 두려움과 후회로 끊이없이 나를 자극하는 에고가 힘을 잃게 되나요?
다발성 전이암을 품고 사는 저로선 암이 주는 증상, 그로 인한 두려움을 가만히 관찰하고 흘려보내는 내공이 없나봐요. 이 내공이 마음수련을 하다 보면 생기는가 하는 것이 오늘 저의 궁금증이구요. 그렇다고 두려움에 쩔어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아니고
[ㅅㅎ] [오전 9:43] 지금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임동규] [오전 9:58]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임동규] [오전 10:10] ㅅㅎ샘은 책을 읽고 자기를 돌아보셨나요?
책에서 뭐라고 했길래, 그런 의문이 들었을까요?
[임동규] [오전 10:11] 여러분들!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낫기 위해서죠. 살기 위해서이겠죠?
그럼 낫기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하는 배경은 무엇인가요?
낫지 않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요?
만약 지금 그 길이 옳지만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도 하겠어요?
안 하겠죠.
그런 마음을 살피고 놓아 보내라는 거에요.
흘려보내는 것은 불안, 걱정, 두려움 마음이죠.
해야 할 일 할 때도
그 해야 할 일이 불안, 걱정, 두려움 때문인지 살피라는 거에요.
그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그리고 남는 건 무엇일까요?
낫던 안 낫던, 살던 죽던 그런 것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게 되겠죠.
그 할 일에 의미를 두겠죠.
그럼 자기 몸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럼 자기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더 잘 알겠죠.
예쁜 선희샘은
왜 예쁘길 바라나요?
예쁘지 않으면 선희샘이 아닌가요?
선희샘 글 속에
이미 자기 에고로 象을 그려놓고
그 象대로 결과가 좋기를 바라는 욕망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결핍, 두려움일 수 밖에 없어요.
그런 부정적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대로 결과가 주어지요.
그걸 붙잡고 있었으니...
더 큰 걸 바란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먼저 놓아야 해요.
강을 건너가려면 뗏목이 필요하지만,
일단 강을 건너가면 그 뗏목은 아무리 거금을 주고 샀더라도 내려놓아야 해요.
마찬가지에요.
그 두려움 걱정은 변화를 위한 동기 역할만 하는 거에요.
이제 변화를 위해 출발했다면 그 두려움은 이제 쓸모가 없어요. 아니 방해만 하죠.
물론 결과가 좋아지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러나 이제는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둘 때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이제 유치원을 졸업하세요.
계속 유치원 생활을 하겠다면 방법은 없어요.
그건 신이라도 어쩔 수 없어요.
쥐고 있는 것을 놓고 신의 손을 잡으세요.
길은 그것뿐이에요. 다른 길은 없어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그건 에고의 생각이며, 그래서 에고를 관찰하고 표현하라는 거예요.
[ㅅㅎ] [오후 12:47] 절벽 끝에 서서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기분이에요. 작은 바람만 불어도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데 제겐 붙잡을 지푸라기 하나 없는 기분. 절벽을 보지 말고 뒤돌아서서 한 발 한 발 걸어나오자, 더디더라도 절벽의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자, 기어서라도 굴러서라도 절벽에서 멀어지자...
바람은 끊임없이 나를 절벽으로 밀고 있고, 이 바람을 뚫고 절벽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나는 얼마만큼의 힘을 내야 하나? 바람을 이길 만큼의 힘! 바람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두려움 때문인 게 맞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는데도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절벽으로 밀릴 것 같은 두려움.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내공을 키우고 싶어요. 두려움이 치유에 방해만 된다는 거 잘 알아요. 그런데도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건 나의 에고가 너무 강하다는 걸까요?
책을 읽었다고 책 내용이 고스란히 내면화 되는 게 아니어서(이것도 책 내용에 대한 에고의 거부반응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책 몇 권 읽었다고 에고와 참나를 분리하는 힘이 생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직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이건 참나의 생각이 아니다, 에고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는 수준이에요. 에고 때문이든 어쨌든 현실의 나는 아프고 두렵고 현실을 회피하고 싶고... 약하디 약해지는 내 모습을 지켜봅니다.
예쁜 ㅅㅎ는 내가 나에게 주는 긍정확언 같은 거예요. 네가 어떤 모습이든 누가 뭐라든 넌 예뻐,라는.
[김대현] [오후 12:53] 아나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것이 변했다"에 병의 원인은 공포에서 시작되어 내려놓음으로 완치되었다고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혹시 읽지 않으셨다면 꼭읽으시고 힘이되었으면 합니다.
[임동규] [오후 12:54] 책 한 권 읽고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욕심도 관찰하면서
자신이 할 일을 하세요.
책 내용이 다 동의가 되나요?
동의가 된다고 다 되는 건 아닌 줄 잘 알아요.
지금 샘이 할 일을 잘 되느냐 마냐가 아니라
책이 가르쳐 주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에요.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죠?
지금 샘이 떠드는 소리는 샘 본인이 아니라
룸메이트라고...
그리고 룸메이트의 속성도 설명되었고
그 곳에 본래 자신이 무엇인지도 설명되었을 거예요.
제발 책 내용을 갖고 질문하세요.
[ㅅㅎ] [오후 12:54] 여러 번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임동규] [오후 12:55] 그런 책도 그런 분의 결과가 내 결과이길 바라면 소용 없어요.
오히려 허탈감만 생기죠.
그 책을 추천드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에요.
앞날을 알 수 없다는 것 하나
또 하나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라는 것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하자
그것도 미래 결과를 바라지 말고 현재 하는 일에 의미를 두자 입니다.
[임동규] [오후 1:01] 아, 놔 살짝 열받네 ㅋㅋㅋ
도대체 앎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친 거야? 제대로 가르친 거야? ㅎㅎㅎ
그리고 학생들에게
도대체 앎학교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거야?
왜 명확한 길을 알려줬는데도 지금 자신의 길을 의심하는 거야?
어차피 가야 할 길은 이 길밖에 없는데
잘 되든 잘 안되든 그냥 하는 길밖에 없는데
왜 쓸데없이 에고의 소리에 춤추고 놀고 자빠졌어
자기 갈 길이나 갈 것이지... ㅋㅋㅋ
[임동규] [오후 1:11] 저 욕 잘 해요.
저 화 엄청 잘 내요.
제 에고는... ㅋ
지금 에고는 더 심하게 반응하고 싶어 안달이죠.
그래도 지금 많이 얌전해지고 친절해진 편입니다.
예전에 어떠했을 지 감이 오시나요? ㅎㅎㅎ
[ㅅㅎ] [오후 1:12] 이렇게 열 받는 것도 에고의 소리인가요?
에고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할 일을 한다는 건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앎학교 수강생들이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엉뚱한 짓을 해도, 즉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는 건가요?
잘 안 되더라도 묵묵히 이 길을 갈 수 있는 힘, 두려움을 자극하는 에고의 소리에 저항하지 않고 그냥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이게 제가 마음공부(마음수련)을 통해 얻고 싶은 거예요. 수련이 덜 되었으니 잘 안 되지만.
[임동규] [오후 1:13]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관찰이 잘 안 되었고, 에고에 빠진 결과이기에
지금 제가
그 에고와 실갱이 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하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이런 내 안내를 따르려고 노력해야 할 일이 샘의 일이에요. ㅎ
지금 그런 식으로 따져 묻는 게 아니라 ㅠ
[임동규] [오후 1:14] 관찰하면, 할 일을 하면 암이 사라지나요?
네 사라집니다.
제대로 관찰하면,
해야 할 일을 정말 했다면 당연히 사라지지요.
불변의 법칙, 인과의 법칙에 따라...
그런데 우리는 지금 허구의 에고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에고가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결과가 이뤄지게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고 평화가 깨지죠.
그 결과 현재에 집중 못하고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요.
방법은 딱 하나에요.
그저 할 일을 하는 것...
물론 지금 하는 일이 제대로인지 알 수 없을 거예요.
그건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죠.
그 결과를 관찰하고 조사하고 성찰하여 수정하며 또 나가는 거죠.
이것을 얼마나 빨리 집요하게 하느냐에 달려있어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분투해야죠.
뭐 달리 할 게 있나요? 없잖아요!
그럼 에고가 떠들던 말던 내버려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그게 다예요.
혹시 여러분은 지금 자신이 100점짜리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죠?
여러분이 에고의 소리에 휘둘리고 있다면
마음 영역에서는 거의 빵점이나 마찬가지에요.
마음 영역에서는 All or Noting 뿐이거든요.
따라서 음식, 맨발걷기를 열심히 해도 좋아지긴 하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암 덩어리가 있다면 자라는 걸 멈추는 힘이 부족할 가능성이 많죠.
음식, 운동 등으로 부족한 점수가 매꾸기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앎학교를 졸업한 여러분들을 위해 마음공부를 여는 이유이고요.
[ㅅㅎ] [오후 1:24] 따져 묻는 건 아니구요. All or Nothing라는 걸 아는데도,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길밖에 없음을 아는데도 자꾸만 에고에 이끌리는 내가 안타깝기도 하고, 나만 그런가 싶던 차에 선생님의 열받음이 내심 반갑기도 하고...ㅎㅎ
선생님도 그럴 때가 있는데 내가 뭐라고, 에고에 이끌리는 내 모습도 관찰하고 표현하며 흘려보내자 싶은 마음이 생겼네요.
[임동규] [오후 1:37] 에고에게 힘을 주면서
에고에게 끌려가지 않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냥 내버려두는 것 이외 다른 길은 없어요.
명상하거나
관찰하거나
그냥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거나
그것만이 에고에 휩쓸리지 않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흘려보내려고도 하지 마세요. 그것도 또 다른 에고에요.
안타깝게 여기는 것 또한 에고이자, 에고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고요.
안타깝게 느끼는 순간 동시에 관찰이 이뤄져야 해요.
느끼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죠.
에고의 일이고 오래된 습관(업)이니까요.
업이 그만큼 무서운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업에서 벗어나는 길을 발견했잖아요?
그럼 지금 여러분이 할 일은 탬버린을 울리고 춤을 추는 거예요.
에고가 뭐라하든 신경쓰지 말고요.
그런데 지금 춤추고, 만인에게 ‘와서 보라’고 외치고 있나요?
자기가 받은 이 엄청난 축복 앞에서
여전히 에고의 울상에 같이 빠져있으면 어떻게 축복을 누릴 수 있겠어요.
외치세요.
소리 지르세요.
[ㅅㅎ] [오후 2:02] 네, 알겠습니다.
길을 찾은 자의 축복
누리고 즐기겠습니다.
[ㅅㅎ] [오후 2:03] 사진
[임동규] [오후 2:32] 에고와 동일화되어
에고의 놀이에 계속 함께 빠져 지내면서
지금 주어진 축복의 축제를 즐기지 못하는 동안
암 완치 암 자유는 어려울 것입니다.
2기 앎학교가 지금 25명도 다 못 채운다는 것이
제 능력 부족이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
이 길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 부족때문에
여러분이 충분히 즐기고 소리치고 외치지 않은 것이 일부 역할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암 치유의 길은 그리 녹녹치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길을 걸어가는 데 어찌 그 길이 안전해 보이겠습니까?
어찌 앞날이 명확하게 보이겠습니까?
의심되는 것은 조사하고 공부하십시오.
설사 에고는 소란을 피우더라도
지금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이제는 믿고 누릴 때입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과 나누고 외치십시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왔노라, 보았노라, 누렸노라!